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를 상관으로 둔다는 건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2차 창작 / 2017년 작
빅터 프랑켄슈타인 덕질하는 드림
빌어먹을 시체들.
헤르만 로텐베르크는 역겨운 탄내에 미간을 찌푸리며 통 속으로 손을 푹 집어넣었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손에 잡히는 물컹한 ‘재료’의 촉감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속으로 수십 번 쌍욕을 되새겼으나 결코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그의 바로 옆에 서 있는 높으신 분이 바로 제1사단 무기연구소의 총책임자였으므로. 흘긋 눈치를 살피자 상관은 평소처럼 거만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짓고 뒷짐을 진 채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픽 웃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물론 고개를 숙이고 ‘재료’ 관찰이나 하는 척 하면서. 이유라면, 상술했듯 그 비웃음의 대상은 위대하신 상관이시기 때문에.
저러니 여기저기서 재수 없다 소리를 듣지.
전쟁터라 함은, 벌레처럼 인간이 죽어나가는 곳이라, 까딱 정신을 놓았다가는 다음 순간 머리통이 날아간 채 목 잘린 제 시체를 지켜보게 될 지도 모른다. 혹은 마른 입술 사이로 왈칵 피를 토하며, 부릅뜬 채 말라붙어가는 안구로, 제 죽어가는 몸뚱어리를 관찰하는 것이다. 한 때 맑게 빛나던 눈동자는 점차로 탁해져 시야를 흐리고 사지가 비명을 내지르며 경련하다, 이내 그조차 과욕인 듯 시체로 문드러지고, 저에게도 한 때 헛된 희망이 있었음을 되새기다가 마침내 생을 떨구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낙하한 생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송장은 얌전히 통에 담겨 제1사단 무기연구소로 전달된다. 그러나 최근의 헤르만 로텐베르크에게는 이 참혹한 전쟁의 법칙은 조금 유하게 적용되리라. 제1사단 무기연구소에 배치되었다는 건 적어도 전장에서 직접 적군과 부딪힐 일은 현저히 줄어든다는 뜻이니.
헤르만 로텐베르크를 소개하자면 제1사단 무기연구소의 ‘재료’ 관리 담당자. 조금 더 명확한 설명을 택한다면 이름은 헤르만 로텐베르크, 본명은 헤르타 Herta, 나이는 23세, 본명을 알더라도 그를 부를 땐 헤르만 로텐베르크라는 가짜 이름을 택하는 편이 좋다.
그녀의 훌륭하신 상관께서는 아직도 돌아가지 않고 주변을 맴돌며 그녀가 ‘재료’를 분류하고 옮기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말이 좋아 ‘재료’지, 그 고상한 호칭을 때려치우자면 시체의 장기다. 그것도 아주 신선한. 상관은 신선한 장기를 좋아했다. 어감이 이상할지는 몰라도, 단순히 순수한 용도의 실험 재료였다. 개중에도 특히 신선한 뇌를 자주 외쳐 댔는데, 최근에 와서 헤르만은 신선한 frisch 의 ‘f’만 들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상관은 이제 아예 뒤에 서서 어깨 위로 고개를 내밀어 작업하는 모습을 감시하듯 보고 있었다. 대략 한 뼘 정도 큰 키 덕에 그 상태가 불편한 것 같지도 않았다.
헤르만은 지금껏 살면서 상관이 옆에 있는 것을 달가워하는 부하의 예는 본 적이 없었다. 그녀 역시 별다르지 않기에 제발 좀 이 상관님께서 자리를 떠 주십사 간절히 바랐으나 불행히도 상관은 독심술에 도가 트지 않은 것 같았다. 독심술은 못 해도 눈치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그는 헤르만을 포함하여 주변에 포진한 부하들의 원망 어린 눈빛 따위엔 결코 관심을 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건 심지어 효율적이지도 못해.
이 무심한 상관, 제1사단 무기연구소의 총책임자는 웰링턴 장군의 신임을 받는 젊은 대위였다. 상관께서는 단순히 그 거만한 표정만으로 불호를 얻는 것은 아니었다. 어려 보이는 얼굴에 실제로도 많지 않은 나이, 그럼에도 싹싹한 곳이라고는 없는 태도는 그보다 연상의 동료나 부하들 사이에서 좋지 못한 평판이 쏟아지게 했다. 그의 언행 하나하나에서 귀족 도련님다운 자연스러운 오만함이 줄줄 묻어났고 간혹 더없이 예민하게 굴기도 했다. 종종 헤르만은 그의 인성을 담당하는 부분 중 어디 한 군데가 마모된 것은 아닌가 호기심을 가졌다. 이를테면 양심이라든가, 선의지라든가.
