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의 메아리를 노래하라
아이네 유즈리하 x 태량 AU (3주년 로그)
인어는 뭍에서 목소리를 잃는다
바람 사이로 흩어지는 그 노랫가락은 잡힐 리 없으니
오로지 심해를 채우는 저 바다의 메아리는
그리도 아름답다더라
환한 은색 달이 물결 위로 부서진다. 어둡게 물든 바다 위, 우뚝 솟은 바위 사이사이 바람이 구슬프게 흐느낀다. 하얗게 거품을 문 파도 끝이 절벽에 부딪혀 파스스 흩어지는 외로운 해안가를 그 누구도 찾지 않는다.
빛이라곤 등대처럼 구름 사이로 깜빡이는 둥근 달 하나. 노랫가락이라고는 바람이 바위를 악기 삼아 우는 소리뿐. 물귀신이 나와 길 잃은 어린이를 바닷속으로 잡아간다더라, 해가 지면 해안가에 얼씬도 하지 말거라. 마을의 어른들은 철없는 아이들에게 겁을 주곤 했다.
청년의 경계에 선 몇 용감하고 무모한 아이들이 어둑해진 그 해안가를 모험지 삼는 일도 옛적엔 드물지 않았다. 겁낼 정도로 나이를 충분히 먹지 않았고, 대단한 업적을 달성한 용사처럼 제 또래 사이에서 경외심 어린 관심을 받고 싶었으리라. 귀신 따윌 누가 믿는다 그래! 당당하게 외치며 달밤 산책에 나선 아이들은 다음날 하나 같이 새벽녘 모래사장에서 정신을 잃은 채로 발견되었다.
빈말로 아이들을 겁주곤 했으나 진심으로 귀신을 믿지 않았던 어른들을 중심으로 마을이 한 번 뒤집어졌다. 다행히 죽은 아이도 없었고, 대부분 크게 다치지도 않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깨어나기 무섭게 매서운 눈으로 추궁했다. 무얼 봤니? 혹시 진짜 물귀신이라도 있다던?
돌아온 대답은 답답하리만치 허무했다. 잘 기억은 안 나요. 뭘 본 것 같지는 않아요. 잠이 든 건가? 발을 실수로 헛디뎠나? 몸이 저릿한 걸 보니 바위에서 굴렀나 싶기도 하고.
큰 소동이 일었던 만큼 두려움은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어른들로 이루어진 탐색조가 몇 밤에 걸쳐 샅샅이 해안가를 뒤졌음에도 나오는 것 하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대했던 것이 사람이었든, 귀신이었든, 다른 무언가가 되었든. 그 이후로 아이들의 호기심 또한 공기가 부족한 불꽃처럼 사그라들어, 어느덧 그 기묘한 사건도 모두의 기억에서 잊혔다. 거친 모래사장에 남은 발자국은 그렇게 서서히 사라졌다.
그날 밤 버려진 해안가를 찾은 이유는 별것 없었다. 그저 잠이 오지 않았고, 달리 갈 곳이 없었다. 낡은 집을 나와 정처 없이 발 닿는 대로 걷다 보면 때로는 마을 뒤편의 언덕에 닿기도 했고, 그보다 조금 떨어진 숲의 그림자에 삼켜지기도 했다. 오늘 밤은 발이 바다로 인도했다. 그뿐이었다.
홀로 서 짭짤한 바다내음을 들이마셨다. 둥그런 달이 손에 들린 작은 등불보다 더 환하게 발 앞을 비춰 괜히 들고나왔나 후회하다, 은색 모래 위로 길게 늘어진 제 그림자의 모양새가 우습게도 보여, 이래도 저래도 다 좋으려니 싶어졌다.
바다는 고요하게 울었고, 여름답지 않은 서늘한 바람이 소매에 들락였다. 그것이 바다 앞에서 마주한 전부였다. 크게 기대한 것은 없었기에, 그 잔잔함에 그리 실망하지는 않았다.
그냥 돌아가기엔 아쉬웠고, 잠은 여전히 찾아올 기미가 없었기에, 가장 가까운 바위에 발을 올렸다. 오르지 못할 정도로 가파른 언덕은 아니었지만, 한 손에 등불을 들고 등반하기는 쉽지 않았다. 짧은 고민 끝에 구석진 곳에 등불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튀어나온 바위 조각을 붙들었다. 거친 표면은 단단하고 메말라 있어 정상까지 문제없이 오를 수 있었다.
