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플

샘플 2

사나선화

─ 탕, 탕!

 

힘 있게 코트를 내리치는 소리가 체육관 전체를 가득 채웠다. 농구부로 꽤 잘 나가는 학교인 만큼 농구부의 인기는 무시할 수 없었다. 코트 바깥 자리에는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농구부 학생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꺅꺅대는 소리를 응원삼아 연습경기를 진행하던 순간,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나 선배! 파이팅!”

 

떠오르는 태양에 의해 비치는 바다의 색 한 줌을 품은 듯한 청량한 푸른 눈을 가진 소녀가 팔을 좌우로 흔들며 외치고 있었다. 선화의 힘 있는 목소리에 살짝 당황한 듯, 사타나스의 자세가 살짝 흐트러졌다.

땀방울이 맺힌 은색 머리카락을 가볍게 털어내고는 다시금 자세를 고쳐 잡았다. 몇 번의 스텝, 그리고는 번쩍! 높은 점프 후에 이어지는 덩크슛까지.

동시에 주변에서 와─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연습 경기지만 뿌듯한 성과를 보인 기분에 살짝 미소를 지은 사타나스는, 라인 바깥에 서 있는 선화를 쳐다보았다. 한껏 미소를 지은 선화의 표정에 괜히 귀 끝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교내 아이돌과 다름없는 유명인사인 선화는 늘 친구들을 몰고 다녔다. 발랄한 성격과 솔직한 말투, 거침없는 행동에 예쁘장한 외모까지. 사람 좋아하는 성격상 그의 주변에는 친구가 끊기질 않았다.

그런 그의 눈에 검은 농구복을 입고 코트를 가로지르는 농구부 주장이 들어버렸다. 살짝 젖은 은발을 휙 젖히는 길쭉한 손, 높이 도약하는 모습과 슛을 성공시키고 나면 뿌듯해하는 옅은 미소까지.

 

“완전 내 이상형인데?”

 

한 번도 물러섬이 없는 선화에게 사타나스는 직진 대상이 되고야 말았다. 그날부터 어디선가 불쑥불쑥 나타나 그에게 자잘한 선물을 건네주는 게 일쑤였다. 초콜릿, 사탕, 어디서 사타나스가 레몬을 좋아한다는 소문을 찰떡같이 듣고는 준비했다는 레몬 사탕, 레몬맛 비타민까지. 팝핀캔디처럼 톡톡 튀는 선화와는 다른 사타나스에게는 선화가 꼭, 더울 때 단숨이 들이켰다가 탄산에 목구멍이 따끔거리는 콜라 같았다.

 

“어, 고마워요.”

“사나 선배, 이번 경기도 지인짜 멋있었어요. 다음에 또 보러 가도 되죠?”

“그럼요. 다음에 또 보러 오세요. 이거, 잘 마실게요.”

 

경기 후 선화는 어김없이 사 타 나스에게 다가와 그의 손에 이온 음료를 쥐어주었다. 주변 같은 농구부 동기들이 이열~ 하며 짓궂은 탄성을 내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하지 말라는 손짓을 해댔다. 하지만 선화는 개의치 않는 듯, 그들에게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선배들 건 없네요! 아쉽지만 이건 사나 선배 드리려고 산 거라서요~”

“야, 사타나스는 좋겠네. 저렇게 예쁜 후배가 좋다고 따라다니고.”

“그만해. 민망하잖아.”

 

교복 치맛자락을 팔랑이며 사라지는 선화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사타나스는 그가 준 이온 음료를 단숨에 들이켰다. 탄산이나 레몬에 비하면 살짝 밍밍한 듯한 음료가 어쩐지 달게 느껴졌다.

 

방학을 앞둔 시점. 지금 학교는 축제 분위기로 떠들썩했다. 딱 하루 열리는 축제를 위해 온 학생들이 반마다, 동아리마다 모여 어떤 부스를 열지, 무슨 콘셉트를 잡을지를 의논하곤 했다.

 

“그래서, 선화가 손님을 몰아주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거지.”

“나 그런 거 완전 잘해!”

“엄청 믿음이 가... 외부 손님들까지 팍팍 끌어당길 듯.”

 

매점보다 좀 더 다양한 상품과 어릴 적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법한 불량식품을 배치해 추억의 구멍가게를 열기로 한 선화네 반은, 너무 정적인 분위기에 묻힐까 봐 선화를 앞세워 홍보를 하기로 했다. 원체 이런 떠들썩한 걸 좋아하는 선화에게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한창 교실을 어떻게 꾸며볼지, 상품은 어디서 싸게 구매할 수 있을지를 의논하던 때였다.

