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티니 2 연성

[남의 자캐] 판도라

판도라가 상자를 열자, 그 안에서는 온갖 마법이 뛰쳐나왔습니다.

[1부 : 그 상자의 밑바닥을 뒤지지 마세요]

디어는 몸을 숙였다. 깊게, 깊게, 깊게, 테오가 있는 곳 까지. 디어의 숨결이 테오의 콧날에 닿았다. 테오가 어슴푸레 눈을 떴다. 낮잠을 자던 테오는 이 상황이 뭔지 이해하려고 했지만, 디어는 눈을 감고 그대로 테오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테오는 뭔가 물어보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소용은 없었다. 무슨 소용인지는 몰라도. 그래서 테오는 적극적으로 디어의 뒷머리를 잡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디어는 자세를 무너뜨리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깊은 숨소리를 공유했다. 서로 혀를 섞었다. 디어는 가늘게 눈을 떴다. 참고 있던 눈물이 흘렀다. 테오는 고개를 살짝 뒤로 물렸다.

이건 무슨 경우야?

싫은가?

아니, 뭐. 여기서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더 섹시하긴 해.

테오는 무언가를 묻는 듯 말을 마무리했지만, 디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눈물이 흐르도록 둔 채 테오의 입 안으로 자신의 혀를 밀어넣었다. 온기가 필요했다. 살아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움직이는 사람이, 생으로 가득 찬 사람이, 자기가 지극히 사랑하여 견딜 수 없는 사람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필요했다.

근데 아까 그 자세는 뭐였어? 선 채로 고개만 잔뜩 숙이고선. 물 마시는 기린인 줄.

디어는 웃지 못했다. 눈물은 그쳤다. 눈물이 뺨에 남긴 소금기와 눈물이 흐른 자국만이 디어의 얼굴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새벽제비가 네게 고맙다 하더군.

테오는 잠시 생각했다.

나는 그 아저씨 한 번도 못 만나봤는데, 뭘 고맙다 하는거야? 아무도 안 데려갈 꼰대 양반 데려가준 것?

아마, 그럴걸.

아저씨도 고마워 하라고, 나 아니면 독수공방하면서 동전이나 굴리고 있었을건데.

못하는 말이 없어.

테오는 키득거렸다. 그리고 다시 소파에 길게 누웠다. 소파 등받이를 덮고 있는 베이지 색 담요 끄트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디어는 테오가 꼼지락거리는 것을 쳐다보았다. 테오가 말했다.

나도, 길 알려줘서 고맙다 전해줘.

새벽제비는 눈을 뜨지 못한 지 오래였다. 요양보호사도, 자신도, 까마귀도 새벽제비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왕도 준비를 하고 있었을까. 그 사람은 만날 일이 없으니 알 수 없었다. 자다가 죽는 것이 가장 좋다던데, 새벽제비는 그런데, 그 날 문득 눈을 떴다. 처음에는 그냥 잠꼬대인 줄 알았다. 자다가 눈을 떠 어딘가를 보는 듯이 멍하게 있다 눈꺼풀을 감겨주면 감겨주는대로 다시 잠을 잔다고, 보호사가 그랬다. 디어는 그래서 희게 뜬 눈동자를 다시 눈꺼풀 안으로 돌려놓으려 했다.

깼어.

디어는 화들짝 놀라 손을 치웠다. 완전히 멀어버린 두 눈이 불빛 아래서 희게 빛났다. 그의 두 눈은 선명하고 짙은 녹색이었지만 이제는 반점이 모든 것을 가리고 있었다.

새벽제비…….

디어가 중얼거렸다. 부엌에서 물을 마시던 보호사가 놀라 달려왔다. 디어는 잠시 옆으로 비켜 그가 새벽제비의 상태를 이리저리 확인하는 것을 보았다.

여전히 좋지는 않지만, 의식이 돌아왔으니 기쁜 일이네요.

선생님,

새벽제비의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손을 들려고 한 것 같았다. 팽팽하게 긴장해있던 그의 손은 살과 근육이 빠지자 노인의 것처럼 쪼그라들었다. 아마 몸뚱어리도 그렇겠지. 디어는 슬픔을 억누르며 새벽제비의 발을 이불로 감쌌다.

잠시 디어와…….

부엌에 있을테니 말씀을 나누세요.

새벽제비가 고개를 저었다. 5분 만이라도 좋으니 단 둘이서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요양보호사는 안된다고 딱잘라 말했지만, 새벽제비는 힘에 부쳐하면서 더듬더듬 궤변을 늘어놓았다. 결국 진 것은 보호사였다. 바로 문 앞에서 5분만 기다리고 있겠다 했다.

변한 것이 없군 그래.

디어가 아프게 웃었다. 새벽제비의 목에선 그릉거리는 소리가 났다. 위장의 병이 온 몸으로 퍼져 결국에는 폐까지 상하게 만들었다나.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동안 새벽제비는 숨결과 함께 피를 뱉을 때가 있었다. 물론, 의식이 있을 때도 각혈을 했다. 피를 토하기도 했고. 가래에 섞여 나올 때도 있었다. 쇠약해질수록 몸 밖으로 피를 빼내려고 안달이 난 것 처럼 그렇게…….

