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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챠 타입 22

결계사 - 카게미야 센 + 시시오 겐

투둑, 빗방울이 떨어졌다. 소나기는 점차 거세지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우산이 있어도 이 비를 뚫고 갈 엄두를 못 낼 정도가 됐다. 카게미야는 곱게 접힌 우산을 한 손에 쥔 채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비를 피하고 있는 걸까? 우산이 있는데? 우산은 옅은 붉은 색이다. 그 색은 퍽이나 카게미야에게 잘 어울렸다.

어째서 카게미야가 우산을 쓰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걸까. 얼핏 카게미야는 무언가 바라보는 거 같았다. 하지만 카게미야의 시선을 따라가면 푸른 이파리를 잔뜩 단 나무 한 그루만이 있었다.

“…….”

“…….”

“뭐야, 언제 온 건데.”

얼마나 지났을까. 카게미야는 제 근처에서 인기척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이가 우뚝 서 있다. 시시오, 시시오 겐.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사람 중 한 명.

카게미야는 시시오를 꺼려했다. 무엇이 그를 꺼려하게 된 건지 말해주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다. 누구와 원만하게 잘 지낸 편인 카게미야와,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는 시시오. 완벽하게 정반대이기 때문에 그를 꺼려하는 것도 얼추 이해할 수 있다.

“조금 전.”

데면데면한 사이라고 해도 한 쪽이 말을 걸면 상대방은 꼬박꼬박 대답해주었다. 카게미야는 제 손에 쥐고 있는 우산을 보았다. 만약 타인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카게미야가 우산을 빌려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니면, 같이 써서 집으로 돌아간다거나. 하지만 카게미야는 그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왜 안 가?”

“그걸 알아서 뭐하게.”

“우산도 있는데 여기 있는 건 이상하잖아.”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카게미야는 한 번 더 우산을 보았다. 우산을 향했던 시선은 조금씩 움직이더니 이내 시시오에게로 고정됐다.

“넌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

“아니야?”

“응, 아니야.”

능청스러운 태도.

시시오는 늘 타인의 말을 무시했다.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서, 혹은 대답하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타인의 교류가 워낙 서툰 나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를 뿐이다. 그렇지만 카게미야의 말에는 꼬박꼬박 대답해주었다. 사이는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겉으로 보이는 교우관계, 성적 등. 두 사람에게는 꽤 많은 차이점이 있다. 카게미야는 자신이 시시오와 친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친하다기 보다는 적당히 알고 지내는 사람 정도. 물론 시시오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지 못했다. 굳이 알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빗줄기가 조금씩 가늘어졌다. 카게미야는 우산으로 툭툭 제 어깨를 건드렸다. 그냥 우산을 쓰고 가면 될 텐데, 굳이 여기서 기다리지 않아도. 시시오는 그렇게 생각했다. 카게미야가 무슨 변덕을 부려 제 곁에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카게미야와 스스럼없이 친하게 지낼 이유는 없지만…….

그래서 시시오는 침묵을 선택했다.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한두 마디 주고받을 뿐인, 친하지 않는 관계. 시시오는 이런 관계를 좋아했다. 타인에게 상처받지도, 상처 주지 않을 수 있으니까. 만약 카게미야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면 어떻게 반응할까. 웃기는 놈이라고 맞받아치지 않았을까?

“갈 거야?”

“어. 네 놈이 왔으니까 여기 있을 이유는 없지. 갈 거야.”

“그래.”

시시오는 떠나는 카게미야를 잡지 않았다. 오히려 카게미야가 간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카게미야는 시시오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게 없는 걸 잔뜩 가지고 있는 주제에. 차라리 시시오를 몰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신이 시시오처럼 강했더라면 많은 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카게미야는 망설이지 않고 우산을 펼쳤다. 접이식 삼단 우산이었기 때문에 한 사람이 겨우 몸을 가릴 정도로 작았다. 우산 표면에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알아서 잘 가던가.”

“그래.”

“…감기는 걸리지 말고.”

“응.”

무미건조한 대화가 한 번 더 이어졌다. 카게미야는 우산도 없이 빗길을 뚫고 갈 시시오가 걱정됐다. 그러나 걱정했다는 걸 깨달은 순간,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저런 놈을 걱정해서 뭐하려고. 카게미야는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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