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관람가의 오메가버스

가비지타임 준상

준상 by 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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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붕 및 급발진 주의

BGM : 

https://youtu.be/1p7nAfoBmks?si=EtIJV3yrDBJ14Uht





 성준수. 나이 만으로 21세. 세는 나이든 만 나이든 보고 싶은 거 다 보고 사고 싶은 거 다 살 수 있는 나이다. 오늘부로 본인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베타인데 알파 취급받는다.





15세 관람가의 오메가버스





 준향대 익명게시판에 체교과 성준수 관련으로 올라오는 글은 대개 두 가지 부류였다. 첫 번째 체교과 잘생긴 분 누구신가요 애인 있나요. 이 글은 대개 올해도/이번 학기도 어김없구나 라는 댓글과 학기 초이긴 한가 보구나 라는 댓글, 마지막으로 작성자 분이 베타셔서 모르시나 본데 아주 사이좋은 오메가가 있답니다 라는 댓글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부류는 다음과 같다. 참고로 첫 번째 부류를 마무리짓는 댓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늘자 슈터폐하


ㅅㅈㅅ 존나어케 이런 개씹알파가 다 있을 수 잇지

비저비터 역전승 실화냐? 준향대의 자랑이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준익전MVPㅅㅈㅅ임반박안받음ㅅㄱ


ㄴ엥 ㅅㅈㅅ 알파 아닌데

ㄴ?

ㄴ?

ㄴㄹㅇ임 성준수 베타잔아

ㄴㅁㅊ써방좀;;

ㄴ차피 당사자는 보지도 않을 텐데

ㄴ성준수 알파 맞지않음?

ㄴㄱㅆ)얘들아 난 성별을말한게 아닌데지금

ㄴㄴㄴ우리학교 농구부에 알파 ㅂㅂㅊ 포함 세 명밖에 없음 성준수 아님

ㄴ엥 ㅅㅈㅅ항상 오메가페로몬 묻히고 다니지 않나

ㄴ22각인상대랑 찐하게 사는구나싶엇는데

ㄴㄱㅆ)ㅇㄴ난 관용적 표현을 쓴 거라고 2의 성별 얘기한 게 아니라;



 태생 제 2성별인 사람들은 제 성별의 페로몬을 사시사철 흘리고 다니는 미숙한-또는 몰상식한-행동을 하고 다니지 않았고 그들이 페로몬을 제 3 자에게 노출시키는 건 오로지 러트 또는 히트 기간뿐이었다. 그마저도 억제제 덕분에 심각하게 노출시키지 않았다. 즉 성인 중 페로몬 덕지덕지 묻히고 다닌다면 상대와 아주 진한 시간 보내나보다, 각인 상대랑 사이 좋은가 보다, 짐작케 되는 것이다. 물론 이차 성징기에 제 2 성별 발현하지 않고 제 1 성별 시스젠더 남성에 제 2 성별 베타를 확립한 성준수로선 실감하지 못할 세계였다.

 익명 게시판 볼 일이라곤 수강 신청 때밖에 없었다. 성준수가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성준수 알파 페로몬’ 이슈를 접하는 게 가장 늦었던 건 고의가 아니란 소리다. 주익대 경기 끝나고 전영중 시비에 버퍼링 걸린 건 그래서였다.


- 준수 너 정말 대단하다. 뒤늦게 알파 발현이라도 했어?

- 시발 뭔 개소리야?

- 아무리 좋을 때라지만 오메가 페로몬으로 그렇게 티를 내고 싶어? 얼마나 붙어있었는지 몰라도 난 네가 페로몬 조림이라도 된 줄 알았잖아. 그럴 시간에 슛이나 더 쏘는 게 어때?


 다행히 이쯤 되어서 성준수 사고 회로가 재가동을 시작했으므로, 그는 전영중의 ‘그 별 볼 일 없는 몸뚱아리로 준향대 주전에서 살아남으려면-’으로 시작하는 지랄 메들리에 ‘니네 오늘 우리한테 개처발렸으면서 말이 존나 많다’로 대응해 ‘아가리 근육 단련시킬 시간에 수비 연습이나 해라’로 끝낼 수 있었다. 고교 시절에 비하면 어그로에 대응하는 성준수의 이성이 질겨진 덕이라고 볼 수 있겠다. 분노 대신 다른 감정이 앞서 뇌를 잠식한 탓도 컸다.

 첫 번째로 당황스러웠다. 그에게 시비 건 전영중은 답지않게 반쯤 진지하게 불쾌해하는 것 같았고 동기인 박병찬마저 락커룸에서 성준수에게 조심스레 ‘음, 준수야. 애인하고 사이 좋은 건 알겠는데 조금 자제하는 건 어떨까?’ 한 마디 했다. 성준수가 오메가 페로몬에 절여질 일이 전혀 없었음에도.

 두 번째로 억울했다. 성준수는 대한민국의 신체 건장한 한창 때의 - 거기에 미모까지 겸비한- 남정네치고 건전하게 살고 있었다. 그 나이라면 으레 청불 딱지 붙은 비디오 열댓번쯤 봤기 마련이라는데 그의 추천 동영상은 농구로 도배되어 있었고 정기 구독하는 플랫폼이라곤 잘못 눌러 구독했다가 해지하자니 귀찮고 제법 편해서 유지 중인 유튜브 프리미엄이 전부였다. 쓸데없는 데에 시간 쓸 바에야 공 한 번 더 튀긴다는 게 성준수의 철학이다. 말하자면 누구든 성준수의 생활사를 듣는다면 종족이 인간 성별 남성 아니고 농구와 동족 아니냐 물을 거란 소리다.

 세 번째도, 네 번째도 전부 억울했다. 존나 억울하다. 님을 봐야 뽕을 딸 것 아닌가. 살면서 해 본 최대 스킨십이 키스는 개뿔 기내초 일짱 시절 같은 반 여자애 손 잡은 게 전부인 사람한테 좆같은 19금 조언하는 건 엿 한 번 먹어보라는 거냐? 성준수가 주도적으로 생산한 19금은 물질적 스킨십이 아니라 무의식의 반영이 최대다. 여기서부터 다섯 번째 감정 분노가 시작된다. 무의식의 반영 상대가 그의 절찬리 상영 중인 첫사랑 영화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거 중인 고교 후배였다.













12세 관람가 : 

주제, 선전성, 폭력성, 대사, 공포, 약물, 모방위험의 7가지 고려요소가 경미하고 간결하게 표현된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를 비사실적으로 묘사해 폭력 장면이 나와도 잔인하지 않으며 사실적 유혈 묘사를 피한다. 성에 대한 묘사도 만화적인 수준으로, 성적 행위가 나오더라도 키스나 포옹 수준이다.












 기상호. 나이 만으로 18세. 네*버 성인웹툰은 볼 수 있는데 다른 플랫폼 성인 관람가는 보지 못하는 애매한 나이다. 미성년자는 아닌데 성인도 아니다. 혼자서 콘돔은 살 수 있는데 술담배도 못 사고 가스불도 못 산다. 이 애매한 코찔찔이 애새끼가 성준수의 첫사랑 멜로 영화 주인공 되시겠다.

