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편
유료

62화

두 갈래 길

다음 날 점심.

세 사람은 112번 도로에서 수상한 짓을 하는 마그마단의 조무래기를 발견했다는 용암체육관 관장, 민지의 정보를 따라 용암마을로 향했다.

마적이 제 입으로 그란돈이 봉인되어 있다고 말한 곳이 바로 근처의 굴뚝산. 마침 태홍에게서 그곳에 마그마단의 본부가 있다는 연락을 받은 제노는 성호가 제안한 용암마을로의 여정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한 찻집. 큰 싸움을 시작하기 전 포켓몬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든든히 식사를 마쳤다.

통창 밖으로 보이는 마을은 고요하기만 하다. 원래부터 이런 분위기일 수도 있겠지만, 마그마단의 움직임에 사람들이 더욱 활동을 자제한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전통적인 디자인의 도자기 찻잔을 내려놓은 성호가 오는 내내 했던 질문을 다시 입에 담았다.

“우린 여기 마그마단의 행보를 쫓아온 겁니다. 알고 계시죠?”

“네에.”

“… 여전히 마그마단의 본거지를 찾으면 쳐들어갈 생각이신 거죠?”

“네.”

“하아….”

성호가 작지만 확실하게 들릴 정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뭘 그렇게까지 한숨을 쉬어, 총각. 너도 같이 쳐들어가게 될 텐데. 제노가 그렇게 생각하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바라본 성호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걱정 마세요, 실버도 그렇고 저도 충분히 강하니까요. 그래도 일반인을 범죄조직과 관련된 일에 연관시킨다는 게…. 저흰 호연 사람도 아닌데요, 뭐, 챔피언께서 책임지실 필요는 없어요. 그것참 무서운 말이네요. 무서워요? 네, 제노 씨의 사고 방식과 실버 군의 행동력이요.

태연하게 전병을 씹으며 성호와 티키타카를 주고받던 제노가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내뱉었다.

“저, 그렇게 걱정되시면 경찰들과 함께 행동하면 되지 않나요?”

“그게 그렇게 쉽지 않아서요.”

성호의 설명을 짧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아직 마그마단과 아쿠아단이 떠들어대는 허무맹랑한 목적을 받아들이지 못한 건 둘째 치고, 곳곳에서 활개를 치는 조무래기들 때문에 각 도시의 경찰들이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상대는 전원이 포켓몬 배틀을 할 줄 아는 집단입니다. 개개인의 실력이 엘리트 트레이너에 미치지 못한다 해도, 모이면 일반인에게 충분한 위협이에요. 그리고 윗선에선 전문 인력이 움직이기엔 시기상조라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제노가 잘 구워진 납작한 부침개 형태의 과자 하나를 베어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납득이 가는 이유다. 기껏해야 가디 한둘을 데리고 다니는 경관이 출동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관장들이 각 도시의 혼란을 막는 쪽이 빨랐다. 용암마을만 해도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던 마그마단 무리를 쫓아낸 것이 바로 관장인 민지였으니까.

여하튼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으니 관장들 선에서 끝내라는 거군. 그리고 쉽사리 체육관을 비울 수 없는 그들에게 주어진 한계를 알고 있는 성호가 직접 움직이기 시작한 거고.

챔피언도 쉽지 않구나. 그린은 잘하고 있을까.

손수건에 과자 가루와 함께 끝없이 이어지는 잡념들을 닦아낸 제노가 물었다.

“그 부분을 챔피언의 힘으로 어떻게든 안 되나요?”

“이번 조사에서 제가 실종된다면, 네, 그때는 챔피언으로서의 명성이 힘을 발휘할지도요.”

그렇게 말하며 성호가 농담이라는 듯 산뜻하게 웃었다. 우와, 무서워. 제노는 한순간 그가 했던 말을 이해하고 말았다.

*

굴뚝산을 오르며 제노는 이곳의 수색을 찬성한 과거의 자신을 질책하고 있었다. 차라리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내려오는 편이 빠를 뻔했다.

성호는 평소 직접 돌을 캐러 산을 쏘다니기라도 하는 것인지, 정장 차림으로도 전혀 지친 기색이 없어 보였다. 실버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제노는 쉽사리 힘든 티를 낼 수 없었다. 아무렴 저 녀석 앞에서 약한 소리를 할 수야 없지.

그때 잘만 산길을 걸어가던 실버가 속도를 늦추더니 제노의 곁으로 다가왔다. 뭐지, 힘든 거 티 났나.

“있잖아, 당신 샤미드 말이야.”