바위 언덕 정상에 서자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한 뼘 치 가까워진 달이 구름을 제치고 하늘 한가운데 걸려있었다. 조각조각 부서지던 빛이 눈부신 담요처럼 물결 위를 덮었다. 예쁘다 찬사를 보낼만한 풍경이었다. 새삼 감동이란 사색에 잠겨, 그저 달라진 시야가 새롭다는 이유 하나로, 뛰는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귓가에 머무는 고동 소리, 파도에 묻혀버린 뜨거운 숨소리.
그리고 밑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노랫소리.
처음엔 바위 틈새로 흘러오는 바람 소리와도 비슷해, 잘못 들었다 착각할 뻔했다. 그러나 그 어떤 바람보다도, 그 어떤 악기보다도, 언젠가 마을에 찾아왔던 뛰어난 가희의 노래보다도 고운. 그토록 비현실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이 가슴을 울렸다. 속삭임보다도 희미한 선율이 묻힐까 숨까지 참으며 조용히 한 발짝 내디뎠다. 돌이 발밑에서 바스러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황급히 신발을 벗고 몸을 낮춰 무릎으로 기었다. 모래와 돌조각이 따갑게 맨살을 찔러왔지만, 그에 불평할 겨를이 없었다. 조심히, 소리란 소리는 다 죽이고 언덕의 끝에 닿았다. 까마득한 높이가 어지럽게 시야를 흔들었다.
절벽 아래엔 아무도 없었다. 제가 환청을 들었나 하는 고민은 짧았다. 노랫소리는 여전히 들려왔고, 절벽 아래 바다를 한참 노려본 끝에 수면 밑에 작은 파동을 눈치챌 수 있었다.
뛰어들까? 말까? 몸을 살짝 일으켰지만 노래가 갑작스레 끊겼다. 애타는 아쉬움에 멍하니 바다만 바라보자, 물 밑에서 사람의 형태가 서서히 잡혀가다 이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 한 여인이 있었다. 젖은 머리카락을 달빛이 금색으로 반사해 눈이 부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훤하게 드러난 팔은 가냘프지 않고 단단했고, 두 손을 입 근처에 모아 묘한 바람 소리를 내는 것이 마치 악기를 연주하는 것 같기도 했다.
불꽃 같은 호기심이 타올랐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들었는데 이 여자는 누구고,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방금 들었던 노래는 저 여자의 것이었을까? 입을 열고 여인을 불러볼까 하던 차에 파도가 일었다. 수면이 흔들리며 달빛이 환하게 밤바다를 관통했다.
모르는 사이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조금의 틈새라도 허용했다간, 억누르지 못한 감탄이 새어 나와 저 여인이 바로 도망갈 것 같았다.
비단같이 매끄러운 꼬리. 그 어느 비싼 보석보다 진귀해 보이는 비늘의 표면에서 광택이 흘렀다. 연한 하늘색에 무지개가 깃든 것처럼, 오묘하게 색이 바뀌는 광경을 동그래진 눈에 담았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죽을 때까지 이 밤을 결코 잊지 못 하리라.
미치도록 아름다운 달이 뜬 바위 절벽 아래, 인어가 바람처럼 노래하고 있었다.
* * *
사특한 것들은 타고나길 아름다워 사람의 영혼을 홀린다고들 하지. 마을에서 가장 나이 든 어르신이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훈계였다. 어쩌면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처음 그리 생각했다. 달리 아니면 종일 인어의 노랫가락이 제 머릿속에 떠도는 현상을 설명할 길 없었다.
인어가 사특한 것들에 속하던가? 전설에 내려오는 악한 도깨비며, 귀신이며, 사람의 심장을 파먹는다는 영물처럼? 툭하면 공부를 빼먹기 일쑤였기에, 아무리 머리를 굴려봤자 명쾌하게 나오는 답은 없었다. 은근슬쩍 어르신을 찾아가 물어볼까 잠시 고민했으나, 인어에게 괜한 관심을 끌어올까 염려되어 입을 조개처럼 다시 다물었다.
오롯이 저만의 비밀이었다. 마음에 든 보물을 다른 이와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의 마음과 비슷했다. 직감적으로 다른 사람이 인어를 발견한다면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으리라 알고 있었다. 인어가 붙잡혀서든, 깊은 바닷속으로 도망가서든.
그렇다고 해서 인어와 만나 무얼 하고 싶으냐 묻는다면 할 대답은 없었다. 그저 기회를 그냥 보내기 아쉬웠을 뿐이다. 홀로 지루한 방에 갇혀있다가 새로운 장난감이 던져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단순하게 아이 같은 설렘이란 감정을 품었다. 그러니, 인어가 영원히 바닷속으로 떠나기 전에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고, 말 한마디라도 붙여보고.