작당 모의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이리 귀 좀 대주게. 크게 말하기 힘들어.

쉰 목소리로 새벽제비가 말했다. 그는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디어가 고분고분 고개를 숙이자 새벽제비는 속닥였다.

날 데리고 숲으로 가줘.

숲……? 아이들의 무덤이 있는 곳인가?

새벽제비는 고개를 저었다.

자네의 고스트가 죽은……. 곳인가?

아냐, 하지만…….

새벽제비가 심하게 기침을 했다. 디어는 익숙하게 새벽제비를 침대에서 일으켜세워 등을 두드려주었다. 새벽제비의 어깨가 고통으로 떨렸다. 다행이 피를 뱉지는 않았다.

이런 몸으로 어딜 가겠다는건가.

저기 휠체어가 있잖나.

휠체어를 타고 숲으로 가겠다고?

디어는 그래서, 약아빠지게 행동했다. 현관으로 가 보호사에게 단지를 한 바퀴 돌겠다고 말을 했다. 보호사는 머리가 깨질 것 같다는 듯 디어를 쳐다보았지만 자신이 몇 걸음 뒤에서 따라오는 조건으로 허락을 했다.

수호자라 그런가 손 많이 가네요.

보호사가 농담을 던졌다. 새벽제비가 콜록거리며 왜 보호사한테 맛있는 걸 사주지 않았냐고 디어를 타박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새벽제비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했다. 중환자다보니 한번 나가는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새벽제비는 어린 아이처럼 들떠 정말로 숲에 데려다 주는 것이냐며 몇 번을 물어보았다. 디어는 그 때 마다 그렇다고 했다. 숲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보호사는 뭔 말인지 몰라 디어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휠체어를 끌고 새벽제비를 밖에 데려가자마자, 정확히 다섯 걸음 만에 집으로 돌아와야했다. 바깥 바람을 맞고 새벽제비는 앞으로 굴러떨어질 듯이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피까지 뱉었기 때문에, 보호사와 디어는 새벽제비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숲에 대해 얘기하던데요. 그래서 나가자고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디어가 보호사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친구분이 더 마음이 아프겠죠.

보호사는 디어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디어는 보호사가 들고 있는 피 묻은 손수건을 뺏었다. 보호사는 자기가 빨겠다고 했다. 고개를 저었다.

중환자 돌보시는 것도 힘들텐데 그 정도는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그나저나 숲이라니, 디어 씨에게도 그런 말을 하는군요. 돌아가시기들 전에 추억이 서린 장소를 가고 싶어하긴 하다만.

그런 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무덤도 아니고, 고스트가 죽은 곳도 아닌데, 연인이 죽은 곳인가……?

디어는 언듯 사랍을 떠올렸다. 사랍이 수호자로 부활해 무덤 속에서 기어나왔음에도, 새벽제비는 텅 빈 무덤을 애도하러 가곤 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수호자 사랍과의 만남을 주선한 적도 있었다.

내가 그 사람과 무슨 관계였는지는 아는가?

새벽제비는 그 말을 하며 만남을 거절했다. 그들의 관계는 디어가 받아들이기엔 질척하고 잔인했다. 그 당시, 그는 그래서 두 사람 간의 관계를 피상적으로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디어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환자분은 그 곳을 모두의 운명이 뒤바뀐 곳이라 하더군요.

숲을?

네. 저번에는 정확한 위도와 경도도 짚어주셨어요. 태평양 연안에 있는 온대우림이더군요.

감이 오지 않았다. 새벽제비는 가끔가다 모두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보곤 했다. 하지만 중요한 곳이라 하니, 자신이 대신 가보기라도 해야할 것 같았다. 디어는 하루종일 고민했다. 결정했다. 간단히 짐을 챙겼다. 테오에겐 잠시 어딘가 다녀오겠다 고한 뒤, 새벽제비의 집으로 갔다. 그 날은 까마귀가 방문하는 날짜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어색해했기에 날짜가 겹치지 않게 조정하곤 했다. 까마귀가 놀란 눈을 하고 디어를 집에 들어오게 했다.

새벽제비 대신 가야 할 곳이 있네.

마라……. 아니, 여왕의 앞인가?

아냐. 무슨 숲인데, 자네, 뭐 아는 것 없나?

까마귀는 고개를 저었다. 새벽제비와 열대우림에 가 기이한 체험을 했지만 온대우림에 대한 것은 모른다고 했다. 새벽제비는 어제의 그 소동이 한낱 꿈이었다는 듯 깊이 잠들어 있었다. 보호사가 부엌으로 자리를 비켜주었고, 디어는 새벽제비를 바라보았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던 지점으로의 새벽제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죽음이 잔잔하게 그를 채우고 있었다. 삶과 죽음이 서서히 분리되어간다…….

슈.

디어가 새벽제비의 머리를 쓸었다. 머리카락이 빠져 손가락에 엉켜붙었다.

자네가 얘기한 곳에 가볼게. 내가 봐야할 것을 볼 수 있기를 꿈 속에서라도 인도해줘.

