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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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잊고 사는지도 알지 못한다.

뭔가를 잊고 있다는 느낌만 은은하게 들 뿐이다.

몇 년 전까지 그렇게 큰 소동이 있었는데도.

모두가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이제는 나조차도 그의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갑자기 내가 사라지면 어떨 것 같아?“

밥이 맛있는데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하니.

연진은 그런 애였다.

상상도 못 한 곳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홀연히 사라질 것 같은 아이.

고등학교 2학년, 초여름 날 전학온 연진은

당일부터 무리 속에 들어가 마치 제 자리였다는 듯 사람들 속에 녹아들었다.

모두가 그 아이를 좋아했다.

특별히 뛰어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미모를 가진 것도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연진은 아리따웠다.

그렇다고 해도 연진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건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였다.

내성적인 나는 늘 교실 뒤편에서 창밖만 바라봤으니까.

우리는 그렇게 말 한마디도 섞지 않고 방학을 맞이했다.

방학을 했다 해서 마음 편히 놀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나는 공부를 안하는 학생에 속했고, 선생님은 그런 학생들을 가만두지 않았으니까.

성적이 낮은 학생들은 방학에도 학교에 나와 보충수업을 해야만 했다.

집에 있어도 덥기만 한 여름방학에 에어컨이 빵빵한 교실에 있을 수 있다니 오히려 좋았다.

하지만 연진은 보습이 그렇게도 싫었나 보다.

웬만하면 선생님들과도 친한 연진이었는데, 보충수업에 결석하는 날이 잦아지자 선생님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점점 언성을 높여가며 연진과 선생님이 다투는 날이 많아졌다.

안 그래도 더운 날에 남들이 얼굴 붉히며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것도 어지간히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방학 중이라 출석 체크를 설렁설렁하셨기 때문에, 난 연진이가 화장실에 갔다거나 보건실에 갔다거나 심부름을 갔다는 등의 거짓말을 했다.

평소 조용히만 있던 내가 하는 말을 믿지 않을 선생님도 없었다.

너도 말을 할 줄 알았구나 식의 반응이었지.

평생 들키지 않을 것 같았던 거짓말은 얼마 후 들통나고 말았다.

연진이에게.

내가 자신을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안 연진은, 나와 가까워지려 했다.

그렇게 우리는 빠른 속도로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연진은 종종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하는 아이였다.

자신이 사라지면 어떨 것 같냐니.

네가 사라진대도 난 절대 잊지 않을 거야, 라고 말했지만.

지금 와서는 절반 넘게 잊어버렸으니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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