소리죽여 부르는 속삭임 말고, 청명하고 아름다울 것이 분명한 노랫소리를 제대로 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마음속에 꽃피웠기에.
시작은 작고 반짝이는 유리구슬이었다. 선물이라 하기도, 유혹이라 하기도 거창했지만 당장 손에 가진 것이 별로 없었다. 인어도 까마귀처럼 반짝이는 것을 좋아할까? 엄지와 검지 사이에 구슬을 들고 빤히 노려보아도 알 길은 없었다. 인어의 꼬리를 닮은 예쁜 하늘색이니 색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까? 그렇게 자신을 설득하고 해가 저무는 저녁, 인어가 밤새 머물렀던 바위 절벽 틈새에 구슬을 끼워 넣고 돌아와 기절하듯 잠들었다.
다음 날 새벽에 깼을 때 제 머리를 쥐어뜯고 싶어 애꿎은 이불만 팡팡 내리쳤다. 바위 언덕을 올라 인어가 찾아오길 기다릴 생각이었건만, 전날 밤을 꼴딱 새워버린 후유증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다. 창문을 활짝 열자 깜깜한 하늘이 어둠에 익숙해진 눈을 반겼다. 옷을 입는 둥 마는 둥, 신발만 대충 구겨 신고 해안가로 뛰쳐나갔다.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수평선에 여명이 빛줄기처럼 가로지르자 희미하게 종적을 감췄다. 그래도 소망을 품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자그맣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유리구슬이 그대로 있는지만 확인할 생각으로 바위 절벽으로 향했다. 발아래 모래가 자갈로, 자갈이 바위로 바뀌고, 젖은 바위에 미끄러질까 신발도 벗어두고 조심히 머리를 절벽 옆면으로 빼꼼히 내밀었다.
아무도 없는, 파도만 몰려드는 바위 절벽은 고요했다. 그 적막함에 애써 실망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다만 기대로 가득 찼던 마음이 한순간 공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미련에 떨어지지 않는 발이 저를 한참이나 그 텅 빈 곳에 붙들어놓아, 어느덧 하늘이 새파랗게 밝아오고 있었다.
작은 반짝임이었다. 조금씩 떠오르는 태양 빛 끝에 작고 동그란 물체가 물기에 젖어 반들반들 빛나고 있었다. 맞다, 유리구슬. 허탈함에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눈대중으로 거리를 가늠하곤, 구슬을 끼워둔 바위로 훌쩍 뛰었다. 손안에 단단한 구체가 들어오자 근처 툭 튀어나온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시 두고 가볼까. 아니면 다른 물건으로 바꿔서 놔둬 볼까. 서늘하게 식은 손가락 끝으로 구슬을 굴리다 벌렁 드러누워 햇빛에 높이 들어 올려 비춰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벌떡 일어나 둥그런 구체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살짝 떨리는 손바닥 위에 올려진 것은 하늘색 유리구슬이 아닌 뽀얀 하얀색 진주였다.
* * *
그다음은 노란 들꽃. 그다음엔 마을 장인이 나무로 조각한 작은 동물상. 오늘은 물감으로 색을 입힌 실 팔찌. 노을이 지면 바위 틈새에 물건을 끼워두고 달이 차오를 때까지 해변가를 서성이다 집으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다음 날 아침이나 오후에 바위 절벽을 다시 찾으면, 두고 갔던 선물은 사라지고 그에 보답하듯 다른 물건이 놓여 있었다.
옅은 분홍색 산호, 손바닥만 한 조개껍데기, 얇은 금반지까지.
반지는 대체 어디서 난 걸까. 바다에 금 광산이 있을 리는 없고, 어디 난파된 배에서 가라앉은 보물이라도 찾은 걸까. 손가락에 끼웠다가 잃어버릴까 싶어 질긴 끈을 구해다 목에 걸었다. 옷 아래로 숨긴 금속의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입꼬리가 활짝 올라가는 것을 주체 못 한 채 싱글벙글 웃으며 장터를 기웃거렸다. 주머니에 든 동전이 짤랑짤랑 경쾌한 소리를 냈다. 자, 오늘은 어떤 선물을 갖다주면 좋으려나. 판매대를 하나둘 지나치던 차에 눈에 들어온 건 알록달록 가지각색의 둥그런 사탕이었다. 순간적으로 혹해 눈만 끔뻑이며 판매대를 훑자 사탕을 두어 개씩 마른 나뭇잎에 포장하던 아주머니가 아는체해 왔다.