 주연 기상호. 성준수 1인칭 시점으로 분량 90% 이상을 기상호가 채우는 이 싸구려 멜로는 예고편도 없이 열아홉 성준수 머릿속에서 상영을 시작했다.

  쌍용기 마지막 7초에 성준수가 패스한 공 잡아챈 기상호. 정면 슛이라곤 좆도 없던 주제에 기어이 점수판 십의 자리 수 일의 자리 수를 동시에 바꿔내며 일궈낸 기적. 첫사랑 예고편이라기엔 동료애와 고교 시절 강렬한 기억으로 치부하기 당연했다. 그보다는 쌍용기 후에. 지상고등학교 농구부 글씨 다 벗겨진 스타렉스 타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내내 울어서 퉁퉁 부은 눈두덩이. 이것 봐라, 싶으면서도 내심 자신감 붙은 게 기특했던 드리블과 슛. 길거리 농구하려다가 걸려서 뒤지게 혼나고 딱 한 판 만이다. 허락했을 때 곧바로 밝아진 얼굴. 제 딴인 상대 일반인이라고 봐 주는 것 같으면서도 숨 죽이지 않는 통찰력 같은 것들. 기어이 덩크까지 꽂더니 환호하다가 곧바로 성준수 눈치 보며 꼬리 내리던 기상호.



- 야, 야.

- 넵.

- 한 게임 뛰라고 허락해줬으면 조심히라도 하든가 넘어지면 어쩌려고 덩크야 시발아….



 기상호가 성준수 눈치 보는 게 괜한 짓은 아니었다. 지상고는 더 이상 전국 꼴지가 아니었지만 쌍용기 우승이 팀원 수까지 늘려주진 못했다. 새로운 1학년이 입학해 인원 수에 여유가 생기기 전까진 몸을 각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그 뒤로 기상호는 다시 적당히 실력 죽여가며 경기했다.

 약속한 한 판이 끝나자 기상호는 땀범벅이 되어 성준수에게 다가왔고 성준수는 슬쩍 움직여 옆자리를 내어주었다. 배탈 나지 말라고 미지근한 물 먼저 쥐여주고 난 다음 시원한 물을 건넸다.



- 햄은 이런 길거리 코트에서 농구해 본 적 있어요?

- 어.

- 에, 진짜요?

- 안 믿을 거면 왜 물어봤냐.

- 준수햄 새햐얘가 평생 실내에서만 농구했을 것 같다 아녜요.

- 아주 그냥 평생 실내에서만 살았을 것 같다고 해라.

- 그것도 있고…맨날 다치면 안 된다고 하니까 그쵸.

- 하나라도 다치면 벤치 없이 다섯인데 공태성이 파울 퇴장당하면 네 명이서 경기하는 거야. 되겠냐?

- 그야 성 ‘The Mcgrady' 준수가 있으니까,

- 그만 해라.

- 넵.



 그만 하라고 한 지 채 20초가 지나기도 전에 기상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어릴 때 딱 이런 코트에서 농구했거든요. 너무 재밌더라고요. 비 오는 날에도 농구하다가 뒤통수가 깨져서 부모님한테 엄청나게 혼났죠. 성준수는 기상호의 이야기 한 가닥마다 답했다. 그래? 어릴 때부터 농구 많이 좋아했네. 그건 혼날 만했네. 그렇게나 농구가 재밌었어?

 어린 기상호를 상상했다. 지금보다 뼈대 얇고 덩치 작지만 또래보다 큰 건 여전한 웃자란 어린애. 농구화 아닌 평범한 운동화 아래 물방울 튀기는 물웅덩이. 신이 나 슛 던지는 기상호. 슛 던지는 옆얼굴이 지금보다 선 얇고 동글동글했으면 어땠던 걸까, 싶어 눈앞의 기상호 옆얼굴에 저도 모르게 손 뻗었다.



- 네.



 그리고 기상호는 웃었다. 부정 없이 바로 나오는 시원한 대답에 기분이 이상했다. 성준수는 애써 티나지 않게 제 손을 갈무리했다.



- 농구가 너무너무 좋았어요.



  아마 그 순간이 예고편 비슷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성준수가 무시해서 몰랐던. 몇 마디 더 오가다가 가볍게 타박한다.



- 그런 놈이 왜 그만두겠다고.

- 에이, 다 지난얘기다 아임니까. 흑역사 꺼내시는 거, 남.자.답지 못합니다만?



 기상호가 농구 그만둘 생각 없다고 확실하게 말한 덕에 넘어갔으나 한동안 성준수는 자고 일어나면 기상호 짐이 숙소에서 빠져있을까 걱정하곤 했다. 영문 모른 채 삼학년 선배들 옆에 딱 붙어 자야 했던 기상호는 덤이다.

 서늘한 가을 공기가 간질간질함과 함께 폐부를 채웠다. 성준수가 제 안에서 불어난 느낌에 어찌할 바 몰라 침묵을 지키자, 덩달아 침묵을 지키던 기상호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 준수햄. 그럼 나중에요. 진짜 나중에, 햄도 글코 저도 글코 팀원 많은 팀에서 주전일 때요. 그럼 우리 주전이니까 안정적인데 벤치 선수도 있다 아녜요?

- 어.

- 그럼 그때 저랑 길거리 농구 한 판만 뛰어주심 안 돼요?



 바로 그 순간 성준수의 첫사랑 영화가 상영 시작했다. 돌이켜봐도 어이없다고 생각한다. 무슨 놈의 자각을 길거리 농구 한 판 같이 뛰자는 말에 하지. 그러나 걔가 너무너무 좋아한다는 무언가를 성준수와 함께 하고 싶다 생각하는 건, 성준수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아직까지도 절찬리 상영 중이니 말 다 했다. 러닝타임 실시간 갱신 중, 엔딩은 아직 모르지만 주연이 주연인지라 사실 기상호는 외계인이었고 원래 행성으로 돌아가야 해서 성준수 고백 따위 못 받아준답니다, 이 따위로 끝나도 납득 가능하다. 관객은 성준수 혼자, 각본은 성준수와 기상호 공동 집필이다. 아마도. 감독은 성준수 아니고 기상호다. 성준수가 뭐 기획하려고 해도 주연 기상호가 지 멋대로 이리 튀고 저리 튀어서. 영화 결말도 기상호에게 달려 있지 않은가. 상영 초기와 상영 시작한 지 2년간은 공동감독으로 성준수도 한 자리 차지했으나 기상호가 서울로 올라오고 나서부터 밀려났다. 대신 카메라 감독은 성준수다. 감독 기상호가 퉁퉁 부운 눈으로 배 긁으며 햄 일어나셨어요, 하는 장면을 기획해도 결과물은 콩깍지 필터에 온갖 보정 때려박은 것 같은 화면이다. 그런데도 성준수는 결과물이나 주연 기상호 원래 모습이나 똑같이 귀엽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욕 없는 감탄사 내뱉을 정도로 대단하게 답 없구나, 싶어 카메라 감독만은 놓치질 못하겠더라. 제작 및 상영 시작한 지 2년간 주연은 얼굴 제대로 비추지 않았지만 가끔 부산 로케이션 촬영할 때와 카톡 대화창만으로 분량을 꿰찼다. 카메라 감독 성준수가 분량 싹싹 긁어모으고 공동 감독 성준수가 주연이 등장하지 않는 분량은 상영 전에 한껏 쳐내는 게 큰 이유를 차지했다.

