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퀘글

휴가 아닌 휴가 온 잠입조 조각글

"...단체로 모래사장에 파묻으려는 건가?"

"...아니면 바닷물에 수장?"

"아냐, 인파가 몰리는 걸 생각해서 뒷골목에서 슥삭할지도.."

"야, 정은창, 뭔가 아는 거 없냐?"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주정재가 머리를 굴리다가 내게 물었지만 나도 아는 게 없어서 가볍게 빈정거렸다.

김성식은 도통 종잡기 힘든 놈이다. 갑자기 휴가 가고 싶지 않냐는 뉘앙스를 던졌을 때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할 생각인가 싶어 간담이 서늘해졌지만 그 제안이 나뿐만 아니라 나름 간부진이라고 할 수 있는 다른 녀석들에게도 전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장산 병원에서의 쿠데타의 사례가 있어서 의심이 간답시고 죄다 싹쓸어 버리려는 의도가 있을지도 몰라 경계심을 늦출수는 없었다.

"뭘 그렇게 새새끼들마냥 쫑알쫑알들 거려?"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김성식이 휙 돌아보며 말하는 것에 주정재와 내가 재빨리 사과했다.

흥, 하고 가볍게 코웃음친 김성식은 제가 잘 아는 곳이 있다며 주정재에게 운전대를 맡겼다. 조수석에 김성식이 앉음으로서 나와 최재석과 유상일은 한숨을 돌리며 뒷좌석에서 창문을 뚫어져라 볼 수 있는 특권(?) 을 가질 수 있었다. (작지도 않은 덩치 놈들이 셋씩이나 뒷좌석에 낑겨있는 건 숨막힐 정도였지만.) 평소 같으면 신경도 안 썼겠지만 운전대를 잡아야 해서 앞에 앉은 주정재가 어지간히도 불쌍하게 느껴졌다.

***

"자, 맘껏들 먹으라고."

바다와 면해있는 곳, 예약석으로 보이는 내부.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진 회와 곁다리로 딸린 것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다른 조직원들까지 끌어들여져서 거하게 단체로 이루어지는 회식이야 종종 있었지만 김성식과 그 경호원들까지 동원된 상태에서 소수의 간부진들을 불러모은 회식의 경우는 전무후무할 일이었다.

김성식은 회를 한두 점 손대다가 경호원 중 한 명에게 손짓해 빈 술잔에 술을 따르게 했다. 최재석은 난감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하며 깨작거렸고, 유상일도 마찬가지였다. 주정재는 이것이 최후의 만찬이 아닌지 긴가민가하며 김성식에게 말을 붙였으나 곧 그 서늘하고 번들거리는 눈빛에 깨갱하며 회나 몇 점 집어먹었다. 본거지로부터 꽤 먼 거리인데다가 경호원들도 정예만을 모아서 두르고 있는 것에 복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24시간 철벽 경호에 경남권이 소탕되었다고 해도 지부에 약간 못 미치는 규모의 조직원들이 산개해 있는 건 마찬가지여서 이곳에서도 못 보던 얼굴들이 듬성듬성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고생이 많아. 그래서 이번에 이쪽 애들도 모조리 서울로 올려보낼 겸 바람들 쐬라고 데려왔지. 어때, 맛은 괜찮나?"

"괘, 괜찮습니다. 자주 오시던 곳이었나 보죠?"

"황도진이 소개했던 곳이었지."

김성식에게, 선진화파 조직원들에게 그 이름이 어떤 의미이던가.

누구 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만큼 고요한 정적이 무자비하게 내려앉았다.

그 황도진을 죽인 건 나였다. 겨우 삼킨 생선회의 살점이 뱃속에서 펄떡거리는 것 같았다.

"워어, 얼굴들 풀라고. 밥 열심히 구겨넣어. 난 볼일이 있어서 애들 끌고 나갔다 올 테니까. 서울에 올라갈 때 부를 테니, 각자들 자유롭게 좀 다녀보도록 해. 아, 풀어놓는다고 연락했을 때 째깍 안 오는 놈들은 내 애정을 의심하는 놈인줄 알고 서울까지 개처럼 끌려가는 걸로 알고."

김성식은 그렇게 말하고 경호원들과 먼저 자리를 떴다.

김성식이 자리를 뜨자 음식을 대강 입 안에 털어넣고 서로 쉬쉬하면서 일어났다.

"야, 정은창, 넌 어쩔 거냐?"

"뭘 어쩌긴 뭐 어째, 아는 사람도 없고, 할 것도 없고, 밥도 먹었고..올라가서 잠이나 자던가 해야지."

"형님의 살 떨리는 큰 뜻이 있을까봐 나도 무섭긴 하다 야."

최재석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유상일에게 고개를 돌렸다.

"야, 상일아, 우리끼리 2차라도 갈까?"

"너나 하세요."

"야아, 매정하게..."

"먼저 들어간다, 정은창."

"그래."

최재석은 쳇, 하고 소리를 내며 유상일의 뒤를 따라갔다.

주정재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면서 중얼거렸다.

"....경찰도 안 보내주는 휴가를 김성식이 보내줄 리가 있냐.."

"너 저번에 휴가 갔다고 하지 않았었냐?"

"의무실로 휴가 갔지. 왜. 너도 다리에 총상 입고 수혈 받으면서 휴가 갈래?"

"사양할게."

"아, 더럽게 심심하네. 완전 딴 동네라 뭔 자유행동을 못 하겠잖아."

"너도 들어가 자던가 해. 김성식이 뭔 일을 벌일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끌려와선..."

"정은창, 심심한데 여자나 꼬시러 갈까?"

주정재에게 가운데 손가락으로 화답하며 안내받았던 숙소 안으로 향했다.

실질적으로 바다를 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두근거림 같은 감정이야 애저녁에 죽어버린지 오래였다. 휴가같은 소리 하고들 앉아있네.

남 속도 모르는 소리가 판을 쳐서 불쾌한 기분이 굼실거렸다. 주정재가 뒤에서 비협조적이네, 뭐라고 지껄였지만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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