오늘도 몇 개 사 가련?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동전을 하나 꺼내 사탕값을 지불한 후, 꾸러미를 주머니에 넣었다. 몸을 반쯤 돌렸다 번뜩 떠오른 생각에, 판매대로 돌아서 동전을 하나 더 꺼내 들었다.
“사탕 꾸러미 하나만 더 주세요.”
그날은 달이 하늘 중천에 걸려도 일부러 돌아가지 않았다. 철썩철썩 절벽에 부딪혀오는 파도에 젖지 않게, 평소보다 높은 틈새에 사탕 꾸러미를 끼워 넣고 삐죽이 솟은 바위 뒤에 숨어 인어가 찾아오길 기다렸다. 신발도 벗어 옆에 던져두고, 식은 바닷물에 발목까지 담갔다. 모래시계의 모래가 떨어지듯, 파도가 밀려들어 왔다 빠지길 반복했다.
인어의 모습을 눈으로 포착하기 전에 귀가 손님이 찾아왔음을 먼저 알렸다. 고요한 물결에 일순 파동이 첨벙 일며 머리부터 수면 위로 솟아올랐다. 물에 젖어 목과 어깨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가볍게 정리하며 인어가 수심이 얕은 바위 절벽으로 헤엄쳐왔다. 그 움직임이 물고기같이 우아해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인어가 틈새에 손을 넣어 사탕 꾸러미를 손에 쥐었을 때에서야 정신을 차렸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숨을 죽여 조심조심 바위 뒤에서 기어 나오자, 인어가 노란 사탕 하나를 손가락으로 집어 들고 빤히 달빛에 비춰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행동이 마치 진주를 여명에 비춰보던 저와 비슷해 보여, 참지 못하고 바람 빠지듯 웃음 짓고 말았다.
아마 제 유쾌함이 바람에 실려 인어의 귀에 닿았나 보다. 그가 고개를 홱 돌려 경계 어린 눈초리로 제가 있는 방향을 쏘아보아, 순순히 두 손을 들고 제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인어가 당장이라도 물밑으로 사라질 듯 긴장하면서도 손에 든 사탕을 꾹 쥐고 있어,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그거 바닷속으로 가져가면 녹아. 여기서 더 안 다가갈 테니까 먹고 가.”
여전히 날카로운 시선으로 자신을 훑는 저 눈동자는 처음 두고 갔던 하늘색 유리구슬과 같은 색이었다. 많이 놀란 모양인데,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주머니에 남은 사탕 하나가 떠올라 부스럭 손을 집어넣었다. 나뭇잎 포장 사이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보란 듯이 입에 넣고 굴렸다. 새콤한 풋사과 맛이 혀 위로 은은하게 퍼졌다.
“먹는 거야. 삼키지는 말고, 입에 굴리다 보면 녹거든. 맛이 다양한데, 네가 든 건 신귤 맛일 거야.”
이상한 거 안 들었어. 그 이상 재촉하면 수상해 보일까, 잠자코 기다렸다. 맹세하건대 살아온 삶에서 그렇게 길게 느껴진 순간은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저와 사탕을 번갈아서 보다가, 인어가 천천히 손안에 든 사탕을 입속으로 넣었다. 혀로 몇 번 굴리다가, 달콤새콤한 맛에 놀란 듯 동그랗게 뜨이는 눈에 빙긋 웃었다. 맛있지? 그렇지? 들뜬 질문에 고개를 느리게 끄덕이다, 인어가 물속으로 잠수했다. 이제 가려나 싶어 잠잠히 파동이 이는 수면을 바라보고 있자니 인어가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입을 뻐끔거렸다.
기다려.
소리 없는 전언을 알아들은 즉시 인어가 사라진 바위 끝에 주저앉았다. 인어가 다시 나타나는 데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와 기다리는 저를 확인하고 잠시 망설이다가, 이윽고 헤엄쳐왔다. 바위 위로 상반신을 걸치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제게 검고 단단한 물건을 내밀었다. 돌로 깎아 만든 검은 피리였다.
신기한 마음에 받아 들고 손안에 이리저리 굴리고 있으니 인어가 꼬리로 찰박찰박 수면을 치며 제 주의를 돌렸다. 고개를 기울여 인어를 보자 이번에도 소리 없이 질문을 보내왔다.
연주할 줄 알아?
머리를 설레설레 젓자 인어가 피리를 달라는 듯 손짓했다. 괜히 아쉬운 기분에 피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자 인어가 살포시 웃으며 다시 입을 뻐끔거렸다.
