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야(極夜)

Maybe I just___ by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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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눈으로 뒤덮인 채 숨죽이고 있는 극동의 설국을, 두 번의 총성이 꿰뚫었다.

유리 바실례비치는 이즈바에 혼자 남아 꺼져가는 장작불에 마른 나뭇가지를 집어 넣고 있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총성이 구태여 묻지 않아도 제 형제가 발포한 것임을 알았다. 그와 동시에 밖에서 라이카 몇 마리가 맹렬하게 짖어댔다. 지금은 곰 사냥철이 아니다. 집안을 둘러보아도 옷가지를 담아두어야 할 가문지 나무와 소나무 가지를 담은 자루 역시 없다. 유리는 문득 고개를 돌려 재에 그을린 좁은 문을 바라보았다. 벽난로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매캐한 연기에 부정함이 가득했다. 

*

어린 시절, 어머니인 소피야는 종종 잠에 들기 전 자장가를 대신해 신비로운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제국의 사치스러운 차르와 그의 아름다운 부인, 햇빛이 비치면 하얗게 반짝이는 궁전, 초목이 우거져 향기가 나는 미로, 온통 황금색으로 빛나는 방···. 그러나 이반이 눈을 감은 채로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매번 자작나무를 꿰맞춘 거대한 통나무집과 웅덩이가 고여 있는 질펀한 초원이 전부였다. 그는 꽤 오랜 시간 동안 황금이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인지 궁금해했다. 그러나 설원 위에 잘못 박힌 돌처럼 드문드문 솟아있는 몇 채의 집이 전부인 작달막한 마을의 어른들을 붙잡아가며 물어도 이들은 하나 같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거나 이반이 또 시작이군. 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자리를 피할 뿐이었다. 아버지 바실리를 포함해 이 곳의 남자들은 대부분 계절에 따라 곰이나 순록, 뇌조 등을 사낭하고 그것을 파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바실리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극동의 툰드라 지대에서 대를 이어 사냥꾼으로서 살아왔을 테다. 불우하게도 이반 바실례비치의 세계는 눈 덮인 거대한 숲과 이끼, 야생 동물과 털이 잔뜩 난 커다란 개가 전부였던 것이다. 

솜씨 좋은 사냥꾼 바실리의 아들들은 두 살 터울의 형제였지만 아버지를 따라 숲으로 나가기 시작한 시기는 엇비슷했다. 이반이 워낙에 마을 내에서 절대적으로 행해지는 까다로운 전통과 규칙에-매년 곰을 사냥하지 않으면 인명 피해가 발생할 정도로 험난한 환경이었던 탓이다.- 얽매이길 싫어했고, 유리가 장남의 몫만큼 성실했던 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이반이 열다섯 살, 유리가 열세 살이 되던 해에 이들은 처음으로 잡은 순록의 가슴을 열어 김이 오르는 심장을 꺼내고 그것을 맛보았다. 마을에 새로이 탄생한 어린 사냥꾼을 축하함과 동시에 평생토록 범람하는 자연을 거스를 죄를 참회하는 의식이었다. 비리고 뜨거운 살덩이가 입안에 들어오는 순간에 형제는 완전히 엇갈린 감각을 느꼈다. 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올린 뒤 솟구치는 피를 두 아들의 이마와 볼에 발라주고서는 마을에서 7백 베르스타 정도 떨어진 나무에 잡은 짐승의 내장을 매달아두었다. 이날 마을의 남자들은 모두 동이 틀 때까지 감자로 만든 싸구려 보드카를 마시다 곯아떨어졌다. 성년이 되지 못한 아이와 여자들은 월계수와 버찌로 만든 즙을 홀짝이며 축배를 들었다. 그러나 이반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많았다. 왜 사냥철이 되기 전 마을 단위로 번거로운 의식을 벌이는지, 가문지 나뭇가지를 뜯을 땐 부정한 생각을 해서는 안되는지, 엽총 한 발이면 심장을 꿰뚫을 수 있는 숲의 주인을 숭배해야 하는지···. 이불 속에서 유리에게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면 형제는 저와 똑 닮은 얼굴을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반, 그런 마음을 품지 마. 부정은 재앙을 부르니까. 흔들림 없는 붉은 동공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유 모를 껄끄러움이 몰려와 먼저 돌아눕는 것이 하나의 관례였다. 어느 순간부터 이반은 틀에 박힌 따분한 시골 마을에 대한 불평을 완전히 접었다. 유리는 그가 드디어 순리에 맞추어 흐르게 된 줄 알았으나 호수가 몇 번 얼었다 녹고, 사냥한 곰과 여타 짐승의 마릿수를 채 세기 어려워질 무렵의 겨울, 눈보라 사이로 완전히 저문 해를 등지고 돌아온 형제가 어깨에 멘 장총을 바닥에 내던지며 말했다. 유리, 우리 도시에 가자. 열린 문 사이로 매섭게 들이치는 것은 새하얀 눈인 줄 알았으나 재앙이다.   