당연하게도 새벽제비는 답이 없었다. 까마귀와 요양보호사에게 늘 그랬듯 새벽제비를 잘 부탁한다 정중히 말하고 그는 길을 나섰다. 우림이라 도약선을 보호사가 알려준 장소 위에 착륙시킬 수는 없었다. 디어는 천천히 숲길을 걸었다. 인공적인 길이 있었으나,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이 돌보지 않아 걷기 편하진 않았다. 거의 300년 동안 방치된 것 같다고 고스트가 말했다. 황금기 때 세워진 안내표지판 같은 것도 곳곳에 있었다. 읽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여기다, 디어는 직관했다. 둥근 공터가 있었다. 숲과 맞닿은 곳엔 누가 인위적으로 파헤친 것 같은 구덩이가 있었다. 그리고 넓고 평평한 바위가 하나 있었다. 바위 위로는 따스한 햇살이 기분 좋게 떨어지고 있었고, 바위는 그 햇살을 받고 온화하게 데워져 있었다. 디어는 바위에 앉았다가, 조심조심 누웠다. 바위는 디어보다 짧았다.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그러나 왜 특별한 공간인지 알 수 없었다. 공터 위로 점점이 새가 날아갔다. 디어는 문득 구르듯 바위 밑으로 내려섰다. 바위 바로 옆에 도톰히 흙이 쌓여있었다. 손바닥보다도 작은 흙더미였다. 조심스럽게 흙을 파헤쳤다. 곧 부드러운 깃털이 손에 닿았다.

미안하다.

디어가 짧게 사과하고 새 한 마리의 시체를 들어올렸다. 눈은 감고 있었고, 입은 살짝 벌리고 있었다. 깃털은 부드러웠지만, 딱딱하고 뻣뻣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어디선가 가르랑거리는 소리가 들린 듯도 했다. 디어는 짐승들의 이름에는 무지했지만, 이 새가 무슨 새인지는 알고 있었다. 새벽제비의 바다 절벽에 떼 지어 사는 바다제비였다. 새벽제비의 성별 중 하나인 하이옌의 뜻이 바다제비였던가. 디어는 새를 손에 들고 벌떡 일어났다. 바다제비 한 무리가 디어의 도약선에 머리를 부딛혀 죽어있었다. 수 십 마리의 제비였다. 테오를 찾는 것을 그만 두었을 때였다. 그는 새벽제비의 지도를 들고 어두운 절벽을 기어 올라 그의 동굴로 들어갔다.

새벽제비.

디어가 어두운 동굴에서 그를 불렀다. 바닥을 더듬어 새벽제비의 램프를 찾아 불을 붙이자, 작은 동굴은 곧 환해졌다. 끊어진 로프가 발에 밟혔다. 문 대신 사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실제로 소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디어는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다. 주인 없는 동굴에서 디어는 새벽제비의 침대 위에 지도를 올려놓았다. 침대라고는 해도 짚단에 천을 깔아놓은게 전부였다.

가끔 벼룩이나 지네가 나올 때도 있어.

새벽제비가 말했다.

처음 듣지?

디어는 가만히 새벽제비가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어디에선가 그렇게 불쑥 튀어나왔다. 디어는 그 때 마다 놀랐다. 지금도 그랬다. 그는, 몹시도 놀랐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절벽 틈으로는 흐린 하늘이 가득 펼쳐졌고, 그 밑에서는 성난 파도가 넘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도를 가져왔군.

새벽제비는 어쩐지 쇠락해 보였다. 고스트가 있는데도 그런 모습이라니.

함부로 가져가서 미안하네.

새벽제비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짚단 침대를 밟고 그 위에 돌을 깨서 만든 선반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그 속에 넣어 놓은 술을 한 병 꺼냈다.

제비 소리가 안 들리는군.

철이 철인 만큼 다아- 남쪽으로 날아갔네.

이상한 나무 열매를 술에 넣고 우린 것이었다. 술은 붉은 빛으로 아름답게 빛났고, 나무 열매는 알코올에 빛깔을 빼앗겨 희끄무레하게 가라앉아있었다. 새벽제비는 이빨로 밀랍을 뜯어냈다. 한 모금 마시더니, 곧 인상을 찌푸리며 입 안에 남은 것을 뱉었다.

너무 오래 삭혔나보네. 맛이 변했군.

내가……. 큰 잘못을 했나?

디어가 물었다.

술은 본디 상하지 않아. 삭으면 식초가 되지. 그런데 이 술은 상했어.

새벽제비는 절벽 밑으로 술을 병 째 던져버렸다. 할 말이 없었다. 새벽제비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물건을 훔쳐 연락도 없던 게 몇 년이었다. 수호자들에게 그 정도의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지만……. 디어는 자신이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할 말이 없었다, 디어는.

자네가 몸 성히 돌아왔으니 다행이네.

따듯한 내용과 달리 새벽제비의 말투는 딱딱했다.

지금 내 손님을 맞이할 여력이 없으니 다음에 다시 만납세. 일주일 뒤 어떤가.