 

“야야, 학생회장 선배가 사타나스 선배한테 공개고백한대!”

“뭐? 대박...”

 

그리고 일제히 시선이 선화에게 쏠렸다. 둘이 사귀는 거 아니었어?라고 묻는 듯한 시선. 선화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냐, 내가 좋아서 쫓아다닌 거지 뭐!”

“야, 그래도... 좀 신경 쓰일 거 같은데... 우리 가볼까? 가서 확인하는 게 마음 편하잖아.”

 

선화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하지만 내심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기 때문에─ 얌전히 친구의 손에 이끌려 공개 고백을 벌어진다는 후문 쪽으로 향했다. 바람이 살랑이고, 하늘은 푸르고. 축제를 앞둬 들뜨고 설레는 마음이 가득한 교정에서 공개 고백이라니. 많은 학생들의 시선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차분한 검은 생머리에 수줍은 미소. 하트 모양 스티커가 붙은 편지지를 내미는 손길, 그리고...

 

“미안해. 나는...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편지를 받을 수가 없어. 정말 미안해.”

 

어쩐지 평소보다 훨씬 차분해 보이는 사타나스의 금색 눈을 본 순간 선화는 어렴풋이 알아버렸다. 어쩌면 그 상대가 자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선배의 진중한 거절에 또 한 번 반해버렸다는 마음까지도. 다소 아쉬운 결과에 아련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선 학생회장과, 그 장면을 지켜본 몇몇 학생들이 탄성을 내지르기도 했다.

 

문득 고개를 든 사타나스와 눈이 마주친 선화는 평소처럼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서서히 반짝이는 금빛 눈동자가 사라지며 예쁘게 접힌 눈웃음. 아아, 선화는 현기증이 나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저렇게 잘생기면 안 되는 거잖아! 자꾸 다른 사람들이 탐을 낸다는 게, 선배는 확답을 주지 않는다는 게 답답한 순간이기도 했다.

 

*

 

“사나 선배! 이거요.”

“어어. 이건 뭐예요?”

“우리 반에서 여는 추억의 구멍가게 초대장이에요! 없어도 출입은 가능하지만 있으면 할인을 해드리거든요.”

 

아기자기하게 그려진 티켓 하단에 작게 적힌 ‘초대장을 보여주시면 10% 할인!’이라는 문구를 가리켰다. 사타나스는 작게 웃어 보였다.

 

“농구부도 데리고 갈게요. 아마 이것저것 많이 사 먹을 것 같은데. 도움이 되려나...”

“엄청 되는걸요! 아 참, 그리고...”

 

선화는 주머니를 뒤적여 그에게 레몬 사탕을 쥐어주었다.

 

“이거 진짜 비싼 거예요. 이탈리아에서 만든 사탕이라나? 한 통 사서 하루에 하나씩 선배 드리려고 들고 왔어요.”

“아... 너무 고마워요. 자꾸 뭘 얻어먹네. 참, 이거...”

 

사타나스는 푸른 머리끈 하나를 선화에게 내밀었다. 선화의 표정이 놀람에서 기쁨, 그리고 점점 벅차오르는 표정으로 바뀌어갈 즘, 사타나스가 덧붙였다.

 

“색이... 선화 눈 색을 닮아서요. 푸른색. 그런데 그냥 바다가 아니라요, 물고기와 산호초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푸른색 바다요. 뭔지 아시죠?”

“선배... 저 너무 감동받아서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기쁨을 표현하는 선화의 모습에 사타나스는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뭐라도 더 챙겨주고픈 감정이 밀려왔다. 어쩌면 이미 선화의 존재는 사타나스의 마음 안에 자리 잡은 게 아닐까.

 

*

 

“싫다고요. 그만 가세요.”

“아 거 참. 자꾸 튕기지 말고. 어? 야, 바로 저기 옆 학교에서 놀러 온 건데...”

“내 취향 아니라니까?”

“야!”

“뭐!”

 

웅성대는 축제날. 선화는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교실 밖에서 호객 행위를 하던 선화에게 하필이면 옆 학교의 양아치 하나가 들러붙은 탓이었다. 자기가 잘 나가니 어쩌니, 거기서는 인기가 좋니 뭐니 쓰잘데 없는 이야기나 잔뜩 늘어놓으며 놀라가자고, 근처에 괜찮은 카페를 안다는 구닥다리 멘트를 해대는 통에 선화는 잔뜩 표정을 구긴 채 실랑이를 벌이던 차였다.

