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이방인과 이방인
Call of Cthulhu 7th fanmade scenario based
TRPG 크툴루의 부름 7판 동인 시나리오 "이방인"의 특정 상황 사이를 창작한 글입니다.
시나리오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시나리오 본문을 인용한 구절도 다수 존재합니다.
미지의 상황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결의를 나타내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방백 같은 글이겠네요.
작성: 2023. 07. 30
수정: 2023. 09. 29
그날, 무라카와 치사키는 꿈을 꿨다. 설원에서 자기 연인이 걷고 있었다. 천지 구분 없이 온통 흰 세상에서 색깔을 가진 이는 그뿐이었다. 그 사람은 눈보라에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무언가에 단단히 홀린 듯, 뺨을 스치는 거센 바람도 무시하고 백색 세상에 발자취를 남겼다. 눈발에 금방 지워질 흔적이었다.
異邦人과 異彷人
■■■는 자신이 파놓은 구멍에 걸터앉은 이를 기대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가 점찍은 자들은 우연히 인듀어런스 남극점 기지를 방문한 여행객이었다. 그들은 애틋한 사이로 보였다. 기지의 별 볼 일 없는 연구원 ‘자비에 베텔’로 위장해 관찰한 결과, 두 사람은 기지 내부를 안내하는 동안 줄곧 손을 잡고 있었다. 그들은 나란히 앉아서 기지 소개 영상을 보다 깜박 잠들고, 우체국에서 같은 엽서를 구매하고, 세레모니용 폴에서 정답게 기념사진을 찍었다. ■■■에겐 값어치 있는 미끼 한 쌍이었다. 한 명의 목숨을 담보로 유인하면 절대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터였다.
그 예상은 적중했다. 한쪽에게 파트너의 생사를 들먹이자, 자신을 위협하는 눈동자도 금방 잦아들었다. ■■■는 거래를 제안했다. 인듀어런스 기지에 방문한 이방인이 자기 대신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주면, 여행자들은 아무 위해 없이 일상으로 돌려보내겠다고. 상대는 마지못해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지금 위험천만한 모험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가 75만 년 동안 고대하던,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하는 여정이다.
금방 의뢰인이 구멍으로 들어갔다. ■■■는 그의 등 뒤로 소리쳤다. “그 애가 네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이 말도 전해줘. 보고 싶었다고. 보고 싶다고!” 그리고 인질이 있는 ‘두 번째 기지’로 돌아갔다. 인듀어런스 남극점 기지의 끔찍한 비밀을 품은 곳으로.
무라카와 치사키는 잠에서 깨어나 주변을 바라봤다. 처음 보는 실험실이었다. 자신이 기대 있는 곳은 커튼이 쳐진 거대한 수조였다. 파손돼 아슬아슬하게 금이 가 있지만, 성인 한 명은 거뜬히 담글 수 있는 크기의 수조. 무라카와 치사키는 깜짝 놀라 뒤편으로 주춤거렸다. 그러자 웃음을 참지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늦장꾸러기. 좋은 아침?”
“마논……?”
무라카와 치사키의 뒤편으로 ■■■가 인사했다. 의뢰인인 카스미 마논의 모습을 한 채로. 무라카와 치사키는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아니, 넌 마논이 아니구나.”
“오, 역시 연인들 눈은 속일 수 없나봐? 죽고 못 사는 사이라 그런가.”
“여기 어디야. 난 분명 물을 마시고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여기? 남극 기지의 비밀 장소?”
“무슨 소리야, ……아니. 신경 쓰이는 게 있긴 해. 그런데 그게 지금이랑 무슨 상관인데?”
“뭔가 아는 게 있는 것 같네. 용건만 말할까?”
“…일단은 말해줘.”
“너희 묵고 있던 기지가 불탔어. 지상은 아마 난리일걸? 너는 내가 구한 거고.”
“그게 무슨 소리야???”
“진정해. 여기 남극인 것 잊었어? 지금은 눈발이 거세. 올라가봤자 금방 미아가 될 거야.”