디어는 그러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도약선으로 갔을 때, 바다제비 한 무리의 시체가 바닥에 흩어져있었다. 도약선은 작은 핏자국으로 엉망이었다. 제비들은 그의 도약선에 부딛혀 죽은 것이다. 디어는 오금이 얼어붙어 순간 휘청였다. 무언가 중요한게 무너졌다. 새벽제비는 위험에 처해있는가. 디어가 어딘가를 향해 물었다.

나는 죄를 지었나?

디어는 자신의 손에 들린 징조를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몰랐다. 그는 새벽제비같은 자가 아니었다.

[2부 : 희망이 없는 상자의 밑바닥]

일주일이 지나서도 디어는 새벽제비를 찾아가지 않았고, 새벽제비도 디어에게 따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 둘은 분명 친구였지만 점점 소원해졌다. 디어는 그렇게 생각했다. 선봉대 임무 때문이라고. 가끔 임무에서 돌아오는 중에 도시의 커다란 장벽이 보이면 갈빗대 사이가 아릿하게 아파오면서 곧 거대한 우울감이 그를 휩쓸었다. 도시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적성이 아닌 것 처럼. 다른 의무를 팽개치고 밖으로 나돌고 있는 것 처럼. 자신이 지켜야했던 것들이 하나도 남지 않은 것 처럼. 그러나 그는 타이탄이었다. 물론 암흑기 때는 그런 구분이 희미하긴 했지만, 디어는 타이탄이었다. 그는 그렇게 태어났고 그는 그렇게 살아왔으며 그는 그렇게 지켜냈다. 그게 그의 쓰임이었다. 디어는 두 손에 바다제비의 시체를 들고 바위를 쳐다보았다.

여기……. 왔었어.

디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힘들었어, 여기는 신의 선물이다.

같이 길을 걸어주던 스라소니도 소리질러 쫓아버리고 그는 도망치듯 숲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새벽제비와 다시 말하게 된 것은……. 테오를, 스라소니를 만나고 나서였다. 사과를 하려고 돼지 앞다리를 말려 햄으로 만든 것을 사갔다. 담금주를 자주 만드니까, 커다란 술통도 하나 가져갔다. 새벽제비는 책상 대용으로 쓰는 상자 앞에서 지도를 만들고 있었다.

왔군.

새벽제비는 컴버스와 자를 들고 지도에서 고개를 떼지 않았다.

자네에게 줄 선물이 있으니 날 좀 도와주게.

물질 전송을 이용해, 이 사람아.

디어는 새벽제비가 자신을 골리려는 줄 알고 묵묵하게 여러번 도약선과 동굴을 오갔다. 마지막으로 무거운 술통을 짊어지고 절벽을 기어올랐을 때, 새벽제비는 뚜우한 표정으로 디어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연락을 안 했지. 미안하네.

안 할 수도 있지, 서로 바쁜데. 근데 물질 전송을 이용하라니까 왜 사람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나?

진짜……. 진짜 그게 가능하다고?

이 사람아, 내가 자네 속인 적 있었나?

많았지. 아니, 근데, 진짜 다 장치를 해놨단 말인가? 이 동굴에?

그 말은 진짜였다. 동굴은 램프로 밝히면서? 물질 전송은 가능하다고? 디어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새벽제비와 재회했다.

기쁜 일이군. 다시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

새벽제비가 담금용 술을 맛보며 기쁘게 말했다.

많다니. 자네도 누구를 만났나?

만났지.

사실은.

디어가 주춤거리다 말했다.

테오 녀석이 돌아왔네. 이제는 스라소니지만,

디어는 꽤 오래 테오를 찾아나섰다. 찾지 못했다. 새벽제비는 신의 선물이라는 곳에서 테오의 행방을 알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디어는 숲의 공터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이 지구 상에는, 또 이 태양계에는 신의 선물이라는 지명을 가진 곳은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가 신의 선물이다.

디어가 악을 썼다.

그러니 테오가 어디 있는지 답을 내놔,

그 때는 바위가 없었다. 편편하고 눕기 좋은 바위. 디어보다 살짝 짧았다. 마치……. 마치 테오 녀석이 누우면 딱 맞을 것 같았다. 디어가 바위 위에 죽은 바다제비를 놓았다.

너는 왜 여기서 죽어있니?

디어가 바다제비에게 물었다.

정말로 테오는 여기 있었니?

새벽제비가 말했다. 젊은 헌터 하나가 아함카라에게 소원을 빌려고 하더군, 나는 그를 보호하려고 온 힘을 다했으나 실패했어. 헌터는 그대로 쓰러졌다. 아함카라는 재가 되었지만 헌터를 구할 수는 없었어. 디어는 그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사랍과 새벽제비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몰랐던 것 처럼. 그는 모든 것이 담겨있는 새벽제비의 지도를 훔쳤다. 그의 깎다 만 지팡이를 바다에 던졌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새벽제비의 옆에서 사라졌다.

테오가 제비 한 마리를 보고 있었어. 나를 모르는 눈치더군. 혹시, 그 제비가 자네 아니었나?

디어가 꼬인 목소리로 물었다. 새벽제비는 폭소를 터뜨리더니 자신의 지팡이로 디어의 머리를 쳤다. 술이 깰 정도로 아팠다.

이제는 스라소니라며.

