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빌레라

대한

시린 겨울을 매듭짓다.

현재 by 반야

해오름달 열아흐레

삐그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청룡 침소의 창문이 열렸다. 밤새 맺어진 이슬이 그새 얼어붙은 모양이었다. 적당히 시원하기만 할 정도로 틈을 내어 열어두고 찬의 머리맡에 쪼그려 앉았다.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헝클이려다가, 시험을 준비하느라 인시가 다 되어 잠들었을 것이 뻔하여 도로 거두었다. 대신 바로 옆에 있는 예비 수문장에게로 방향을 바꾸었다. 소한과 비슷한 추위임에도 몸에 열이 많은 탓인지 이불을 죄다 걷어찬 채로 자고 있었다. 찰싹찰싹 소리를 내며 민규의 어깨를 아프지 않게 때리니 요상하게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어디 가요..?”

“오늘 겨울 시험이야. 일하러 가야지.”

“...아.......”

“한 이각 정도 있다가, 애들 좀 깨워줘. 사시巳時에 시험이 있댔거든.”

민규는 불만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씻고 돌아와서 깨우면 되겠네요, 하면서. 지금 서당에서 민규만큼 팔자가 핀 생원은 없었다. 입이 찢어질것처럼 하품하며 제 옷가지들을 하나하나 집었다. 나설 준비를 하던 정한이 그에게 너는 오늘 언제 치러 가냐고 물었다. 민규는 우뚝 선 채로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오시午時부터 쭉 있었던 것 같아요.”

“시험은 칠 거지? 수문장으로 가기 전까지, 생원으로서 도리는 지켜야지.”

“에이-. 당연하죠. 한참 멀었어요. 머릿속 지식도 채워서 가야  해요.”

수문장으로 뽑혔다고 해도 공부를 놓지 않을 생원이란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정한이 제게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민규도 당연히 알아들었다. 설렁설렁 고개를 끄덕여주며 정한을 데리고 밖을 나섰다.

누각에 가니 이미 지수와 석민이 와 있었다. 정한이 조용히 다가가 지수의 옆에 앉았다. 앉고 보니 원우도 있었고.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멍한 표정으로 지수의 앞에 놓여진 상서를 보고 있었다. 능소화가 새겨져 있는 상서에는 황룡의 인원을 다시 늘리자는 글이 쓰져 있었다.

“...언제 했대?”

“소서 쯤에. ...홀로 쓰고 박사께 허가까지 받아왔네.”

“소서에 썼다고? 허가는 엊그제 받았는데?”

“뭐 그냥... 바빴겠지.”

굳이 상제까지 올리지 않아도 되는 것임을 지훈은 알고 있었다. 다만 소서에 곧바로 올려도 되었을 것을, 누각에 들르는 것이 망설여진 탓에 한동안 들어가지 않아 시간이 이리도 흐른 것이었다. 셋이 이에 관해 이야기할 동안, 원우는 가장자리에서 턱을 괴고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해오름달 엿새

원우가 명호를 데리고 산책을 하려던 중에 지훈을 발견했다. 말이 산책이지, 몸이 닳겠다 싶을 만큼 쓴 탓에 조금 걸어서 꽃밭에 가려던 참이었기에 지훈도 데려가고자 다가갔다. 남령초를 피우고 있는듯 했다. 홀로 피우는 모양새가 꽤 쓸쓸해 보여서, 곁에 조심스레 앉았다.

“...끊었다며.”

“.......”

“...능소화야?”

어쩐지 향초를 피운 듯한 냄새가 난다더니, 능소화를 태우고 있었다. 평소였으면 몸에 좋지도 않은 걸 왜 하냐고 한마디 거들었을 명호였겠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지훈의 표정이 묘했다. 원우도 그 낌새를 곧장 알아차렸다.

마땅히 누각에서 할 일도 없었을 텐데 수문장 후보를 뽑는 곳에 나와보지 않은 것부터 생각나기 시작했다. 무슨 일 있어? 입에 가져다 대려는 남령초를 얇고 허연 손이 막았다. 지훈은 그 손을 보더니 픽 웃고는 뒤로 누웠다. 맥없이 떨어진 남령초가 데굴데굴 굴러 명호의 태사혜에 닿았다.

“곧 입춘이네.”

“...어어. 그치.”

“곧 눈이 다 녹고 꽃도 피겠다.”

“그렇겠지..? 곧 설이야. 아 맞다, 경주에 갈 때는...,”

“나 고백받았어.”

“네?”

“...어?”

