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헌] 너의 결혼식

백업 by 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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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썰글/겁나 짧음/급전개

* 1차 창작

도헌이는 훈련이 끝나고 집에 가고 있었어. 1월에 거의 10시 가까이 되는 시간이라서 벌벌 떨면서 갔지. 뭐, 동계 올림픽 국가대표라서 추위를 안 탈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도헌이는 추위를 꽤 타는 편이었어. 주변에서 요즘은 숏 패딩이 유행이다 이럴 때도 꿋꿋이 롱패딩을 고집하며 꽁꽁 싸매고 다녔는데도 불구하고 추웠지. 도헌이는 찬 바람이 옷 틈새로 들어오는 것 같아서 더 몸을 움츠렸어. 손도 주머니에 더 꼭 넣었는데 알림이 울렸어.

추운 탓에 별로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바로바로 대답을 하는 도헌이었기에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지. 아이스하키 국대 재현이에게서 문자가 온 거야. 거의 한 달 만에 연락이라 도헌은 기쁜 마음으로 문자를 확인했어. 재현 형이 문자를 했네...? 그러나 문자를 확인한 순간 도헌이의 표정은 굳고 말았어. 그다지 달가운 내용은 아니었거든. 문자가 무슨 내용이었냐고?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금메달리스트 이재현과 일반인 여성 김유은씨가 12년의 연애를 끝으로 결혼한다는 내용.

이재현 ♥ 김유은, 결혼합니다!

2024 / 01 / XX

00호텔 00관

결혼이라니, 당연히 축하해줘야지라고 생각하면 넌 아직 도헌이를 모르는 거야. 도헌이는 문자를 보고 뭐라고 보내야 할지 고민했어. 이내 도헌이는 '형 축하해요, 꼭 갈게요!'하는 문자를 남기고는 핸드폰을 주머니 안으로 깊이 넣었지. 도헌이는 비참해지는 감정을 느끼며 바닥을 바라보았어. 그때 우연이었을까, 하늘에서는 하얀 눈이 흩날렸어. 거리를 걷던 커플들과 학원을 끝마치고 나온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웃었지. 도헌이는 행복해하는 그들 사이에 껴있었어. 도헌이는 생각했어. 춥다, 몸도 마음도.

도헌이는 재현이를 고등학생 때 만났어. 도헌이가 고2 때, 재현이가 고3 때. 재현이는 고3 때 어쩔 수 없이 이사 온 케이스였어. 전학을 왔는데 훈훈한 외모와 아이스하키 전공이라는 말에 소소하게 화제가 됐지. 도헌이는 초반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어. 뭐, 체육 전공이라는 게 눈에 띄었지만. 그냥 오고가다가 마주치는 정도?

도헌이가 재현이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간단했어. 동아리를 신청했는데 부원이 재현이랑 도헌이 밖에 없었어. 도헌이는 말로만 듣던 재현이를 처음 보고 느꼈지. 훈훈하게 생겼다, 키 크다, 진짜 운동하는 사람 같다. 도헌이는 재현이를 보자마자 심장이 뛰는 걸 느꼈어. 뭐랄까, 처음 느껴보는 심장의 속도가 이렇게 빠른 줄 몰랐어. 도헌이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재현이가 웃으며 맞이해줬지. 너구나? 우리 동아리 부원이. 잘 부탁해. 난 이재현이고 우리 이제 친해져야 할 거야. 농담을 건네며 웃는 재현이를 보고 도헌이는 또 설렘을 느꼈어. 도헌이는 그때 느꼈어, 나 재현 선배 좋아하게 됐구나.

도헌이랑 재현이는 금방 친해졌지 뭐. 같은 동아리에 운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공통점이었고 재현이는 보면 볼수록 다정한 사람이었어. 도헌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잘 웃어주며 무엇이든 나서서 도와줬지. 도헌이는 재현이를 향한 마음이 점점 커져갔지만 고백할 자신은 없었어. 고백을 했다가 재현이가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멀어질 것 같았거든. 그래서 도헌이는 괜히 재현이가 자신을 건드릴 때마다 크게 반응하며 선배 왜 그래요~라며 반응했어. 

도헌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했던 행동을 뼈저리게 후회했어. 사랑은 쟁취하는 거라더니, 진짜 그게 맞았나 봐. 재현이는 얼마 안 가 도헌이와 같은 학년의 여학생과 연애한다는 소문이 퍼졌어. 그 여학생은 예쁜 걸로 유명한 2학년 김유은이었고. 도헌이는 제발 아니길 기도했어. 동아리가 있는 날, 도헌이는 재현이에게 물었지. 형... 혹시 유은이랑 사귀는 거에요...? 벌써 2학년에도 소문 퍼졌구나? 네? 뭐 어쩌다 보니 사귀게 됐네. 아. 도헌이도 사귀고 싶으면 얘기해, 예쁜 애 소개시켜줄게. 아... 네.

