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정의
미카엘라 x 캄파뉼라
우리는 이 가시밭길을 같이 걸어야 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서로를 부정하고, 서로의 정의를 부정한다.
수많은 부정 끝에, 오직 하나의 인정만이 우리의 운명을 한 배에 묶었다.
바람을 간신히 막아주는 낡은 판잣집 내부는 지독히도 어두웠다. 쥐새끼처럼 남의 집에 숨어들어 집주인을 기다리는 자기 모습이 미카엘라는 퍽 못마땅했다. 자신의 신념에 당당히 긍지를 가지고서도 숨죽여 움직여야 하는 때가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은 여전히 미카엘라가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잡아당기게 했다.
-넌 너무 솔직해.
칠흑 같은 머리카락을 풀고 세 번째로 다시 묶는 도중, 이 집주인의 익숙한 핀잔이 기억나 미카엘라는 이를 악물었다. 떠오르는 분홍색 눈동자는 따스함 한 점 없이 냉철하고 냉정했다. 중요한 걸 숨길 줄 모르는 그 성격이 언젠간 네 발목을 잡을 거야. 그때도 반박은 하지 못했다. 지금 똑같은 타박을 듣는다고 해도 반론하지 못할 터였다.
-어머, 제 공연을 보러 와주신 건가요?
핀잔을 주는 이가 그여서 더더욱. 저잣거리에서 화사하게 웃던 얼굴이 떠올라 미카엘라는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그에게 화가 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감쪽같이 가면을 쓰는 실력은 실로 경외할만했다. 그를 찾아 저잣거리 한복판을 걸으며 사람들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여도 허튼 소문 하나 들려오지 않았다. 푸른 무희에 관해 떠도는 이야기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어도 전부 그가 허용하는 범위 내였다.
사실 그의 거처를 발견한 것도 요행에 가까웠다. 사흘을 꼬박 도시 전체를 헤집으며 무희의 행방을 쫓은 결과, 미카엘라는 어렵게 이 작은 판잣집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를 기다린 지 두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하지만 지쳐 떠나는 건 선택지가 아니었다. 내일 아침, 아니 오늘 밤만 지나면 그는 높은 확률로 이곳을 버리고 떠나겠지. 미카엘라가 그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모를 리 없었다.
“뭘 믿고 그리 무방비하게 왔을까.”
그렇기에 각오하고 있었지만, 갑작스레 귓가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미카엘라는 뻣뻣하게 굳었다. 낮은 목소리보다 차가운 날이 먼저 목에 닿은 탓도 있을 것이다. 동물적인 직감을 발휘한 미카엘라의 손은 단도 손잡이 끝에 닿아있었지만, 그의 칼날이 자기 목을 베는 것이 더 빠를 터였다. 미카엘라는 천천히 두 손을 어깨높이로 들었다.
“네가 여기에서 멈춰 서지 않으리란 사실을 믿고 왔어.”
칼날은 여전히 미카엘라의 목을 파고들었다. 새긴 지 얼마 안 된 목의 문신에 알싸한 통증이 번졌다. 이대로 그가 자신의 목을 그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그의 검은 우아하게 춤의 궤적을 그리지만, 필요하다면 검붉은 피의 궤적을 그리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것이 설령 전 동료일지라도. 미카엘라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목에 칼이 들어오면 지난 인생이 눈 앞을 흘러간다고 하였던가. 다시는 보지 못할 얼굴들이 미카엘라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휘저었다.
고작 7일 전이었다. 고작 7일 전만 해도 숨 쉬며 웃는 얼굴들이었다.
고작 7일 전. 한 손 넘는 동료들의 목이 단두대를 굴렀다. 제일 먼저 목이 떨어진 건 혁명군의 리더이자, 미카엘라에겐 아버지나 다름없던 락스퍼였다. 단두대의 단상 위에서 불린 ‘아게나 헬리오스’란 이름은 무릎 꿇려진 그의 모습만큼이나 생소했다. 공포로 심장이 뛰다 못해 바깥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미카엘라는 끝까지 눈 돌리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역모를 꾸민 죄인이라 사체조차 온전히 수습하지 못해 소박한 장례도 치르지 못했다.
-이제 끝난 걸까?
울음이 새어나갈까 이를 꽉 물고, 눈에 힘을 줬다. 후드를 눈앞까지 눌러썼지만, 사람들의 속삭임만은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러게 왜 황실에 반기를 들어서. 저 귀족들 지독한지 누가 몰라. 푸른 피와 엮여서 좋은 꼴을 못 봤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은 납작 엎드리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이지. 괜히 우리에게까지 불똥 튈라 무섭다.
-뭐, 이젠 저들도 끝이겠지.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겠구먼.