율리우스력의 성탄일이 지난 지 며칠 되지 않은 날이었다. 그 말인 즉 이반의 성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끔 얼굴을 비추던 낯선 외부인들도, 매일 아침 허리께까지 쌓인 눈을 치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계절이 되자 우샨카의 털끝도 보이지 않았다. 곰이 동면에 들어갔을 시기인 만큼 마을에서 하는 것이라고는 여름내 절여둔 음식을 먹거나 강의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낚는 것이 전부이다. 유리 바실례비치는 아침 일찍부터 집안의 문이란 문은 모두 열어젖힌 채 눈을 쓸고 있었다. 뒤늦게 눈을 뜬 이반이 헐벗은 상체를 문지르며 나타나 신경질을 냈다. 

"네가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하게 구니까 소피야가 나한테도 성화잖아."

유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조용히 벽면의 시계를 가리켜 보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선 쳇 하고 혀를 찬 이반의 머리카락은 갓 깬 행색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이리저리 뻗쳐 있었다. 등허리에 힘을 주고 위로 쭉 뻗은 팔이 아슬아슬하게 천장에 닿는다. 이반은 작년 겨울부터 마지막 성장기라도 되는 듯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한 뼘 정도가 자라 있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온 관절은 물론이고 이반 자신조차 갑자기 커진 제 몸의 길이를 가늠하지 못해 자잘한 사달이 날 때도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거의 아버지만큼이나 자라 제법 성년의 티가 나지만, 남들보다 훨씬 늦게 찾아온 성장통이 기다린 시간만큼이나 억셌던 탓에 몇 달 전, 자정이 한참 넘은 시간에 무릎이 아프다며 쓰러져 앓는 것을 자다 깬 유리가 발견하기도 했다. 나른하게 하품을 하던 그가 뒷걸음질을 치다 모아둔 자루들에 발이 걸려 고꾸라진다. 안에 들어 있던 질그릇이 깨진 모양인지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고 한 박자 늦게 날 것의 욕설이 튀어나오자 시종일관 잘 말려둔 흙인형 처럼 서 있던 유리도 결국은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옷 좀 입고 다녀. 그리고 나가서 개들 먹일 고기와 뼈도 꺼내오고."

"이런 제기랄, 유리! 지금 내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엄살이 그리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이반이 곧 벌떡 일어나 집 안을 부산스럽게 돌아다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피코트에 샤프카를 두르고 나타난 모습은 영락없는 어른이다. 제 형제와 똑같은 기장으로 길게 늘어뜨린 머리는 어느새 반듯하게 정리해 모자 속에 감추어져 있었다. 유리가 물었다. 어디 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그것이 단순히 개 먹이를 꺼내기에는 지나치게 차려입은 모양새라는 암묵적인 표현임을 그들 모두가 안다. 이반이 어깨를 으쓱이며 어린 동생을 지나쳐 갔다. 옆 얼굴에 채 빠지지 못한 젓살이 남아 유독이 앳되어 보였다. 창고에서 뼈는 꺼내둘게. 오후엔 길 안내를 해달래서 말이야. 