  관객 성준수 평가가 어떠냐면, 실시간으로 별점이 오락가락해서 점수 매길 수가 없다. 기상호는, 시발, 가끔 왜 이 새끼를 좋아하게 됐는지 스스로를 원망스럽게 했고 자주 사람 빡돌게 했다. 지가 감독에 주연 다 해 처먹는 주제에 이기적인 줄도 모르고. 성준수와 함께한 일 년간 벤치 워머에서 수비 유망주로 성장한 기상호는 성준수가 대학 생활하는 이 년 동안 전국구 에이스 스토퍼란 별명을 얻으며 주익대 체교과에 너끈하게 합격했다. 기상호는 지상고 단톡방보다 먼저 성준수에게 합격 소식을 알렸다. 저 닮아 뭔 등신같은 강아지 이모티콘과 함께 보내온 주익대 합격 결과 페이지를 보고 성준수는 당장이라도 갈색 머리통을 박박 쓰다듬고 싶었다. 물론 둘 사이에는 KTX 타고 네 시간 반이라는 물리적 거리가 있었으므로 참을 수 있었다. 딱 이틀 동안. 정확히 이틀 후 성준수는 기상호와 경쟁 대학 같은 리그라는-다른 후배들과도 공유하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에 눈이 뒤집혀 부산으로 가는 열차를 예매했다가….



너 서울 언제 올라와

서울요?

저요?

햄 진짜 저한테 말씀하시는 거예요??

상호야 이게 단톡방이냐?

아녀….



... 당장에 다짜고짜 지상고로 내려갈 건덕지가 도저히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신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열차를 예매했다. 타는 사람 기상호 예매한 사람 성준수의 제대로 된 미친 짓이었다. 차피 서울권 대학 합격했으니 얼굴 좀 볼 겸 서울 구경에 저희 학교 캠퍼스 투어나 시켜주겠다는 심정이었다.



주말에 서울 올라와라

네??

(사진)

표 끊어놨으니까

시간 맞춰 타고

네??

아니햄그게무슨




 역에서 기상호는 금방 눈에 띄었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쯤 큰 갈색 머리통 알아보기는 쉬웠다. 키는 크지 않아 입학한 후 190 찍은 성준수보다 약간 눈높이가 낮아졌지만 덩치는 커졌고 젖살도 조금 빠졌다. 준수햄,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반가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한편으론 공포에 떨고 있었다. 다행히 기상호는 빠르게 적응했다. 몇 개월 후 지상고 졸업식 날 찾아온 성준수를 멀리서부터 알아보고 준수햄!하고 손 흔들었다는 소리다. 막 사진 찍던 김다은과 정희찬이 기상호와 성준수를 번갈아보다가 굳고 공태성이 눈 비비다가 성준수에 삿대질하다가 서은재에게 사람한테 손가락질하는 거 아니라며 옆구리 꼬집힌 건 덤이다. 기상호는 성준수의 꽃다발을 받고 웃었다.

 여기까진 아마도 성준수 (공동) 감독의 눈물겨운 첫사랑 일기였을 거다. 성준수가 배부른 줄 모르는 괘씸한 주연 겸 공동 감독에게 자리 빼앗긴 건 아이러니하게도 성준수가 기획한 장면이 성사됐다는 점이 큰 지분을 차지했다. 성준수가 기획한 기상호와의 동거는 성공적으로 촬영에 들어갔으나 그 뒤 유감스럽게도 그가 기획하지 않은 장면이 좀, 많이 발생했다. 기상호가 한밤 중까지 씹덕 애니 쳐보고 늦잠 자는 건 괜찮았다. 뒤지게 혼내면 되니까. 기상호가 성준수 씻을 때 성준수에겐 들리지도 않을 노크를 한 뒤 문 열고 수건 가져가는 건 괜찮지 않았다. 기상호가 성준수 맨몸을 얼핏 보고도 존나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메가들이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기본적으로 제 2의 성별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겉보기엔 똑같이 생겼는데 2의 성별이란 게 뭐길래 약 먹어가며 주기 조절해야 하는 건지? 약을 먹어야 이성을 제어할 수 있다면 그건 짐승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지상고 시절 농구부에서 제 2 성별 발현한 사람은 기상호 제외하면 알파 공태성밖에 없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농구부 2년간 선후배 포함 6명 만나봤다. 당연하지만 베타인 성준수가 페로몬이니 뭐니 하는 걸 느낄 순 없었다. 다만 매일 그들이 먹는 알약의 형태가 똑같고 일 년에 서너 번 자리 비우는 걸 감독과 코치가 쉽게 수긍하는 것으로 제 2 성별을 실감했다. 아마 그때 히트나 러트를 겪었을 것이다. 대학에 온 뒤 그렇게 자리 비우고 돌아오는 선수에게 가끔 다른 제 2 성별 선수가 네 상대 페로몬 어쩌고 하는 말을 하는 걸 목격한 바 있기 때문이다.

 제 1의 성별 시스젠더 남성에 제 2의 성별 오메인 기상호는 고교 시절에 매일 약을 먹는 것 말고 별 다를 게 없어 보였고 대학에 와서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성준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걔가 어느 날 한 이상한 요구는 성준수의 그러한 생각에 혼란을 일으켰다.



-햄 저 햄 저지 좀 빌려주세요.

-그건 왜.



 이어지는 말은 성준수를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히트 기간 때 혼자 버티는 거 힘들거든요.



 얘네 히트 기간 때 각인한 상대 없으면 상대 옷으로 둥지 만든다고 하지 않았나? 그리고 그 둥지는 보통, 체액이 저기하게…. 인터뷰 할 때마냥 어휘력이 0.1 SJS로 줄어든 성준수가 더듬더듬 정보의 출처인 초록창 지식인을 떠올렸다. 살면서 처음으로 본 제목에 19) 머릿말 단 게시글이었다-자고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이해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성준수는 오메가에 대해 제법 열심히 찾아봤었다-. 순식간에 뒷목이 달아오른 성준수가 기상호를 나무라려 들 때였다. 다시 이어지는 말은 성준수의 혼을 육신에 집어놓고 그럼 그렇지 얘가 무슨 놈의 19금 사정을 알아, 하고 죄책감 들게 만들기 충분했다.


-저 숙소 아니고 가족도 없는 건 오랜만이라 좀 외로운데. 준수햄 저지라도 있으면 든든해서 덜 힘들지 않을까 싶어가….


  그래 시발 얘 미성년자였지. 어릴 때부터 집안 막내에 빠른으로 소속되는 집단마다 막둥이 취급받았을 기상호가 갑자기 자취생활에 던져지면 외로울 법도 했다(라고 성준수는 빠르게 납득했다). 이 요구를 기점으로 성준수는 미자에게 살색 가득한 상상을 한 책임을 지고 공동 감독 직에서 물러났다. 망할 애새끼는 아무 생각 없이 사람 마음 들었다 놨다 하고 성준수를 제 요구나 입맛에 맞춰 움직이게 하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그 뒤로 성준수의 저지는 반쯤 기상호의 것이 되었다.

