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두운 충동, 카를라크를 죽인후의 짧막한 독백

속았다. 숨이 끊어진 채 바닥으로 쓰러지는 붉은색 몸뚱아리를 보며 나는 확신했다. 눈앞의 숨이 끊어진 이 외뿔 티플링은 세간에서 말하는 잔인무도한 악마가 아니다. 그는 그저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이 에메랄드 숲에 숨어있는 여느 티플링 난민들과 큰 차이 없는…

낭패다. 눈앞의 워락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당황스러워하는 얼굴로 그는 자신을 죄책감에서 구해달라 요청했고 나는 약간의 연민을 담아 윌이 원하는 말을 해줬다.

“변경의 검 만세!”

“변경의 검 만세!”

“변경의 검 만세!”

우스꽝스러운 치하 행사를 마친후 나는 죽은 티플링의 머리를 칼로 잘랐다.

써걱써걱

써걱써걱

무딘 칼날이 살을 찢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참 즐겁다. 그 어떤 음악 연주회도 이보다는 못하리라.

‘언제 들어도?’

“…”

내 기억에는 수많은 공백이 자리잡고 있다. 찢어진 그물마냥 구멍, 구멍, 또 구멍. 공백과 공백을 연결하고 꿰매며 기억의 파편들을 이리저리 꿰맞춰본다.

나는 살인자다. 적어도 기억속 과거의 나는 그랬다. 누군가의 삶을 파괴하고, 그들의 살을 찢고, 가르고, 씹는 행위를 즐긴다. 나는 피냄새를 향수처럼 뿌리고 숨이 끊어진 시체의 너절한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나는 대체 누구길래 이다지도 살육을 즐기는가. 의문이 꼬리를 물고 끊이지 않는다. 무고한 사람을 죽였음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내가 무섭다. 두렵다. 가책을 견디지 못하고 내면의 수렁으로 침전한다. 그순간 기억속 저편의 어둠이 나를 비웃는다. 살인자의 속삭임, 그를 이겨내야한다. 나는 적어도 현재의 나는 그와 다르다. 달라져야한다. 달라져야해. 달라져야…

‘너는 결코 그럴 수 없어. 넌 타고난 살육자야.’

내면 또 다른 내가 나를 비웃는다. 잘라낸 머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신선한 피가 내 다짐을 부숴뜨린다. 이 향은 내게 지나칠 정도로 달콤하다…

청명한 하늘 아래서 벌어진 살육의 현장, 무고한 이를 죽였다는 현실이 그저 참담하다. 눈을 감았다 뜬다.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고장난 심장을 주먹으로 누르며 몸을 돌린다. 가책을 느껴서는 아니다. 더 있다가는 머리 없는 저 몸뚱아리의 생살 뜯고 싶단 충동이 들까봐서였다.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 애쓰며 나는 한발작씩 그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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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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