지훈이 마른세수를 벅벅 해댔다. 지훈의 남령초를 들고 서 있던 명호도 슬그머니 지훈의 곁에 가서 누웠다. 계속 실없이 웃기만 했다. 어색하게 웃기만 하던 원우의 머릿속에 문득 순영이 누각에 간 것이 떠올랐다.

설마 하는 마음에 누워있는 둘을 두고 누각으로 뛰어갔다. 근육이 조금씩 아려오는 느낌을 애써 무시하며 벌컥 열자, 당연하게도 순영이 홀로 앉아 허연 무예복에 고개를 파묻고 울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대략 보름 동안 순영과 지훈은 만나지 않았다. 순영은 준휘를 따라 항상 무예를 하러 가 있었고, 지훈은 웬만해서는 계속 책방과 침소에 있었다. 둘의 사이가 약간 틀어진 것을 다른 생원들도 대강 눈치를 챘는지, 그들에 관해 물어보지는 않았다. 특히 4년 황룡들이 더 그러했다. 승철이 지훈에게, 지수가 순영에게. 각자 맡을 일들을 나누어서 개인적으로 알려주었다. 둘이 누각에서 부딪히지 않도록. 처음에는 그 둘을 배려해주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비단 그것만은 아니었다. 정한이 넌지시 지훈에게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한을 이만큼 주었으니, 차라리 얼굴을 마주하고 치고받기라도 하라고.

내가 가만히 이 둘을 지켜보는 것이, 친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가? ...오늘 돌아가면 지훈이랑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원우가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생각했다.

“원우, 무슨 고민 있어?”

“아뇨. 없습니다. ...최 사형은요?”

“준휘 사형이랑 무예를 하러 갔어요. 아마 사시 전에 올 듯 해요.”

대략 사나흘에 걸쳐서 치르는 겨울 시험이라 황룡들이 골고루 바쁠 예정이었다. 석민에게는 봄이 찾아오면 그때부터 차근차근 활이든 검이든 잡아보자고 해주었으면서, 승철은 홀랑 데리고 가버렸다. 원우에게 대답해준 어린 주작은 두리번거리더니 두루마리 하나를 집었다.

“겸아. 그거 중용中庸이야.”

“으악!”

석민이 기겁을 하며 다시 내던졌다. 너는 이거. 지수가 웃으며 시경詩經이 적힌 두루마리를 건네주었다.

“그리 놀랄 일이야?”

“제가 4년 생원에 들어가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면서 그래요.”

석민이 처음으로 황룡으로서 감독을 맡을 때 지훈의 실수로 5년 생원들의 시험에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온통 모르는 내용들에 대한 질문뿐이었는데, 그때 생원이 문제에 대한 질문을 했던 탓에 꽤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는 단 1년이라도 높은 학년의 시험에는 들어가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은 참이었다.

몸을 부르르 떨며 그때를 상기하기도 잠시, 누각의 문이 열려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순영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석민에게 이리 오라 손짓했다. 이제 슬슬 시작할 시간이니 나오라고. 다른 사형들께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호시, 여기서는 오랜만이네. 뒤따라온 승철이 누각 문을 완전히 열며 웃어 보였다. 순영은 별말 없이 고개만 까딱인 채로 인사하고는 석민을 데리고 명륜당으로 빠져나갔다.

나빌레라

大寒, 시린 겨울을 매듭짓다.

해오름달 스무나흘

겨울 시험이 모조리 끝났다. 술시戌時가 다 되어서야 채점을 끝낸 황룡들이 성적을 기재하기 시작했다. 대강 이름이 걸린 것을 본 정한과 지수는 각자의 침소로 흩어졌다. 결과를 보기 위해 뛰어 들어온 순영도 기재된 이름을 한 번 스윽 훑더니 재빨리 튀어 나갔다. 정말, 달려 나간 게 아니라 튕겨 나간 수준이라 봐도 무방했다.

순영이 들어오고 나서 나갈 때까지, 그 잠깐 책상에 시선을 처박고 있던 지훈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사형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뭐가?”

“이번 황룡 예상 결과요.”

“생각했던 대론데.... 얘가, 준휘처럼 거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어.”

승철이 콕 짚어 말한 '얘'의 이름을 본 지훈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하지만 그것도 이 아이의 선택이고, 따르는 운명인 거겠지.”

“준휘가 거절했을 때는 그런 반응 안 했잖습니까.”

승철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정한과 지수에게 가서 털어놓았다고 했다. 나, 준휘한테 거절당했다고. 간혹 셋과 약주를 한잔할 때면 항상 나오는 일화였다. 승철이 잠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내가 놀릴 수 있으려나? 하는 말도 덧붙였다. 지훈이 무어라 말을 더 하기도 전에 승철이 수시를 챙겨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해시亥時네. 준휘랑 무예 하기로 했는데.”