디어는 술잔을 쳐다보았다. 테오에겐 스라소니란 이름을, 스라소니에게는 테오란 이름을 붙였다. 죽어가던 자신에게서 고기를 먹을 수 있을지 주둥이를 핥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디어는 고스트에게 치료를 받는 대신 죽었다 되살아나기를 선택했다. 스라소니는 마치 자신같은 사람을 본 것 처럼 행동했다. 자기가 먹어치운 고깃덩이가 되살아났는데도 놀라지 않았다. 디어는 바위 위에 자신 말고 다른 한 명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을 보고 놀라 주먹을 쥐었다. 새벽제비였다.

나도 힘들어. 묻지 마.

새벽제비가 선수를 쳤다. 그는 예전의 그 복식 그대로 입고 자신의 키 만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그는 바다제비를 힐끗 쳐다보았다.

여기까지 와서 죽다니, 보는 사람에 따라 행복한 삶이었는지 불행한 삶이었는지 달라지겠지.

길을 잃었던 것일까.

하지만 누군가 묻어줬지 않나, 바다제비는 그런건 신경 안 쓰겠지만, 묻어준 사람의 심성은……. 필경 선할걸세.

새벽제비. 왜 여기 오겠다 한건가?

새벽제비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천천히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디어에게도 앉으라는 듯 바닥을 팡팡 두드렸다.

보호사가 말 안 했나? 여기에서 모든 운명이 풀려나갔어.

자네는 뜬구름 잡는 버릇을 고쳐야하네.

이 곳은 신의 선물이라 불리네. 자네가 붙인 이름이 이제 그렇게 됐어.

나에게 신의 선물로 찾아가라 했지. 왜 그런 장난을 쳤나? 내가 얼마나 절박했는지 알면서.

디어, 이 친구야…….

새벽제비가 디어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바다제비는 행복한 삶을 살았을지, 불행한 삶을 살았을진 아무도 모르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바다제비의 시체를 보고 행동한 사람의 마음 뿐이야.

바다제비의 시체를 묻어주고, 스라소니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그런 선물같은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디어가 새벽제비의 손을 치웠다.

말 안 해주지 않았나. 나는 죄를 지었는가? 네게?

운명은 풀렸네, 친구여.

나는 인연 때문에 나의 의무를 다 하지 못했네.

순결한 자여, 순결한 땅이여, 우리 옛날 이야기 하나 할까?

새벽제비가 아래를 가리켰다.

[3부 : 닫혀있는 상자]

사랍은 독감에 걸렸다. 강철군주와 부락의 대표 간의 협정이 마무리되었다. 굵직한 사건이 지나갔고, 이제 당분간 쉬면 됐다.

긴장이 풀렸나봐요…….

사랍이 힘없이 말했다. 지금은 잠시 떨어졌지만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열이 40도가 넘었다. 디어는 부득이하게 새벽제비를 사랍의 집으로 부를 수 밖에 없었다. 그를 간호할 사람이 없었다. 사랍은 부락에서 미친 사람으로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마녀의 집을 두려워하듯 사람들은 사랍의 집에 들어가기 무서워했다. 새벽제비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전령가방에서 서류 뭉치를 꺼내 디어에게 안겼다.

저기서 처리하시오. 간호는 내가 더 잘 할 것이오.

새벽제비는 그렇게 말하며 사랍의 이불을 걷어냈다. 디어가 소리쳤다.

아니, 감기 걸린 사람한테…….

열이 다시 오르려고 하오. 따듯한 몸에 이불을 겹겹이 덮어놓으면 열이 못 나가 내장이 익겠지. 맛있게 먹기라도 할거요?

평소의 새벽제비와 다른 격한 말투였다. 디어는 이불을 정리하는 것을 도우려하다 가서 일이나 하라며 쫓겨나고 말았다. 새벽제비의 말마따나 곧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40도가 넘어갔다. 사랍은 아이처럼 칭얼거리다가 곧 잠잠해졌다. 까무러친 것이다. 점심 시간이 되자, 디어는 뭔가를 하려고 했다. 새벽제비와 자신이 먹을 것을 사오고 사랍을 위한 죽도……. 그리고 약. 약도 구해오는게 좋을 것 같았다. 디어는 문을 조심스럽게 밀었다. 새벽제비는 서있었다.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깊게 숙였다, 사랍의 입술에 그의 입술이 닿을 정도로. 닿지는 않았다. 종이 한 장이 막고 있는 듯이 새벽제비는 반쯤 벌린 사랍의 입에서 숨을 뺏어 마시고 있었다. 디어는 황급히 문을 닫았다. 탁, 하는 소리가 났다.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기원이었을까? 사랍이 빨리 낫게 하려는 황금기 이전의 주술적 행위일까? 새벽제비는 아이만 서른 명 키웠고, 시도때도 없이 아픈 아이들을 들고 뛰었다. 디어는 모르는 척 음식과 약을 사서 집으로 갔다. 새벽제비는 사랍 옆에 앉아있었다.

일은 다 한거요?

새벽제비가 물었다.

조금 남았지만, 곧 끝날겁니다. 일단 뭐라도 먹자고…….

사랍!

