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샤샤샤

Polaris

10

Polaris, Blue Encount


“샤샤?”

하이엠스는 조금은 어벙한 표정으로 사야샤를 올려다보았다. 산뜻 웃는 사야샤는 하이엠스의 어깨에서 손을 떼지 않았고, 그곳으로 불꽃이 몰리는 게 눈으로도 보였다. 그럴수록 점차 그의 몸에서는 열이 내려갔다.

‘샤샤가 불꽃을 흡수하고 있어?’

하이엠스가 놀란 듯이 두 눈을 크게 뜨면, 사야샤가 활달하게 말했다.

“자기 왜 이렇게 몸에 열이 많아? 불이 너무 흘러넘치는데?”

“저 녀석이 쏜 이상한 것에 맞아서.”

“아하, 그래서 그렇구나? 그럼 샤샤가 조금 가져갈게? 마침 세게 한 방 날려버렸거든.”

하이엠스와 사야샤가 떠드는 사이, 사야가 하이엠스의 품에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을 보고 사야샤는 무릎을 꿇으며 사야의 뺨을 가볍게 쓸었다.

“샤, 괜찮아?”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응. 삼촌이 구해줬어.”

꼭 투덜투덜 말대답을 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린 사야는, 곧 사야샤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야샤는 활짝 웃었다.

“다행이다. 역시 자기가 잘 구해줄 줄 알았어.”

“당연히 구해야지. 우리의 사랑하는 아이니까.”

하이엠스는 사야를 끌어안으며 마주 웃었다. 그러다 뒤에서 핀잔을 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이 감상에 젖을 때냐?”

“아, 선배도 왔네?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다.”

“뭐냐, 그 아쉬운 듯한 말투는.”

사야샤가 뚫어놓은 길로 내려온 선배가 그들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하이엠스의 상태를 살피다가 턱짓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저 녀석 일어났어. 정신 차려.”

하이엠스와 사야샤의 시선이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카른이 비틀비틀대며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거미 다리 같던 팔들이 부서져서 그의 꼴은 참으로 처참했다. 이 정도면 쉽게 물리치고 나갈 수 있을 거 같았지만, 가면조차 날아가 버려 맨얼굴이 드러난 카른의 두 눈이 광기에 찬 듯이 반짝였다.

“또 너희야, 또 너희…! 모든 걸 망쳐! 모든 계획도, 질서도!”

그는 피가 줄줄 흐르는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그는 두 눈을 번뜩이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으로 온갖 잔해들이 가득했다. 그 속에서 그들이 만든 괴물들의 잔해나 부하들의 시체도 보였다. 부서지긴 했지만 여전히 몸에 붙어있는 잔해들이 기다란 촉수가 되어 그들에게 달라붙었다. 그리고 잔해들을 하나둘 무너트려 제 몸에 붙여가며 흡수하기 시작했다.

“저 녀석이 결국….”

하이엠스가 작게 중얼거렸다. 결국 무리를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런 만큼 우리를 증오하는 건가. 하이엠스는 사야에게 둘러주었던 망토를 자신에게 두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야의 시선이 그에게로 올라왔다.

“삼촌?”

“샤, 여기 이 아저씨랑 같이 있어. 삼촌하고 엄마는 악연을 끝내고 올게.”

옆에서 아저씨가 뭐냐고 투덜대는 선배가 있었지만, 그는 자연스럽게 사야를 챙겼다. 그의 주변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그것이 보호막처럼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하자 하이엠스와 사야샤는 그 안에서 빠져나왔다. 사야가 뒤따라 나오려는 것을 선배가 말렸고, 하이엠스와 사야샤는 그런 아이를 돌아보며 웃었다.

“다녀올게, 샤.”

“샤샤가 다 부수고 올게!”

“…조심히 다녀와.”

사야는 결국 두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고, 하이엠스와 사야샤는 점차 괴물이 되어가는 카른에게로 걸어갔다. 주변에 있는 것들이 다 휘몰아쳤다. 저 괴물은 생명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잔해들까지 자신의 도구로 만들었다. 그렇게 점점 크기를 키워나간 카른은 마침내 괴물의 모습이 되었다.

“아미토, 사야샤. 둘 다 이 자리에서 죽여주마.”

마치 동굴 안에서 울리는 목소리처럼 괴물의 몸에서 카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상당히 낮아져 있었다. 양다리와 양손이 있었고, 까마귀 주둥이를 닮은 얼굴을 깊게 내밀었으며, 등 뒤로 수많은 거미 다리 같은 것들이 펼쳐져 날개 같은 모습을 만들어냈다. 주변에 있는 거미 다리 같은 것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금방이라도 덮칠 듯한 모양새에 하이엠스와 사야샤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샤샤, 일단은 여기보단 지상으로 끌어올리자! 할 수 있겠어?”

