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브아스] 뱀파이어의 허기

텅 빈 위장은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뱀파이어는 음식을 먹지 않는 탓입니다.

저장소 by 오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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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 타브(더지) x 승천 아스타리온

타브의 성별이나 종족을 특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유롭게 떠올려주세요.

다소 피폐합니다.


저택의 식사는 늘 저택에 있는 모두가 함께 합니다.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은 길쭉한 식탁에서 마스터와 스폰들이 마주보며 식사하는 시간입니다. 마스터 아스타리온께서 늘 앉으시는 상석에 앉으면 저 같은 스폰들은 마스터의 눈치를 보며 뒤이어 앉습니다. 마스터의 옆에는 항상 작은 주인님께서 앉아계십니다.

작은 주인님을 끔찍이 아끼시는 마스터시지만, 식사 시간만큼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보입니다. 마스터께서는 작은 주인님께서 식사하시는 것이 못마땅하신 듯 합니다. 두 분께서 식사 시간에 나란히 들어오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거든요. 이유를 알 길은 없습니다. 마스터와 작은 주인님 사이의 일을 함부로 궁금해 하는 스폰의 최후는 뻔하지 않을까요? 식탁 위에는 항상 사치스럽게 장식된 식기와 포크, 나이프가 놓여있습니다. 그렇지만 혈액만을 섭취할 수 있는 뱀파이어 스폰들에게 식기가 무슨 소용입니까. 마스터께서 함께하시는 저택의 매 끼니는 호화로운 인형놀이 같습니다. 인형들의 주인이신 마스터의 접시에는 매 식사마다 값비싼 음식이 차례로 올라옵니다. 오늘의 메뉴는 최고급 송아지 고기로 만든 스테이크 같습니다. 스폰들은 인간이었던 시절에 맛 보았던 음식의 맛을 떠올리며 굶주림을 참는 일밖에 할 수 없습니다. 마스터께서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시며 스테이크를 써시는군요. 그럴 때마다 소화 기능을 잃은 제 배에서는 천둥이 치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마스터가 수저를 드시면 작은 주인님도 식사를 시작하십니다. 작은 주인님의 식사는 조용하고 느립니다. 식사 예법을 따지시는 것 같지는 않지만 깔끔하게 음식을 드십니다. 그런데 조금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작은 주인님께서 식사하실 때는 마스터와 같은 분위기가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은 주인님께서는 식사시간이 되면 항상 기분이 가라앉으시는 것 같습니다. 나는 이 식탁의 뱀파이어 스폰들과는 다르게 평범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과시가 느껴지지도, 단순히 최고급의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기쁨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 작은 주인님은 특이하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작은 주인님을 더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이 이상 작은 주인님을 쳐다봤다간 심기가 불편해지신 마스터의 나이프가 제 경동맥에 꽂힐지도 모르니까요. 저 같은 스폰들은 이제 조용히 접시에 고개를 처박고 마스터의 식사가 끝나길 기다려야 할 뿐입니다.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난 후, 마스터께서 후식의 마지막 스푼을 내려놓으시면 식사 시간은 끝납니다. 그리고 마스터께서는 냅킨으로 입을 닦으시고 작은 주인님과 함께 방으로 들어가십니다. 마스터와 작은 주인님께서 들어가신 방의 문이 닫히면 스폰들은 그제서야 긴장을 풀 수 있다. 이제 스폰들은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할 일을 하러 갑니다.


"우웨엑...!! 어억...웨에엑...!...커헉...!"

위장을 쥐어짜는 듯한 구역질 소리가 세면대를 가득 채운다. 아스타리온은 구역질 소리가 거슬리는 듯 얼굴을 찌푸린다. 그는 세면대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 하며 음식물을 게워내는 배우자의 뒤에서 말했다.

"달링, 그러니까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자기는 이제 평범한 음식을 소화할 수 없다니까."

아스타리온의 충고에도 타브는 대답이 없었다. 아직 게워내지 못한 음식물이 남아있는 탓이었다. 아스타리온은 한숨을 푹 쉬고는 팔짱을 끼었다. 타브의 구역질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길지 않은 뱀파이어 로드의 인내심을 발휘해보았다. 몇 번의 구역질이 이어지고 난 후 타브는 숨을 몰아쉬며 올라오는 토기를 잠재우려 애썼다. 

"커헉... 우욱... 헉...헉..."

