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전

Sheer Cherisher

12/15, 해와 달을 이름에 품은 사랑 가득한 사람에게

티온랩실 by 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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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달아 사랑한다-!! 생일 축하해~~!!!!!!

눈앞이 온통 캄캄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을 잠깐 되짚던 박문대는 그 기억의 끝에서 마주한 인물을 보고 작게 웃었다. 당사자는 뭐 그깟 국밥 한 그릇 갖고 그렇게 자길 따르느냐며 조금 부담스러워했지만, 당시 의지할 곳 하나 없던 박문대에게 그 작은 온기, 당장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작은 도움은 귀하고 또 귀했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국밥집의 얇은 냅킨에 대충 휘갈긴 열한 자리 숫자는 금방 외웠는데도 한참 동안 그 냅킨을 버리지 못한 이유가. 숨이 벅차도록 냉정한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박문대는 그 작은 온기를 항상 가슴에 품었다. 그래, 그들이 처음 만났던 허름한 모텔 앞, 처음 같이 먹었던 국밥, 처음 보는 사이인 자신에게 건넨 아주 작은 호의, 간간이 주고받던 연락.

그 작은 온기는 누군가의 뜨거운 불꽃이 되었다.

  “박문대.”

  “건우 형!”

아닌 척하면서도 류건우는 박문대를 보면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가볍게 손을 흔드는 류건우에게 한 손을 크게 흔든 박문대가 타닥, 발소리를 내며 류건우에게 달려갔다. 활짝 웃는 박문대의 얼굴을 본 류건우는 덩달아 표정을 풀며 조금 거친 머리카락을 쓱쓱 쓰다듬었다.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미약한 온기에 박문대가 슬쩍 머리를 부비면 류건우는 피식 웃고는 조금 더 거칠게 머리를 문댔다. 그 얼굴이 꼭 귀여운 강아지를 보는 얼굴이어서, 박문대는 그냥 헤헤 웃고는 했다.

그날도 그랬다. 박문대가 류건우의 생일을 축하하고선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박문대는 아침부터 온 반가운 메시지에 눈을 반짝였다. 류건우와의 연락에서 화두를 떼는 건 대부분 박문대였기 때문에 더 그랬다. 내용은 오늘 저녁에 집에 찾아가도 괜찮냐는 것이었다. 박문대는 지금 류건우가 눈앞에 없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장을 보냈다. 류건우의 성격처럼 칼같이 돌아온, 끝나는 대로 마중 가겠다는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보고 박문대는 일에 집중했다.

  “건우 형!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니, 방금 왔다. 오늘은 별일 없었냐.”

  “없었어요! 형이 먼저 연락하신 게 제일 별일이었죠…!”

  “... 앞으론 연락한다.”

집으로 향하는 길, 티격거리며 걷는 두 남자는 언뜻 보기에도 퍽 가까워보였다. 주로 대화를 이어가는 건 덩치가 조금 작은 남자였고, 옆에 선 조금 더 큰 남자는 간혹 고개를 끄덕이거나 짧게 답하며 호응했다.

  “박문대.”

  “네, 형!”

  “너 초코케이크 좋아하냐.”

  “어, 딱히 가리지는 않아요!”

애초에 케이크 먹을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며 멋쩍게 웃는 박문대의 모습을 아무 말 없이 보던 류건우는, 비어있는 한쪽 손을 들어 박문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마냥 좋다며 헤헤 웃던 박문대가 류건우의 반대편 손을 의식한 건 그때였다. 뭔가를 보고 흠칫 놀라는 작은 머리를 류건우가 슬쩍 눌렀다. 그 상태로 박문대의 집에 들어가면서도 류건우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박문대는 영문도 모른 채 류건우가 미역국을 데우고 케이크를 세팅하는 것을 보고만 있다가 파드득 떨며 정신을 차렸다. 그래, 오늘은 박문대의 생일이었다. 그러니 이건 아마 류건우보다 정확히 일주일 늦은, 아마도 지난주 자신이 했던 아주 조촐한 생일파티에 대한 보답. 그동안 류건우는 깔끔하게 초를 꽂고 불을 붙였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 사랑하는 박문대, 생일 축하합니다.”

  “중간에 잠깐 망설이셨죠.”

  “... 그, 생일 축하한다.”

사랑한다는 말 때문이었는지 답지않게 목덜미가 붉어진 류건우가 슬쩍 박문대의 눈치를 보았다. 골난 것 같은 박문대의 말은 그저 장난이었는지 활짝 웃고 있는 입이 눈에 띄었다. 그 모습에 안심한 채 고개를 들어 박문대의 얼굴을 본 순간, 류건우는 경악했다. 박문대의 눈에 물방울이 그렁그렁했다. 황급히 화장지를 뜯어 박문대에게 건네자, 박문대는 화장지를 받아 씩씩하게 눈가를 쓸어내고는 류건우를 보며 온힘을 다해 기쁘게 웃었다.

