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일타브] Ms. 데카리오스의 회고
with 타라
※ 게일X가내타브 with 타라…인데 게일은 안나오는 글.
※ 예전에 썼던 ‘가내타브가 게일 수염 쥐어뜯고 싶어하는 글’을 고쳐쓰고 싶어서 썼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전글 함유량 1%정도밖에 안되는 기묘한 글.
※ 타라가 결혼한 타브를 어떻게 부르는지 영 감이 안잡혀서 작중에서는 그냥 이름으로 부릅니다. 영어로는 데카리오스 부인과 구분하기 위해 Ms라고 할거 같네요.
“그러고보니, 셀렌 양, 데카리오스씨의 무엇을 보고 결혼을 결심했나요?”
“응?”
한가로운 오후의 티타임, 셀렌은 뜬금없는 타라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 안했던가?”
“데카리오스씨가 당신과의 만남에 대해 말하는건 많이 들었지만, 정작 셀렌 양의 입에서는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아서요.”
셀렌은 멋쩍은 미소를 짓고는 타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의외로 셀렌은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다. 특별히 사연이 있어서 안하게 되었다기보다는 다들 자신의 모험담이나 페이룬 곳곳에 퍼진 이야기를 듣는 걸 더 즐거워했기에 자연스럽게 자기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안하게 된 편이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사적인 물음은 좀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음……. 게일이 우리 만남에 대해서 어디까지 말했어?”
“처음부터 끝까지요.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셀렌 양이 자신의 손을 잡아준 건 운명이었다니, 정신을 차리니 눈을 뗄 수 없게 되었다니 입이 아프지도 않은가 싶을 정도로 열변을 토해내더군요.”
살짝 질린듯 몸을 부르르 떠는 타라를 보며 셀렌은 진정하라는 듯 트레심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 손길이 마음에 드는지, 타라는 고롱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얼른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눈치였다.
“처음에는 그렇게 게일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았어. 너도 알다시피, 그 올챙이 제거 원정대가 평범한 구성은 아니었잖아?”
샤의 클레릭, 뱀파이어 스폰, 기스양키 전사……. 10년 넘게 모험을 한 셀렌에게도 그 조합은 참으로 기상천외한 조합이었다. 거기다 올챙이 제거라는 공통의 목적성을 제외하면 성향도 제각각인데다가 몇몇은 사이도 나빴다. 지금 생각하면 그 파티를 이끈 그때의 자신을 껴안고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난한 축에 속하는 게일에게는 눈길이 덜 갔었다.
“호오? 그럼 언제부터 데카리오스씨를 의식하게 된건가요?”
“으음……. 마법을 알려줬을 때려나. 그때 ‘아, 게일이 나한테 관심있구나.’ 싶었지.”
셀렌의 대답에 타라의 코가 벌름거렸다. 그녀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겠는 듯 눈을 크게 뜨고는 셀렌을 바라보았다.
“그럼 그때 처음으로 호감이……!”
“아, 그건 아니야.”
셀렌의 산뜻하고도 단호한 대답에 타라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털썩 주저 앉았다. 그 모습이 귀여워 셀렌은 타라의 양 볼을 긁어주며 대답했다.
“어디까지나 게일이 나한테 관심 있다는 걸 자각한거지, 나도 게일한테 바로 관심이 생긴건 아니었으니까.”
“데카리오스씨가 들으면 울겠군요.”
확실히 들으면 충격받은 얼굴로 울먹일것 같긴 하다. 그 모습을 떠올리니 어쩐지 귀여워 저도 모르게 이상한 미소를 짓고 말았다. 타라가 징그럽다는 표정을 짓지만 않았더라면 계속 히죽히죽 웃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셀렌은 다급하게 표정을 가다듬고는 이어 말했다.
“하지만 자각하니까 그 뒤로는 게일의 시선이 느껴지더라.”
그것도 자신의 후원자(혹은 후원자들?)의 시선만큼이나 집요하게 말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후원자(들?)의 시선은 흥미와 어떠한 기대감이었고, 게일의 시선은 호기심 섞인 호감이었다. 마치 자신이라는 책을 낱낱이 탐구하고픈 열정적인 학자의 눈길이라,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시선을 받아온 셀렌조차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저희 데카리오스씨가 굉장한 실례를 저질렀군요.”
듣고 있던 타라는 괜히 제 일처럼 부끄러워 서둘러 얼굴을 그루밍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셀렌은 타라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고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게일이 실례만 저질렀다면 결혼은 커녕 사귄다는 생각도 못했지. 혹시 게일이 그 얘기도 해줬어? 내가 인상 깊었던 향토 요리에 대해 얘기하면 다음날 저녁으로 게일이 비슷하게 요리해줬다는 거.”
“므으음? 그건 처음 듣는군요.”
처음에는 모두가 자신의 향토 요리 이야기를 듣고 먹고 싶다고 말하니 게일이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저녁을 먹던 중 그와 눈이 마주치고 나서 알았다. 셀렌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요리한 것이 아닌, 셀렌을 위해서 요리해줬다는 걸. 그걸 깨닫고 나니 가슴이 간질간질해져서 그날 밤은 눈을 잘 못붙였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던거군요.”
콧김을 뿜어내며 타라는 제자리에서 몇번 빙글빙글 돌았다.
“응, 하지만 결혼까지 결심할정도로 빠져들었던건 한참 후였어. 그때는 여행중에 만났으니까, 올챙이 제거라는 공동의 목표만 이루면 제각기 갈길 가면서 헤어지겠지~라고 어렴풋이 생각하기도 했거든.”
