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교차로 2. 남쪽으로 가는 길목(아인)
시간: 3년 전
마켓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아인은 이 상황이 지겨워졌다.
어디를 보아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두의 시끄러운 대화가 왁자지껄한 소리와 섞이며 소음으로 변모해간다. 심지어는, 그 소음은 끊어질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었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주최측의 음악은 센스가 없어 장소에 하나도 어울리지 않았다.
언제나 ‘금붕어 똥’ 마냥 들러붙어 쫒아다니는 두 사람만 아니었다면, 아인은 이런 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연말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집에서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연말을 보낸 건 언제였을까? 이제는 기억조차 선명하지 않았다.
아인 아버지: 며칠 간 집을 비울 예정이니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하거라.
아버지는 집을 나가기 전 아인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에 아인은 테이블에 대충 놓여있던 초대장과 티켓 사이에서 아무거나 집어다가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아인: 괜찮아요. 마침 저도 이걸 가려고 했거든요.
실제로 그 초대장에 뭐라고 적혀있는지는, 아인도 알 수 없었다.
아인 아버지: 아이디어 마켓……? 너, 이런 거에 관심이 있었던가?
아버지가 초대장을 집어들어, 적혀있는 문구를 작은 소리로 읽었다. 의외라는 듯이 쳐다보는 시선에 아인은 머리를 긁적이다 고개를 돌렸다.
아인: 거기서 공연하는 밴드의 연주가 궁금해서요.
아인의 대답에 아버지는 조용히 초대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아인 아버지: ……음악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해보는 게 어떠냐?
세인트 세실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싶다는 말은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미 그의 생각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능구렁이 같으니. 아인은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리며 대답하지 않았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두 사람은 암묵적으로 각자 무언가 일정을 잡아두었다.
그룹 회의, 직원 면담, 급한 출장…… 아버지는 집에서 새해를 맞이하지 ‘못하는’ 이유를 대는 것에 있어서는 가히 천재 같았다.
그리고 아인 역시 그 기간 동안 시간을 떼우기 위해, 평소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는 행사장에 발길을 옮겼다.
이제와서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로, 그런 생활에 익숙해져버리고 만 것이다.
다니엘: 도련님, 마켓에는 언제쯤 출발하십니까?
아인: ..초대장은 내 거 밖에 없는데.
아폴로: 저희 몫은 저희가 준비하겠습니다. 보스가 비용을 처리해주셨거든요.
아인: …….
아인은 빨리 조용한 장소를 찾아 쉬고싶다고 생각했다. 가능한 한 체력을 소모하지 않고 남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초대장을 자세히 살펴보니, 실제로 이 근처에서 밴드 공연이 열리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연주를 들을 수 있는 무대로 향하던 아인은, 어느새 그가 선물 교환 행사의 한가운데에서 헤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자: 그럼 여러분, 주위를 둘러보고 선물을 교환하고 싶은 사람을 정해주세요. 오늘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서프라이즈 선물을 전해줍시다.
아인이 보기에는 유치한 행사였다. 얼른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그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불과 수십미터를 걷는 동안, 몇 사람이나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아인은 그 모든 이들을 차갑게 무시했다. 애초에 아인은 선물 같은 걸 가지고 있지 않았다.
???: 저기…….
드디어 행사 장소를 빠져나왔을 무렵, 또다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이미 여러 사람에게 말이 걸린 탓에 아인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되돌아보았다.
아인: 미안하지만, 제가 가진 게 없어서요.
그렇게 말한 순간, 아인은 어떤 위화감을 느꼈다. 눈 앞에 서있던 것은 그보다 조금 어려보이는 소녀였다. 그의 손에는 익숙한 토끼 봉제 인형이 들려있었다.
소화가: 이 토끼…… 당신 게 아닌가요?
고개를 내려 옷을 확인하니, 확실히 그곳에 붙어있어야할 토끼가 사라져있었다.
아인: …아, 내 거 맞아.
방금 전의 태도를 후회하며, 아인은 어색한 얼굴로 소녀가 주워준 분실물을 받았다.
반대로 소녀는 그의 반응을 딱히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아인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는 바로 근처의 계단에 자리를 잡았다.
곧 연주를 시작할 밴드의 멤버가 스테이지 중앙에서 소리를 맞추고 있었다. 아인은 별로 기대하지 않는 표정으로 방금 전 소녀의 대각선 뒤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행이도 쓸데없이 긴 MC 멘트 같은 것 없이 바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아인이 상상했던 것보다 다소 괜찮은 연주였다. 아니, 다소가 아니라…….
그는 무의식 중에 자세를 바로 잡고 앉아 호흡을 낮추며 연주에 집중했다. 특히 남성 보컬의 소리는, 기타의 음색과 어우려져 관객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
메인 보컬이 마무리 멘트를 던질 쯤이 되어서야, 아인은 마침내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이곳에 온 목적이 그저 ‘시간 떼우기’였다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메인 보컬: 앙코르 티켓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으시다면 부디 신청해주세요! 무엇이든 원하시는 노래를 연주하겠습니다!
그런 티켓이 있었나. 누군가는 가지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던 아인의 눈 앞에, 문득 ‘앙코르 티켓’ 이라고 적혀있는 종이가 내밀어졌다.
소화가: 이거, 받아요.
순간적으로 아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밴드의 수준도 예상 외였지만, 이 소녀의 목소리는 정말 귀에 쏙 박혀들었다.
