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do

1부 5화

나는 그 뒤로 올리비아를 볼 수 없었다. 뒤늦게 얀을 통해 전해 들은 정보만 남긴 채 올리비아는 거주관을 떠났다. 사람을 찌른 것은 분명한 잘못이지만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있고 코지의 신체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 참작되어, 여기서 멀리 떨어진 교회 직속 상점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본 올리비아의 정신 상태가 불안해 보이기도 했고 아직 그 아이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제대로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끝나게 될 줄은 몰랐다. 올리비아를 데려갔던 사제를 우연히 만나 그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아도 얀이 전달해 준 것과 크게 다른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올리비아가 왜 코지한테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른다는 건가요?"

"몇 번을 말하지 않았느냐! 아무리 추궁해도 입을 열지 않는데 어찌 알겠니."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알아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렇다고 올리비아가 개처럼 맞는 걸 상상하면 그건 그것대로 끔찍했다. 코지는 다행히 그 일이 일어난 지 이틀째 되던 날에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날붙이는 여전히 보기 힘들어했다.

한동안은 펜 쓰는 것도 꺼려서 내가 대리 필사한 결과물을 제출하는 날도 있었다. 봄은 그렇게 찜찜하고 불안하게 지나갔다.


여름 동안은 카리타스에게 편지를 꽤 자주 보냈다. 어쩐 일인지 신전의 경비가 허술해져서 편지를 보내는 것보다 직접 만나러 가는 빈도가 늘기도 했다.

코지도 이전처럼 자연스럽게 펜을 썼고 얀과 센은 바깥에서 사 온 음식을 조금 나눠주기도 했다. 해가 쨍쨍하게 비추던 어느 날, 나무 그늘에 카리타스는 말을 편하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가 아무리 허물없이 대한다고 해도 성녀님이시잖아요."

"내가, 허락하는 건데 무슨 문제 있나요? 전 더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한 말인데."

그러곤 '아, 미안해요. 혹시 거리를 이 정도로 유지하고 싶어서 그런 거라면 계속 존대해도 괜찮아요.'라고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덧붙이길래 그 이후로는 편하게 말하고 있다.

올리비아와 있었던 일은 코지의 부탁으로 카리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기억하는 바로는 올리비아와 카리 사이의 접점은 없으니 문제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상하게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기억이 날듯 말 듯 한 게 있었는데 그게 뭐였는지 모르겠다.

"아야."

"폰! 손 이리 줘."

카리가 선물로 받아온 사과를 깎다가 잠깐 저런 생각을 했다고 칼에 손가락이 베였다. 얕게 베이기도 했고 피도 거의 흐르지 않았지만, 카리는 빠르게 내 손을 낚아채 상처를 치료해줬다. 상처는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졌고 카리는 아프지 않으냐고 물었다.

잠깐 따끔한 느낌이 든 것 말곤 없었으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가 끝나고도 내 손이 카리의 양손에 잡혀 있는 것을 보니 새삼 저 애의 손이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쳤으면서 왜 그렇게 이상하게 웃고 있는 거야? 무슨 일 있어?"

"어…. 여름이라 손 잘 안 잡아줬는데 이렇게 잡혀 있어서?"

"아니! 그게 아니라…."

말하고 싶은 것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었지만 올리비아의 일은 말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일부러 딴청을 피웠다. 잡힌 손을 살짝 흔들어 보이자 말끔해진 손 너머로 고개를 떨군 카리타스가 보였다. 너무 엉뚱한 말을 하는 바람에 되려 의심한 걸까? 거짓말은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손잡는 거…. 좋아?"

질문과 동시에 카리가 다시 고개를 들었기에 묵례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질문을 시작으로 사과가 좋냐, 하늘과 바다 중엔 어디가 더 좋냐 등의 백문 백 답이 이어졌고, 나는 차례차례 대답하다가 사과 하나를 다 먹었다.

일방적으로 카리가 묻고 내가 답하는 형식이었지만 평소에도 이러고 놀았다. 다른 점이라면 대화를 하는 동안 내 한쪽 손은 계속 카리에게 잡혀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여름을 맞은 풀이 밝은 초록색과 튼튼해진 몸을 마음껏 뽐냈고 우리는 그런 날들을 자주 보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어쩔 수 없이 편지를 썼지만 역시 직접 만나는 게 좋았다. 자주 만나지 않는다고 해서 카리를 싫어하게 될 일은 없을 것이지만, 보면 볼수록 만나고 싶어진다는 게 신기했다.