새벽제비는 매섭게 소리쳤다. 잠에 든 사랍이 이불 속에서 꿈틀거렸다.

밥 먹고 약 먹어!

사랍은 뭐라고 궁얼거렸다. 새벽제비가 이불을 치우고 억지로 사랍을 앉혀 입에 음식을 갖다 댔다. 반 강제적으로 사랍은 밥을 먹었다.

감기는 턱 밑으로 숨는단 말이 있소. 뭐라도 먹는 동안엔 아픈 것이 사라진단 뜻이지. 아마.

새벽제비는 사랍이 먹은 것을 치우고 약 봉투를 열었다.

가루약이군.

아, 알약은…….

탓하는 것은 아니오.

그는 숟가락에 가루약을 개었다. 그리고 자꾸만 누우려는 사랍을 일으켜세워 약을 먹였다.

처리된 곳 까지 주고 나머지는 내일 하는걸 권합니다.

새벽제비가 말했다. 지쳐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생생해보였다. 서류는 정말 조금 남았기에 디어는 고개를 저었다. 새벽제비는 팔짱을 끼고 잠시 사랍을 쳐다보았다.

사랍의 열이 안 떨어지면, 옷을 모두 벗기고 겨드랑이와 샅에 얼음주머니를 끼운 뒤 사지를 찬물로 닦아줘야하오. 방금 약을 먹었으니……. 그렇게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디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렇게 까지…….

해야지. 열이 안 떨어지면. 열병으로 죽일 순 없소.

긴장이 풀려서 그렇다고는 했지만, 디어는 알고 있었다. 쉴 틈이 생기자마자 사랍은 아들의 무덤을 돌보러 갔다. 흙이 일어나지 않게 다지고 비석 앞에 놓인 꽃을 싱싱한 것으로 갈고, 그리고, 하염없이 앉아 아들의 비석을 닦았다. 해가 저물고 사랍은 아들의 무덤 앞에 누웠다. 그를 안아주는 것은 차가운 땅 뿐이었다. 디어는 사랍을 만류하지 못했다.

알겠소. 그럼 내 집으로 가져가 나머지를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디어는 새벽제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디어는 눈을 돌렸다. 디어는 그렇게 살아갔다. 그에게 연락이 왔다. 강철군주들이 치려고 하는 전쟁군주에게서였다.

요청에 응해서 감사하다.

전송 상태는 썩 좋진 않았지만, 프로젝터는 아무튼 일을 하고 있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디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전쟁군주는 킬킬거리더니 이야기했다.

너희의 미천한 과일 장수 사랍과 강철군주들의 개 새벽제비가 무언가를 꾸미고 있음을 알고 있나?

새벽제비가 술을 한 모금 마셨다. 디어는 묻고 싶은 것이 많았으나 눈을 돌렸다. 디어는 그렇게 살아왔고, 살아갔다. 그는 사랍과 새벽제비의 관계를 피상적으로 이해했다. 아. 새벽제비는 사랍을 데려가기 위해 온 전령이다. 그래서 디어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는 미치지 않을 수 있었다. 피를 온 몸에 뒤집어 쓴 순결한 자로 가냘픈 팔을 들어 자신을 보호했다.

[4부 : 열린 상자에서 튀어나온 것들]

새벽제비는 이제 위를 가리키고 있었다. 디어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은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어두운 숲은 위험했다.

일단 도약선으로 갈까.

새벽제비가 일어섰다. 디어는 손수건을 꺼내 죽은 바다제비를 감싸 파낸 곳에 다시 묻었다. 두 사람은 내려가면서 새벽제비의 동굴에 처음 들어갔던 때를 얘기했다. 사실 특별할 것 없는 추억이었다. 디어는 커다란 훈제 고기를 준비했고, 새벽제비는 난감해하며 물었다.

그걸 들고 동굴로 기어오를 수 있겠나?

자네도 돕거나, 아니면 여러번 왔다 갔다 하지.

허허…….

새벽제비의 난감한 표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대못을 박아놨다 해도 밤이슬에 많이 미끄럽네. 올라오기 쉽지 않을거야.

서로 고스트가 있는데 뭐가 걱정인가? 미끄러져 죽으면 다시 되살아나면 되는걸세.

새벽제비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많이 비좁네.

서 있으면 돼.

그제서야 새벽제비는 호탕하게 웃으며 디어의 등을 두들겼다.

자, 한번에 올라갈 수 있을지 봅세.

능숙하진 않았지만, 디어는 한번에 절벽을 기어올랐다. 한 손에 짐을 들고 있었으니 이 정도면 제법 괜찮았다고 디어는 스스로에게 칭찬했다. 쏜살같이 사라진 새벽제비는 집 안의 램프에 불을 붙여놓았고, 로프를 잘라서 끊었다.

이 줄은 뭔가?

디어가 물었다.

으응, 사람들 못 들어오게 할라고.

효과가 있나?

있지. 있고말고.

작은 버너에는 코펠이 있었다. 차를 끓이는 것 같았다. 새벽제비는 디어를 짚풀 침대에 앉혔다. 그리고 다른 것을 하려다 우뚝 멈춰서서 고민을 했다.

무슨 일인가? 도울 것이 있나?