 히트 기간의 기상호는 뭘 하는지 몰라도 문 꼭꼭 잠궈뒀고 훈련까지 빠져가며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상호야, 불러도 방문 너머로는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고 아침 건너뛴 애가 점심까지 건너뛸까 걱정되어 밥 해두고 가면 겨우 몇 숟갈 사라진 게 다였다. 전화 보이스톡 죄다 부재중에 카톡은 안읽음 표시가 사라지지 않았다. 조급한 마음에 그날 내내 집중을 못 했다. 훈련 끝나고 겨우 여유 생겨서 기상호와의 톡방을 들어가 보면 메시지 네 개가 연달아 와 있었다. 성준수의 걱정어린 톡에 대한 답장도, 보이스톡 왜 했냐는 물음도 아니었다.


햄 제가 맛ㅇㅓㅄ어서안먹는게 아니ㄹ나요

진짜감사한데

도저히 더 먹을 상ㅎㅑㅗㅇ이아니ㅏㄹ

죄송해요

(이모티콘)


 선배 대하기를 하늘로 아는 체육계에서, 이 년 선배에 성깔이 성깔이기까지 한 성준수 무서워하는 주제에 답지않게 고의가 아닐 게 분명한 오타까지 내면서 답장 아닌 제 할 말만 하니 어지간히 아픈 게 아니구나, 싶었다. 기상호는 여전히 불러도 답하지 않았다. 방문에 귀 바짝 대어 보면 희미하게 앓는 소리가 났다. 성준수는, 걔가 많이 아프고 힘들구나, 실감하고. 고작 옷 하나 빌려주는 걸로 괜찮은 건가 걱정되고. 그 고통을 달래줄 수 있는 각인 상대란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닐지 생각하고. 언젠가 기상호 곁에 그런 알파가 나타나는 걸 상상하고…. 오메가들의 각인 상대 옷으로 둥지 만든다는 습성을 다시 떠올리며 외로운 게 아니라 어쩌면 내가 각인 상대 비슷한 걸까, 기상호에게 조금이라도 특별하게 여겨지는 사람인 걸까 일말의 희망을 가졌다. 제 주연 겸 감독이 성준수 저지를 빌려 하고자 하는 일은 뭘까 긴장으로 식은땀 가득한 손 꽉 쥐면서.


 사흘 만에 방 밖으로 나온 기상호는 아주 수척해 보였다.성준수는 새벽에 새로 끓이길 잘했다 생각하면서 식은 미음을 데웠다. 지상고 시절엔 기상호가 히트로 집에 간 게 딱 한 번이고 그마저도 이 정도로 심하게 야위진 않았던 것 같아 물으니 성인 되어가면서 심해진단다.



“너 입술 왜 이래.”

“…….”

“아오, 진짜….”



 대답없는 애새끼 마주 앉혀두고 구급상자를 꺼냈다. 맨손으로 발라주려다가, 도저히 이 가까운 거리에서 좋아하는 애 입술 만지면서 제 감정 티 안낼 자신이 없어 면봉에 약을 짰다. 와중에 조절 잘못해서 면봉 머리보다 짜인 약이 더 컸다. 기상호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다가, 눈깔 가만히 두라는 성준수의 일갈에 시선을 그에게 고정시켰다. 성준수는 제 시선을 그런 기상호 입술에 고정했다. 정확히는 덕지덕지 난 피딱지에.



“그래서 내 저지로 뭐 했는데?”

“그냥요.”

“그냥?”

“아무짓도 안 했어요. 완전 뽀송함.”

“도움됐어?”

“네. 저 진짜 준수햄이 내내 제 옆에 계신 줄 알았잖아요. 완전 든든하데요.”

“…그럼 됐어.”



 왜 외롭다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고 옷과 주인의 존재감에 대한 상관관계도 모르겠지만 기상호가 도움됐다니 두기로 했다. 성준수는 기상호가 곱게 접어 식탁 한 구석에 올려둔 저지를 챙겼다.



“안 찜찜해요?”

“아무짓도 안 했다며?”

“글킨 한데 오메가 히트 기간에 갖고 있던 옷이잖아요. 찜찜하지 않아요?”

“됐어. 상관없어.”



 기상호는 평소처럼 준수햄, 하며 감격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기상호의 러트는 두 번 더 있었고 그때마다 기상호는 성준수의 저지를 빌렸다. 정확히는 햄 빌려두 될까요, 하고 쭈뼛쭈뼛 물어온 게 두 번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기상호와 성준수의 옷은 내 꺼 니 꺼할 겨를 없이 섞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성준수는 입은 후드가 기상호 것이면 야 나 니 후드 입고 간다 하고 끝냈고  기상호는 햄ㅠ저 햄 바지 입어버렸는데 우째요?하곤 했다. 쭈굴쭈굴해져선 한껏 눈치 보며 성준수에게 굳이 빌려도 되냐, 묻는 건 기상호의 히트 때 뿐이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성준수에게 오메가 페로몬이 묻을 일은. 정말 혹시나, 싶은 일이지만.



“형. 제가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왜 자꾸 저한테 애인하고 적당히 하라고 해요?”

“준수 너 각인 상대 있는 거 아니었어?”

“저 베타라니까요?”

“아차, 말 잘못 했다. 오메가 애인 있는 거 아니었어?”

“아닌데요.”

“그래? 너한테서 오메가 페로몬이 풀풀 나길래 애인이랑 오래 붙어있는구나, 싶었지. 아니면 애인이 페로몬 조절이 능숙하지 않든가. 아니면 애인이 너 자기 남친이라고 많이 티내고 싶어한다든가?”



 확실히 베타랑 오메가 조합이 흔하지 않긴 하지. 기분 나빴어? 미안해~. 박병찬이 가볍게 분위기 풀려고 시도하는데 어느새 성준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멍하니 서서 생각한다.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서 오메가 페로몬이 난다는 게. 내가 혹시 싶었던 게. 혹시가 아니라….



“형.”

“응?”

“보통 페로몬은 연인한테나 묻히는 건가요?”

“묻힌다기보단 자연스럽게 묻는 편이지? 보통 발현하고 나서부터 자기 페로몬 조절할 줄 알게 되니까. 애인하고 어지간히 오랜 시간 깊게 스킨십하는 거 아니면 다른 사람 페로몬 맡을 일 없어.”

“그러니까 연인 사이에나 묻는 거라는 거죠?”

“그렇지?”



 오, 준수 혹시 관심 있는 오메가 생겼어? 박병찬이 눈을 빛낼 때 즈음에 성준수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홀로 남은 박병찬이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준최쿨미 연애사라니, 이보다 더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있을 리 없는데.