"지금 하늘의 색이랑 네 눈 색이랑 똑같은 거 같아."

내 말에 카리는 정오의 하늘을 올려다보곤 다시 나를 보며 고맙다고 했다. 무엇이 고맙냐고 물었더니 하늘이 예뻐서라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미묘하게 기분이 가라앉은 말투였다.

"내 눈은 어떤 색이라고 생각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카리의 손은 자신이 기댄 나무를 가리켰다.

"칙칙하잖아!"

"하늘이 아직 파래서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야. 조금 더 비슷해지려면 해가 지기 직전이어야 하겠네."

"음…. 확인해보고 싶은데 그때까지 여기 있진 못하겠지?"

"그치. 온종일 놀고 싶은데."

놀란 눈으로 카리를 바라보자 그 아이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뭐야. 일 중독인 줄 알았어? 근데 나도 그런 줄 알아서 할 말이 없긴 해."

"생각이 바뀐 계기가 따로 있어? 난 그냥 노는 게 좋은데."

물어보기를 기다렸다는 듯 카리는 미소를 지었지만, 비밀이라고 말하며 답을 주진 않았다. 항상 그렇게 하진 않지만, 꽤 자주, 카리는 내 질문에 답을 주지 않았다. 정말로 심각한 기밀 사항인지 카리 개인이 판단한 비밀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카리에게 솔직하게 답하고 싶은데 카리는 그렇지 않은 건지, 불안한 마음이 대화하는 한구석에서 꿈틀거리고 있기는 하다.


뛰놀던 잔디가 말라가고 푸른빛으로 태양을 가리던 나뭇잎들도 울긋불긋한 옷으로 갈아입으며 하나둘 떨어졌다. 더운 여름이 지나가 바뀐 풍경을 즐기며 놀고 있던 아이들은 두 달은 남았을 성탄제에 관해 이야기했다.

평소엔 먹지 못하는 기름지고 두툼한 고기, 달콤한 과일 절임, 또 그런 절임을 가득하게 넣고 구운 파이를 상상하며 행복해했다. 깨끗한 천을 씌우고 그 위에 은촛대들을 줄지어 올린 경건한 식탁에서, 침착한 척, 양식을 주신 신께 감사 기도를 올리고 게 눈 감추듯 먹어버릴 기대로 가득한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폰은 같은 계절의 다른 행사에 대해 생각하느라 그들과는 먼 곳에 앉아있었다.

"올해는…. 아!"

햇빛을 가리려 챙 넓은 밀짚모자를 대충 얼굴에 얹고 누워있던 폰은 코지가 비명 비슷한 소리를 내자 깜짝 놀라 일어나 앉았다.

코지는 폰의 왼쪽에 앉아 한참 전에 간식으로 받은 조각 쿠키를 천천히 녹여 먹고 있었다. 물론 폰은 받자마자 씹어먹은 지 오래라 그 쿠키들은 이미 폰의 훌륭한 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방금 소리를 낸 것이 제가 아니라는 듯 태연한 얼굴로 과자 하나를 다 먹은 코지는 의아한 표정으로 엉거주춤하게 반쯤 누워있는 폰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코지는 바람에 날아가려던 폰의 밀짚모자를 대신 잡아서 건네주었고, 그것을 받아든 폰은 다시 제 얼굴에 얹곤 잔디 위에 벌러덩 누웠다.

"그래서, 뭐 때문에 놀란 거야?"

"응? 아 우리도 내년부터 열 살이구나 싶어서."

"그치, 생일 때문에 바로 열 살이 되지는 않지만."

"성인이 되는 시점은 아니지만, 북부지원이 가능한 나이가 열 살부터였다는 게 기억이 났어."

안 그래도 폰이 생각하고 있던 주제였다. 열세 살의 얀과 센이 북부에 갔다가 겪은 일들을 자기과시용으로 마구 늘어놓은 게 올해고, 그들이 자원한 것은 작년이었으니 열두 살 이전에만 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가서 그 둘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만한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화해하긴 했지만 괘씸한 과거를 전부 탕감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카리타스를 만나기 전의 이야기였고 이상하게도 그를 만나고 나서부턴 열 살이 되자마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하고 있었다.

