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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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관계자 한 무리가 숲을 빠져나가던 밤, 오쉰은 손에 견과 한 움큼을 쥐고 있었다. 연차로 따지자면 그의 까마득한 선임 되는 자가 여상한 인사와 함께 그를 지나치며 건네준 것이었다. 오쉰은 냉큼 받아먹기에도 단호한 칼날처럼 거절하기에도 애매한 그 호의를 어쩔 줄 몰라 가슴에 품은 채 잠을 청했다. 꿈 없는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그는 여전히 가
하……. 한숨인지 조소인지 분간이 안 될 만큼 미약한 음성이었다. 구멍 뚫린 거울을 가져다 놓고 그것이 얼마나 당신과 닮았는가를 열렬히 성토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자니 정신이 그야말로 사나웠다. 당신은 한마디로 성가시다. 웅덩이에 비친 제 얼굴도 똑바로 들여다보지 않고 사는 사람에게 거울을 들이댄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관심
부닌을 죽여. 목숨만 취하면 그 다음은 내키는 대로 해도 좋아. 의뢰를 수주받는 것은 행정을 처리하는 자들의 몫이다. 성가신 들짐승 잡는 일부터 장거리 호위, 지주 간의 분쟁, 사사로운 복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용주들이 적법하고 적당한 계약의 절차에 따라 일을 맡기면 그때부터 오쉰, 그와 같은 칼잡이가 나서는 것이다. 묵묵하고 겁이 없는 칼잡이는 쉽게
오쉰은 눌어붙은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느리고 은밀하고 집요하게. 그는 벗길 가죽이 있고 돈이 될 만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뒤쫓는 재주를 가졌다. 많은 경우에 자신을 사냥꾼으로 소개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사냥꾼이라는 말은 겨우 반쪽짜리 진실이지만 적어도 진실인 절반이 그의 생애를 절반 정도는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그는 부닌의 상속인이기 이전
오쉰은 굳은 얼굴로 잠에서 깼다. 꿈에서 그는 살인자였고 부닌의 검을 지닌 채였다. 반 년 간 누구도 돌보지 않은 집은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거미줄을 치우고 식기와 침구 따위를 정돈한 다음, 밖으로 나와 얼어붙은 땅을 파내기 시작했다. 둔탁한 벽에 부딪치는 소리가 날 때까지 삽질은 계속되었다. 나무로 엉성하게 짠 관을 열자 그 안에 말라붙은 뼈가
이 모든 일에 대해 생각해 봐 켈라니. 언제부터 잘못되기 시작했는지 알겠어? 생각해 보란 말이야. 어디서부터 틀린 것 같아? 내가 널 대신해서 바로잡아 줄까? 싱에게, 그 남자한테 널 죽이지 말아달라고 얘기해 줄까? 그게 네가 바라는 거야? 그거면 돼? 그러면 우리를 떠나지 않을 거야? 아 그래. 켈라니 콴은 입꼬리를 말아 자그마한 미소를 만들었다.
켈라니는 너무 많이 말한 나머지 이제는 입 안의 혀처럼 익숙한 말을 속으로 발음했다 살려 줘 살려 주라 나 죽기 싫어...... 그건 무슨 뜻이지? 널 살리는 건 사라나야 그 마약이야 지금 누구더러 애걸하는 거야? 너를 버릇처럼 죽여 주는 사람에게? 켈라니 자기야 너도 알잖아 애원하는 정도로는 목숨을 못 건져 저 남자는 네 죽음이 질릴 때까지
켈라니 콴은 거울 속의 눈과 시선을 맞춘다. 내가 총구를 노려보는 얼굴이 이랬겠구나 생각한다. 새까만 총구가 보이지 않는 혀를 날름거릴 때 켈라니 콴은 자신의 오른쪽 눈알을 도려낸 다음 깨끗이 씻어내는 상상을 멈출 수 없다 아니 감출 수 없다. 무지 아프겠지 그치 하지만 곧 새 얼굴이 돋아날 거야. 따듯한 물에 더러운 것들을 모조리 씻어냈을 때처럼 개운한
※ 1차. ※ 이 글에는 시신에 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허락 없는 발췌를 금합니다. 이름 없는 머리 경,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세요 여기 목 없는 기사의 시신이 드러누워 있다. 기사의 목을 도려낸 것은 무명의 창이다. 오로지 찌르고 짓이기고 꿰뚫기 위해 연마된 무구. 기사는 목젖과 혀 그리고 이빨을 한꺼번에 잃었기 때문에 어떤 질문에
1차 백업용 비밀번호: 1234
※ 1차. ※ 허락 없는 발췌를 금합니다. 이른 새벽과 멍청한 이야기 그는 뻔뻔스러운 레인저였다가 흔해빠진 각다귀였다가 그건 깊은 밤이라 불러야 좋을지 아니면 지나치게 이른 아침이라 불러야 좋을지 애매한 새벽때였고 힐마르 오스퇴가르드는 식은땀에 절어 잠에서 깨고 말았다 바깥은 검푸른 어둠, 구구대는 올빼미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바람은 스
※ 1차. ※ 허락 없는 발췌를 금합니다. 외뿔 염소의 근사한 저녁 품 안에 무기 몇 개 정도 넣어서 다니는 편입니까? 글라디우스 빼고요. 나는 칼집에 하나, 등 뒤에 하나, 품 속에 하나면 충분하다고 보는 파인데, 대장도 그렇습니까? 별로 중요한 질문은 아닙니다. 바닥에 넘어뜨렸더니 글쎄 발목에 검을 숨겼다가 달려드는 놈이 있지 않겠습니
※ 1차. ※ 허락 없는 발췌를 금합니다. 영리한 밤까마귀에게 간만에 안부 전한다. 잘 살아있겠지. 남몰래 객사해서 선배 레인저들을 놀래키는 일은 없도록 해라. 또 지금처럼 부득불 감감무소식으로 살다가 선배 레인저가 기어코 먼저 편지 부치는 일을 만들지도 말고. 괘씸하기 이루 말할 데가 없군. 다시 만나는 날에는 쥐어박힐 줄 알아라. 여기
※ 1차. ※ 허락 없는 발췌를 금합니다. 없는 것이 이 편지의 제목이다 먼저 말해두겠는데, 난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에도 이렇게 얌전한 인삿말은 안 써. 그런데 “어이, 잘 지내셨는가” 따위로 서두를 열면 당신이 아니꼬워할 게 뻔하니 구태여 고리타분한 인삿말을 넣은 거라고. 기특하게 여겨도 좋아. 지난번 편지에서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해안
※ 1차. ※ 허락 없는 발췌를 금합니다. 모래곶의 수기 나다. 너야 어디에 떨어지든 제 밥그릇 못 챙길 녀석은 아니니 큰 걱정 않고 있다마는 도통 주소를 알 수가 없으니 편지 부치기가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이 편지를 받거든 요즘은 어느 강에서 뱃삯을 받고 있는지 알려주도록 해. 그쪽 볼일이 끝나면 어디로 움직일 생각인지도. 편지를
※ 1차. ※ 허락 없는 발췌를 금합니다. 귀환 떠나는 일 1 까마귀가 돌아왔다. 어느 날의 일기에 ‘까마귀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문장을 적은 지 꼬박 닷새만의 일이었다. 힐마르는 그가 돌아오면 건넬 인삿말을 네 개쯤 생각해 둔 참이었는데, 그중 어떤 것도 꺼내들 수 없었다. 말하는 사람보다는 듣는 사람의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