누구를? 그러나 유리가 되물었을 적에 이반은 이미 창고 안으로 사라진 뒤였다. 마음속에서 의문이 끝없이 피어올랐다. 올해 여름, 이반이 낯선 얼굴의 외지인들과 자주 시간을 보낸다는 이야기를 마을 사람들에게 종종 전해 들은 까닭이다. 서쪽에서 온 외부인들은 멋들어진 콧수염과 토끼털로 만든 코트를 입고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는 무거운 총을 내보이며 으스대기만 했다. 그들에게서는 사냥감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따닥거리며 혼란한 총소리가 온 숲속을 울리던 날에는 며칠 지나지 않아 어미를 잃은 새끼 곰이나 다리를 다친 어린 사슴들이 발견되곤 했다. 인근 사람들의 곱지 못한 시선이 따라 붙는 것은 불가항력인 셈이다. 답이 돌아오지 않는 물음을 눈밭에 내려놓고도 유리는 계속해서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비질에 함께 쓸려내려 가길 바라는 것처럼. 그러나 머리에 한 점으로 고인 의문은 격동적으로 끝없이 사고를 빨아들였다. 마을 사람들은 눈을 감고도 숲속을 빠져나갈 정도로 이곳의 지리에 밝다. 그렇다고 해서 볼거리라고는 곰과 거대한 자연 뿐인 극동의 작은 마을에 도대체 누가 찾아온다는 것인가. 그것도 이런 계절에. 잠시 숨을 내쉬려 입을 벌리자 하얀 입김이 그리 멀리 뻗어나가지 못하고 잘게 부서져 사라졌다. 사람이 적어 머물 곳을 찾기도 어려울 뿐더러 내륙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추위는 해가 지고 나서부터 시작된다. 게다가 이곳 사람들은 겨울이 오면 사냥을 하기는 커녕 숲에 가는 것조차 꺼렸다. 표면적으로는 높이 쌓인 눈과 낮은 기온 때문에 조난을 당할 확률이 높아진다며 안전을 핑계로 삼았지만, 실상은 숲의 주인이 겨울잠을 자는 시기에는 불경하게 숲에 총소리를 울리게 해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불문율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지긋이 든 어른들은 동면을 해야 할 시기의 곰이 숲을 돌아다니는 것을 매우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 하물며 동면에 들지 못한 곰과 마주치더라도 절대로 쏴 죽여서는 안된다며, 만약 그것을 해악으로 여겨 죽인다면 진노한 숲의 부정을 받는다는 괴담 같은 전설을, 밤이 긴 날에는 마을의 어린 아이들을 모아두고 겁을 주듯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세대에 걸쳐 전해진 마을의 불문율은 20세기 중반까지 제 나름의 견고한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철도가 놓이고 거대한 쇄빙선이 얼어붙은 항구를 깨뜨리는 격변의 시대에도 캄차카반도는 정면으로 밀려들어 오는 혁명의 파도에 살짝 비껴 있었다. 저주나 재앙을 운운하는 민간설화를 진심으로 믿는 이가 줄어들긴 했지만, 그 마저도 대부분 마음 한구석에 왠지 모를 꺼림칙함이 남아 불편한 상황을 피하고 싶은 것 역시 사실이었다. 올해에는 식량으로 쓸 말린 고기도 충분히 모아두었으니 그가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숲에 들어갈 이유는 없다. 유리는 어느새 마을 어귀를 지나가며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작아진 제 형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 불현듯 북풍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매섭게 눈가를 훑고 지나가는 바람에는 잔뜩 날이 서 있었다. 저녁부터는 큰 눈보라가 몰아치겠군. 요 며칠간은 페트로파블롭스크의 부동항에서 불어오는 짠 내 섞인 바닷바람 덕분에 겨울치고는 푸근한 날씨였는데. 어쩐지 이유 모를 불길함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적한 시골의 하루는 규칙적이고 느긋하게 흘러갔다. 작은 이변이 있다면 아주 드물게, 바실리와 소피야가 늦은 오후 무렵이 되어서 함께 외출에 나선 이후로, 여지껏 그들 중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일 테다. 시계는 어느덧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혹시나 숲에 들어간 것은 아닐까? 매년 엇비슷한 이유로 신문의 부고란을 채우는 사망자들의 이름이 모두 낯선 것만은 아니었다. 숲은 늑대와 같다. 상대를 잘 알고 있다고 방심하는 순간 언제든지 달려들어 목덜미를 물어뜯기고 마는. 

그 순간 

모든 것이 눈으로 뒤덮인 채 숨죽이고 있는 극동의 설국을, 두 번의 총성이 꿰뚫었다.