만약 카리를 따라가고 싶어서 마음이 동한 것이었다면 이렇게 고민을 하진 않았겠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던 때는 카리타스가 내년에 북부지원에 참여한다는 것을 몰랐을 때였다. 코지는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폰을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폰에겐 그런 코지의 표정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너…. 내년에 바로 갈 생각이지?"

폰은 제가 이런 계획을 말한 적이 있었나 기억을 되짚어 보았지만, 말을 한 기억도, 하지 않았다는 확신도 없어, 모자를 치우지 않은 채, '응'이라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갈 생각은 없어? 카리가 간다고 해서 무리하는 거 아냐?"

그 말에 폰은 모자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을 눈을 내리깔며 중얼거렸다.

"아냐, 자원 가능해지자마자 원래 갈 생각이었는데 카리도 간다고 하니까 더 좋은 거야."

"왜 올해 갈 생각을 했는데?"

궁금한 것이 있으면 해결될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게 제 친구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얀과 센을 상대로 할 땐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나에게 화살을 돌리면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싶었다. 거짓말에 자신이 없기도 했고 반박해 주면 조금 더 생각해 볼 요량으로 폰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정말 별다른 이유 없이 그냥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급한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얀이랑 센 녀석들보다 일찍 가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언젠가부터 그렇게 되더라고."

해가 지는 때의 싸늘한 바람이 두 사람을 훑듯이 지나가며 잔디에 파도를 그려냈고 둘은 마치 바다에 우뚝 선 돌처럼 그 자리에서 파도를 맞았다. 바닥에 뿌려져 쌓여있던 낙엽이 회오리치다 제멋대로 여기저기 날렸고, 폰과 코지 사이를 가르며 추락했다. 코지는 상처가 적고 비교적 평평한 잎을 몇 개를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가 지는 게 너무 빨라졌는데. 아직 적응이 안 되나 봐,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하네. 들어가자. 감기 걸릴라."

폰은 고개를 흔들어 머리에 붙은 나뭇잎을 털어내곤 앞서 걸어가는 코지의 뒤를 허겁지겁 따랐다. 뭔가 심상찮은 분위기였으나 폰은 섣불리 코지에게 원인을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아 코지의 한 발자국 뒤에서 거주관으로 걸어갔다.


결국, 폰은 다음 날 아침 기도가 끝나고 나서도 코지에게 말을 붙여보지 못한 채, 혼자 언덕으로 나와 하늘을 쳐다보고 누웠다. 그는 북부의 생태에 관한 책과 점심으로 먹을 빵이 담긴 바구니만 덜렁 들고 오는 바람에 몸은 가벼웠지만, 마음은 몇 배로 무거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끙끙 앓는 소리만 내었다.

"무슨 고민이 있니?"

구름이 적당히 낀 하늘을 배경 삼아 누군가가 폰의 머리 위로 그늘을 드리웠다. 처음 보는 얼굴에 눈이 동그래진 폰은 후다닥 일어나 낯선 이에게서 세 발짝 정도 거리가 되는 곳으로 튕겨나듯 멀어졌다.

그런 모습을 본 낯선 이는 마찬가지로 살짝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해보다 밝은 듯한 금빛 눈이 가늘어진 모습에, 폰은 어느새 머리끝까지 올려뒀던 경계를 낮추고 평소 제 모습대로 그에게 따져 물었다.

"누구신가요?"

"내가 누구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만, 너라면 내가 신전에 발 들이지 못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리라 생각한단다."

물어본 것에 똑바로 대답하지 않고 둘러대는 말이었지만 어쩐지 폰은 그런 것에 꼬투리를 잡고 싶지 않았다.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았고 어른들이 싹수없다고 말하는 제 태도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감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 여기에 왜 오셨는지는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중요한 사람을 보러 왔지. 전해줄 말이 있어서."

"그럼…."

"다만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시간이 좀 있어서, 엇차."

그는 앞머리까지 내려온 하얀 로브를 걷어 젖혀버리고 폰이 앉아있던 곳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치를 보던 폰은 아까보다는 조금 가깝지만, 여전히 거리를 둔 곳에 슬그머니 같이 앉아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직 키가 덜 자란 폰에게, 그는 거대한 사람으로 보였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어떤 고민이 있길래 다들 바쁜 시간에 혼자 여기에 있었던 거니?"