이때부터였을까, 도헌이의 사랑은 점점 불행해져갔어. 도헌이는 항상 한 발짝 뒤에서 재현이를 바라봤어. 재현이의 성격 탓이었을까, 재현이는 여자친구와 싸움 한 번 없이 교제했지. 그렇게 재현이는 졸업하고 좋은 성적으로 대학교에 들어가서 국가대표가 됐어. 도헌이도 재현이와 같은 학교에 갔지. 도헌이는 대학교에 가서도 재현이를 좋아했어. 재현이는 그걸 몰랐지. 도헌이는 재현이를 잊고 새 사랑을 하려 해도 계속 떠오르는 재현이 생각에 힘들었어. 재현이 형, 형은 왜 내 삶에 들어와서 날 괴롭혀요. 나 형 잊고 싶은데, 마음이, 마음이 이상해요. 나 어떡해요 형. 

도헌이가 남모르게 재현이에 대한 마음을 계속 키워가고 있을 때 재현이와 도헌이는 같이 나간 올림픽에서 둘다 금메달을 따고, 재현이와 여자친구 사이에서는 결혼 얘기가 나왔지. 도헌이가 계속 비참해질 때 재현이는 결혼을 하게 된 거야. 도헌이는 자신이 12년 간 짝사랑한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사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지만 계속 아쉬움과 뭐라 말로는 설명할 수는 없는 감정이 계속 도헌이를 괴롭혔어. 

결혼식 당일날, 도헌이는 재현이에 대한 마음을 진정으로 접을 준비를 하고 갔어. 재현이의 미래 신부이자 전 고등학교 동창인 유은에게 인사를 어색하게 하고 구석에서 멍하니 있었어. 그러고 있는데 눈앞의 시야에 들어온 건 재현이었어. 도헌아 와줬네? 형. 우리 잠깐만 저기 카페 가서 얘기할래? 너무 오랜만이어서. 음료 형이 살게. 어? 네! 도헌이는 재현이를 순순히 따라갔어. 

너는 커피 말고 딸기라떼 먹지? 네, 기억하네요? 난 다 알지. 자신이 좋아하는 음료를 기억하고는 아무렇지 않게 시키는 걸 보고는 도헌이는 심장 한 쪽이 아려왔어. 재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시킨 음료 두 개를 가지고 와서는 얘기했지. 진짜 오랜만이다, 두 달 만인가? 네 거의... 형 결혼 준비 때문에 바빴을 것 같아요. 그래서 연락 많이 못 했다, 미안해. 잘 지냈지? 저는 뭐 훈련하고 똑같죠. 저도 이제 곧 있으면 은퇴해야 될 것 같아요. 뭔 소리야, 너는 팬들 많고 쌩쌩하잖아. 그런가? 둘은 시덥잖은 얘기를 나눴어. 도헌이에게 있어서 재현이는 짝사랑의 상대이자 우상이기도 했지만 가장 친한 형이었거든. 

그렇게 많은 얘기를 하다가 연애 얘기가 나왔어. 도헌이는 여친 있나? 아직... 그래? 너도 좋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 그러게요. 도헌이는 진심으로 자신을 위해 생각해주며 애기해주는 재현이를 보며 또다시 심장이 아파왔어. 내가 좋아하는 건 형이에요. 도헌이는 이 말을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재현이에게 전화가 왔어. 형, 전화 받아요. 여자 친구 분 같은데. 아 미안. 어 유은아, 어, 아 그래? 올라갈게. 사랑해. 미안, 나 이제 올라가야겠다. 그래요 형 먼저 가요. 나 조금만 있다 갈게요. 그래? 미안하다 나 먼저 가볼게. 재현이는 올라갔어. 도헌이는 재현이가 통화할 때의 표정을 곱씹었어. 정말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었거든. 그렇게까지 웃으며 사랑한다 말하는 재현이를 본 적이 없었어서 그런가. 그냥 신기하더라. 

결혼식은 별 이벤트 없이 지나갔어. 뭐, 하객들이 다 웃을 때 도헌이 혼자 웃지 못 했다는 것? 도헌이는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재현이에게 진심을 다해 말했어. 형, 결혼 축하해. 도헌이는 이 말을 재현이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하고는 재현이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쫓겨나듯이 결혼식장 건물에서 나왔어. 도헌이는 텅 빈 집에 혼자 왔어. 집에 오니 괜히 눈물이 나더라.

형, 나는 형 12년 동안 좋아했어요. 내가 12년간 끙끙 앓고 있을 때 형은 좋은 인연을 만나 평생을 다짐했네요. 형, 친한 동생이 이딴 애여서 미안해요. 많이 좋아했고 좋아해요. 이제는 형을 진짜 잊을게요.

그리고 형, 결혼 진심으로,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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