이리 줘 봐. 내가 보여줄게.
그리고 기어코 피리를 받아 파리한 입술에 가져다 대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젖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숨도, 피리를 통해 맑은 음색으로 전달되는 높은 선율도, 제 앞에서 노래하듯 연주하는 인어도, 전부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느껴져서. 그저 그 모든 것을 기억에 새기려는 듯 가만히 눈에 담았다.
신기루 같은 달밤, 인어의 머리카락이 신귤 사탕을 닮은 노란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 *
“뭍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해서 불편하지 않아?”
연두색에 가까운 밝은 노란색 머리카락을 묶어 길게 늘어뜨린 인어, 태량이 고개를 젓다가, 고민하듯 갸웃 기울이고, 다시 설레설레 저었다. 낮에 따온 토끼풀을 엮어 화관을 만들던 파리한 손이 옆의 연초록색 풀을 들어 입에 물렸다.
‘별로. 널 만나기 전까진 뭍에서 누군가와 얘기할 일이 없었으니까. 조금 불편하긴 하더라도 피리풀을 쓰면 대화는 할 수 있으니 불만은 없어.’
태량이 피리풀이라 부른 연초록색 풀 사이로 발음이 살짝 뭉개진 단어가 연이어 흘러나왔다.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바람 소리라 착각할 수도 있는 조용한 목소리는 처음 절벽 위에서 들었던 노래와 하늘과 땅만큼 달랐다. 흐음, 콧소리를 내며 태량이 엮다 만 화관을 들어 익숙한 손놀림으로 빠르게 둥그런 모양새를 잡아갔다.
“대화가 되기는 하지만, 그게 네 진짜 목소리는 아닐 거 아냐?”
그렇긴 하지. 수긍하는 태량에게 입술을 삐죽이며 완성된 화관을 씌워주자, 태량은 어색한 손길로 작은 잎사귀와 보송보송한 꽃을 어루만지고 몸을 바위 너머로 내밀었다. 아마 수면에 자기 모습을 비춰보는 듯싶었다. 다음엔 거울이라도 가져와 볼까, 흐르듯 생각하며 투덜댔다.
“인간처럼 물 밖에서 숨 쉬는 덴 문제가 없는데, 목소리만 안 나오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우리, 그러니까 인어들 사이에서 내려오는 전설이 있는데, 인어가 뭍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건 신에게서 온전한 성대 대신 영혼석을 받았기 때문이래.’
영혼석? 눈을 반짝이며 묻는 말에 태량은 몸을 돌려 저를 마주 보았다. 한 손으로 심장 위, 쇄골 부분을 톡톡 치는 손짓이 그곳에 영혼석이 있다 알려주었다.
‘영혼석은 우리가 ‘기’라고 부르는 힘의 원천이야. 모든 인어는 기를 사용해 특별한 능력을 쓸 수 있어. 공교롭게도 내 능력은 바닷속에서 쓰기엔 위험한 힘이라 이렇게 뭍으로 올라와서 한 번씩 써주는 편이고.’
“보여줄 수 있어?”
제게 귀와 꼬리가 달려있었으면 강아지처럼 세차게 흔들고 있었으리라. 그런 제 모습이 보기 유쾌했는지 태량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맴돌았다. 그가 손을 제 쪽으로 내밀었다. 만지진 마, 다칠 수도 있으니까. 가볍게 경고한 후 태량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어느덧 물기가 사라진 하얀 손바닥 위에서 노란빛이 춤췄다. 빛인가? 번개인가? 타닥타닥, 모닥불 소리 같기도 했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저 먼 도시에 가면 불꽃놀이라는 걸 큰 축제에서 선보인다는데, 이것과 비슷한 광경일까?
이 반짝이는 작은 번개 역시 마을 어르신이 말하던 사특한 요술일까. 아름다움이 사특함의 기준이라면, 그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태량이 번쩍이는 빛을 거두어들인 후에도 한동안 그 손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섣불리 만지면 몸이 저릿해지거나 화상을 입을 수 있는데, 젖은 곳에 닿으면 여파가 배는 멀리 퍼져. 물속에서 쓰면 말할 것도 없지. 태량의 설명에 문득 오래전, 마을의 어린 청년들이 해변가에서 기절한 채 발견된 사건이 떠올라 손뼉을 쳤다.
“너였구나. 그때도 이곳에 오곤 했구나.”
