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린] 365일의 핼러윈(순한맛)
365일의 핼러윈(순한맛)
린다, 처음 만났던 날 기억해요? 왜. 그날도 핼로윈이었잖아요. 친구들이 파티에 가장하고 갈 거라고 잔뜩 들떠서 나도 했었는데. 왜 그거 있잖아요. 팬텀.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하얀 가면을 쓰고 검은색 망토를 두르고...아, 기억나요? 맞아요. 왁스로 머리 넘기고, 빨간 장미도 하나 들고. 준비할 때는 정말 별 생각이 없었어요. 팬텀하면 어쩐지 가면에 장미꽃이잖아요. 포스터가 인상에 강렬하게 남아서였던 그랬나? 파티에 가서는 어디에 둬야할지 고민이었다니까요. 옷 주머니에 꽂자니, 망토 때문에 안 보여서 들고 온 의미가 없잖아요? 어디 빈 화병 있으면 슬쩍 꽂아놔야겠다 싶었죠. 그래서 카나페 먹으면서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다가, 그래요. 린다랑 마주쳤어요.
아직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기억나요. 그날의 린다. 파티에 뱀파이어 코스프레를 하고 왔잖아요. 머리에는 귀여운 박쥐날개가 달린 장식을 하고, 검은색 원피스랑, 빨간 리본 달린 망토랑. 검은색 장갑 낀 것도 잘 어울렸어요. 나랑 같은 카나페 집어서 당황했잖아요. 나는 어떻게 사람 손이 그렇게 예쁜가 싶었어요. 그렇게 나도 놀라서, 당신이랑 눈이 마주쳤는데 그래요. 녹색 눈동자. 당황해서 동그랗게 뜬 당신의 녹색눈동자가 너무 예뻐서, 나도 모르게 얼이 빠졌지 뭐예요. 첫눈에 반했어요. 그때랑 똑같은 말을 한다고요? 사실이니까 어쩔 수 없어요. 안 믿겠지만요 린다. 나는 그런 거 안 믿었어요. 첫눈에 반한다거나, 운명적인 사랑이라거나. 그런데 그 순간 알아버린 거예요. 아, 나는 사랑에 빠졌구나. 얼마나 다행이었게요. 사랑인 걸 알아서 머뭇거리지 않고 당신의 이름을 물어봤고, 내 이름을 말했고, 당신에게 고백했잖아요. 이제 와서 좀 늦긴 했지만,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지금은 알아요. 이상하게 볼 수도 있는데 내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줬잖아요.
그래도 놀라긴 했어요. 코스프레가 아니었던 것도 그렇고, 그때 컬러렌즈를 끼고 있었던 것도 그렇고. 녹색 눈이 아니라서 아쉽냐고요? 아니요! 반하는 건 계기일 뿐인데요. 매일매일 린다를 더 좋아하게 되어서 나도 무서울 지경이에요. 어떻게 어제보다 오늘 더 좋고,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스러울 것 같죠? 난 린다의 붉은 눈동자도 좋아요. 린다 눈동자 안에 내가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기뻐요. 그런데 그때 왜 녹색렌즈를 낀 거예요? 그냥 있는 편이 가장으로는 더 리얼했을 텐데. 옛날 생각이 나서요? 혹시 한 눈에 알아볼지도 모르니까? 하하, 그게 뭐에요.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
“그래서 오늘의 가장도 뱀파이어인가요, 린다?”
“빈센트는 뱀파이어에게 목을 물어뜯기는 가련한 청년 가장을 했나요?”
“주문부터 외워요. 이상하게 어제 오는 길에 사온 호박모양 쿠키가 포장지만 남기고 사라져서, 주문을 들으면 나도 어쩔 도리가 없거든요.”
“그거 맛있었는데, 어디서 산거예요?”
“항상 케이크 포장해오는 곳이요. 노란색 벽돌에 빨간 지붕. 오늘은 핼러윈이니까 특별히 예요. 아무리 내가 건강해도 목에 난 상처는 잘 아물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평소에는 안 조르잖아요. trick or treat. 과자는 준비했나요?”
“이런, 깜빡 잊고 준비하지 않았네요. 어쩔 수 없지. 그래서 어떤 장난을 준비했나요,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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