 

“뭐야? 그쪽 누구세요?”

 

하필이면 농구부원을 데리고 선화의 반을 찾은 사타나스가 선화의 곤란한 순간을 목격하고 말았다. 민망해진 선화는 고개를 살짝 숙였고, 그 모습에 오히려 더 큰 오해를─저 앞의 자식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밝고 당차던 선화가 저렇게 반응할 정도면 무슨 짓을 해도 했다는─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농구부원의 커다란 덩치와 키. 그들의 앞에 서서 분위기를 앞도하는 이국적인 매력을 풍기는 미남. 사타나스의 눈빛에 당황한 양아치는 꿋꿋하게 소리를 쳤다.

 

“이 자식은 또 뭔데 끼어들어?”

“네가 집적대는 학생 남자친군데.”

 

그제야 선화는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화난 표정은 처음 봐... 선화는 이 와중에도 사타나스의 화난 듯 이를 악문 표정과 그 발음에 집중했다. 이런 모습은 귀하잖아. 선화가 슬금슬금 사타나스의 곁으로 다가가자 그는 팔을 뻗어 선화를 숨기듯 제 뒤로 보내고는 양아치를 향해 조곤히 말했다.

 

“가세요. 일 키우지 말고. 남의 학교 축제날에 와서 이게 무슨 행패야?”

 

악역의 최후는 줄행랑이었다.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의 어깨를 쳐대며 한껏 씩씩거리며 사라져 갔다. 그제야 사타나스는 크게 한숨을 쉬고는 선화를 돌아보며 걱정스레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괜찮아요?”

“네... 선배. 그런데 저 선배 여자친구예요?”

 

평소처럼 밝은 표정으로, 다소 수줍은 듯 묻는 선화의 모습에 사타나스의 숨이 턱 막혔다. 이렇게 맑은 눈으로 저를 올려다볼 때면... 어쩔 수 없이 하루 종일 선화의 생각만 하게 되는 거. 그게 사랑이 아니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저, 선배가 좋아요. 엄청 좋아요.”

“나도... 저도, 선화가 좋아요.”

 

점점 눈이 커지고, 표정이 환해져 갔다. 촛불이 일렁이다 확 치솟는 것처럼, 어두운 새벽을 밝히던 태양이 비로소 저 하늘에 완전히 자리를 잡아 세상이 밝아지는 그때처럼. 사타나스는 결코 이 햇살 같은 소녀를 거절하지 못하리라. 사타나스는 항상 제게 마음을 표현해 오던 선화를 꼭 끌어안았다. 마치 세상이 고요해진 기분이 들었다.

 

*

 

─ 끼익, 끽

 

코트를 스치는 운동화의 마찰음과 여기저기서 응원하는 함성 소리까지. 오늘은 타 학교와의 친선 경기를 치르는 날이었다. 말이 친선 경기지, 이걸로 대회에 나갈 때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사타나스는 오늘 경기가 제법 중요했다. 부원들의 사기 증진과도 연관이 있기도 했고.

 

“파이팅! 사나 선배!”

 

선화의 밝은 응원 소리에 사타나스는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환히 웃는 표정, 나름 열심히 응원을 해보겠다고 양손에 쥔 형광 팔찌. 밝아서 잘 보이지 않을 팔찌를 흔들어대며 자신을 응원하는 선화의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사타나스는 그를 향해 팔을 휘 저어 보이고는 다시금 경기에 임했다.

 

앞으로 10초. 10초면 짧고도 긴 시간이다. 그 사이에 상대 팀이 3점 슛이라도 넣으면 아슬아슬해지는 점수 차였다. 이때쯤 슛을 하나 넣으면 안전하게 이길 수 있는데...!

 

세 번의 점프와 도약, 사타나스의 덩크슛. 그리고 들리는 호루라기 소리. 일제히 터지는 함성소리...

 

이겼다!

 

와─

 

제게 달려오는 선화가 넘어질라, 급하게 마중을 나간 사타나스는 제 품에 안겨드는 선화를 마주 안아주었다.

 

“선화가 응원해 줘서 이길 수 있었어요.”

“선배가 너무 잘해서 이긴 거죠!”

 

마주 보며 히히, 웃는 모습 뒤로 햇살이 실내 체육관을 환히 비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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