그가 저를 내려다보는 눈빛이 카리타스의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폰은 자신의 고민을 말해도 될지 망설이다가 조금씩 털어놓았다.

자신이 왜 북부에 일찍 가고 싶어라 하는지, 새로 알게 된 친구와 연관이 있는지, 그리고 제 이야기를 들은 단짝 친구가 왜 갑자기 저에게 조금 무섭게 대하는지 등을, 처음에는 머뭇거리면서 말하다가 나중으로 갈수록 빠르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나씩 내 의견을 말해보자면, 네가 북부로 가려는 마음은 신실함에서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단다. 새로 사귄 친구가 신성력이 강한 친구라고 했지? 어쩌면 그 친구를 만나면서 더욱 네 믿음이 강해진 게 아닐까 싶구나. 그리고 원래 단짝이었던 친구는 네가 걱정되었던 거야. 걱정시켜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네가 왜 북부로 가고 싶은지를 잘 전달해 주면 그 친구도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너를 응원해 줄지도 모르지."

어느새 그의 곁에 바짝 붙어 앉은 폰은 눈을 빛내며 그의 말을 새겨들었다.

눈이 흐릿한 거주관 담당 사제나 (이렇게 말하면 조금 미안하지만) 장난스러운 렌보다 훨씬 믿음직한 어른을 만난 것이 너무도 반가웠다. 폰은 그에게 감사하다고 전하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궜다.

"사람을 대하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제 생각도 잘 모르겠는데 남의 마음마저 생각하는 건 언제쯤 쉬워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 말에 그는 아까와는 다른 마른 웃음을 터트렸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카리는 종종 예상도 못 한 곳에서 눈을 떨구며 웃었다. 입은 웃음소리를 내지만 입꼬리는 올라가 있지 않은 모습마저 비슷했다.

"그러게 말이다. 나도 오랫동안 그 문제의 답을 찾고 싶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여전히 모르겠더구나."

그는 커다란 손을 폰의 머리 위에 얹고는 천천히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손이 눈보다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면 이상한 걸까.

"그래도 너는 그들과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으니 나보다 서로를 이해하기가 더 쉽지 않겠니?"

무엇을 공유하고 있는지는 말해주지 않으면서, 저와 그를 구분 짓는 그의 말은 건조하면서도 따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 사람은 해가 져가는 노을을 볼 때쯤 자리에서 일어났고 폰은 결국 읽지 못한 책을 밤에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까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폰은 배가 고프다며 빵을 반으로 나눠 한쪽을 그에게 주었는데, 그는 거절했지만, 폰이 신께서 항상 이웃에게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라고 하셨다고 하자 순순히 받아먹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입가에는 작은 빵가루가 묻어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에 개의치 않고 대화를 나누었기에 폰은 제 얼굴에 그것이 묻어있는지도 몰랐다. 그는 폰의 입가를 자신의 흰 소맷자락으로 닦아주며 이제 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제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던 건가요?"

"아니, 괜찮단다. 재밌었어."

"조심히 가세요. 신의 안배가 함께하시길."

폰은 예의 바르게 허리를 꺾어 인사했고 그는 폰의 어깨를 약하게 두들기며 마치 주문을 외듯 빠르고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속삭였다.

"꼬마야, 넌 네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을 거야. 난 네가 성공하길 바란단다. 네가 걷는 길이 곧 모두가 따르는 정도가 될 것이고, 네 눈에 보이는 것이 진리가 되리니. 네 마음속에 울리는 진실한 소리를 따르렴."

순간 몸이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은 폰이 서둘러 고개를 들자, 그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따스한 금색의 빛만이 먼지처럼 흩어져 갔다. 죽은 사람에게 홀리기라도 한 걸까 싶었던 폰은 팔에 돋는 소름을 열심히 문질러 보았지만 가라앉지 않았다.

서둘러 언덕을 내려간 그는 거주관에 도착하자마자 코지에게 사과하며 자신이 생각해낸 최대한의 근거를 제시하며 북부행을 설득시켰다. 결국, 낯선 이가 말한 대로 코지는 폰에게 다치지 말고 잘 다녀오라는 말을 하며 폰을 안아주었다. 토닥이는 손길에 노곤해진 폰은 오늘이 이상하지만, 행복한 날이라고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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