유리 바실례비치는 이즈바에 혼자 남아 꺼져가는 장작불에 마른 나뭇가지를 집어 넣고 있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총성이 구태여 묻지 않아도 제 형제가 발포한 것임을 알았다. 그와 동시에 밖에서 라이카 몇 마리가 맹렬하게 짖어댔다. 지금은 곰 사냥철이 아니다. 집안을 둘러보아도 옷가지를 담아두어야 할 가문지 나무와 소나무 가지를 담은 자루 역시 없다. 유리는 문득 고개를 돌려 재에 그을린 좁은 문을 바라보았다. 벽난로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매캐한 연기에 부정함이 가득했다. 시간이 고정된 것처럼 문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나. 오래된 경첩이 비명을 내지름과 동시에 집안의 희미한 불빛을 빨아들이는 시커먼 어둠이 탐욕스럽게 입을 벌린다. 차갑고 비릿한 냄새가 가장 먼저 집 안에 발을 들인다. 유리는 문득 처음으로 사냥한 순록의 심장을 베어 물던 날을 떠올렸다. 어깨에 묻은 하얀 눈을 털어내며 나타난 것은 제 형제였다. 피가 잔뜩 묻은 모피코트와 샤프카가 제 모습을 드러낸다. 열린 문 사이로 들이치는 눈보라가 선홍빛이었다. 유리는 천천히 눈을 한 번 깜빡이고 다시 형제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어깨에 멘 장총을 바닥에 내던진 뒤 고된 일을 끝낸 사람처럼 긴 숨을 내뱉었다. 건강하게 그을은 어두운 빛의 피부 사이로 보이는 붉은 동공이 가늘어지자, 마치 신이 난 어린 아이처럼 보였다. 유리, 우리 도시에 가자. 그리고 형제의 뒤로 보이는 것은 눈밭에 온 몸의 피를 내어줘 피부가 새파래진 바실리와 소피야다. 정확히 심장을 관통한 총알 자국만 아니라면 밀 껍질로 속을 채운 인형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모습이었다. 미동도 없이 쓰러져 누워있는 가족의 얼굴이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유리의 시선을 느낀 건지, 이반이 집안으로 한 발을 더 내디디며 말했다. 오는 길에 곰이 있더라고. 동면에 들지 않았나 봐. 이런 일은 정말 드문데 말이지. 심지어 두 마리였어, 유리! 두 마리! 나도 알아, 동면에 들지 않은 곰은 죽이면 안된다는 걸. 하지만 그런 낡아빠진 이야기에 지레 겁 먹어서 두 눈 뜨고 얌전히 잡아먹힐 순 없었다고. 아, 제기랄. 바실리가 알면 분명히 난리가 나겠지... 벌써 잔소리를 들을 생각에 머리가 아프네. 그는 뒤에 놓인 시신은 안중에도 없는 듯 과장되게 양 손을 펼쳐 몇 번 휘젓더니 이내 이마를 짚었다. 제 손으로 부모를 죽인 인간이 내뱉을 만한, 조악한 변명이라고 칠 수 조차 없는 헛소리를 유리가 완전히 이해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반의 얼굴에는 단 한 점의 죄악감조차 없었다. 지나친 상심으로 정신을 놓아버린 것 역시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곰 두 마리를 맨 몸으로 끌고 집까지 돌아온, 생각지도 못하게 맞닥뜨린 불운이 너무나 힘들고 피곤했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반은 지붕 아래로 완전히 몸을 들여놓자마자 코트와 샤프카를 대충 벗어 어딘가 걸어두고서는 화로에서 끓여둔 물통을 집어 피범벅이 된 얼굴과 손을 씻기 시작했다. 그제야 유리는 깨달았다. 재앙이구나. 모든 것은 그가 저지른 부정한 일에서 온 저주다. 이반은 꽤 오랜 시간 동안 구리로 만든 커다란 물받이 통 앞에 서 서 손을 씻고 있었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에 얼굴이 가려 보이지 않았다. 온 집안에 불온함이 내려앉았다. 살얼음 같은 적막을 깨고 그가 물었다. 바실리는 2층에 있어? 바라지 않아도 이끌리듯 건조한 시선이 현관 근처를 한참이나 맴돌았다. 유리는 결국 눈을 감았다. 아니, 아직 돌아오진 않았어. 그래? 그럼 다행이네. 유리, 난 너무 피곤하니까 네가 저 곰들 좀 아버지 눈에 걸리지 않게 잘 처리해줘. 좋은 곳에 묻어줘도 되고. 겨울에 잡은 걸 절여봤자 분명히 혼날 테지. 잔뜩 굽어 있던 등이 곧게 펴지자 이마가 곧 찬장에 닿을 듯했다. 빈틈 없이 몸을 감싼 검은 천이 군데군데 찢겨서 너덜거렸다. 언뜻 보기에도 살이 흉하게 패여 꽤 아플 성싶었다. 상처는 뭐야? 손에 남은 물기를 대충 털어내던 이반이 그제야 몸을 돌렸다. 라이카 한 마리가 날 못 알아보고 물었어. 밤도 늦은데다 온통 피 냄새를 풍기며 걸어오는데 야생 동물이라도 되는가 싶었겠지. 유리는 차마 목 끝까지 올라온 말을 뱉을 수 없었다. 이반, 못 알아본 게 아니야. 그건 네가···.