15세 관람가 : 

주제, 선전성, 폭력성, 대사, 공포, 약물, 모방위험의 7가지 고려요소가 지속적이고 구체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작품. 아동 살해가 간접적으로 나오거나 피가 뿜어져 나오는 장면이 나오는 등 폭력 수위가 높아진다. 신체 노출 및 성행위 관련 내용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성적 행위의 경우 보통 격렬한 키스 및 포옹이 한계이며 성기, 가슴, 엉덩이 애무는 청불 이상으로 등급이 올라간다.














 기상호가 저한테 페로몬 덕지덕지 묻히는 걸 알게 된 날 기상호네 팀이 회식이라니 타이밍도 참 좋았다. 기상호 어디 도망갈 일 없이 쉽게 위치 파악해서 잡으러 갈 수 있으니까. 이 계획의 변수라면 술에 꼴아 술집 테이블에 대가리 박고 있는 기상호다.

 복슬복슬한 갈색 뒤통수로 봐도, 구겨진 귀나 후드로 봐도 기상호가 맞았다. 만 18세에게 허용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음주인데. 평소엔 주변에서 권해도 알아서 사양하고 대개 그 전에 성준수가 기상호 뒷덜미 잡고 너이새끼내가술은안된다고했지하여간에발랑까져선 하며 술집 밖으로 끌고나갔다.

 술자리는 파한 분위기였다. 마지막 남은 건 기상호와 기상호의 동기 하나였다. 오며가며 종종 봐 타 대학 사람 비주전 중 그나마 익숙한 기상호의 동기가 성준수를 보자 얼굴이 환해졌다. 아마 이 답없는 술자리의 뒷정리를 맡은 모양이었다. 성준수가 기상호 옆자리에 앉자 묻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상황 설명을 시작했다.



“상호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여자친구 생겼다고 엉엉 울더라고요.”

“그래?”



 순간 오른 혈압에 뒤통수가 지끈거렸으나 참았다. 시발 난 너 좋아하느라 애인 없는데 그럼 네가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냐? 나한테 히트 때 옷도 빌려가놓고 네 페로몬도 묻혀놓은 주제에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으면 안 되지 상호야.



“네. 그리고 형님 이름 부르면서 배신자라고 하던데….무슨 일인지 몰라도 술 깼을 때 너무 혼내진 마세요.”



 성준수의 심상찮은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기상호의 동기가 주섬주섬 제 옷을 챙겨입는 속도가 빨라졌다.



“맞다. 형님, 예쁜 연애하세요.”

“그거 어디서 들었어?”

“네?”

“나 여친 있다고 누가 그래.”

“오메가 여친 있는 거 아니셨어요?? 요즘 소문 자자해요. 카페에서 여자랑 같이 있는 거 봤다던데.”

“아니 시발 하....그런 거 없으니까 그냥 가라.”



 그러니까 이 새끼는 성준수에게 여자친구 있다는 개 헛소문을 믿고 마셔본 적도 없는 술을 물잔에 받아 벌컥벌컥 원샷 때렸다는 거다. 당사자한테 묻지도 않고. 카페에서 여자랑 있던 건 성지수 얘기하는 것 같은데, 성준수 알파설과 성준수 오메가 애인설이 합해져 어이없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오메가 애인 있다는 소문 내려고 작정한 게 너 아니었냐. 근데 뭐 이렇게 허술하게 150%로 돌아온 소문 곧이곧대로 다 믿고 발등에 도끼 찍었어. 기상호는 성준수 물음에 답도 없이 새근새근 잠이나 자고 있었다.



“기상호. 상호야.”



 주량도 모르고 술도 못 해 본 새끼가 왜 이리 꼴았어. 사람 속도 모르고.

 기상호를 들쳐업고 자취방 골목길을 올랐다. 든든한 무게 덕에 풀코트 뛰었을 때의 배로 땀이 뻘뻘 났다. 이 년 동안 웨이트 제대로 쳤네, 실감하며 기상호 허벅지를 고쳐잡았다. 몸이 들썩이자 기상호가 희미하게 앓는 소리를 낸다.



“자냐.”

“네.”

“안 자네.”

“네….”



 기상호가 우물거리는 발음으로 대꾸했다.

 집에 와 침대에 눕히자 다시 잠에서 깨 칭얼거렸다. 햄, 저 다리 아파요. 너 나한테 업혀서 왔는데 뭔 개소리야. 그리고 지금 누워있잖아. 성준수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양 같은 말만 반복했다. 다리 아픈데 저 좀 앉을래요. 주정뱅이어도 기상호는 기상호라, 성준수는 제 주연 겸 감독 말 안 들을 도리가 없었다. 기상호를 일으켜 앉히고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그러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미쳤나. 기상호 좋아한다고 나도 이상한 짓하게 됐나. 그래도 내버려둬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일으켜 세워줬더니 또 말이 없다. 졸음기 가득한 눈으로 저 바닥만 쳐다보고 있어서 감독 의도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물은 건 성준수다.



“너 나한테 네 페로몬 묻히고 다녔지.”

“헉. 저 들켰어요?”

“어.”

“우예 들켰지….”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는 말투였다. 하여간에 어이없고 귀여운 새끼. 연기는 글렀는데 어떻게 성준수 마음 속에서 주연을 꿰찼는지.



“어떻게 들키긴. 네가 존나 묻히고 다녀서 나 오메가 여친 있다고 소문 다 났어.”

“그럼 햄 지금 애인 없어요?”

“네가 나한테 페로몬 묻혀서 지 꺼라고 소문내고 다녔다는데 있던 애인도 없어지겠다.”

“그러니까 햄 애인 없는 거죠.”

“어.”

“다행이다.”



 기상호가 헤실헤실 웃었다. 다행이라고 말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성준수는 생각했다. 침대 위로 완전히 올라갔다. 기상호가 성준수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기상호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걔의 움직임에 따라 다리와 다리가 조금 겹쳐졌다. 몸이 직접 닿은 건 아닌데도 열이 오른다.



“왜 다행이야?”

“그야 제가 햄 좋아하니까 그렇죠.”

“다행이네.”

“햄은 왜 다행이예요?”

“왜겠냐.”



 기상호가 성준수를 빤히 쳐다봤다. 경기할 때 상대 보는 것마냥 뚫어져라. 깊은 눈두덩이가 한참 뚱하게 굳어있다가 일순 부드럽게 찌그러진다. 기상호 눈가의 점이 제 주인 눈매 따라 접혔다. 입꼬리가 뿌듯하고 뚜렷하게 올라갔다.



“이거이거, 성준수…. 지도 내 좋아하고 있었다 이거제.”

“씨바거, 말투 진짜.”

“대답이? 없네요?”

“어. 존나게.”



 성준수 대답에 기상호가 흐흐 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성준수 뺨에 챱 손 올렸다. 기상호 손길 따라 얼굴이 가까워졌다. 허벅지와 무릎이 비벼지고 다리가 더 깊이 겹쳐졌다. 거의 동시에 입술이 포개어졌다. 가벼운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기상호 손은 성준수 뺨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다리 사이는 되레 더 붙었다. 한 손으로 기상호 뒷목을 잡고 한 손으로 허벅지를 움켜잡았다. 제 허리에 기상호 다리를 두른 성준수가 정신없이 입맞췄다. 혀를 밀어넣고 숨과 타액을 오가길 반복했다. 티셔츠 아래로 손을 집어넣어 더듬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제게 매달린 기상호 팔을 떼어냈다.

