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두 분은 언제 처음 만나셨나요?"
의뢰도 없고 한가해진 오후, 간식을 먹으며 각자 시간을 보내던 도중 토키가 질문을 던졌다. 의자에 몸을 파묻고 부적들을 확인하던 천룡도, 자신의 검에 식을 새기고 있던 고요도 움직임을 멈추고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학교에서." 하고 고요가 먼저 대답하고는 다시 식을 새기는 일을 시작하자 이번에는 토키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두 분은 처음부터 친하셨어요?"
둘 다 잠시 대답이 없다. 까마득한 과거를 보는 것처럼 잠시 허공을 보다가 먼저 입을 연 것은 고요였다.
"글쎄, 그랬나?"
"그랬나는 무슨~. 하나도 기억 안 나?"
"뭐를?"
"토키군, 저거 봐. 하나도 기억 못 하는 저 얼굴~."
일어난 천룡이 토키의 곁으로 가 그 어깨에 팔을 두르며 능청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 처음 봤을 때도 저런 얼굴이었다. 만사 아무것도 상관 안 한다는 듯이 무표정에 가까운 표정으로 있었지. 그때에는 학교도, 던전들도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지금보다 더 혼란스럽고. 그 혼란 속에서 자신과 고요는 처음에는 그리 친하지 않았다.
"이런 말 스스로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학생 시절에 주목을 좀 받았지."
"그래서요?"
"저 녀석은 뭔가 당시에 만사 아무것도 내 알 바 아니라는 듯이 떨어져 있었던 녀석이라 노는 무리가 다르다고 할까 그랬지?"
"그거, 약간 아싸랑 인싸 같은 느낌인가요?"
"그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 아니, 발음까지 왜 그리 정확한데? 아무튼 그거랑 비슷하기는 했지."
"어떻게 친해지신 거예요?"
가만히 있던 고요가 그러게? 라고 되물었다. 정말로 기억 못 하는 건지 아니면 기억 안 하는 척하는 건지 모르겠네. 천룡은 서운한 사람인 것처럼 우는 소리를 내며 토키를 끌어안았다. 언제더라, 한 번은 아직 작은 던전에 실습을 나간 적 있다. 같은 나이니까 라는 이유로 한 조원이 되었지. 던전 안에 별거 없어서 설렁설렁 하다가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무슨 대화 했는지는 나도 기억이 안 나네. 그 뒤에는 인사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졸업도 하고 같은 길드로 가고 그러다가 사귀었지."
-그래서 언제부터 좋아했던 건데?
"아? 네가 그걸 왜 물어보는 건데?"
"기억 안 나."
가만히 있던 고요가 검을 내려놓고 대답하자 천룡이 약간 심통 난 얼굴을 보이더니 손을 뻗어서 고요의 손을 잡았다.
"그럼, 내가 그날 한 말도 잊었나 보지?"
"그걸, 어떻게 잊어."
천룡의 시선을 피하면서도 잡은 손을 마주 잡으며 고요가 대답했다. 언제부터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좋아하게 되었다는 걸 자각했다. 반짝거리고, 모두에게 칭찬받는 그를 좋아해서, 그가 자신에게 해주는 것이 그냥 보통 친구의 의미라고 생각했는데, 주변에서 우리들 보고 사귀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냥 넘겼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룡이 우리들 사귀는 거 같다고 했을 때는 숨기지 못했다.
"한참 대답 못 하고 있길래 내가 틀린 줄 알았는데 그때도 이렇게 손잡아줬잖아."
"애 앞에서 부끄럽게 자꾸 옛날이야기 하지마."
"어이구, 새삼스레?"
'사이가 정말 좋구나.'
토키는 제 몫의 커피를 홀짝이며 둘의 속삭이며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근데 나쁘지 않다. 드라마 보는 기분이기도 하고, 자기 집에는 저런 게 없었으니까. 옆에서 키츠네가 헛구역질을 과장되게 하고 있는 것도 조금 웃긴 모습이기도 하고 말이다.
"근데 갑자기 왜 이런 걸 물어본거야?"
"그냥 궁금해서요. 저희 부모님은 정략혼이었거든요."
요새 시대에 정략혼이라니. 아니, 요새 시대라서 가능한건가. 괜히스레 토키를 양쪽으로 끌어안는 두 사람을 보면서 키츠네는 옆에서 다시 한 번 얼굴을 구기며 욕을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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