“물론이지! 자기야, 그냥 하늘로 날아오를까?”

“그거 좋은 생각인데?”

두 사람의 이능력으로는 하늘을 날 수 없다. 하지만 하이엠스는 그런 생각을 반박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좋은 생각이라며 웃을 뿐이었다. 그의 머리카락이 불에 타올랐다. 그곳으로부터 불나비들이 나와 공동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카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깟 나비들로 뭘 하겠다는 거냐!”

“그건 보면 알고. 샤샤! 천장 뚫어버릴 수 있지!”

“당연하지!”

하이엠스는 불나비를 계속해서 만들었다. 카른은 시야에 반짝거리는 나비들 탓에 성가시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거대한 괴물 손이 허공을 휘저으면 불의 나비들이 불씨가 되어 사라지는 듯 했지만, 금세 다시 원래의 형태로 돌아갔다. 그렇게 시선이 쏠리는 사이 사야샤는 빠르게 카른의 아래로 침투했다. 그 아래에 자리를 잡은 사야샤가 주먹을 꽉 쥐자 불꽃이 주먹을 감쌌고, 카른의 몸체에서부터 송곳이 튀어나와 사야샤를 덮쳤다.

그러나 사야샤는 피하지 않았다. 믿고 있으면 해결해줄 사람이 있으니까.

예상대로 멀리서 날아온 불꽃이 송곳들과 부딪혀 강한 폭발을 일으켰다. 멀리서 이쪽을 향해 손가락을 튕기는 모션을 취하고 있는 하이엠스가 보였다. 사야샤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 주먹을 감싼 불꽃을 키워서 괴물이 된 카른의 배를 향해 쳐올렸다.

쾅!

사야샤의 주먹이 그대로 괴물의 배에 꽂혔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하이엠스의 불 나비가 사야샤의 발 아래로 날아왔다. 사야샤는 발에도 불꽃을 둘러 그 위에 올라섰다. 그렇게 힘을 주어 한 번 더 강하게 쳐올렸다.

“크윽! 사…야샤!!!”

뒤늦게 카른이 무게로 그를 짓누르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사야샤는 강하게 몸체를 허공에 띄웠고, 그대로 괴물의 몸은 천장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를 향해 하이엠스가 불 나비들을 밟으며 빠르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는 천장에 닿기 직전 괴물의 몸을 향해 돌려차기를 하며 한 번 더 하늘을 향해 차올렸다. 그의 발에는 사야샤의 주먹처럼 불꽃이 둘러져 있었다.

“아미토!!!”

“하늘에서 보자, 카른!”

씨익 웃으며 몸체를 차올린 하이엠스로 인해 가속도가 붙은 괴물의 몸체가 천장들을 뚫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몇 겹이나 되는 천장을 다 뚫고 올라간 몸. 천장 위로 밤하늘이 보였다.

“가자, 샤샤!”

“좋았어, 자기야!”

하이엠스와 사야샤는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불 나비들을 밟고 올라가며 위로 향했다. 순식간에 카른이 있는 곳까지 닿은 두 사람은 카른의 양옆으로 흩어졌고, 카른은 허공에서 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주변은 광활한 이 시설의 부지 뿐. 지상에서는 아직도 마찰을 빚고 있는 듯 했지만 정체불명의 존재들이 하늘로 떠오르자,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확실한 건 그들은 비상사태를 부르짖고 있다는 거다.

“어리석은 것들! 여기서 나를 이긴다고 빠져나갈 수 있을 거 같아?”

카른이 외치면서 그의 몸이 뒤틀렸다. 조각조각 나뉘었던 몸체가 촉수 대신에 날개를 만들고 한결 가벼운 형태의 몸체로 바뀌었다. 얄상한 몸으로 바뀐 몸이었지만 그만큼 사지는 더 길어졌다. 팔을 채찍처럼 크게 휘둘러지면 하이엠스와 사야샤는 허공에서 나비를 밟고 공중 제비를 돌며 그것을 피했다.

“너희들이 하는 건 고작 영웅 심리에 취한 행동일 뿐이야! 그딴 짓으로 세상을 바꿀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거, 말 많네.”

허공을 후웅, 지나가는 두 번째 팔을 피하며 하이엠스가 중얼거렸다. 카른은 광기에 휩싸여 이성을 잃은 듯, 계속해서 소리쳤다.