 해앰. 성준수 속도 모르고 다시 입술을 부딪히려 했다. 만 18세 애새끼 주제에 발랑 까져가지곤. 성준수가 기상호를 내려놓으려 했으나, 코알라마냥 허리에 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무작정 얼굴 가까워지려는 걸 손 들어서 막았다.



“야, 야. 그만.”

“햄 저 좋아한다면서요.”

“시발, 지금 그게 문제야? 너 미자잖아.”



 성준수가 할 소리 아니긴 했다. 성준수 손바닥에 막힌 기상호가 이번에는 성준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입술이 움직인다.



“저 미자인데도 술 마셨잖아요. 계속 해도 돼요.”



 이미 만 19세 이상이 할 수 있는 짓 해 버렸는데요오…. 말꼬리를 늘인다 싶더니 이제 말소리 대신 새근새근 차분한 숨소리가 돌아온다. 야. 진짜 자? 물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순식간에 좋아하는 애새끼 상대로 몸 달궜다가 평소 새벽처럼 혼자 풀어내야 할 상태에 놓인 성준수가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시발 상호야….”



 감독 너잖아. 내 첫사랑 영화 주연도 너고, 감독도 넌데 주연 배우 겸 감독이 장면 찍자 해놓고 자버리면  어쩌자는 거냐.









청소년 이용불가 : 

나체 또는 선정적인 내용, 폭력적, 반사회적이거나 혐오스러운 내용, 범죄 행위 묘사, 사행 행위 묘사 등. 엉덩이, 가슴, 성기 등이 성적 맥락에서 자주 강조되어 나오거나 인물이 상대방을 성적으로 흥분시키려는 행동 등이 나온다.












 감독 기상호. 저 스스로가 다른 사람 머릿속에서 절찬 상영 중인 영화 감독을 겸직 중인 걸 꿈에도 모르는 이 애새끼는 열여섯 살부터 제 머릿속에서 절찬 상영 중인 첫사랑 영화 감독이었다. 운 나쁜 누구와 달리 제 머릿속 영화 감독 직책을 어려움 없이 유지 중이다. 결코 영화를 제 뜻대로 만들어서는 아니고, 딱히 제 뜻대로 기획하고 연출할 의지 없이 관찰하면서 다큐멘터리 찍는 성향이라 그랬다. 성준수가 들었더라면 시발 너 지금 말 다했냐며 노발대발했겠지만 적어도 기상호가 스스로 생각하기엔 그랬다. 제가 추구하는 건 리얼리티 가득한 다큐멘터리고요? 햄한테 제 오메가 페로몬 잔뜩 묻혀가 각인한 알파 취급 받게 하는 것밖에 안 했고요? 개입해서 크게 상황 변동시킨 시점부터 다큐멘터리는 물 건너갔는데 양심의 가책을 꿀꺽 집어삼키며 그렇게 주장했다.

 카메라 감독 기상호 주연 성준수 관객 기상호. 조연은 좀 많지만 단연 독보적인 건 주연 성준수다. 주연이니까 당연하지만 기상호 머릿속에서 절찬 상영 중인 영상 보면 누구든 납득할 터다. 실시간 상영 기록 제작 기한 갱신 중인 영화에서 지금껏 나온 하이라이트 필름에 찍힌 건 죄다 성준수. 관객 만족도 100%-래봐야 그 관객이 감독 본인 혼자지만, 어쨌든-에 신선도 100%로 모 영화 평론 사이트 신선도 보증 토마토는 따다 놓은 당상. 주연 본판이 잘나서 찍을 맛이 났고 제 애정 필터 걸쳐서 더 예술된 모습 보는 것도 즐거웠다. 준수햄은 평소에는 완전 잘생깄고 내 콩깍지로 보면 진짜 잘생깄다. 감독 겸 카메라 감독 기상호는 직업 만족도 만점을 찍는 중이었다.


- 제가 어릴 때 딱 이런 코트에서 농구했거든요.

- 그래?

- 너무 재밌더라고요.

- 어릴 때부터 농구 많이 좋아했네.

- 비 오는 날에도 농구하다가 뒤통수가 깨져서 부모님한테 엄청나게 혼났죠.

- 그건 혼날 만했네. 그렇게나 농구가 재밌었어?

- 네. 너무너무요.



 그렇게 답하며 성준수를 봤을 때, 예상치 못한 얼굴이라 조금 당황했다. 이 햄은 후배 떠드는 걸 와 이리 간지럽게 쳐다보노. 사람 심장 떨리게시리. 아니면 농구 좋아하는 사람의 그것인가.



- 햄도 그렇지 않아요? 농구 때문에 서울서 부산까지 왔음 많이 좋아할 거 아입니까.

- 어, 나도.



 기상호는 어린 시절의 성준수를 떠올렸다. 처음 농구 배웠을 때 포지션은 뭐였을까. 그때도 슈터였을까. 슈터는 언제부터 하고 싶어했을까. 어릴 때도 그래 마지막 슛 잘 넣었나. 어릴 때 준수햄은 농구를,



- 어릴 때부터 엄청 좋아했지. 지금도 좋아.



 얼마나 많이 좋아했을까…. 어쩐지 몸속 깊은 곳 닿지 못할 곳이 가려워 이를 꽉 깨문다. 이 햄은 왜 목적어를 안 붙여서는. 그리고 이건 아마도 예고편이었을 거다.

 기상호는 짤막하게 묻는다. 어릴 때부터믄, 농구 언제부터 했어요? 초등학교 4학년. 와, 진짜 어리다.… 원래는 축구가 좋았는데, 하다 보니까 슈터가 멋져 보이더라고. 그렇게 남들 모를 성준수 이야기를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하는 것이다. 심장의 무거운 박동은 간만에 길거리 농구 뛴 탓이라고. 성준수 앞에서 덩크슛 성공한 덕이라고. 정작 자리 앉은 지 30분 되어가고 하필 성공한 게 성준수 앞인 건 애써 무시하면서.



- 그런 놈이 왜 그만두겠다고.

- 에이, 다 지난 얘기다 아임니까. 흑역사 꺼내시는 거 남.자.답지 못합니다만?

- 넌 나보다 먼저 은퇴 얘기 꺼내면 죽는다.

- 자기관리 열심히 해야겠네요. 햄보다 오래 뛸라믄.



 햄 어디 다친 거 한 번밖에 못 봤잖아요, 저. 쌍용기 결승.

 그때의 성준수가 어찌나 의젓하고 멋져 보였는지. 지금껏 성준수가 기상호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기상호 안에서 얼마나 변화했는지, 그래서 지금은 얼마나…. 여튼 그 모든 이야기를 다 풀어놓자면 밤을 새도 부족할 터다. 당사자에게 얘기 꺼낼 일은 평생 없을 테고.