비극도 희극도 아닌, 몇 년 지난 기묘한 사건을 얘기해주자 태량이 느릿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땐 나도 미숙했고, 사람이 갑자기 몰려와서 놀랐어. 혹여 들킬까 싶어서 적당히 다치지 않게 기절시켜 모래사장에 눕혀놨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조금 미안해지네.’
어른 말 안 듣고 나왔으니 자업자득이지. 안 들켜서 다행이야. 그때 나도 왔으면 같이 기절해서 누워있을 뻔했네. 누구 먼저 할 것 없이 킥킥 웃고 멀리 밝아오는 수평선에 눈길을 주었다. 빛나는 가느다란 사선이 바다 위로 조금씩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해가 뜨기 시작하는 시간은 언제나 야속했다.
‘유즈리하.’
들려오는 이름에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태량을 바라보았다. 내일도 올 거지?
이어지는 질문에 환하게 눈꼬리를 접으며 웃었다.
* * *
마을 어르신의 서재에 숨어드는 날이 오리라곤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히도, 다른 사람도 제가 책 따위를 들춰보려 몰래 숨어들어오리라고는 눈곱만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야 평소에 공부를 소 닭 보듯 했으니 오죽했으랴. 덕분에 어르신이 외출한 틈을 타, 마을의 유일한 서재에 웅크리고 앉아 책을 한 장씩 넘기며 졸고 있었다.
아, 역시 책은 지루해. 검은 건 지렁이 기어가는 글씨요, 하얀 건 종이로다. 이런 외진 마을에 인쇄된 책은 몇 들어오지 않았기에, 대부분은 몇 대째 이어 물려 내려오는 필사본이 전부였다. 자신이 찾고 있는 구닥다리 전설이 수록된 책은 이름 모를 필사자가 유독 글씨에 겉멋이 들어 제게 두통을 안겨주었다.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인어는 바다에 서식하는 존재로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물고기의 모습을 띠고 있다.]
멍하니 종이를 넘기다 드디어 원하던 구절이 눈에 들어오자 애써 졸음과 투쟁하던 눈꺼풀이 번쩍 떠졌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익숙지 않은 꼬부랑글씨를 손끝으로 짚어가며 열심히 내용을 해석했다.
[인어의 성대는 물 밖에서 그 효능을 잃지만, 본래 목소리는 매우 아름답다고 하며, 바닷속에서 들려오는 인어의 노래는 세상 어떤 음악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한다……]
“예끼, 이놈아.”
딱, 소리와 함께 정수리부터 얼얼한 통증이 퍼졌다. 입에서 절로 악 소리가 나오는 것 또한 막지 못했다. 생리적인 고통에 촉촉이 눈물이 젖어오는 눈을 드니, 마을 어르신이 나무 지팡이를 들고 미간을 모은 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 어쩐 일로 허락도 없이 들어왔더냐, 이 말썽꾸러기 녀석아.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니기나 하고.”
“그냥 궁금한 게 있어서 찾아보려고 왔는데요, 어르신이 안 계시길래 잠깐만 보고 나가려고 했는, 아야.”
따닥, 보던 책에 어르신의 눈초리가 꽂힘과 동시에 머리 위에서 다시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왜 또 때려요! 즉각 항의하자 어르신이 하얀 눈썹을 매섭게 추켜 뜨며 지팡이 끝으로 책에 삿대질했다.
“뭘 잘했다고 큰소리치긴. 정신 차리고 공부 좀 하나 싶더니만, 별 사특한 것만 찾아보고 있으니. 쯧쯧, 언제 철이 들라고 이러는고.”
또 또, 그 사특한 것 타령이다. 기왕 들킨 김에 궁금한 것 모조리 풀고 가자 마음먹고, 아예 바닥에 책상다리하고 앉았다. 저를 바라보는 어르신의 눈길이 곱지 않았지만, 언제 그런 눈치에 기죽은 적이 있던가. 당당하게 답을 요구하니 어르신은 두통이 일었는지 미간이 펴질 줄 몰랐다.
“어째서 인어가 사특하다고 말하시나요?”
“그걸 질문이라고 하느냐. 옛적부터 바닷사람을 가장 위협하던 존재는 다름 아닌 인어였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느냐. 그물을 던지러 배를 타고 나간 이들 중 돌아오지 못한 반절이 다 인어에 홀렸기 때문이다.”
인어에 홀렸다? 팔짱을 끼고 고개를 기울이자 어르신이 나무 지팡이로 창가를 가리켰다. 창문 너머, 저 멀리 짙은 푸른색 바다에 하얀 파도가 일고 있었다.
