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핌
잭 하울 드림
* 22년도 잭 생일 축하 글.
* 22년도 생일 카드 네타 있습니다.
“잭!”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익숙하다. 선배들에게 축하를 받고 기숙사로 바삐 돌아가던 잭은 점점 가까워져 오는 발소리와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가,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열심히 달려오는 상대를 보고 멈춰 섰다.
“아이렌?”
“헉, 허억. 드디어 따라잡았다……. 키가 커서 그런가, 걸음도 빠르다니까.”
어디서부터 뛰어온 걸까. 땀을 닦으며 숨을 몰아쉬는 아이렌은 당장이라도 엎어질 것같이 위태로워 보였다.
안 그래도 체력도 안 좋은 녀석이 이리 열심히 뛰어오다니. 멀리서부터 불렀다면 그냥 멈췄을 텐데.
커다란 귀를 쫑긋거리며 숨을 고르는 아이렌을 가만히 보던 그의 시야에 품 안의 선물상자가 들어왔다.
“이거. 아까 못 준 선물. 생일 축하해.”
역시나 저걸 전해주러 온 거였나. 잭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까 전 A반의 녀석들과 함께 축하해 주러 왔을 때, 아이렌은 빈손으로 와서 제게 사과했었다. ‘오늘 급하게 나오느라 선물을 두고 나왔지 뭐야.’라고 말하며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하기에 선물은 나중에 줘도 된다고 했는데, 그 나중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그렇게 급하게 주지 않아도 되는데.”
“나도 그렇게 급하게 온 거 아냐.”
“……숨이나 고르고 거짓말할 것이지.”
뻔히 보이는 거짓말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분명 얼른 전해주지 않으면 미안하니 급히 챙겨온 거겠지. 안 봐도 뻔했다. 아이렌은 제멋대로인 면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성실하고 진지한 성격이었으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선물을 챙긴 그는 고맙다는 말을 전하려 했지만, 아이렌은 그 틈을 못 참고 또 입을 열었다.
“그건 누구에게서 받은 거야?”
“음?”
아이렌이 가리킨 것은 한쪽 손목에 걸고 있는 종이가방이었다.
잭은 아이렌의 선물을 옆구리에 끼운 채, 가방 안을 보여주었다.
“아, 빌 선배에게 받은 브러쉬다.”
“브러쉬? 그 선배다운 선물이긴 한데, 웬 브러쉬?”
“아무래도 나는 빗을 게 하나 더 있으니까.”
그는 눈짓과 함께 꼬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아하’하고 짧은 감탄사를 내뱉은 그녀는 부드러운 털이 살랑거리는 잭의 꼬리를 가만히 바라보다 물었다.
“사용해 봤어?”
“응?”
“그 브러쉬 말이야.”
“아니, 아직은…….”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언제 사용해 보았겠나. 잭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별생각 없이 답했는데, 아이렌은 두 눈을 빛내며 손을 내밀었다.
“내가 빗겨줄게, 앉아봐.”
“뭐?”
“해보고 싶어. 응?”
갑자기? 여기서?
그것보다 외간 남자의 몸을 막 만지고 싶어 해도 되는 걸까. 제가 애도 아니고, 꼬리를 빗겨주겠다니.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오히려 말이 없어진 그는 눈만 깜빡이다가, 결국 가장 본심에 가까운 말을 뱉었다.
“……아니, 그걸 왜.”
“그 꼬리, 푹신푹신할 거 같아서.”
“…….”
결국 자기가 하고 싶으니 해주겠다는 건가. 솔직한 대답이라 다행이긴 하지만, 이걸로 거절할 명분이 없어졌다.
아이렌이 하고 싶다면 제가 뭐라고 하겠나. 거절한다고 해도 끈질기게 하게 해달라고 조를 테고, 끝까지 허락하지 않는다면 다른 수인족 학생들에게 찾아가 이런 부탁을 할지도 모른다. 그래, 러기 선배라면 아마 들어주지 않을까. 꼬리가 짧긴 해도, 털로 복슬복슬하니까.
아이렌은 원한다면 뭐든 해낸다. 그리고 제겐 아이렌의 농간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그걸 알고 있는 잭은, 결국 근처 벤치에 걸터앉았다.
“적당히 해.”
“와아.”
고민 끝에 떨어진 허락에 신이 난 아이렌이 그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잭에게 브러쉬를 받아든 그녀는 꼬리를 무릎 위에 올려두고 손가락으로 결을 정리했다.
“그동안 내 선물 열어봐도 돼. 그럼 빗는다? 가만히 있어야 해.”
“가만히 있다만.”
“아니. 꼬리가 자꾸 움직이잖아.”
“그, 그런 적 없다.”
설마 자신도 모르게 꼬리를 흔든 건가. 잭은 민망함에 사실 여부는 확인도 하지 않고 무작정 모른 척했다. ‘후후.’ 칼 같은 부정에 재미있다는 듯 웃은 아이렌은 조심스럽게 꼬리를 빗질해 주었다.
사락사락. 빗질하는 소리가 꽤 기분 좋다. 정성이 들어간 손길에 긴장이 풀린 잭은 아이렌이 준 선물을 열어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오감을 곤두세웠다.
‘애라도 된 기분이군.’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는 건 익숙하지 않다. 게다가 그게 아이렌이라니. 언제나 선배들에게 끌려다니고 같은 반 녀석들과 어울리기 바쁜 이 학원의 홍일점이 자진해서 제 꼬리를 빗겨주고 있다니. 생일이라고 참 별일이 다 일어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런 보살핌을 매일매일 받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돌봐지는 걸 원하지도 않으면서 궁금해하는 건 이상한 일이겠지만, 제 꼬리를 매만지는 부드러운 두 손길을 인식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드는 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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