 대신이라기에 뭣하지만 작은 부탁 하나 해 보기로 한다. 지금껏 성준수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걸 함께 하는 행운을 누렸으니, 제게만 중하고 성준수에게는 사소할 부탁 하나 해서 욕심 조금 채우자고. 성준수하고만 함께 하는 기억 하나쯤 있으면 좋겠어서.



- 준수햄. 그럼 나중에요. 진짜 나중에, 햄도 글코 저도 글코 팀원 많은 팀에서 주전일 때요. 그럼 우리 주전이니까 안정적인데 벤치 선수도 있다 아녜요?

- 어.

- 그럼 그때 저랑 길거리 농구 한 판만 뛰어주심 안 돼요?

- 그래.



 예상보다 더 순순히 떨어진 수락이었다. 이어지는 말은 명령인지 예언인지 모를 어조다. 성준수가 이를 드러내며 시원하게 웃었다. 비저 비터로 삼점 꽂을 때처럼, 팀의 승리를 장담할 때처럼. 불가능에서 가능의 영역으로 들어서던 순간, 우리는 이곳을 완주하리라 선언하던 그 순간처럼. 기상호가 넋놓고 바라보다가 그의 말에 꿰여 신뢰하게 되었던 모든 순간들처럼.



- 넌 신입생 때 주전 따고 프로까지 가는 거야.



 바로 그 순간 기상호의 짝사랑 영화가 상영 시작했다. 예고편 무시했는데도 절찬리 상영 시작하는 마음은 막을 도리가 없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기상호는 최선을 다해 즐기기로 결심했다.


 첫사랑은 순도 100% 짝사랑이다. 이 년 넘게 이어온 일방통행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긴 기간 기상호의 일방통행일 터다. 이 감정이 쉽게 식진 않을 테니까. 지난 이 년간 성준수의 간헐적인 톡 답장에 애태우고 잘못 건 보이스톡에 졸음기 묻은 성준수 목소리가 답하는 걸 듣고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뛰는 데에 확신했다.



-주, 준수햄...?

-…..

-제가 절대로 이 새벽에 준수햄 깨우려고 한 건 아니고요. 그냥 햄 카톡 프사 구경하는데 손이 미끄러져가, 아 물론 햄 프로필 기본인 건 아는데요 그래도 제가 햄 프로필 보는 걸 좋아해ㅅ,

-상호야.

-넵.

-괜찮으니까 잠 좀 자자, 시발….

-넵.

-…….

-…….

-안 끊어?

-헉, 넵.



 그 전화 끊고 기상호가 어땠냐면.

 기뻤다.

 성준수와 같은 학교 주전으로 뛴 건 고작 일 년이었고 대학 입학하기까지 성준수와 얼굴 맞댄 세월보다 랜선 대화한 기간이 길었다. 그래도 성준수 무서워하는 건 가시지 않았다. 새벽에 갑자기 전화 걸어서 싸가지없는 후배로 낙인 찍힐까 준수햄이 기분 나빠하며 차단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성준수 목소리 듣자마자 모든 게 싹 날아갔다. 무서웠는데 목소리 들어서 좋았다. 상호야, 다정하고 살벌하게 이름부르는 게 좋았다. 괜찮다는 말로 시작해서 또 좋았다. 끝이 시발인 게 좀 무섭긴 했는데 먼저 끊는 게 아니라 기상호가 끊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좋았다. 고교 초 무서운 선배에게 갖던 경외심과 두려움은 애정과 짝사랑에 희석된 지 오래다. 얼마 남지 않은 두려움마저 성준수란 사람 한정이라는 게 특별한 것 같아 괜찮았다. 깨닫자마자 생각한다. 아, 내 정말 중증이다. 빠져도 단단히 빠져빗다.


 결말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는다. 기상호는 관찰 다큐 감독이지 보통의 영화 감독이 아니었다. 주제는 짝사랑. 엔딩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아직까진 네버엔딩. 모르는 이유. 그야 기상호는 제 영화 주연이 아니니까.


 쌍방통행 아닌데 냅다 고백 갈기면 그날부로 일방통행 망치 땅땅 확정인기라. 친한 동생이, 그것도 제 2의 성별이 오메가인 아가 갑자기 성적으로 좋아한다고 고백하면 준수햄이 을매나 불편해 하긋노. 제 딴엔 기특한 후배라, 친한 사이라 서울 구경도 시켜주고 룸메이트도 되어주고 집에서도 챙겨준 건데 그런 감정 품고 있었다고 불쾌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래서? 한 마디 할지도 모른다. 도최쿨미 외모로 그래서? 난 한 번도 너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성준수에게 거절당했던 수많은 사람들과 제가 똑같은 취급당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아팠다. 그 뒤로 전처럼 지내지 못하는 게 더 최악이다. 얼굴 많이 못 보고 지낸 건 지난 2년으로 충분하지 않나. 남은 대학 생활 동안, 그리고 될 수 있으면 프로 가서도. 기상호는 실연 확률 99%의 고백을 갈기고 남보다 못한 사이로 살기보다 성준수 가장 친한 후배로 오래오래 지내고 싶었다. 성준수가 저를 좋아한다면 모를까. 물론 그럴 리 없음을 잘 알았다. 대개 베타들은 제 2 성별 가진 사람들을 불편해한다고 했다.


 이 년 전 길거리 농구코트에서보다 아주 조금 더 욕심 내 보기로 했다. 티나지 않게. 보통 오메가들은 각인한 알파의 옷 여러 벌 가져다 둥지를 만든다는데, 거기까지 요구하면 외롭다는 구라 아닌 생구라로도 둘러대기 어려울 것 같았다.

 히트 기간에 성준수의 후드티를 빌려다 눈앞에 뒀다. 정말 눈앞에 두기만 했다. 만지면 끝도 없을 것 같아서. 성준수 체향 조금이라도 느끼면 안 그래도 제정신 아닌데 정말 이성 잃고 나중에 얼굴 보기 미안한 짓 할 것 같아서. 물론 그런다고 히트 사이클 동안의 오메가 본능이 죽는 건 아니라 무의식 중에 성준수 얼굴이 떠오르길 수십 번이었고 아래 뜨거운 시간은 헤아릴 수 없었다. 기상호는 입술 짓씹어가며 후드티에 손 안 대고 버텼다. 성준수가 다정한 사람이라 다행이다. 누가 들어도 개소리인데 외롭다는 말에 헛소리같은 부탁을 들어줘서. 누가 봐도 히트 기간 오메가가 지니고 있던 물건이면 찜찜한데 괜찮다고 빨지 않고 그대로 옷장에 넣을 만큼 상대 배려해줘서.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다. 조금씩 선 넘다 보면 성준수는 기상호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받아주고. 또 조금 넘으면 그걸 받아주고. 남들한테 절대 허락 안 될 영역까지 들어와 그 밖 둘러보면 와 이 사람도 못 들어왔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하고 준수햄 벽 쩐다 감탄하게 된다. 그러다 뒤 돌면 저보다 안에 있는 사람은 성준수 뿐이다. 슬금슬금 안으로 들어온 건 알았는데 이 정도로 깊이 들어온 줄은 몰랐다. 기상호가 긴장해 침 꿀꺽 삼키면 되레 성준수가 묻는 것이다. 거기서 뭐해? 이쪽으로 와. 참 너무한 게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다 싶으면서도 목소리는 사람 착각할 정도로 다정하게.

