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와 불꽃
불길이 가득했다. 비가 오는데도 그랬다.
나무 타는 냄새가 났다. 나는 콜록거리며 잠에서 깼다. 창문을 열어 밖을 바라보니 사방에 불길이 가득했다. 비가 오는데도 그랬다.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나는 수로에서 물을 퍼다가 불속에 부었다. 조금만 지나면 다시 잠잠해질 불길이었다.
불속에 뛰어들어 다 타버린 잿더미들을 짓밟는다. 부스럭 소리가 났다.
내가 사는 숲은 어느 순간 바다에 고립되었다. 물이 점점 차오르더니 육지가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배를 만들만한 손재주도 없고 이 근방의 지리도 모르니 뭘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그래도 숲에 대해선 박식하니 그 얄팍한 지식으로 겨우 생을 연명하고 있었다.
나는 금방 바다에 다다랐다. 그 해수면은 시도 때도 없이 올라 곧 내 집까지 삼켜버릴 듯했다. 뜨거운 불길은 파도에 이기지 못해 사그라들었지만, 산꼭대기에서만큼은 건재했다.
비는 더 이상 물의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 비를 맞은 생물들은 서서히 빛을 잃어가고 비를 맞고 자란 나무는 돌연변이 사과를 피운다.
파도가 친다. 어둠을 삼킨 바다가 이제는 내 몸뚱어리마저 탐한다. 내가 언제까지 살아갈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살아가야 하는 걸까.
시내에서 한 사람이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말이 들려온다. 어느 누구는 불길에 빠져 불타 죽었다고, 다른 누구는 산성비를 맞고 밤새 몸져누워 고생하다 아침에 죽었다고. 심지어는 별똥별을 맞고 죽었다는 사람도 나오는 이 마당에 내가 더 이상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냔 말이다.
마지막으로 사람의 소식을 들은 것이 10년도 더 된 일이었다. 나는 그대로 자빠져 누웠다.
나도 이제 죽을 때가 되었나. 이 재해에서 하루하루 뼈저리게 살아가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
가끔씩 밀려오는 이 외로움에 삼켜져 버릴 것 같다. 숨이 막히는 듯한 그 감정에 나는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바다가 까맣고 불길이 환하니, 나는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다.
굳은살이 가득한 발바닥에 차가운 바닷물이 스치운다.
나는 그대로 가만히 누웠다.
어쩌면 이 바닷속에 깊게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일 것 같다. 바다에 빠져 죽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바다 끝에 누워 그와 교감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이상한 생각이 든다.
잠이 온다. 공기가 수증기로 가득 차 숨을 쉴 수가 없다. 나는 꿈속에서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당연하게도 닿을 리가 없다.
온몸이 차갑게 식어간다. 나는 그저 이 운명을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나는 세상과 이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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