“고생하십시오. ...너무 무리하진 말고요.”

“이제 겨울 시험도 끝났는데, 너도 일찍 들어가. ...아님 뭐 호시랑 일 끝장 보던지.”

“알고 계셨어요?”

“대충 눈치는 까고 있었어. 내가 계속 너한테 일 알려줬잖아. 나비들은 다 알 걸? 아무튼, 갈게!”

휑 승철이 사라지고, 지훈은 한참을 누각에 홀로 있다가 미적미적 걸어 나왔다. 당장 어딜 갈까 고민하다가 향한 곳은 결국 꽃밭이었다. 사계절 내내 우리의 꽃이 지지 않는 곳.

지훈은 꽃이 개화할 때마다 순영을 떠올렸다. 차고 매서운 밤바람도 쫓아내는 꽃. 봄꽃이 피고 나면 추위가 사그라들잖아. 산책을 하던 중 순영이 지훈에게 해준 말이었다. 처음에는 뭐 그리 오그라드는 말을 하고 있냐며 몸서리를 쳤지만 그럴수록 기억에는 더 오래 남는 법이었다.

지금도 그랬다. 개화를 잊으려고 만개한 곳에 갔는데 또 생각났다. 화단 앞에 앉아서 능소화 하나를 또 피워냈다. 지훈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 중 하나였다. 제가 만들어낸 봉우리에 힘을 줄수록 느릿하게 개화하는 능소화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별것도 아닌, 옹졸하게 피어난 다섯 꽃잎이 모여 능소화를 피워냈다. 못나고 볼품없어. 그리 생각하면서도 손에서 놓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그냥 동경인 줄 알았고 얼마 전까지는 우정인 줄 알았어.”

“…….”

“......그런데 이게 만약에 있잖아... 만약에 이게 사랑이고 순정이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사랑이고 순정이면 어떡하냐고? 제 추위를 짓이겨버린 꽃의 질문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이러나저러나 신경 쓰이게 말이야. 그리고 또, 나 같은 놈이 가진 게 뭐가 있다고 동경을 해?

“......멍청하고 미련하고. ...실없고.”

애써 피워낸 꽃잎 다섯 개 중에서 세 개를, 오직 권순영을 생각하며 뜯어냈다.

“우정인지, 순정인지.”

미처 떼지 못한 꽃잎 하나가 덩그러니 남아 애처롭게 매달렸다.

.......멍청한 놈. 네가 내게 하고자 하는 건, 순애였겠지.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백호가 지 맘은 모르네. 중얼거리며 남은 꽃잎 하나를 똑 떼고 바닥에 던졌다.

“...너는 뭔데?”

“아이씨, 깜짝이야.”

“보름동안 기다렸어. ...우정이야, 사랑이야?”

“.......”

“차라리 너도 나처럼, 밑도 끝도 없는 순애였으면 좋겠는데.”

허연 무예복을 입고 한 손에는 월도를 들고. 덤덤하고 무심하게 묻는 것 같았지만 질문의 끝에서 목소리는 떨렸고 월도를 쥔 손도 미약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제가 달아준 능소화 패牌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훈이 느리게 일어나 겨우 눈을 맞췄다.

“......나는 집에 갇혀서 붓만 잡고 서책만 봤어.”

“응. 알지.”

“그래서 네가 부러웠어. 너는 붓 말고 모든 걸 잡아보고, 서책 말고 모든 걸 펼쳐봤을 테니까.”

또 한참을 말하지 못했다. 겨우겨우 생각을 정리해서 입을 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순영은 가만히 서서 기다려줬다.

“징글징글한 꽃을 너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넘겨버리는 것도 좋았어.”

“…….정말, 매번 이야기하는구나. 그 이야기는.”

“네가 좋았던 순간들을 생각해보았거든. 그게 제일 커. 그리고, 이 월도를 쥐고 무예를 하는 것도.”

“...너 바빠서 여태 다 못 봤잖아.”

“그치. 그러니까, 그, 내가 선물한 철릭. 단오제 때 입으라고 준 거 있지.”

“응. 다들 예쁘다고 해줬지.”

짙은 푸른빛이 나는 철릭. 고요한 밤하늘을 닮아 사준 것인데, 준휘는 항상 곁에서 그 철릭을 보며 밤바다에 파도가 치는 물결 같다고 했다.

“......설에 입어줘.”

“어?”