아인: …얼마?
소화가: 돈은 필요 없어요. 저도 받은 거였고.
소화가: 저는 음악에 대해 잘 모르지만, 당신이 열심히 듣고 있었다는 건 알겠거든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받아요.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대로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아인은 소녀가 분명 자신과 같은 타입일 것이라고 느꼈다. 다른 사람과 무리짓지 않고 살아가는 부류의 인간.
그것을 깨닫자, 한편으로 아쉬운 마음이 몰려들었다. 이제까지 자신에게 흥미를 가지지 않았던 사람은 없었는데, 하필이면.
아인은 손을 들어 방금 받은 티켓을 흔들어 보였다.
아인: 데이그린의 ‘지구 최후의 밤’ 부탁합니다.
이 곡은 아인이 최근 가장 즐겨듣는 곡이었다.
메인 보컬: 알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올해는 오늘로 끝이지만, 오늘이 지구의 마지막 밤은 아니니까요.
MC를 맡은 보컬의 말에,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인은 중간에 산 막대사탕을 입에 물었다. 그의 입가가 웃고 있는 것은, 아무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이 마음은 너의 것’
‘너를 찾을 때까지 계속해서 걷고 또 걸었어’
연주가 끝났을 때, 아인의 시선 끝에 비치는 소녀는 무대를 향해 힘껏 박수치고 있었다.
사회자: 여러분, 선물 교환 행사가 5분 남았습니다. 새해의 기쁨을 함께 나눌만한 상대를 찾아보세요.
예의 선물 교환 행사 장소에서, 좀 전의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인의 주머니에는 아직 막대사탕이 하나 남아있었다.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 흩어질 무렵, 아인은 소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뒤돌아본 소녀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아인을 바라보았다.
아인: ..이거, 아까의 보답이야.
아인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중 유일하게 선물할만한 것을 내밀었다.
소녀는 아인의 ‘선물’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주었다.
소화가: 고마워요.
인사를 건넨 뒤 자리를 떠나려는 소녀를 붙잡아야 할지, 아인은 갈등했다. 그러나 자신이 하고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조차도 자세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결국 아인은 소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는 무심코 누군가를 붙잡으려던 자신이 어쩐지 부끄러워 당황스러웠다.
소녀의 모습은 금세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아인은 손에 들고있던 막대사탕을 바라보며, 마음 속 연약한 감정이 조용히 가라앉는 것을 가만히 느꼈다.
그것은 아버지가 집을 비울 때 느끼는 감각과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그 생각을 하자, 문득 아인은 마켓 안에서 아버지에게 선물할만한 것을 찾아보기로 했다.
산책도 할 겸……. 어차피 이 돈도, 결국 그 사람 거니까…….
안받아도…… 뭐, 큰 일은 아니었다. 대충 마켓 경품이라고 하면 되니까.
그렇게 생각한 아인은 맞은편의 부스로 향했다. 무엇을 팔고 있는지는 멀리서도 어느정도 보였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수제 장갑, 머플러, 모자…… 전부 겨울용 방한 용품이었다.
아인: 그 회색 털실 장갑 볼 수 있을까요?
디자이너: 이쪽이군요. 선물용인가요? 이거보다 밝은 색상의 제품도 있습니다.
아인: 아뇨, 그러니까…… 아버지, 거라서.
지갑을 꺼내려던 아인은 주머니 안의 마켓 초대장을 보고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ㅡㅡ산처럼 쌓인 종이 사이에서 이 한 장을 고른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세상에 정말 행운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이렇게 좋은 기분으로 새해를 맞이할 수 있으니, 앞으로의 목표인 세인트 세실 아카데미의 음악 학부에 입학하는 것도 분명 실현할 수 있을 것이었다.
지나가는 사람 A: 곧 불꽃놀이 시작한대. 가보자!
A의 애인으로 보이는 B: 하지만 분명 사람 엄청 많을 걸…….
지나가는 사람 A: 그래도 보고 싶어!
A의 애인으로 보이는 B: 알았어. 그럼 떨어지지 않게, 손잡고.
다니엘: 도련님, 불꽃놀이가 보고싶으시다면 저희와 함께 가시죠.
아, 결국 ‘금붕어 똥’들에게 따라잡혀 버렸다. 두 사람은 좋은 시간이라도 보낸 건지,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의 제안을 무시하려던 아인은, 문득 생각했다. 불꽃놀이를 보러가면 그 소녀와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곳은 분명 수많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을 것이었다. 소녀를 찾아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폴로: 물론! 가고 싶지 않으시다면 괜찮습니다만, …입장료에 불꽃놀이 요금도 포함된다더군요. 아깝지 않을까 싶어…….
일 년 간 바쁘게 일한 두 사람이 아련하게 먼 허공을 올려다보는 모습을 아인은 놓치지 않았다.
아인: …그래. 모처럼 왔으니, 보러갈까.
인파의 흐름에 따라 세 사람은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에서는 여전히 귀에 거슬리는 소란함이 변함없이 들려왔다. 그러나 아인은 이번에는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그 소음 속에서 그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을까, 기대감마저 들었다.
이 해 겨울ㅡㅡ
아인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미래를 가지게 될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는 아직 몰랐다.
누군가를 곁에 두고 싶다면, 용기를 내어 말로 하지 않으면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3. 서쪽으로 가는 길목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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