“휴…… 그냥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무라카와 치사키는 한숨을 깊게 쉬었다. 충격적인 일의 연속이었다. 자기 연인, 카스미 마논이 거센 눈보라를 헤치고 지나가는 꿈을 꿨다. 그리고 일어나 보니 잘 모르는 실험실에 갇혔다. 눈앞의 사람은 연인을 사칭하며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곳이 불탔다 이야기하고 있다. 서점의 파격 할인 책장에 꽂힌 삼류 소설이 지금 상황보단 개연성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는 거침없이 현 상황을 설명했다. 자신이 선심을 쓰고 있다는 듯, 의기양양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여긴 과거 인간들의 욕망이 묻혀있는 장소. 지금 기지에서 유명한 괴담, 그냥 지어낸 이야기일 것 같아? 저들은 나, 이방인의 피를 재료로 새로운 인간을 만들려 했지. 육신의 한계를 초월한, 한 단계 진보한 인간을! 그러나 실패했어. 그래서 눈 밑으로 다 묻어버린 거야. 이 나와 함께!”
“그때 이후로 나는 줄곧 기다렸어. 이 기지의 이방인이면서, 나와 어울려 줄 유능한 미끼를. 미끼 던지는 작업은 어려웠지. 번번이 낚싯줄을 던져도 돌아오는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너희가 온 거야. 조악하지만 나와 비슷한 처지인 것들이.”
“이방인이 실존할 줄 몰랐네. 그래서 불은 네가 지른 거야?”
“그렇지. 주의 돌리기 딱 좋잖아? 너는 내가 특별히 모셔야 할 것이라, 일찍 빼내온 거야.”
무라카와 치사키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불현듯 무언가 떠올랐는지 ■■■에게 쏘아붙였다.
“……마논.”
“어?”
“내 마논, 내 마논은 지금 어디에 있어?”
“아… 이 모습의 원본 되는 애 말이지? 지금은 없어.”
“뭐라고?!?”
무라카와 치사키는 반사적으로 ■■■의 멱살을 잡았다. ■■■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무라카와 치사키를 바라보다, 위협하듯 그의 양 손목을 꽉 잡고 다그쳤다.
“지금 네가 이래봤자 달라질 건 없을 텐데? 마법사, 혹시 나에게 도전할 셈인가? 조심하는 게 좋아. 그 아이의 행방은 나만 알고 있어. 바꿔 말하면 무슨 뜻이겠나?”
“……”
멱살을 잡은 손이 하릴없이 늘어졌다. ■■■는 구겨진 옷깃을 정리하면서 대답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아직 내 말 다 안 끝났어. 없다는 말도 여기엔 없다는 말이지.”
“그러면 지금은 어디에 있는데?”
“나랑 어울리는 중이지. 내가 굳이 왜 널 떨어뜨려 놓았겠어?”
“…그 애는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야, 집적거리지 마.”
“너 아까 내 말은 듣긴 한 거냐? 나는 인간들이 파묻은 비밀을 캐낼 사람이 필요해. 저 밑에 내 동포가 잠들어 있거든.”
“혹시 46B? 그건 그냥 광인의 가설일 줄 알았는데?”
“진짜 멍청한 인간들 같으니라고, 눈에다 깡그리 다 묻어놓았네. 46B랑 나는 동족이야. 걔는 이 대륙 밑에 있는 고대 도시에서 방황하고 있고.”
“그렇구나. 그럼, 너 혹시 마논한테…”
“이제야 조금 말이 통하네? 나는 그 아이랑 거래했어. 나를 대신해서 고대 도시로 가달라고. 그러면 차후 너희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왜?! 아니, 애초에 그런 일에 사람 쓸 필요 없잖아, 네가 직접 가면 되잖아?”
“그게 가능했으면 난 이미 46B를 만나고 없겠지. 아쉽게도 나 같은 고차원적 존재는 그 도시에 못 들어가. 신격이 낮은 것만 들어갈 수 있어. 예를 들면 인간 같은.”
“그게 무슨…”
“너희는 아슬아슬하게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리고 인간보다는 튼튼한 것 같고. 그래서 부탁했지.”
“……다른 방법은 없던 거야? 우리가 들어가는 방법 말고, 46B가 나오게 하는 거라던가 없냐고!”
“안돼. 무고한 희생자가 더 나오길 바라는 거야?”
무라카와 치사키는 대꾸할 말을 잃었다. ■■■는 가만히 무라카와 치사키를 지켜보았다. 무라카와 치사키는 잠깐 바깥바람을 쐬고 싶다고 말했다. ■■■는 알겠다며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무라카와 치사키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모르는 사람에게 무력히 납치당했고, 카스미 마논은 납치 상대와 위험한 거래를 했다. ■■■가 무라카와 치사키에게 말해준 이야기는 터무니없는 것들이었다. 무라카와 치사키와 카스미 마논 역시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지만, 눈앞의 그는 규격이 다른 존재 같았다. 인간을 비켜나간 사고방식, 이해 불능, 살아있는 재앙, 업화, 미지의 공포…… 그에게 두려움에 관한 수식어를 덕지덕지 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고차원의 존재라 말하기에는 너무 ‘인간적’이었다. 인간과 같은 언어를 쓰고, 거래를 요청하고 대가를 지불했다.