끝이 아니야.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미카엘라의 입술에 피가 맺혔다. 평화로운 일상? 그건 평화가 아니었다. 잔혹하고 무자비한 압제였다. 처벌이 두려워 불만을 말하지 못한다고 하여 정녕 불만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던가? 미카엘라는 그런 현실을 결코 인정할 수 없었다.
우린 끝나지 않았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외칠 것이었다. 그 날이 단두대가 되었든, 누군가의 검이 되었든.
“다시 시작하러 왔어, 캄파뉼라.”
캄파뉼라는 천천히 검을 내려놓았다. 목을 압박하는 힘이 사라지자 미카엘라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그의 기척이 자신에게서 한걸음 멀어지자 미카엘라는 심호흡하고 돌아섰다. 어둠 속에서도 시리게 빛나는 분홍색 눈동자가 미카엘라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어깨를 스치는 푸른빛 단발은 흐트러짐 없이 단정했고, 누구나 뒤돌아볼 아름다운 얼굴은 무심하듯 차분했다. 손에 들린 검만 아니었다면 방금 미카엘라의 목숨을 위협하던 인물이라고 아무도 믿지 않았을 테다. 미카엘라는 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 한줄기를 손으로 훔쳤다.
“널 어떻게 찾아냈는지는 묻지 않네.”
“쓸데없으니까.”
캄파뉼라의 목소리가 검이었다면 미카엘라의 말은 두 동강 났을 터였다. 잘 벼려진 어조에서 미카엘라는 다시금 깨달았다. 캄파뉼라는 결벽증 수준으로 자신에 대해 떠도는 정보를 골라내고 제어하는데 대가였다. 그의 거처가 미카엘라의 정보통에 들어왔다면, 그 또한 필히 캄파뉼라의 계산 안이었을 터.
일부러 찾을 수 있게 내버려 뒀구나.
그 사실에 쓴 패배감이 일면서도 미카엘라는 미약한 기대를 맛보았다. 캄파뉼라를 찾은 것은 반쯤 도박이었다. 애초에 협력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그는 절대로 정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생사를 같이한 전 동료라 할지라도 예외는 없었다. 그러나 미카엘라는 그가 지금 자신과 기꺼이 얼굴을 맞대고 있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렇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나왔다.
“나와 다시 시작하자. 혁명은 끝나지 않았어. 곪아버린 이 제국을 치유하기 위해. 이번엔 실패하지 않을 거야. 락스퍼의 의지를 우리가 이어가자.”
미카엘라의 토로가 끝나기도 전에 캄파뉼라는 차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답이야, 미카엘라.”
“무엇이?”
미카엘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유독 캄파뉼라의 속마음은 알기 어려워 미카엘라는 종종 바보가 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캄파뉼라는 한숨을 쉬었다. 하나를 가르쳐도 하나를 외우지 못하는 아이를 보는 표정이었기에 미카엘라는 울컥했다.
“쓰라린 패배를 겪고서도 배운 게 없네.”
속이 세 번도 더 배배 꼬여 말도 똑바로 하지 못하냐고 쏘아붙이려던 미카엘라의 입을 막은 것은 이어진 캄파뉼라의 질문이었다.
“락스퍼는, 우리는 왜 실패했을까?”
미카엘라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다듬을 여유가 없어 길어진 손톱이 주먹 쥔 손안으로 파고들어 초승달 자국을 남겼다. 제 눈동자보다 새빨간 감정이 미카엘라를 휩쓸었다. 그것은 영원히 잊지 못할 분노였으며, 동시에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죄책감이었다.
거사 직전 모네의 실종. 귀족에 의한 납치인 걸 알게 된 순간. 모네보다 대의를 우선시하지 못한 자신의 나약함. 간절한 간청 끝에 미카엘라에게 져준 락스퍼. 내부의 배신자. 부족한 인력. 약점만 쌓이고 쌓여 결국 패배와 죽음밖에 남지 않은, 피로 물든 홍염의 밤.
제일 아픈 곳을 찔려 차마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 귀족과 자신을 향한 분노가 어우러져 어느 쪽을 더 증오하는지 순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미카엘라의 역린에 가차 없이 화살을 날린 캄파뉼라의 표정은 평온했다. 미카엘라를 심문하려는 의도는 없었고, 죄를 추궁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단순히 현실만 직시하는 시선 아래에서 미카엘라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건, 우리 내부에 배신자가 있었고, 내가 억지를 쓴 구출 작전 때문에 인력을 황성에 집중하지 못해서….”
“아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온전한 정답은 아니야.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봐야지.”