그러나 실은, 헤르타 로텐베르크 스스로 내리는 가혹한 인성 평가에도 불구하고, 대위에 대한 감정을 딱 잘라 말하라면 호불호 중 단연 호였다. 이유를 설명하자면 헤르만이 이 제1사단 무기연구소에 배치된 원인부터 나열해야 했으니 길디길다. 가장 단순한 까닭부터 풀어놓자면 헤르만은 능력이 뛰어난 자에게 호감을 가졌다. 제1사단 무기연구소에 배치된 이후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이 바로 그녀의 상관은 천재라는 사실이었다. 거부할 수도 반박할 수도 없는 명명백백한 것. 그의 자신감과 거만함의 일부는 그러한 능력에 대한 신뢰로부터 비롯되었을 테다.
장군의 총애 또한 질투를 사는 요인이 되었는데, 판단키에 그가 답지 않게 장군에게 살갑게 굴긴 했으나, 저보다 높은 직위의 인물에게 그 정도의 친절함도 발휘하지 않는 이가 정녕 어디 있단 말인가? 심지어 헤르타 로텐베르크 또한 이렇게 상관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비난의 이유가 못 되었다. 그렇다면 결국 남은 것은 그의 다소 불친절하고 예민한 태도라는 결론이다. 정정한다. 다소가 아니라 ‘꽤나.’ 하지만 헤르만이 그에게 가진 호의는 그 정도는 충분히 눈감고도 남을 만큼 컸다.
헤르만은 인간을 판단함에 있어 관대한 편이었다. 그러니 유능하신 상관께서 제 어깨에 심지어는 턱을 올려놓고―대체 왜―그는 아마도 똑바로 서는 편이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돼 오히려 더 편안할 것이다― 네 손에 들린 시체의 손목을 태워버리겠다 싶은 눈으로 절단 부위를 뚫어지게 바라보지만 않는다면 그에 대한 평은 긍정적일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위께서는 오늘로 한 달째 이 짓을 하고 계셨다. 감히 상관께 짓이라? 그래, 짓이라. 이건 짓이라 불려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 짓이라 함은 특별히 볼 일이 없음에도 굳이 재료 관리부 쪽으로 와 배회하는 짓.
다른 할 일도 넘쳐나는 바쁜 분이신 걸 아는데 무슨 일인가 싶었다. 처음 며칠 째에는 당황하여 무엇이 잘못되었나, 경고를 하시는 건가 다 함께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삼주가 넘으니 이제 모두들 그러려니 넘겼다. 실험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신 천재 대위님은 휴식 시간에조차 재료를 들여다보지 않고는 못 견디시나보지, 정도의 결론이 그들이 생각하기에 가장 타당했다. 그러나 오늘이라면 조금 달랐다. 지금까지는 적어도 그저 감시할 뿐 이렇게까지 집요하진 않았다. 이제 그는 조금 멀어져 시신을 뒤적이고 있었다.
“중사.”
낮은 목소리로 저를 부르는 말에 헤르만 로텐베르크 중사는 발을 쾅 구르며 빳빳하게 각을 세웠다. 그는 몸을 부드럽게 틀더니 뚜벅뚜벅 바로 앞까지 걸어왔다. 눈을 마주친 채로 천천히 고개를 숙여 빤히 바라본다. 한쪽으로 가볍게 쏠린 짙은 색의 머리칼 아래 굳은 얼굴이 깎아 조형한 듯 했다.
실험체와 기구들을 바라보는 대위의 눈에는 언제나 소름끼칠 만큼 강한 집념이 녹아 있었다. 그것이 탐욕일지 야망일지 혹은 신념일지. 헤르만은 그것을 신념이라, 혹은 적어도 야망이라 부르는 편이 좋다고 여겼다. 왜? 그것이 신념이어야만 헤르만 로텐베르크는 실체를 좆는 자를 따르는 셈이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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