형제는 비틀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방 안에서 희미하게 인사가 들렸다. 잘자, 유리. 여전히 활짝 열린 현관문이 바람이 불 때마다 귀에 거슬리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짝을 맞춘 다리 네 개가 가지런하게 카펫 위에 놓여 있었다. 기껏 벽난로에 불을 피워둔 게 무색할 만큼, 온 집안이 먼 땅을 가르고 달려온 북풍으로 가득 찼을 때 즈음에서야 유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시신을 향해 다가갔다. 한낮까지만 해도 함께 웃으며 식사를 즐기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초점이 맞지 않은 채로 크게 뜨인 두 눈이 빛을 잃어 공허했다. 유리는 마지막으로 바실리와 소피야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차가운 이마에서 콧대를 따라 손을 내리면 어느새 꽉 맞물린 눈이 조금은 그들에게 평온함을 더했다. 비통함이나 원망이 몰려오진 않았다. 유리는 그저 시신들을 피 묻은 모피코트로 감싼 채 수레에 옮겨둔 뒤, 라이카 몇 마리를 줄에 묶고 마을에서 7백 베르스타 정도 떨어진 숲으로 향했다. 그들이 처음으로 잡은 순록의 내장을 걸어두었던 바로 그 땅으로. 집에서부터 마을 어귀까지 이어진 붉은 핏자국은 돌아오는 길목에서는 새로 쌓인 눈에 뒤덮여 흔적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완전히 얼어붙은 땅을 파는 것은 생각보다 더 힘든 일이었으나, 적어도 바실리와 소피야의 시신이 짐승에게 뜯어 먹히는 것만큼은 바라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는 몇 시간이고 손을 멈추지 않았다. 깊게 파낸 땅에 두 구의 시신을 묻고 짧게 기도문까지 읊고 나자 유리는 이반이 그러했듯이 아주 고된 일을 끝마친 사람 처럼 길게 숨을 내쉬었다. 몰아치는 바람에 높게 솟은 침엽수림이 거세게 흔들렸다. 그것이 꼭 분노한 존재의 기다란 울음 같아서 그는 한참 동안이나 못에 박힌 듯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개들과 수레를 끌고 돌아올 무렵에는 곧 동이 트기 직전의 어슴푸레한 새벽이었다. 푸르스름한 눈이 붉은 자국을 모두 지워내고 새로이 쌓여 있었다. 잘못 박힌 돌 처럼 드문드문 세워진 집들 사이에서도 가장 외진 구석의 이즈바에 도착하자 뒤늦게 피로가 몰려왔다. 수레를 창고에 기대어 세워두고 입가에 붉은 자국이 남은 라이카 한 마리의 목줄을 풀어 준다. 어깨와 머리에 쌓인 눈을 털어내며 집 안에 돌아오자 화로가 꺼진 건지 무겁게 고여있는 냉기만이 그를 맞이했다. 유리는 옷을 갈아입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방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여전히 완연한 밤이다. 문을 열고 그의 형제를 부른다. 이반. 창문과 맞물린 나무가 헐거워져 규칙적으로 덜컹이는 덧문만이 여전히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암흑 속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서 보채듯 여러 번 이름을 부르자 완전히 잠에 취한 목소리가 이불 속에서 들려 왔다. 유리? 

이반, 바실리와 소피야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언덕 너머의 눈보라 사이로 사라졌어."

한동안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고른 숨소리만이 방 안을 채울 뿐이었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것인지, 뒤늦게 자신의 죄악이 떠오른 것인지, 아니면 다시 잠에 빠져든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질 무렵, 그가 말했다. 너라도 돌아와서 다행이야. 아직 동이 트지 않아 내부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운 방 안의 어느 한 점을 빠짐없이 바라보던 유리가 곧 등을 돌렸다. 언젠가 형을 제 손으로 죽여야 할 테다. 이것은 숲이 내린 벌이다. 형제가 부정을 저질러 온 가족이 죄업의 대가를 치른 것이다. 바실리와 소피야는 죽음으로, 이반은 제 부도덕함을 깨닫는 것으로, 자신은 형제를 죽이고 살아가는 방식으로 참회해야 할 테다. 어느덧 날이 밝아 있었다. 살얼음이 낀 희뿌연 창문 틈 사이로 밝은 빛 한 줄기가 들어와 불 꺼진 화로를 비추었다. 살아남은 불씨 한 점이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새빨갛게 열을 내고 있었다. 

유리 바실례비치는 꺼져가는 장작불에 마른 나뭇가지를 집어 넣는다. 다시금 고요해진 설국은 기다렸다는 듯 두터운 몸을 뉘어 온 땅을 덮는다. 지난 밤에 묻혀 사라질 일인 것처럼.

여름이 오면 녹아 없어져 흘러 내려갈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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