다시, 캄파뉼라는 미카엘라의 말을 잘랐다. 여전히 캄파뉼라의 의도는 읽기 어려웠기에 미카엘라는 화내기보다 침묵했다. 캄파뉼라는 나무 탁상에 걸터앉았다. 검은 탁상 위에 올려두었지만, 손은 결코 검에서 멀어지지 않았다. 손잡이를 손가락 끝으로 쓸어내리며 캄파뉼라는 조곤조곤 노래하듯 속삭였다.
“락스퍼는 여러모로 이상적인 리더였어, 그건 인정해. 카리스마 있고, 사람을 포용할 줄 알고, 똑똑하고 영리했지. 냉정해야 하는 지위에 있으면서 정이 너무 많은 게 흠이었지만, 그것도 누군가는 장점이라 볼 테고. 사실 락스퍼의 가장 결정적인 단점은 그가 원해서 바꿀 수도 없는 종류의 것이었으니 불공평한 비판이기도 하겠지.”
“빙빙 돌려 말하지 마, 캄파뉼라. 네가 얘기하고 싶은 바를 명확히 말해.”
“그도 결국 귀족 태생이었다는 거야.”
아게나 헬리오스. 우아한 이름이 혀끝에서 굴러 나왔다. 락스퍼가 한때 버렸던 이름은 단두대 칼날 아래에서 다시 그에게로 돌아왔다. 그 최후를 떠올리자 미카엘라의 낯이 일그러졌다.
“그게 뭐? 태생과 상관없이 락스퍼는 그 누구보다 평등한 사회를 원했어. 보장된 권력과 부를 전부 버리고 나올 만큼, 자신과 같은 귀족에게 등을 돌릴 만큼, 그는 우리를 위했었다고. 그의 이름이 락스퍼든, 아게나 헬리오스든, 나한테는 상관없어.”
그가 혁명군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하는 것이 아니야. 캄파뉼라는 검지로 자기 입술을 톡 쳐서 점점 높아지는 미카엘라의 언성을 제지했다. 너무 흥분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미카엘라는 입을 다물고 캄파뉼라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캄파뉼라는 다리를 꼬고 상체를 숙여 손등에 턱을 괴었다. 조용한 목소리에 진중한 무게가 실렸다.
“락스퍼는 분명 현재 권력 구도에 찬성하지 않았어. 그랬으니 황제를 끌어내리고 귀족 사회를 개편하자는 계획을 세웠겠지. 하지만 그것만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 부패한 귀족을 치우고 다른 귀족이 들어서면 뭐가 달라지나? 그들은 다를 거라는 순진한 믿음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새로운 황제, 새로운 귀족 가문. 우리에겐 필요 없어. 썩어버린 지반에 성을 수선해봤자 무너지고, 또 무너질 뿐이야.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수선을 거듭하는 게 아닌, 성을 아예 무너뜨리는 거야.
처음부터 다시, 굳건한 땅에 기반을 새로 세울 수 있게.
미카엘라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침묵하는 미카엘라를 향해 캄파뉼라는 유쾌함 없이 미소 지었다. 암흑 속에서 아름다운 얼굴이 꽃이 만개하듯 피어났다.
“화합, 참으로 이상적인 단어야. 현실성 없는 만큼 말이지. 평화로이 대화로 요구하면 그 자존심 드높은 귀족이 오랜 시간 누려온 달콤한 권력을 순순히 포기하려 할까? 그리 쉽게 풀어질 갈등이었으면 이리 수모와 고통을 받을 일도 없었겠지.”
잊지 마, 우리가 그들 손에 무엇을 잃었는지를. 캄파뉼라의 서늘한 얼굴에 처음으로 감정다운 감정이 떠올랐다. 겨울보다 새파란 분노였다. 살기마저 띤 그 모습에 미카엘라는 도리어 침착해질 수 있었다. 1년 전, 캄파뉼라를 처음 봤을 때와 똑 닮은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진 것은 검 두 자루와 귀족 살해의 경력뿐. 혈혈단신으로 올리아 가문을 실질적으로 멸문시키고 혁명군을 찾아온 캄파뉼라는 고작 16살이었다. 그러나 당시 다섯 살이나 더 많았던 미카엘라의 눈에 그는 아이가 아니었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달리 갈 곳 없다는 이유로 캄파뉼라를 받아주기엔 그는 이미 너무도 냉랭한 살인자의 눈을 하고 있었다.
캄파뉼라는 자신의 검에 스러진 수많은 목숨을 부정하지 않았다. 죽어 마땅한 목숨도, 죽어 억울한 목숨도. 차가운 분노로 휘두르는 검 아래에서는 모두 공평했다. 그것이 아무리 비합리적이었다 하더라도.