“데카리오스씨가 들으면 쓰러질 소리군요.”
“후후, 그러니 너만 알고 있어줘, 타라.”
셀렌은 10년이 넘는 모험 생활에서 많은 인연을 쌓아왔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그 중에는 연인들도 있었다. 만남도, 과정도 제각각이었지만 딱 하나, 끝만큼은 지독하리만치 건조하게 끝났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모험끝에 셀렌과의 결혼을 원했고, 안정적인 정착생활을 원했다. 하지만 당시 혈기왕성했던 셀렌은 모험을 더 하고 싶었기에 결국에는 결별을 고하고 헤어졌다. 그래서 게일과의 연애를 시작했을 때도, 목표가 이루어지면 서로 갈길가며 헤어지겠거니 싶었다.
“그럼 어쩌다 결혼까지 결심할 만큼 사랑에 빠졌던건가요?”
타라의 물음에 셀렌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나는 미스트라에 맞서 그녀의 힘을 빼앗을 수 있게 될 거야. 모든 사람을 위해서 말이지.’
라마지스 탑에 거주하는 마법사 로로아칸과의 대면에서 그 말을 들었을 때, 셀렌은 진심으로 그의 수염을 쥐어 뜯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충동은, 셀렌 서머필드(지금은 셀렌 데카리오스)가 게일 데카리오스를 깊이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수염을 쥐어 뜯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고 더욱 깊이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고요?”
셀렌의 말을 듣던 타라는 황당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셀렌 스스로도 말하고 나니 좀 웃겼다. 수염을 쥐어 뜯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고 나서보니 그를 지독히도 사랑하게 되다니. 하지만 사실이었다.
“의무감 아니면 책임감, 혹은 사명감같은 느낌이었지. 이 남자, 내가 책임지고 뜯어 말려야겠다고.”
그것이 셀렌이 처음으로 가져본 깊은 사랑의 형태였다.
“셀렌 양이 그렇게 마음먹어줘서 정말로 다행이에요. 그때의 데카리오스씨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아직도 가슴이 철렁한답니다.”
“나도 그래 타라.”
제 손에 머리를 부벼오는 타라를 쓰다듬으며 셀렌은 회상했다. 셀렌이 사랑을 깨닫자마자, 불행히도 게일은 카서스의 왕관을 통한 승천 의식에 제대로 눈이 돌아간 상태였다. 당시의 게일은 셀렌에게 자신의 승천을 지지받고 싶어 온갖 이유와 명목을 들먹였었고, 셀렌은 그 개소리만도 못한 소리에 당연히 반대했다.
본디 셀렌은 승천은 커녕 그런 발상조차 떠올리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녀는 세상에 만족할줄 아는 사람이다. 그녀는 바드로써 신들이 잔인하리만치 혹독할 수 있는 동시에, 그들의 권능이 빚어낸 세상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을 10년간 두 눈과 귀로 똑똑히 보고 들은 사람이다. 누군가는 그런 그녀를 보고 신들의 애완동물이니 가축이니 하고 비난했지만, 셀렌이 보기에는 그렇게 비난하는 자들이야 말로 어리석은 자로 보였다. 세상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당연히 자기자신도 만족스럽지 못한 법이다. 스스로가 만족스럽지 않은데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이 만족스러울리가 있나.
그리고 안타깝게도 당시의 게일은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모든 것을 가졌다고 자부하던 사람이 한순간의 과오로 추락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미치거나, 미쳐버리고 싶은 심정이 된다. 게일 역시 왕관과 의식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애써 그것을 감추고 있었던 것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고 나아가 한단계 더 발전한 존재가 되고 싶어했다.
“만족할줄 모르는 게일이 미웠고, 그가 만족할만큼의 사랑을 주지 못한 나도 미웠어.”
결국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느껴 언제나처럼, 그리고 처음으로 결별을 고하려고 했었다. 나의 사랑이 당신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이대로 끝내자고. 언제나처럼 각자 갈길을 가는 것이었고, 처음으로 가슴에 사랑을 묻고 헤어지려고 했었다.
“하지만 데카리오스씨는 셀렌 양을 택했군요.”
“응, 나만 있으면 신의 힘같은 것도 필요없데.”
그때를 떠올리면 쑥스럽고 좋아서 셀렌은 베시시 웃음을 흘렸다. 세상만사 사랑 하나만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건 이야기 속의 일이고, 이야기만이 가질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했는데, 게일은 그 이야기를 실제로 실현시켜주었다. 마법의 천재라는 칭호가 거짓말이 아니듯 엄청난 마법을 그녀에게 부려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타라는 기지개를 쭈욱 피고는 만족스럽다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셀렌 양이 모험도 포기하고 결혼해서 워터딥에 정착한거군요. 칠칠치 못한 저희 데카리오스씨를 맡겨버려서 죄송해요.”
“후후, 괜찮아. 그이가 또 엉뚱한 짓을 저지르려고 하면 그때야말로 그가 아끼는 수염을 쥐어뜯어 버릴 예정이니까.”
“므웨오오옹! 그땐 꼭 저도 불러주세요!”
“물론이지.”
그 시각, 검은지팡이 아카데미 교수실에서 업무를 보던 게일이 왜인지 모를 오싹한 소름을 느꼈으나, 굳센 맹세를 나눈 여자와 트레심에게는 알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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