디어가 걱정스레 물었다.

좀만 참으시게.

새벽제비가 진지한 얼굴로 말하더니 냅다 디어의 어깨를 짓밟고 침대 위에 난 바위 구멍에 손을 집어넣었다. 디어는 소리를 질렀고, 새벽제비는 뭘 꺼내는데 잘 안되는 것인지 디어의 정수리를 밟기까지 했다. 새벽제비는 방금까지 풀과 흙을 밟았다는 것이고, 발을 닦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더러운 것도 더러운 것인데, 아팠어, 무엇보다.

디어가 강조했다.

아팠다고.

새벽제비는 모르는 척 도약선 밑에 내려오면서 모은 나뭇가지들을 불 붙이기 좋게 둘러놓았다. 디어가 손가락을 튕기자 불똥이 나뭇가지에 붙었다.

그 때 내가 웬갖 곳에 빛을 쓰자 자네가 그랬지. 빛을 그런데 쓰지 말라고.

그랬나? 내가 그렇게 딱딱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디어가 모르는 척 했다. 그렇게 새벽제비가 디어를 꾹꾹 밟아가며 꺼낸 것은 담금주 두 병이었다. 알 수 없는 나무열매가 든 것은 디어의 몫이었다. 새벽제비의 병에는 지네가 들어있었다. 디어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그 병을 뺏었고, 새벽제비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지네술이 바닷물과 섞이는 것을 봐야했다. 두 사람은 과일술을 나눠마셨다.

술이 없으니 아쉽겠군.

새벽제비가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디어는 궁금한 표정으로 새벽제비를 보았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술 가져올걸세.

웃기지 마, 여기 술이 어딨나?

나도 여긴 자주 왔어. 중요한 곳이니까. 저 바위 뒤에 술병을 숨겨놨는지, 아님 저 나무 밑에 묻어놨는지 헷갈리는군. 나는 나무를 볼테니, 자네가 바위를 확인해보게.

새벽제비는 디어에게 명령하고 건들거리며 나무로 갔다. 디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바위 뒤편을 보았다. 설렁설렁 찾을 생각도 없이 보는데, 바닥에 익숙한 밀랍 봉인이 보였다. 디어는 눈을 찌푸리고 밀랍 봉인 주변을 살살 파헤쳐보았다. 흙 때문에 더럽고 지저분했지만, 붉은 빛으로 빛나는 과일술이 한 병 나왔다. 나무 열매는 알코올에 빛깔을 뺏긴 채 희덥게 가라앉아있었다. 그는 술병을 들고 새벽제비를 부르러 주변을 살폈다. 밤하늘엔 별들만 가득했고, 새벽제비는 보이지 않았다. 피워놓은 모닥불은 작은 소리를 내며 타들어갔다. 디어는 이빨로 밀랍을 벗겨냈다.

나 묻고 싶은 게 있네, 친구여.

술은 보기보다 꽤 독했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감각에 짧게 몸을 떨었다. 시큼하면서도 달콤한 나무열매 맛이 입 안에 맴돌았다.

내가 나의 의무를 저버리고 가서 자네가 쇠한 것이면, 내가 다시 해야할 일을 한다면, 자네를, 다시, 예전 처럼,

목이 메었다. 하늘을 보았다. 디어는 새벽제비의 동굴에서 손쉽게 바다제비들을 관측할 수 있었다. 그는 쌍안경을 디어에게 빌려줬다. 디어는 사랍과 그의 아들 엔리케를 생각했다. 새를 좋아한다던 사람들이었다.

밤에는 거의 새가 날지 않아요.

밤하늘을 보는 디어에게 사랍이 말했다.

하지만 밤에만 나는 새들도 있죠. 아주 드물고, 대부분 맹금이에요.

자네는 낮에 나는 새인가, 밤에 나는 새인가?

솔직히 말하면 저는 피식자……. 참새같은 새에요. 당신은 그렇지 않죠. 당신과 같은 승천자는 장대한 힘으로 남들을 사냥하는 맹금류에요.

밤에 나는?

아뇨, 당신은 낮에 날죠. 밤에 나는 이는 새벽제비 같은 부류에요. 이름은 제비인 주제에.

사랍은 자기가 몹시 재미있는 농담을 했다는 듯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새벽제비의 동굴을 처음 방문했을 때, 새벽제비는 떠나는 자신의 등 뒤에 굵은 소금을 뿌렸다.

뭔 짓인가!

디어가 놀라 소리쳤다. 장난인 줄 알았는데, 새벽제비는 진지하게 그를 보고 있었다. 그것은……. 기원인가? 디어는 자신의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깨졌음을 알았다. 아니, 엣저녁에 깨져있었다. 그 금을 보지 않았을 뿐이다. 사랍은 새벽제비에게 독을 먹였다. 입안에 독약을 넣고 서로를 희롱했다. 그렇게 즐거움을 얻고 나면 새벽제비는 독약을 삼키고 그것을 다른 곳에 풀어놓았다. 새벽제비는 귀신처럼 고개를 숙이고 사랍의 입술과 자신의 입술을 가까이 했다.

알지 않나.