“이 국가가 정한 질서다! 너희들은 그 질서에 대항하는 불나방들일 뿐이야! 너희도, 너희가 사랑하는 그 꼬마 녀석도 결국 이 나라의 질서가 용서하지 않을 거다! 너희의 일상을 다 파괴시켜버릴 거라고! 너희가 나한테 그랬듯이!”

하이엠스와 사야샤는 연속적으로 날아오는 공격들을 불나비들을 발디딤대 삼아 피하며 카른의 소리를 들어야했다. 이윽고 그의 말이 끝났을 때, 두 사람은 동시에 하! 코웃음을 쳤고 동시에 카른에게로 달려들었다. 하이엠스의 몸이 불꽃으로 인해 반짝였다. 그가 카른의 앞으로 순식간에 다가와서는 말했다.

“그런 짓은 하게 두지 않아. 설령 그것이 이 국가가 정한 질서라 하더라도,”

하이엠스가 몸을 회전시키며 다리를 휘둘렀다.

“그 질서를! 무너뜨리겠어!”

“크헉!”

카른의 몸이 더 높은 하늘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보다 위에서 사야샤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카른은 사야샤를 눈에 담으며 부서진 잔해들을 모아 거대한 주먹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뻗었다.

“날 방해하지 말고 죽어버려!”

“아쉽지만 그럴 순 없어. 샤샤는 지는 싸움 따위 모르니까!”

사야샤가 나비들을 박차며 카른을 향해 떨어졌다. 그의 몸도 하이엠스처럼 빛이 났다. 그의 주먹이 카른의 주먹을 부수며 떨어졌다. 쏟아지는 주먹에 의해 카른이 만들어낸 괴물의 몸체는 점점 무너졌다.

“이 자식들… 가만두지 않겠다!”

카른은 잔해들을 삼켰다. 불의 나비들도 함께 삼켜졌다. 그의 몸이 타올랐지만 카른은 신경쓰지 않았다. 얼굴조차도 불꽃이 뒤엎었지만 죽어서라도 두 사람을 죽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죽어라!!!”

불꽃이 터져나오며 사야샤와 하이엠스를 덮쳤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양팔을 몸 앞에 교차시키며 충격파를 막아냈다. 그렇게 허공으로 떠오른 둘을 향해 카른이 다시 날아올랐지만, 하이엠스와 사야샤는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는 씨익 웃었다.

턱.

탁!

사야샤의 손은 하이엠스의 목 부근의 옷깃을 잡았고, 하이엠스의 발은 사야샤의 발을 딛었다. 그리고 사야샤는 하이엠스를 땅으로 던지고, 하이엠스는 사야샤를 땅을 향해 발로 찼다. 그렇게 운석처럼 쏟아져 나간 두 사람을 향해 카른이 손을 뻗었다.

“카른! 여기서 우리의 악연은 끝이야!”

“꽤 즐거운 놀이였어! 하지만 역시 샤샤의 아이를 건드린 죗값은 치러야 해!”

하이엠스의 다리와 사야샤의 주먹이 그대로 괴물의 몸을 꿰뚫었다. 그들의 몸이 떨어졌다. 카른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는지 그들과 함께 다시 구멍 속으로 추락했다.

탁! 콰과광!

하이엠스와 사야샤가 바닥에 착지한 것과 달리, 카른의 몸체는 그대로 잔해와 함께 무너져내렸다.

 


사야는 보았다. 하늘에서 무언가가 번쩍이며 싸우는 모습을. 이윽고 큰 괴물의 몸에서 나오는 소리들이 들렸다. 그 모습에 움찔, 몸을 떨기도 했지만 어째 두려움은 일지 않았다. 그것은 저 위에서 싸우고 있을 두 사람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의 몸이 자신이 있는 공동 안으로 내려왔다.

사야는 보았다. 여전히 불꽃에 둘러싸인 채로 내려온 두 사람의 모습을. 불씨가 비처럼 쏟아지는 어두운 공간에서 그 두 사람의 등만은 확실히 보였다.

‘나는 보았다. 쓰러지지 않은 등을.’

사야는 생각했다. 떨어진 괴물의 몸체를 보는 그 등이 너무도 크게 느껴졌다.

‘나를 지켜주는 올곧고, 듬직한 등.’

사야의 눈빛이 불꽃에 일렁이고, 이내 미소를 지었다.

‘내가 사랑하는, 내가 돌아갈 가족의 등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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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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