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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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5

빈 노트 by 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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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은 손에 들고 있는 카드를 끌어 올려 입을 가린다. 비로소 그는 완전한 가면을 쓴 셈이다. 플라스틱 카드 뒤의 입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J는 알 수가 없다. 손을 뻗는다. 손끝에 눈이라도 달려있는지 검지손가락으로 가볍게 카드의 뒤편을 쓸어본다. R의 눈동자에는 한 치의 흔들림이 없다.

이제는 표정도 잘 감추는구나.

이 정도는 돼야지. 이어지지 않은 말이 들린다. J는 긴 망설임 없이 한 장을 뽑아 든다. R의 입에서 안도의 숨이 터져 나온다. 이제껏 숨을 참고 있던 것마냥. J는 잠깐 소리내어 웃는다. 아직은 많이 어리구나 싶어서. 당장 일을 시켜도 될 정도로 똑똑하고 머리가 잘 돌아간다지만 그에겐 단 하나의 단점이 있었다. 표정을 잘 숨기지 못한다는 것. 매번 J가 R을 이곳에 데려오는 이유도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점차 나아지고는 있었으나, 어떤 순간순간 R은 자신의 표정과 내뱉는 숨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말을 신랄하게 한다고 해서 다 되는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표정 관리다. 입으로 거짓을 말해도 진실로 느껴질 수 있게, 진실을 말해도 거짓으로 느껴질 수 있게. 표정에서 진위여부를 가릴 수 없게. J는 가져온 카드를 확인하고 내려둔 자신의 카드를 다시 집어 올려 한 손에 쥔다.

J가 가져간 카드는 조커였다. 한 번의 기회가 더 R에게 찾아왔다. J는 두 장의 카드를 단 두 번 섞은 채 상대에게 내밀었다. 칸막이 너머에서는 갖가지 소음이 들려온다. 비명, 외침, 떨어지는 와인잔, 테이블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는 칩들. 그러나 둘 사이에는 몇 초간의 적막이 흐른다. R의 손이 다가와 카드 앞에서 망설이고, 한 장을 집는 순간까지도 J의 표정은 변화 없이 단 하나였다. 캔버스에 그려진 명화 속 인물처럼 그린 듯한 미소. 지체 없이 카드를 확인한 R은 옅은 탄성을 내뱉으며 카드 두 장을 함께 던지듯 내려둔다.

스페이드 A, 그리고 하트 A.

내가 졌어.

J는 나지막이 말하며 테이블 위 카드를 그러모은다. 어느 정도 뭉쳐두나 싶더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무것도 챙기지 않은 채다.

뭐라도 마실래?

물이면 돼요.

여기에서 딱 기다리고 있어. 카드 정리나 해 줄래? 조커 두 장은 따로 빼두고.

J는 칸막이 너머로 사라진다. R은 카드에 손을 뻗다 말고 사라지는 J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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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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