“그럼, 좋아하는 걸 넘어 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본인이 말해놓고, 입술을 앙 다물었다. 싫어하면 어쩌지, 끊임없이 되뇌었다. 순영의 표정이 묘했다. ...무슨 말이라도 하라고 입을 열려던 찰나에 순식간에 다가와 와락 껴안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채로 순영에게 온몸이 짓눌려 도망갈 수도 없었다.

“좋아하기는 한단 소리야?”

“...아, 치워.”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했는데?”

“......영조례 때 문준휘랑 비무 할 때.”

와, 나도 그때쯤인데! ...알겠으니까 비켜, 쫌! 순영이 껴안은 채로 빙빙 몸을 흔들자 지훈이 몸서리를 쳤다. 볼과 귓가가 온통 붉어진 탓에 끝내 얼굴에 손을 얹은 채 필사적으로 빠져나왔다. 밭은 숨을 뱉으며 몸을 뒤로 뉘었다. 순영도 지훈을 따라 곁에 붙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고개를 돌려 다시 순영을 마주했다. 사랑해. 눈이 마주치길 기다렸다는 듯 툭 튀어나오는 순영의 진심에, 지훈은 으, 짧고 굵은 질색을 한마디 하며 등을 돌렸다.

청아한 소리와 함께 협도가 땅에 처박혔다. 준휘가 다가가서 주워서는, 다시 승철의 손에 얹어주었다.

“힘들어.”

“...그래도 해야 해요.”

“뭐가 이리 안달이 났어.”

겨울 시험이 끝나고 하자더니, 품고 다니는 단검만이라도 제대로 사용해보자더니, 석민이랑 같이 가르쳐주겠다더니. 민규가 수문장으로 선출되었다는 소리를 들은 그날부터 부르기 시작해서 협도를 쥐여주고 단둘이서만 무예를 했다. 이런 태도에 딱히 불만을 품어서 묻는 것이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

수십에서 수백 년을 계속 징글징글하게 함께할 사이면서 무엇 때문에 이리도 급하게 하려는지가 궁금했다. 아무리 다른 나비들에 비해 쥘 수 있는 무기가 적다고 해도, 그래도 한때는 무예 수장의 자리까지 노릴 수 있었던 승철인데.

“무슨 일 있지.”

준휘와 눈을 마주치려 해도 슬금슬금 피했다. 이대로 두면 끝까지 제 속내를 숨길 준휘임을 알아서, 양손으로 두 볼을 고정했다. 말해. 괜찮으니까. 준휘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손을 잡고 내리려고 해도 완강한 승철의 태도는 꺾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코가 닿기 직전인 상태에서 말을 해야했다.

“...첫번째는, 내가 사형을 이제 온전히 지키지 못한다는 거.”

“왜?”

“몸에 상처가 생기면 아파요.”

“......인간의 몸이 된 거야?”

“회복이 곧장 되긴 하는데, 아파요.”

할 말을 잃었다. 너는, 내가 무슨 일이 생기면 온몸 던져서까지 구할 생각이었나. 묻기도 전에, 다시 말을 준휘가 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겨울 시험이 끝나면 무예 수장을 갖고 또 겨룰 거예요. 다들 여기 모일 텐데, 그 속에서 연습하긴 싫어요.”

“.......”

완전히 핑계였다. 준휘가 그걸 신경 쓸 생원이 아니었다. 활을 잡는 것이라 꽃밭에서 해도 괜찮을 텐데.

“그냥 지금 말 안하겠다는거네.”

“...나중에 이야기해줄게요. 지금은 좀, 확신이 안 서요.”

“그럼 이것도 나중에 하자. 일단 들어가자. 우리.”

“으음…. 그건 싫은뎅.”

그새 또 장난스러워진 준휘가 얄미웠다. 곰곰이 생각하는 척하더니, 제 입술을 톡톡 두어 번 두드렸다. 승철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뭐? 하고 물으니, 한 번 해주면 생각해본다는 답이 돌아왔다. 내가 못 할 줄 알고? 괘씸한 마음에 아예 양 볼을 잡고 두어 번 입술을 찍어눌렀다. 확실히 서당 안에 있으면 보는 눈이 많아 자주 붙어있질 못해 아쉬움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더 달라붙기 전에, 재빨리 몸을 뒤로 빼냈다.

...됐지? 가자. 팩 돌아서며 협도를 주웠다. 매번 할 때마다 부끄러워서 아주 큰 일 났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승철의 뒤로 준휘가 같이 가자고 소리쳤지만, 온통 얼굴이 달아오른 승철은 빨리 오라고 소리칠 뿐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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