 그럼 기상호는 천천히 다가가면서 생각한다. 어차피 준수 햄은 아직 좋아하는 사람도 애인도 없겠다, 앞으로 누가 관심 보이면 성준수에게서 풀풀 나는 오메가 페로몬에 약간이라도 오해 하고 거리 두면 좋겠다고. 딱 그 정도만 간섭하자고. 제 짝사랑 영화 주연 배우는 누가 봐도 멋지고 잘난 사람이니 저는 이렇게 아끼는 후배로 만족하자고. 성준수가 저를 좋아한다면 모를까. 베타가 오메가 좋아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가능성 없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참 모순적이다. 그렇게나 마음속으로 다짐 다짐해놓고 성준수한테 오메가 여친 생겼다는 소리 듣고 기상호는 양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아이스 초코 라떼를 툭, 하고 떨어뜨렸다. 아이고, 미안타. 치우려고 허리 숙이긴 했는데 막상 갈색 액체는 보도 블럭에 벼락 맞은 양 흩어지고 얼음 조각은 그새 반쯤 박살나서 플라스틱 컵만 주웠다. 더듬더듬 동기에게 묻는다. 어, 언제? 진짜? 그럼 당황한 기색 역력한 동기는 기상호한테 괜찮냐 묻고는 답한다. 나도 몰라. 그 형 여자랑 카페에서 얘기하는 거 봤다더라. 웃고 있었대. 안 그래도 오메가 페로몬 풀풀 풍기는 형이 여자랑 데이트하고 있었으면 뭐겠냐.

 주변 사람 중에선 내한테만 웃어주는데. 그런 치사한 반박 하나만 간신히 떠올렸다가 침몰했다. 내한테만 웃어주는데 애인한테믄 얼마나 많이 웃어주겠나. 애인한테 웃어주는 거랑 내한테 웃어주는 거랑 같겠나. 오메가 페로몬 풀풀 풍기는 거, 그거 내 페로몬인데. 빨래 정리하고 준수햄 옷 입게 될 때마다 내 페로몬 잔뜩 묻혀서 그런 긴데. 그럼 뭐하나 성준수는 제가 짝 있는 알파 취급당하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고 마침 사귀는 상대도 오메가 여성이다. 이런 게 제 영화의 끝인가. 오래오래 머물면서 성준수라는 사람의 영화를, 하이라이트 필름을 찍고 싶었는데. 감독도 쉽게 할 일 아니다.

 성준수란 사람은 그 성깔마저 동경의 일부로 소화시킬 만큼 멋졌고 완벽했다. 어찌나 완벽한지 기상호라는 사람 마음 조금이라도 낑겨들어갈 틈마저 없었다. 빈 플라스틱 컵들을 길가 쓰레기통에 던졌다.


- 태용이. 오늘 우리 회식 어디서 한다캤지?


 감정은 왜 쓰레기마냥 편히 버릴 수 없는 건지.

 기상호가 소주잔 내밀자 어른하고 같이 마시면 괜찮다 너 우리 사이에 끼어있으니 누가 민증 검사 안 한다 등등 말하던 일부 선배들이 반색했다. 너나 할 것 없이 기상호 술잔으로 술병이 콸콸 기울어진다. 첫 술은 준수햄하고 같이 하고 싶었는데. 그 이름 떠올리다가 고개 젓고 쭉 들이켰다. 필름 다 폐기할 기다. 여친 있냐고 물어보면 되는 거 아는데도 고집스레 그렇게 생각했다. 안 그래도 조금씩 욕심 내던 터다. 그 질문 하나로 그간 하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추락할 것 같았다. 감독 직에서 잘릴 것 같았다. 속이 타들어가는 걸 참고 몇 잔 더 받았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부어라 마셔라 했다.


 그런데 왜 내 주연 배우 가슴팍에 내가 머리를 박고 있는 거지. 필름 파기하겠다고 선언한 게 언젠데. …진짜 언제지? 스스로 의문해봐야 제가 머리 처박고 있던 가슴팍이 성준수 가슴팍인 건 달라지지 않았고 제 것보다 약간 두껍고 훨씬 하얀 팔뚝이 저를 안고, 아니 옥죄고 있다는 건 변치 않았다. 빈틈없이 맞물린 몸에 적나라하게 성준수의 근육을 느낄 수 있었다. 눈앞에 놓인 낯짝은 셀카 존못 각도임에도 감탄 나올 정도로 잘나 유일하게 비현실적이었다. 이거 꿈이가? 개꿀인데? 개꿀이라니 기상호 자존심도 없다 시발.... 그 생각 3초 후에 번뜩 뜨인 성준수 눈 보고 철회했다. 꿈 아이고 개꿀도 아이다. 무섭다. 다큐멘터리 아이고 호러다, 호러.



“햄 어제 저 데리고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가 진짜 술 다시 마시면 그땐 개,”

“됐고. 어디까지 기억해.”

“예? 네, 아니 다섯 잔 받을 때까지요?”

“시바거, 하나도 기억 못 하네.”

“예?”



 애초에 여친 있는 사람하고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건지? 선후배 사이에 좀, 유난스럽고 민망한 자세 아인가? 제가 잊은 게 무엇일지 생각해봤으나 모든 경우의 수가 절망적이었다. 1번, 좋아하는데 왜 몰라주냐고 개김. 2번, 좋아한다고 개김. 3번, 성준수 짜증난다고 개김. 4번,…. 기상호 머릿속이 바삐 최악의 상황을 향해 폭주기관차처럼 달려가는데 몸 일으킨 성준수가 짜증스레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눈밑이 평소보다 배로 진해 인상 사나워보였고 기분도 좋지 않아보였다. 눈빛 형형한 게 딱 오래 굶은 늑대 새끼 같았다. 그리고 티셔츠를 훌렁 벗었, 잠깐 뭐?



“야. 너 기억 안 난다고 할까 봐 말하는 건데, 나 여친 없고 너 좋아하고 네가 나 좋아하는 것도 안다.”

“예??”

“그놈의 예라고 한 번만 더 하면 죽일 거니까 알아서 해.”



 퀭하고 흉흉한 눈동자가 번득였다. 기상호 티셔츠 안으로 손을 넣은 성준수가 배의 근육이며 허리를 지분거렸다. 뭉근한 손길에 담긴 의도가 명확했다. 성준수가 기상호 다리를 제 어깨에 올렸다.



“어제 네가 술 마셨으니까 빠른 나이 지키는 거 다 텄다고 했거든. 그러니까 계속 해도 된다고.”



 하반신이 뜨거워졌다. 성준수가 그것을 보며 웃었다.



“그러니까 계속 한다.”



 어쩌면 제가 찍고 있던 건 감독 기상호 주연 성준수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니라, 감독 성준수 주연 성준수의 기상호를 노리고 만든 영화일지도 모른다. 입술이 포개어진다. 당연한 수순처럼 혀가 섞였다. 눈을 감았다.

 이 다음 장면부터는 감독 의도대로 청소년 관람불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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