낡은 원룸, 다정한 형이 만들어준 미역국과 말랑한 동생이 자른 케이크, 익숙지 않아도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는 낮은 목소리와 장난스레 호응하는 목소리, 이따금 터지는 밝은 웃음소리.

어색한 축하가, 뜻밖의 눈물이, 따스한 냄새가 함께한 그 생일은 박문대의 작은 온기 옆으로 찾아온 조그마한 불꽃이었다.

  “내년에는 안 울 거예요…….”

  “그래.”

-

그랬던 적도 있었다.

  “건우 씨, 오늘 생일이라면서요?”

  “류 주임님, 생일 축하드려요!”

  “생일 축하한다, 류건우.”

  “오늘 류 주임 생일이니까 미역국이라도 먹으러 갈까?”

  “건우 씨 오늘이 생일이라구요? 저희가 커피 살게요!”

  “건우 씨, 생일 축하드립니다!”

  - 일주일만 기다려라.

12월 8일. 본래 류건우의 생일이었던 날. 큰달은 연이어 들어오는 생일 축하 인사를 부드럽게 맞받아쳤다. 처음에는 자신이 류건우의 생일을 뺏는 게 아닌가, 싶어 부담스러웠던 인사였다. 그러나 한 해 한 해, 시간이 흐르며 그런 인식은 조금씩 옅어졌다. 이제는 적당히 받아칠 수 있을 정도로. 그러면서도 큰달은 조용히 생각했다. 눈앞이 캄캄했던 어느 생일로부터 시작된, 검은색이 절망이 아니라 안식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작은 온기를.

이런 마음을 읽기라도 하는 건지, 때맞춰 울리는 스마트폰 알림은 큰달의 얼굴에 환한 미소를 피워냈다. 잠금화면을 해제하자 떠오른 화면에는 스케줄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찾아가지 못해 미안하다는 사과, 이따가 시야라도 공유하지 않겠느냐는 권유와 함께 일주일만 기다리라는 테스타 박문대의 간단한 메시지가 있었다. 모든 기억을 되찾은 그는 예전에 했던 작은 약속을 지키기라도 하려는 듯, 이따금 인사와 함께 소소한 잡담을 걸어오곤 했다. 큰달은 곧바로 답장을 보내려다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붉어진 손마디를 물끄러미 보았다. 현실감이 물씬 풍기는 차갑고 거친 손에 큰달은 답장을 보내고 외투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테스타 박문대가 약속했던 일주일 후, 퇴근한 큰달은 자신의 집 앞에 놓인 커다란 상자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누가 보낸 건지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이런 걸 말도 없이 곧잘 해내는 사람은 큰달이 알기론 단 한 명뿐이었다. 큰달의 생일선물로 이제는 구하기 어려운 테스타 공식 굿즈와 친필 코멘트가 적힌 사인 앨범을 잔뜩 안겨줄 수 있는 게 그의 형밖에 더 있겠나.

그래서 큰달은 아주 자연스럽게 박문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침에 이미 생일 축하한다는 전화는 받았지만, 그것과 이건 별개였다.

  - 잘 받았냐.

  “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건 언제 다 준비하신 거예요…!”

전화 너머로 잔잔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박문대의 웃음소리였다. 이제는 박문대의 생일이 되어버린 큰달의 생일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는, 부드러운 박문대의 말투에 큰달은 함박 웃으면서도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별로냐고 묻는다면 물론 아니었다. 게다가 박문대의 선물은 그것뿐이 아니어서, 큰달은 결국 고맙다는 말을 속삭였다. 큰달의 눈앞에는 캡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감춘 박문대가 묵직한 쇼핑백과 제과점 상자를 들고 서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서둘러 박문대를 집 안에 들이면서도, 큰달은 밝게 웃고 있었다. 붉어진 목덜미를 연신 손으로 문지르는 박문대를 앞에 두고 열어본 선물 상자 안에는 꽤 괜찮은 카메라 하나와 함께 투박한 봉투가 하나 있었다. 비싼 거 아니냐며 경악하는 큰달을 가볍게 진정시키곤 부르는 박문대의 생일 축하 노래는 큰달을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달콤한 케이크, 진심이 가득한 손편지, 잔잔한 축하와 따스한 웃음. 큰달은 벅차도록 차오르는 기쁨에 환히 웃었다. 큰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박문대가 이젠 안 우냐며 가볍게 놀리고, 놀리지 말라며 툴툴거리던 큰달은 퍼뜩 놀라 케이크를 커팅했다. 본래의 박문대를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과 함께 있는 공간은 그 무엇보다도 안온했다.

그래서 오늘은, 류건우의 다정과 박문대의 사랑이 맞닿아 터뜨린 불꽃이 만든 기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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