그는 슬픔을 내비치지 않았지만 상실을 숨기지 않았고, 분노를 감추지 않았지만 복수의 불꽃을 태우기 위해 기꺼이 가면을 썼다. 그런 캄파뉼라에게 미카엘라가 느낀 감정은 동정심이 아닌 복잡한 경외와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10년을 더 산 락스퍼의 눈에는 그 모습조차 일말의 측은함을 자아냈는지,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락스퍼는 몇 개의 약속을 받고 캄파뉼라를 자신의 그늘에 거두었다. 첫 번째, 성인이 되기 전에 외부적인 활동에 나서지 않을 것. 두 번째, 허가 없이 단독행동을 하지 않을 것. 그리고 세 번째, 불필요한 살생은 하지 않을 것. 캄파뉼라는 제약을 기꺼워하지 않았지만 결국 락스퍼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여러모로 이상적인 리더였다. 그러나 미카엘라는 락스퍼처럼 캄파뉼라를 품을 여유도, 제어할 카리스마도 없었다. 반대로 캄파뉼라처럼 무엇을 베어서라도 목표를 이룰 냉정함도 없었다. 캄파뉼라는 그런 미카엘라의 어중간함을 꼬집었다.
그렇게 잃고서도 아직 망설일 여유가 있나 보지? 캄파뉼라의 눈은 미카엘라의 나약함을 지적했고, 미카엘라는 죄인처럼 반론하지 못했다.
소중한 모네, 사랑스러운 모네. 어렸을 때 미카엘라가 처음 만난 모네는 햇살처럼 웃는 동갑내기 여자아이였다. 눈이 새빨간 핏빛이라고 놀림당하는 미카엘라를 두둔하고, 대신 화내주는 용감한 친구였다. 둘 다 같은 날 어머니를 잃은 후, 모네는 미카엘라의 유일한 가족이 되었다.
그런 친구를, 가족을 잃었다. 귀족이었음에도 평민의 피가 섞였다는, 초능력을 발현하지 못했다는, 그런 죄 아닌 죄로. 그토록 잔혹하게, 자기 핏줄에 의해 모네는 미카엘라가 결코 닿지 못할 곳으로 사라졌다.
그것은, 미카엘라에게 충분한 이유였다.
“…잊을 일 없어.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를.”
흔들리지 않고 걸을 확신은 없어도, 포기할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자신감이 아닌 공허와 분노로 다져진 결의였다. 캄파뉼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미카엘라를 응시했다. 그 어느 쪽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윽고 캄파뉼라의 입술이 먼저 열렸다.
“최소한의 계획은 세우고 찾아온 거겠지?”
격려도, 악수도 없는 인정이었다. 그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미카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남은 사람들부터 모으는 게 우선이야. 체포되기 전 몸을 숨긴 이들을 찾아야지. 몇 명의 거처는 이미 확인해뒀어.”
“그래, 우리 둘만으론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지.”
아쉽게도 나 홀로 황제와 그 많은 귀족의 목을 베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거짓 하나 없는 진심이었다. 혁명군의 힘이 필요치 않았다면 캄파뉼라는 제일 먼저 떠나갔을 터였다. 그러나 동시에 캄파뉼라는 누구보다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타협할 줄 알았다. 자신의 최종적인 목표를 이루는 데 필요한 일이었다면.
그것이 지금 캄파뉼라가 미카엘라의 손을 잡는 이유 전부였다. 미카엘라도 이를 명백히 알고 있었다.
“네게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이레 후엔 내 쪽에서 먼저 찾아갈게.”
그럼 안녕히. 새벽 해가 뜨기 전에 떠나라는 축객령임을 알 수 있었다. 미카엘라는 순순히 판잣집을 나왔다. 문이 닫히기 직전까지 캄파뉼라의 눈은 미카엘라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검은 아직 캄파뉼라의 손끝에 닿아 있었다. 협조를 약속했음에도 캄파뉼라는 여전히 미카엘라를 믿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것은 미카엘라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미카엘라는 캄파뉼라의 선의를 믿지 않았지만, 그의 성정을 믿었다.
당장 가야 하는 험한 길에 서로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손을 잡을 사람이었다. 설령 그게 끝이 보이는 일시적인 동맹뿐일지라도. 바라보는 정의가 부정할 길 없이 다를지라도.
이는 둘이 공유하는 신념이었다. 미카엘라도, 캄파뉼라도, 상실이 끝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태양이 언젠가 지고, 장미의 꽃잎이 언젠가 떨어지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각자 갈망하는 새로운 내일을, 미래를 그렸다.
황혼의 혁명은 영원히 빛을 발하는 태양의 정의를 부정한다. 홍염의 재는 붉은 일식의 불씨가 되어 타오르기 시작했다.
Written 2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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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로그의 그림은 잇티(@inmamaaaind)님의 커미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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