그를 신용할 수 있음과 별개로 무라카와 치사키는 불안했다. 지하로 내려갔다면 맨몸으로 간 건지, 깊이는 얼마나 되는 건지, 고대 도시는 인간 같은 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인지, 46B는 과연 대화가 통하는 상대인지…… 모든 것이 미지의 영역이었다.
‘너는 무슨 생각으로 마논과 거래를 했어? 뭘 믿고 그랬느냔 말이야.’
무라카와 치사키는 평소답지 않게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막연함을 해소하지 못했다. ■■■에게 따져봤자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기 연인을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었다. 이만한 규모의 일이면 당연히 카스미 마논은 자신의 목숨을 걸었으리라. 카스미 마논은 무라카와 치사키가 관련된 일에는 무모해 보여도 일단 수락하고 보는 사람이니까.
무라카와 치사키는 행동력이 좋은 사람이다. 무언가를 깊이 숙고하는 일 따위 적성에 맞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길 좋아하는 성격이다. 지금도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연인을 기다리는 것보다 직접 현장에 가는 쪽이 편했다. 그는 다시 ■■■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저기, 나 부탁이 있어.”
“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들어줄게.”
“나도 도시로 갈래. 길을 안내해 줘.”
“뭐?”
■■■는 황당한 표정으로 무라카와 치사키를 바라보았다. 무라카와 치사키의 표정은 반대로 결연했다.
“네 이름이 치사키랬나? 난 이미 충분해. 한 명 보냈으면 됐지 구태여 둘이나 희생시켜? 지금 네가 움직이면 내가 그 아이를 볼 낯이 없어.”
“상관없어. 내가 부탁해서 그랬다고 할게.”
“이봐, 내 입장도 생각해 줘… 이런 사정은 멀리 안 새어나가는 편이 좋다고. 자세한 내막을 아는 건 한 명이면 족해. 인간 기억 조작하는 것도 상당히 귀찮아. 이런 짓도 몇 년에 한 번꼴로 하지, 자주 할 것 같아?”
“못미더우면 거래 조건에 하나 더 붙여. 이 일을 누군가에게 발설하지 않겠다는 걸로. 마논은 나보다 입이 더 무거우니 괜찮고, 나도 최대한 노력해볼게.”
“허, 갑자기 어색하게 왜 이래? 원래 연인 사이들은 다 이러나…”
■■■는 납득할 수 없다는 투로 무라카와 치사키에게 질문했다.
“내 이야기는 질색하면서 들어놓고 태도 바꾼 이유나 먼저 물어보자. 보아하니 제법 고민한 것 같은데, 반대로 연인을 믿고 기다린다는 선택지도 있지 않아? 내가 설마 맨몸으로 던져 보냈을까. 당연히 보험 하나 들였어. 나 그 정도로 상식 없진 않아.”
“그건 다행이네. 그래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 네가 말한 보험도, 고대 도시도.”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너희는 보아하니 지상의 것들처럼 불완전한 존재라, 죽음을 완벽히 피할 수 없을 텐데.”
“알아. 그럼에도 마논은 날 위해서 제안을 수락했다는 거잖아.”
“……”
“그 애, 말은 안 해도 외로움 많이 타. 내가 없으면 제일 먼저 나부터 찾고 생사를 모르면 불안해해. 나는 그걸 아주 잘 알아.”
“그래서 가능한 곁에 있어 주고 싶은 거야. 걔한테 작게나마 확신을 주고 싶어. 나는 네게 소속된 사람이고, 무슨 일이 생기면 너를 먼저 찾을 것이고, 만에 하나 내가 잘못되더라도 최대한 돌아오도록 노력하겠다고. 그러니 혼자서 울지 말라고. 뭐, 이런 말 한 것치곤 한 번 속인 전적이 있긴 하지만…”
“나는 걔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거야. 걔도 나랑 똑같지. 내가 그러는 것처럼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을 거야. 우린 자신의 안위만큼 상대가 중요한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더더욱 내버려 둘 수 없어. 혼자서 그 많은 짐을 지게 할 순 없다고…!”