“우리 역시 바다에 의해 먹고 살지만, 바다는 본디 인간이 아닌 인어의 영역이지. 그들은 우리가 조금이나마 저 깊고 푸른 영역에 침범하는 것을 두고 보지 않아. 조용히 다가와 바닷속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남녀 할 것 없이 그 목소리에 홀려 자진해서 바다로 뛰어들게 된다, 이 말이야. 사특한 것들은 아름다워 사람의 영혼을 홀린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하지 않았느냐. 천상천하 인어만 한 가희가 없다고들 하지.”
반쯤은 잔소리로 흘려들었고, 반쯤은 귀중한 정보를 귀담아들었다. 뭐, 먼저 영역을 침범한 인간이 잘못했네요. 생각을 거치지 않고 나오려는 말은 어르신 손에 굳건히 들린 지팡이를 보자 쏙 들어갔다.
인어의 목소리, 사람도 홀린다는 인어의 노랫소리라.
“갑자기 그런 사특한 이야기에 관심은 왜 가지느냐. 배 한 번 타고 바다에 나가보지도 않은 녀석이.”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최근에 주막에서 인어에 관한 전설을 들을 기회가 있었거든요. 적당히 둘러대며 그런 얘기나 훔쳐 듣고 다니냐고, 다시 휘둘러지는 지팡이를 날렵하게 피해 밖으로 나왔다. 오후의 밝은 햇살이 눈을 찔러 인상이 찡그려졌다.
밤을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처럼 길었다.
* * *
그날 밤, 태량보다 일찍 바위 절벽에 다다라 설레는 마음을 품고 기다렸다. 말을 어떻게 꺼내면 되려나, 간단하게 부탁한다고만 해볼까? 좋아하려나, 싫어하려나. 별생각 없으려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마을을 둘러싼 울타리처럼 길어지고 있자니 저 멀리 동그랗게 바다에 파문이 일었다.
아, 온다. 적당히 매끄러운 바위에 걸터앉아있다가, 벌떡 일어서 바위 끝으로 다가갔다. 맨발에 높은 파도가 들이쳐 체온을 시원하게 식혔다.
태량이 조금씩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머리카락, 얼굴, 어깨에 이어 팔, 하늘색 꼬리까지.
‘오늘은 일찍 왔네.’
그리고 마지막에 바람처럼 와 닿는 피리풀에 잠긴 목소리.
반짝 웃으며 바위 끄트머리에 아슬하게 걸터앉자 태량이 제 옆에 상반신을 물 밖에 내놓은 채로 말갛게 응시해왔다. 입가엔 여전히 연초록색 피리풀을 물고 있어 길게 눈길을 주었다. 시선을 눈치챘는지 태량이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무슨 일 있어?’
그에 입꼬리를 더 끌어올리며 손을 내밀자 태량은 영문 모른 채 순순히 손을 올렸다. 바닷물에 촉촉이 젖은 매끄러운 피부의 감촉에 절로 마음이 들떴다. 있잖아, 저도 바람 같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 오늘 부탁이 하나 있는데.”
뭔데? 소리 내 말하지는 않았지만, 시선의 뜻은 명확했다. 태량의 양손을 놓지 않고, 바다의 언어를 닮은 그 노랫소리를 처음 들은 날부터 품어온 소원을 전달했다.
“네가 노래하는 걸 듣고 싶은데. 노래 한 곡만 불러주면 안 될까? 멈추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난 또. 진지하게 손까지 잡고 얘기하길래 뭔 큰 부탁인가 했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피리풀을 제대로 붙잡아야 소리가 날 것 같은데, 손 잠깐 놔줄래?’
단호하게 고개를 젓자 의문을 담은 눈빛이 돌아왔다. 피리풀이 떨어져도 상관없으니까, 그냥 이대로 불러줘. 안 될까? 영문 모를 부탁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태량이 입을 벌렸다. 피리풀이 입술에서 떨어지고, 태량은 눈을 감았다. 소리 없는 노래를 부르며, 태량의 입이 몇 번 열리고 닫혔다.
다음 순간, 그 손을 붙들고 바위 끝에서 몸을 밀어냈다. 중력에 따라 몸이 수면으로 기울어지고, 차가운 수면 위로 피부가 닿고.
그렇게, 어두운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감았던 눈을 뜨자 태량의 동그래진 눈이 시선에 들어왔다. 달빛을 머금은 머리카락이 물결에 나부끼고 있었다. 멍하니 벌려진 입술 사이에서 비눗방울 같은 거품이 하나, 둘 나오고 있었다. 손을 맞잡은 상태로, 천천히 바닷속으로 가라앉으며, 뭍이 아닌 심해에서 서로를 고요히 응시했다.