“응?”

“저번에 본 이브이는 아닌 거지?”

“응. 잘도 눈치챘네?”

“당연하잖아. 그때 이브이는 수컷이고, 샤미드는 암컷인데.”

그것도 그렇네. 제노가 실없이 웃자 실버가 반대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여전히 까칠한 녀석이었다. 그가 계속해서 물었다.

“그 이브이는 지금 어디 있어?”

“박사님 연구소로 보내놨어. 오 박사님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

“어. 공 박사가 자기 선배라고 하던데.”

“공 박사님이랑 제법 사이가 좋은가 봐?”

“….”

답이 없는 실버에 제노가 조금 웃었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곤 해도 그런 연줄이 있다는 건 도움이 될 터였다.

“… 관동에서 마지막으로 얻은 배지가 그린배지였어.”

“….”

실버가 꺼낸 주제에 이번엔 반대로 제노의 입이 다물렸다.

“관장 이름도 그린이었던가. 당신하고 같은 펜던트를 차고 있던데.”

“….”

“상록체육관 관장하곤 무슨 사이야?”

“글쎄.”

짧게 답한 제노가 걸음을 빨리했다. 순식간에 실버와 거리가 벌려졌다. 그가 무어라 입을 열려던 찰나, 가장 앞에 있던 성호가 신호를 보냈다. 멈추라는 뜻 같았다.

세 사람 모두 기척을 죽인 채 커다란 바위 뒤로 숨었다. 너머에는 마그마단의 복장을 한 사람 한 명이 수상한 거동을 보이고 있었다. 대체 저기서 왜 서성거리고 있는 거지? 제노가 상대의 움직임을 조금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고개를 내뺀 순간, 마그마단 조무래기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

… 눈이 마주쳤나? 의문을 가진 것도 잠시, 갑자기 그가 큰소리로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아, 여기가 아지트로 가는 입구! 인데 숨겨진 문! 을 여는 표식! 을 잃, 어버렸네~?”

“….”

“마그마단의 로고! 가 박힌 물건! 인데… 이 근처에서 떨, 어트린 모양, 이다~”

그리곤 왔던 길을 살펴봐야겠다며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수상한 녀석이 사라지고 나서도 세 사람은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먼저 움직인 것은 제노였다.

“잠깐, 함정일지도 모릅니다.”

“괜찮아요.”

깜지곰을 잡으려면 링곰굴로 들어가야 한다잖아요? 그렇게 말한 제노가 마그마단의 조무래기가 서 있던 근처의 바닥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에 두 남자도 어쩔 수 없이 제노를 따라 주변을 수색했다.

“… 이거 아니야?”

잠시 뒤, 실버가 돌무더기 사이에 꽂혀있는 표식을 들어 올렸다. 단순한 디자인이었지만 한가운데 그려진 마그마단의 로고가 인상적인 물건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제노가 그것을 받아들고, 근처의 바위벽에 대어보았다. 그러자 특정 부분에서 표식이 반응하더니, 쿠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벽의 일부가 마치 문처럼 움직이며 지하로 내려가는 길을 내어주었다.

세 사람이 어둠에 집어삼켜진 계단 아래를 바라보았다.

“일종의 기계장치 같습니다. 표식을 가까이 대면 자동으로 열리게 설정한 것 같군요. 이 정도의 위장이라… 아래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은 분명합니다.”

“내려가죠.”

“진심이야?”

실버가 영 미덥잖다는 눈빛으로 제노를 바라보았다.

제노에겐 함정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다. 방금의 수상한 사람은 마그마단의 단원이 아니라, 태홍의 명령으로 잠입한 갤럭시단의 단원일 것이다. 그 어색한 연기는 눈이 마주쳤을 때 자신을 알아차리고 마그마단의 아지트로 향하는 길을 내어준 것이었다.

허나 자세한 내막을 설명할 수 없는 제노는 그저 어깨를 으쓱이곤 잘 다듬어진 계단을 향해 성큼성큼 발을 내디딜 뿐이었다.

“잠깐, 어두우니까 조심하세요.”

“괜찮아요, 자.”

제노가 서둘러 뒤를 따라온 성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어어…. 얼빠진 소리를 낸 성호가 얼떨결에 그 손을 마주 잡았다. 실버가 가장 뒤에서 그 모습을 불만스럽게 노려보았다.

타박, 타박, 타박, 세 명분의 발걸음 소리가 지하로 잡아먹혀 들어갔다.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결제하시면 보관함에 소장 가능합니다.

카테고리
#2차창작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