새벽제비는 슬프게 얘기했다. 디어는 그를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제비는 종종 테오를 보고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디어는 그걸 막았다.

그런 천방지축 애송이를 왜 본단 말인가. 쓰잘데기 없는 일이야.

디어는 투덜거렸다. 새벽제비의 집에는 로프가 사라졌다. 대신 두꺼운 비닐 문이 쳐졌다. 사람은 그렇다 치고 바람을 막는게 더 시급했다는 핑계였다. 디어는 자신이 너무 늦었음을 알았다. 바다제비들은 떼죽음을 당했고, 새벽제비는 고스트를 잃었으며, 그 동안 자신은 금제를 지키는 천신의 의무를 저버렸다.

[5부 : 튀어나온 마법들은 상자를 열어준 이에게 감사하며 그를 신으로 섬겼다]

신의 선물. 그 곳에서 디어는 돌아왔다. 밤을 홀딱 세워 술이 깬 뒤에 도약선의 운전대를 잡았다. 테오는 격납고에서 몸을 쭉 빼고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날아가는 새였다. 디어는 테오의 뒷모습을 보았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할까. 그는 테오에게 새벽제비의 말대로 아함카라에게 소원을 빌었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가 인연에 흔들렸을 때, 그 틈을 타 상자를 열었느냐고. 테오는 새들이 다 지나가자 몸을 다시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뒤돌아섰다.

어, 우리 집 꼰대 왔네.

테오가 시건방지게 말했다. 웃으려 했다. 그러나 웃지 못했다.

왜 그래. 마치 옛날처럼 무시무시한 표정인데.

말투는 그랬지만 표정은 걱정하는 것이었다.

친구 많이 아프대? 그래서 온거야?

틀린 말은 아니지만, 틀렸다.

디어가 힘없이 말했다. 테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또 그 아저씨가 아픈 이유를 자기한테서 찾는거겠지.

왜 나한테서 찾을거라고 생각하는거냐?

나한테서 찾기에는 너무 꼰대라 그렇지.

알고…….

당연히 알고 있었지.

테오는 디어의 뺨을 감싸쥐었다. 디어는 테오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조심스럽게 겹쳤다.

가서 물어봐, 지금이니까.

뒤에서 숙덕거리는 소리에 디어는 정신을 차렸다. 격납고 한가운데 서서 이빨이 아픈 사람처럼 뺨에 손을 대고 있었다. 고양이라기엔 굵은 소리가 웨- 하는 것이 들렸다. 방에는 까마귀와 보호사가 있었다. 까마귀는 기쁜듯이 새벽제비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아.

까마귀가 살짝 입을 비죽였다.

친구가 왔군. 그럼 난 자리를 비켜줘야한단 뜻이지.

그래주면 고맙겠네.

디어는 까마귀가 기꺼이 그러겠다는 뜻인 줄 알고 정중하게 감사를 표했다. 새벽제비가 헐떡거리면서 웃었다. 까마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엌에서 물을 따랐다.

정신이 요즘엔 자주 돌아오는군.

아마 당분간은 제정신일걸세.

보호사가 타박을 놓았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지금 새벽제비가 깨어있는건 기적적인 일이었다. 새벽제비는 다시 헐떡이며 웃었다.

테오에게 고맙다고 전해주게.

테오에게?

그 애가 아니었으면 난 끝까지 전령으로 살지 못했을거야.

디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새벽제비는 몸을 눕혔다. 잠시 뒤척이면서 편한 자세를 찾는 동안, 디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친구여, 자네가 살 수 있다면 난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새벽제비는 뒤척임을 멈추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희게 변한 눈동자를 굴려 디어의 소리가 들리는 곳을 보았다. 디어는 살짝 고개를 움직여 새벽제비가 보려는 곳에 자신을 넣었다.

우리 약속했잖아, 배웅해주기로.

하지만 자네가 이렇게 된건, 내가…….

이런, 날 뭘로 보는건가. 그깟 금제 하나 없어졌다고 휘둘리는 사람 아니네.

새벽제비가 장난스럽게 인상을 찌푸렸다.

나도, 친구여 자네도, 또 테오도……. 오히려 짐을 내려놓고 편하게 되었지. 다들 원하는 것으로 변했다.

새벽제비는 어딘가로 손을 뻗었다. 그의 눈에는 이 방이 온통 하얀 빛으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가냘픈 손과 굳건한 손이 닿았다. 새벽제비는 미소지었다.

나는 덕분에 여왕과 계약할 수 있었어.

손을 쥐었다.

까마귀에겐 비밀일세. 난 정말로 얼마 안 남았어, 이번 달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아, 그러니 전령으로 마지막 일을 해야지.

손을 놓았다. 한숨을 쉬다. 눈을 감는다.

사랑은 잔인하니, 자네가 그 때도 날 도와주게.

싫었다. 디어는 고개를 작게 저었지만 새벽제비는 볼 수 없었다. 잠시 뒤 새벽제비는 다시 잠이 들었다. 가르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디어는 다시 까마귀를 불렀다. 까마귀는 잠 든 새벽제비를 보고는 실망한 표정으로 옆에 앉았고, 디어는 집으로 돌아갔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