귓가에 심장 소리가 울렸다. 빙긋 웃어 보이자 태량이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숨을 참고 있어 입을 열지는 못했지만, 제 목을 톡톡 건드려 의사를 전달했다.
노래, 계속해 줘.
전설에 의하면 인어의 목소리는 매우 아름답다고 하며, 바닷속에서 들리는 인어의 노래는 세상 어떤 음악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한다.
그것이 한 치 거짓 없는 진실임을 그 여름밤의 심해에서 알게 되었다.
바다 깊은 곳까지 울려 퍼지는 선율의 메아리는, 고동이 귓가가 아닌 심장까지 닿아.
그 목소리에 홀려 스스로 바다에 가라앉길 선택한 바닷사람의 애달픈 심정을 고스란히 깨닫게 되었다.
‘네가 미쳤지.’
얼마나 놀랐으면 의문형도 아니었을까. 노래가 끝나자마자 태량의 강한 손길에 이끌려 바위 위로 끌려 나와, 혼나는 아이처럼 무릎 꿇고 앉혀졌다. 그 와중에 멀리 바위 안쪽으로 저를 밀어 넣는 걸 보니 다시 바다에 뛰어들기라도 할까 염려하는 것 같았다. 한 번만 더 노래를 듣고 싶다는 소원을 성취했으니 그리 걱정할 것 없는데. 그러나 저 엄한 눈빛을 보고 있자니 제가 잘못했구나 싶어, 얌전히 미는 대로 밀려나 옷에서 물기를 짜내기 시작했다.
‘내 목소리가 듣고 싶었던 거라면 뛰어들기 전에 말을 했으면 됐잖아. 얼마나 놀란 줄 알아? 인간은 물속에서 오래 버티지 못해. 지금이 여름이라 망정이지, 겨울이었으면 꼼짝없이 저체온증으로 앓아누웠다고.’
어느새 피리풀을 입에 물고 따박따박 바람 같은 잔소리를 이어가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바닷속 그 목소리로 환청이 들리는 것 같기도 했고, 피식 웃자 태량의 눈썹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지금 웃음이 나와?
“잘못했어. 널 처음 본 밤에 들었던 노래를 다시 들어보고 싶었는데, 내가 바닷속으로 들어가겠다고 하면 말릴 것 같았거든. 다음엔 꼭 말하고 뛰어들게.”
‘다음? 안 뛰어든다는 말은 안 하는구나.’
태량이 한숨을 쉬곤 손짓했다. 화가 풀렸다는 뜻이리라. 냉큼 손길을 따라 바위 끝에 걸터앉자 태량이 그 옆에 상체를 걸치고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너덜너덜해진 피리풀을 새롭게 바꿔 입에 물고 질문이 날아왔다.
‘인간에게도 인간의 노래가 있고, 악기가 있고, 음악이 있잖아. 인어의 노래라고 해야 크게 다르지 않았을 텐데. 익사할 위험을 무릅쓰고 차가운 바다에 뛰어든 만큼의 가치가 있던 거야?’
“내 모든 숨을 포기할 가치가 네 노래에 있었어. 설령 네 손을 잡고 익사하는 한이 있더라도.”
생전 처음으로 온 진심을 담아 한 말이 제대로 닿았는지는 몰랐다. 하늘색 눈동자가 커지고, 벌려진 입술 끝에 미세한 미소가 물들었다. 이윽고 태량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건 안 돼. 노래를 계속 듣고 싶다면 목숨은 보전해야 할 것 아냐.’
젖은 두 손이 맞닿았다. 서늘하게 느껴져야 했으나, 닿아오는 피부에 불에 쬔 듯 따스함이 머물렀다.
‘자, 나와 약속해. 네 숨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고.’
그럼 다음에 기회가 될 때, 다시 바닷속으로 데려가 노래를 들려줄게.
달 홀로 증인으로 선 약속에, 우리는 그렇게 남은 숨을 기꺼이 걸었다.
인어는 뭍에서 목소리를 잃는다. 천상의 목소리는 수면 아래에서만 그 생명을 찾고, 그 선율 또한 오롯이 바다의 것이라 하더라.
그 목소리를 듣고 싶거든, 바다의 품에 안겨라. 바람 사이로 흩어지는 노랫가락은 잡힐 리 없으니, 오로지 심해를 채우는 저 바다의 메아리는 그리도 아름답다더라.
Written 21-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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