"앞으로는 정말로 식사 시간에 오지 마. 자기가 스폰들이랑 겸상해서 좋을 게 뭐 있다고."

"...싫어."

"대체 왜 그러는 거야? 평범한 음식은 이제 못 먹는다니까? 식사 때마다 태연히 음식을 먹어놓고는 매일 밤마다 토하잖아. 응? 마셔야 할 피는 안 마시면서!"

타브의 얼굴은 누가 봐도 할 말이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타브의 입은 비전 자물쇠가 걸린 상자처럼 도무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잠긴 상자를 여는 일에 일가견이 있는 (이제는 도둑고양이처럼 남의 상자를 따고 다닐 필요가 없지만) 아스타리온도 사랑하는 배우자의 단단히 잠긴 입은 열 도리가 없었다. 아스타리온은 고집을 부리는 아이를 달래 듯이 애써 부드러운 목소리를 끄집어내어 타브를 달랬다.

"달링, 나는 정말로 걱정이 돼서 그래. 가뜩이나 피를 안 마셔서 상태가 안 좋은데, 매일 토하면 달링의 소중한 몸만 더 상하잖아."

"..."

"허, 또 입을 꾹 닫겠다 이거야?"

아스타리온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헛웃음을 토했다. 뱀파이어 로드가 배우자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 한 숟갈도 막을 수 없어 쩔쩔 매다니, 다른 귀족들이 알면 비웃을 상황이다. 그는 뛰어나지 못한 자신의 인내심이 거의 바닥났음을 알았다. 그렇지만 뱀파이어 로드의 좋은 점이 무엇인가?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지금 해결할 수 없다면, 언젠가 해결될 때까지 미뤄둘 수 있을 만큼 오래 산다는 점이다. 저택 밖의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으면 굶주림을 참지 못한 타브가 그를 찾아올 것이다. 뱀파이어가 피를 마시지 못할 때 느끼는 고통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타브 역시 지성체의 피를 마시고 황홀해지는 감각을 떨칠 수는 없을 것이다. 생각을 마친 아스타리온은 턱을 약간 들어 타브를 내려다보듯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다른 이를 비꼴 때 애용하는 연극적인 목소리로 타브에게 말했다.

"오 그래, 좋아. 자기 마음대로 해. 식사 시간에 나오든 말든, 나는 상관하지 않을게. 그게 달링이 원하는 거 맞지?"

타브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아스타리온은 타브와 눈이 마주쳤으나 그 눈빛에서도 대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타브의 눈빛은 긍정의 의미도 부정의 의미도 담고 있지 않았다. 답은 이 두 가지 뿐이었으나 어느 쪽도 타브가 원하는 쪽이 아닌 것 같았다. 두 개의 선택지 중 두 개가 오답이라니, 아스타리온은 미간을 찌푸리며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더 이상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아진 아스타리온은 뒤를 돌았다. 그리고 방을 나가며 비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난 이만. 저택 안팎에는 달링의 음식 취향보다 중요한 일이 많아서 말이야."

방의 문이 쾅 하고 닫혔다.


오늘은 이상한 날입니다. 아침 식사 시간이 되었는데도 작은 주인님께서 보이시질 않습니다. 

정말 이상한 날들입니다. 점심 시간에도, 저녁시간에도, 그 다음 날과 다다음 날에도 작은 주인님께서 식사 시간에 나오시지 않습니다. 마스터의 표정도 심상치 않습니다. 마스터와 작은 주인님의 싸움은 스폰들에게 아주 좋지 못한 상황이죠.  당분간은 저택에서 더더욱 발소리를 죽여야겠습니다.


타브가 식사 시간에 일주일 째 나오지 않은 날이었다. 아스타리온은 그러던 중 복도 끝에서 약간 열린 주방 문이 보였다. 지금은 요리사들이 일할 시간이 아닌데, 이상함을 느낀 아스타리온은 열린 문을 따라 주방에 들어가보았다. 

그곳에는 주방 바닥에 쪼그려 앉아있는 타브가 있었다. 타브의 주변에는 덜 씻은 양배추, 부러진 당근과 가지, 생 닭고기, 치즈 등 내일 식사에 쓰일 식재료가 널부러져 있었다. 타브는 식재료를 되는 대로 양손에 쥐고는 게걸스럽게 씹고 있었다. 붉게 빛나는 두 눈은 완전한 뱀파이어의 것이었지만 타브의 입과 두 손은 채워지지 않을 굶주림을 겪고 있는 인간처럼 한없이 음식을 갈구했다. 타브가 아스타리온이 있는 쪽을 돌아보더니 깜짝 놀라며 입과 손을 멈췄다. 정신 없이 음식을 먹던 탓에 이제야 아스타리온을 눈치챈 듯 했다.

