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창작, 자캐 로그
ㅊㅈ님 커미션, 23.08.02 작업물
선혈의 색은 눈이 시릴 정도로 붉었다. 이 세상의 휘광을 전부 흡수한 것처럼 선명한 적혈. 손안에 흩뿌려진 액체는 흔히 비유하는 검붉은 석류색이 아니라, 이게 정녕 피부 아래서 흩뿌려진 색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눈부신 다홍빛에 가깝다. 새빨간 생명의 색이 대지 위를, 옷자락을, 손바닥과 허공을 선명하게 물들인다.
공중에 비산하는 혈흔의 냄새는 차가운 비린내보다 달큼한 온기에 조금 더 가깝다. 현실감을 유리시키는 빨강의 점철 이후에, 뒤늦은 실감이 꼬리를 문다. 그 순간 온몸의 호흡이 뒤틀린다. 목청이 들이키는 공기 속에 산소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일순 호흡하는 법과 몸을 지탱하는 법을 전부 잊고 땅으로 추락한다.
폐부를 찌르는 통증은 분명 환상임이 분명하다. 잔혹하게 흩뿌려진 혈액은 제 피부를 뚫고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끓는 듯한 고통을 참을 수가 없다. 두 손을 물들인 유혈의 빛깔이 눈을 찌르는 듯하며 통제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른다. 시야를 가리는 투명한 막이 뺨을 타고 떨어진다. 이 눈동자에서 흐르는 것이 어째서 피눈물이 아닐 수가 있는지. 고통스럽기를 넘어서 목숨이 쥐어짜이는 것처럼 괴로운데, 안구에서 흐르는 것은 탁한 선혈이 아니라 투명한 물빛이라니.
아이 잃은 부모는 마치 짐승처럼 울부짖는다는 묘사를 들어본 적이 있다. 소중한 것을 잃는 감각은 인간을 짐승으로 회귀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런 방식으로 체감하거나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런 고통 따위 몰라야 마땅하다. 옷소매 위로 선명한 핏빛이 번져간다. 시시각각 더럽혀지는 옷깃보다 뇌리를 강타한 비탄이 더 강렬하고 선명하다. 미처 울음으로 승화되지 못한 감정의 격통이 전신을 짓누른다. 차라리 이대로 목숨을 내려놓는다면 편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잃었다. 곁에 없다. 홀로 남는다. 수많은 어구가 현실이 되어 깨진 유리 조각처럼 발밑에 흩뿌려진다. 고통이라는 이름으로 수렴하는 감정들은 피부를 꿰뚫고, 살점을 옥죄며, 신경 깊은 곳을 날카롭게 관통한다. 슬픔이란 감정 중에서도 가장 구체적인 형태와 부피를 가진 것이리라. 그게 아니라면 이토록 끔찍하게 괴로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슬픔이 직접 목숨을 앗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절하다. 자신의 모든 과거와 현재, 미래를 부정하고 싶게 만드는 감정이 신체에 해가 되지 않는다니. 목숨을 앗아가지 못한다니. 이 비탄에서 영영 멀어지기 위해서는 제 손으로 목숨을 모질게 끊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그런 각오가 없다면 이 격통은 그림자처럼 따라붙으리라는 사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하다. 슬퍼하는 것만으로는 뒤를 따를 수 없다.
길흉화복은 꼬아 만든 새끼줄이라면서. 평생 느끼는 기쁨과 슬픔의 총량이 같다고?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슬픔을 겪어본 채로 동률의 행복을 맛볼 수는 없는 일이다. 이 통탄은 분명 인생을 점점이 갉아먹으리라는 것이, 손톱 끝을 물들이는 핏빛 상흔처럼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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