“그러니까 나를 그곳으로 보내줘. 부탁이야.”
무라카와 치사키는 ■■■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는 꽤 놀란 눈치였다. 생각을 정리하듯 잠시 말이 없다, 곧 백기를 들었다는 듯한 얼굴로 무라카와 치사키를 바라봤다.
“정말이지 사랑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그래도 마음에 드는 말이네. 그런 각오 없이 누군가의 곁에 오래 있을 순 없지. 그거 알아? 나도 75만 년 동안 오늘 같은 순간을 기다렸어. 이기적이고 잔혹한 인간의 방해 없이, 가능한 온건한 방법으로 만나기 위해서…”
“그래 뭐, 좋아. 내가 들어놓은 보험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슬슬 도시를 한 바퀴 돌고도 남을 시간이 됐거든. 연인 배웅하러 가던가.”
대답을 마치고 ■■■는 무라카와 치사키의 입술에 짧게 입 맞췄다. 두 입술이 몇 번 마찰하고 깨물려 피가 흘렀다. ■■■는 무라카와 치사키의 입술에서 흘러내린 피를 혀로 꼼꼼하게 핥아주었다. 상대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그것이 자신의 의무인 것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입을 떼면서 가볍게 덧붙였다.
“이방인이 된 것을 축하한다.”
무라카와 치사키와 ■■■는 천천히 지상으로 올라갔다. 다행히도 지금은 눈보라가 잠깐 멎은 것 같았다. 불을 질렀다는 ■■■의 말이 진짜였는지 무라카와 치사키가 머무르던 기지에서 짙은 연기가 보였다. 기지의 직원들이 불을 한창 진압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는 소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라카와 치사키를 안내했다.
둘은 끝없는 설원을 걸어 각진 형태의 건물로 향했다. 건물의 뒤편으로 여러 개의 깃발이 꽂혀 있었다. ■■■는 망설임 없이 뒤편으로 향했다. 발걸음을 따라 멀리 나아가니 깃발 사이로 2m 직경의 구멍이 보였다. 구멍 안쪽으로 측정기를 달아두었는지 내부로 통하는 긴 끈이 보였다. 구멍의 안쪽은 칠흑처럼 새까맸다. 깊이가 얼마인지 맨눈으로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는 무라카와 치사키를 돌아보고 구멍을 한 번 가리켰다.
“자, 여기가 통로. 네 몸으론 아직 서툴겠지만, 그냥 실전으로 익혀.”
“……”
짧은 입맞춤 후, 무라카와 치사키의 몸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세포가 변하고 빠르게 복합적인 진화를 일으키다, 변화하는 환경에 실시간으로 적응하게 되었다.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자아를 갖고 멋대로 꿈틀거리는 기분이었다. 마치 신체에 직접 대규모의 마법을 사용한 것처럼. 차가운 바람의 감각도, 이따금 한 번씩 찾아오는 흉통과 두통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세상 무엇도 더 이상 자신을 구속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육체의 경이였다.
‘마논도 이런 변화를 겪었던 걸까?’ 갑작스런 변화에 어색해하는 무라카와 치사키에게 ■■■가 속삭였다.
“뭐해? 배웅하러 간다며. 무서우면 직접 떨어뜨려 줘?”
“…아, 갈게!!”
무라카와 치사키는 심호흡을 몇 번 하고 구멍 속으로 뛰어들었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에 반사적으로 두려움을 느꼈지만,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여기에서 아무런 조치를 하지 못하면 죽는다. 정말 개죽음이나 다름없다! 이제 와서 선택을 무를 순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지상에 두고 온 모든 것들이 떠올랐다. 여러 생각이 주마등처럼 무라카와 치사키를 스쳐 지나갔다.
그는 마지막으로 카스미 마논을 떠올렸다. 자신과 똑같이 목숨을 시험받았을 또 다른 이방인. 카스미 마논은 이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만일 살아있다면, 자신을 애타게 찾았을까. 무라카와 치사키는 반사적으로 연인의 이름을 불렀다.
“마논, 마논! 어디 있어, 마논!!”
그를 부르는 목소리는 점점 격앙되어 커졌다. 동시에 날갯죽지에서 무언가 돋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무라카와 치사키는 그것을 신경 쓰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부르짖었다.
“내가 찾아갈게, 마논! 어디에 있든 괜찮으니까! 그러니까 죽지 마, 절대 죽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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