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일타브] 태몽
어린이날 기념 가내 겔탑
셀렌은 자신의 후원자가 여전히 단수인지 복수인지 모른다. 수 없이 많은 시선들은 그녀를 관찰하고 있고 그녀의 행동에 감탄하기도, 비난하기도, 박수를 치기도 한다. 드물게 그녀가 이러한 행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해 오는 목소리는 언제나 하나였지만, 그 요청을 누군가에게 받아 자신에게 전달하는 느낌에 가까운 것인지라 셀렌은 여전히 자신의 후원자가 단수인지 복수인지 모른다.
아무튼 간에 눈을 떴을 때, 그곳은 처음보는 방이었다. 육각형 형태의 방을 붉은 색 벨벳 커튼으로 꽁꽁 둘러 쳤고, 그 중앙에 화려한 샹들리에가 달려있었다. 샹들리에 바로 밑에는 마호가니로 만든 작은 테이블과 마주보는 의자 2개가 있었는데 그 의자 중 하나에서 셀렌은 앉은 채 깨어난 것이다. 셀렌이 마주보는 곳에는 입구로 보이는 문이 있었고 그 곁에는 금색 베스트를 걸친 가면 쓴 시종이 허리를 곧게 핀 채 서있었다. 이곳이 어디인가에 대한 호기심이 들기도 전에 이상하게도 셀렌은 차분했다. 마치 당연한 것을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 들었고, 어째서인지 설레기까지 했다.
이윽고 맞은편 커튼이 들춰졌다. 연미복을 단정히 입은 신사가 조금 긴장한 얼굴로 들어오더니 셀렌과 눈을 마주치자 금방 입꼬리를 올리며 화색이 되었다. 그는 조급한 발걸음으로 빠르게 테이블 쪽으로 향했고 의자에 앉고는 머리에 쓴 긴 실크햇을 벗어 방안에 있는 시종에게 건내주고는 깍지 낀 양손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의 얼굴은 긴장과 설렘, 그리고 흥분으로 입꼬리가 광대를 넘어서까지 올라가고 있었다.
“오, 아, 안녕 셀렌. 널 이렇게 만날 수 있었어 너무, 너무 기뻐.”
더듬더듬 말을 꺼낸 남자의 목소리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흥분이 베어나오고 있었다. 셀렌은 다정히 웃어보이며 인사를 건냈다.
“반가워요. 저도 이렇게 만나서 기뻐요. 아, 당신을 어떻게 불러드리면 좋죠?”
“아, 그, 그러니까, 으음……. 그냥 실크햇. 실크햇이라고 불러줘.”
“좋아요, 실크햇씨. 이렇게 당신과 팬미팅을 가지게 될 수 있어서 기뻐요.”
“오, 나야말로! 나야말로 너무 기뻐! 설마 내가 이 팬미팅에 당첨될 줄이야. 실은 너의 극이 상영되는 초연부터 쭉 빠짐없이 관찰하고 있었거든. 설마 이렇게 너와 만나는 날이 오다니!”
남자는 흥분으로 입꼬리가 눈꼬리와 마주할 정도로 솟아올라간다. 깍지를 낀 양손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겠는 듯 지나치게 벌벌 떨리고, 몸과 얼굴에서 지나칠 정도로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모습에 셀렌은 기겁을 하며 비명을 지르고 싶었으나 어째서인지 얼굴근육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곧 눈치 빠른 시종이 남자의 곁으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고는 차분히 말했다.
“■■■■■님, ■■■■■이 흐트러지셨습니다.”
“오, 오! 미, 미안해! 내가 추한 모습을 보여줬구나.”
퍼뜩 정신이 든 남자는 헛기침을 하고는 흥분을 억누르며 아까보다는 차분해진 모습으로 다시금 셀렌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튼, 너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데 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그는 코트 주머니를 뒤지더니 이윽고 무언가를 손에 쥐고는 셀렌에게 건냈다. 장갑 천 너머로 축축한 손이 셀렌에게 닿으며 곧 셀렌의 손위로 차갑고도 따뜻하면서도 묵직하면서도 가볍고 둥글면서도 모난 생물이자 물체가 꾸물꾸물 올라왔다. 마주 본 남자는 이제는 입꼬리와 눈꼬리가 만날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를 ■■걸 축하해, 셀렌.”
땡-
종소리와 함께 눈앞이 새하얘졌다.
퍼뜩 눈이 뜨인 셀렌은 다급하게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알 수 없는 꿈을 꾸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기괴한 남자의 웃음과 손바닥 위에 올라왔던 정체불명의 무언가의 촉감. 이게 대체 무슨 꿈인가 하며 막 깬 머리로 생각을 하고 있자니 옆에서 이불뭉치가 꾸물꾸물 움직였다.
“셀렌?”
잠긴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셀렌은 고개를 돌렸다. 비몽사몽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남편이 그곳에 있었다.
“미안, 게일. 깨웠어?”
“우응……. 더 자…….”
“그래, 미안해. 더 자자.”
사랑스러운 남편의 이마에 쪽 입술을 마친 셀렌을 다시 침대에 누웠으나 쉽사리 다시 잠에 들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에 꿈속의 남자가 한 말이 뭐였지. 누가 업어가도 모를정도로 푹 잠에 빠진 남편의 머리칼을 만지작 대며 셀렌은 꿈속의 말을 떠올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기를 가진걸 축하해, 셀렌.’
게일의 머리칼을 매만지던 손이 뚝 멈췄다. 셀렌은 다시금 머리속으로 빠르게 검산을 해보았고 이윽고 제 아랫배를 매만지며 말했다.
“세상에 라샌더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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