"달링, 이게 지금... 아니, 뭐 하는 거야?!"

타브는 바닥에 앉은 그대로 아스타리온을 올려다보았다. 아스타리온을 올려다보는 타브의 눈에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드러나는 듯 했다. 배우자에게 비밀스러운 주방 방문을 들킨 수치,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겪는 이의 절망,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정이었다. 

타브는 더욱 급히 음식을 입에 쑤셔넣었다. 끊임 없이 음식을 탐하는 타브는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식사 예절 따위는 내버린지 오래인 듯이, 음식의 맛도 질도 따지지 않고 목구멍에 쑤셔넣고 있는 모습이 퍽 추저분하다는 것을 아는 탓이었다. 허기라기 보다는 광기에 가까워보일 정도였다. 

아스타리온은 타브를 제지하기 위해 몸을 낮추며 그의 양 팔을 붙잡았다. 그는 광기에 휩싸인 듯한 타브의 모습을 보니 격렬한 반항이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타브의 팔을 붙잡은 손에 힘을 꽉 주며 팔을 자신의 쪽으로 당겼다. 그런데 타브는 팔 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그에게 힘 없이 딸려왔다. 타브가 아스타리온에게 팔이 잡히자 반항은 커녕 온몸에 전혀 힘을 주지 않은 탓이었다. 때문에 아스타리온은 오히려 중심을 잃어 엉덩이를 바닥에 찧고 말았다. 타브의 몸도 아스타리온 쪽으로 넘어졌고, 타브는 아스타리온의 양 허벅지 바깥쪽 바닥에 손을 짚었다. 뒤로 넘어진 아스타리온과 앞으로 넘어진 타브가 서로를 바라보는 모양새가 되었다. 

가까이 있는 타브의 얼굴이 아스타리온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는 타브의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타브의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타브는 이제 눈동자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볼 수 없다. 타브는 이전과는 다른 존재가 된 자신을 받아들 수 없었던 것이다. 야영지에서 동료들과 나눠먹던 소박한 스튜도, 드물게 좋은 식재료를 얻어 충족하게 식사했을 때 먹었던 바베큐도, 조리할 때를 놓쳐 썩어버린 치즈도 타브의 위장을 통과할 수 없었다. 

억지로 음식물을 구겨넣어봐도 붉은 피를 원하는 본능이 역류했다. 식도가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을 느낄 때면 누군가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아넣고 싶은 충동으로 머리가 울렁거렸다. 

자신이 이전과는 다른 괴물  존재라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타브는 자신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는 것을 느꼈다. 착각이다. 뱀파이어는 숨을 쉬지 않는다. 그저 호흡을 흉내낸 몸짓이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거칠게 숨을 쉬는 타브를 바라보던 아스타리온은 무언가 이해한 듯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 나의 소중한  펫... 갑자기 입맛이 바뀌면 적응하기 힘들지, 그렇지."

자신을 애완동물로 칭하는 아스타리온의 말에 타브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타브는 이 와중에도 호칭에 대해 반박하고 싶어 보였으나 아스타리온은 타브에게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아스타리온은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검지손가락으로 타브의 턱끝을 들어올렸다. 타브의 고개가 들어올려지며 아스타리온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자신의 애완동물의 뺨을 한 번 쓸어주었다.

"착하지."

아스타리온은 타브의 머리를 자신의 품으로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그리고 끌어당기는 대로 딸려온 타브의 머리를 팔로 감싸 안으며 생각했다.

타브는 아스타리온의 것이다. 자르 성의 마스터 아스타리온과 그의 작은 주인은 앞으로도 함께할 것이다. 뱀파이어 로드 아스타리온은 그들의 휘황찬란한 미래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니 타브, 나의 영원한 배우자가 어서 우리의 행복을 기꺼이 받아들이길.


뱀파이어 스폰이 된 자신이 역겨워서 인간이었을 때 먹던 음식에 집착하는 타브가 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왜 이렇게 길어진 걸까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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