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숲속에 발을 끌며 걷는 소리만이 맴돌았다. 새도, 동물들도, 심지어 벌레들까지 그 발걸음의 주인에게 겁을 먹고 숨을 죽이고 있었으나, 정작 그는 숨을 헐떡거리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 점차 느려지는 속도에 따라 푸르른 풀잎 위에 뚝뚝 떨어지는 붉은 핏방울이 점점 큰 원을 그렸다. 비틀거리는 몸은 몇 번을 더 휘청거리다가 결국 붉은 웅덩이
푸른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다. 쵸로마츠는 그저 새파랗기만 한 하늘을 올려다보다 눈부신 태양 빛에 눈을 찌푸렸다. 아직 여름이라 하기에는 애매한 시기지만, 기온만큼은 여름이라 해도 믿을만한 5월의 어느 날. 쵸로마츠는 얼음을 넣은 컵에 보리차를 부었다. 위로 동동 떠 오른 얼음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금이 쩍쩍 갈라졌다. 오늘은 몇 분 만에 오려나. 5
"하아..." 쵸로마츠는 걷다가 말고 안경을 벗고선 제 눈가를 꾹꾹 눌렀다. 일할 때는 몰랐는데 온몸이 뻐근했다. 움직일 때마다 뚝뚝 소리가 나는 목을 주무르며 쵸로마츠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맡은 아이돌, 하시모토 냐의 첫번째 TV 고정 프로그램 촬영이 끝났다. 항상 게스트로만 참가하다가 고정 출연진이 된 것은 처음이었기에 냐쨩에게는 큰 찬스였다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다. 미도리토는 봄 햇살을 받으며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추웠던 겨울과 매서웠던 꽃샘추위가 물러나고 드디어 봄이 찾아왔다. 하얀 눈이 한가득 쌓여있던 미도리토가의 정원도 푸르른 잎이 돋아나고 몇몇은 이미 꽃망울을 터트린 후였다. 조금씩 여러 색채로 물들어가고 있는 정원을 보며 쵸로스케는 살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그의 시선이 정원에 있
하늘에 떠있는 구체가 점점 커진다. 도망가지 않으면 큰일난다. 모두 본능에 따라 달아날 때 단 한 사람만이 그 아래에 서있었다. 쵸로마츠. 목이 바짝 말라 목소리가 갈라졌다. 쵸로마츠는 그 어떤 위험도 느끼지 못한 건지 멍하게 자신의 자의식을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에선 어떤 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공허했고, 허무했다. 높이 떠있던 자의식이 쵸로마츠를 향해
#트친_연성_내_스타일로_리메이크하기 이코님 연성 보고 작성 아카츠카 고등학교 60회 문화제날. 평소엔 수업으로 조용해야할 학교가 시끌시끌하다. 교문은 학생들이 몇날며칠 공들여가며 꾸민 아치가 세워져있고, 학교 건물로 향하는 길목에는 각 반에서 만든 입간판이 수두룩하게 세워져 있다.건물 안도 마치 전시관인 것처럼 각 반의 테마에 맞춰 개성있게 꾸며져 있
사랑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될까. 어느 TV 방송에서는 유통기한이 2~3년 정도라고 했다. 사랑의 호르몬인가 뭔가의 수명이 그 정도라면서. 호르몬 같은 건 잘 모르겠지만 그 말이 정말 맞을지도 모르겠다. 3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오소마츠형과 사귄 지 어느덧 3년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오소마츠형과 사귀게 된 게 마냥 좋고 행복했다. 동성에 근친에
전편 [오소쵸로]꽃이 지고 피는 순간 "오늘 날씨 참 좋다. 그치? 쵸로스케." 빙긋이 웃으며 오소마츠는 비석을 쓸었다. 맨질맨질한 돌 표면은 햇살에 달궈져서 적당히 따뜻했다. 오소마츠는 쪼그려 앉아 비석과 마주 보았다. 마치 쵸로스케가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처럼. 손가락 끝으로 비석에 새겨진 쵸로스케의 이름을 덧그렸다. 정말 사랑했다. 사랑한 만큼
이코님 썰 기반 작성 "운이 좋았죠." 어떻게 아이돌로 데뷔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인터뷰어는 한 번 웃고는 그렇지 않다며 멋진 아이돌이라고 나를 칭찬해주었지만 멋쩍은 웃음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멋진 아이돌이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 억지로 올린 입꼬리가 떨렸다. 아이돌을 존경하고, 아이돌이 되고 싶어 노력한 건 맞다. 그러나
아주 오랜 옛날부터 나에게 꽃을 바치던 가문이 있었다. 차라리 먹을 거나 달라며 짓궂은 짓도 해보았지만, 오히려 더 정성껏 꽃을 바치길래 그만둔 것도 벌써 몇백 년 전. 아마 오늘도 어김없이 신사에는 이름 모를 꽃이 올라올 것이었다. 딱히 꽃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굳이 좋다, 싫다 중 하나를 고르자면 싫어하는 쪽이기는 했지만. 수명이 정해져 있지 않은 나
"Trick and Treat!" 밑도 끝도 없이 자신에게 달려와 해맑게 웃는 오소마츠를 보며 쵸로마츠는 그저 눈을 깜빡였다. 장난기로 가득한 입에는 뾰족한 송곳니가 덧보이고, 평소에 입던 붉은 후드 대신 안은 붉고 겉은 검은 망토가 그의 목에 둘러져있었다. 붉은 리본은 한 쪽만 길게 늘어진 채 덜렁거리고 있고, 마찬가지로 붉은 셔츠 안에 자리한 새하얀
전편 [오소쵸로]동경, 선망, 애정 上 [오소쵸로]동경, 선망, 애정 中 [오소쵸로]동경, 선망, 애정 下 "네, 이걸로 프루티의 오소마츠씨와 시트러스의 쵸로마츠씨의 총정리 영상을 살펴봤는데 두 분 기분 어떠신가요?" MC의 상큼한 멘트와 함께 카메라가 우리 쪽으로 향한다. MC들과 우리와 같은 출연진들 역시 몸을 틀어 우리를 바라보았다. 집처럼 아늑
전편 [오소쵸로]동경, 선망, 애정 上 [오소쵸로]동경, 선망, 애정 中 얇게 눈꺼풀을 덮는 빛에 느리게 눈을 떴다. 낯선 천장에 잠시 여기가 어딘가 혼란스러운 사이 카메라의 빨간 불빛과 눈이 마주쳤다. 맞다. 촬영 일정 때문에 어제는 여기서 잤지. 그렇다면 내 뒤에 있는 건... 갑자기 등에 닿는 온기가 낯설게 느껴진다. 뻣뻣한 고개를 겨우 돌려 뒤를
전편 [오소쵸로]동경, 선망, 애정 上 "미치겠다..." 오랜만에 코디가 준비한 옷이 아닌 편한 후드 차림으로 탁자 위에 널부러졌다. 데뷔 후 첫 쉬는 날이지만 신나기 보다는 지쳐서 움직일 기력도 없다. 습관적으로 틀어놓은 TV에서 시트러스나 프루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움찔거리는 내가 싫다. 살짝 눈동자만 올려 TV를 보면 아니나 다를까 생글생글 웃
※유의사항 - 아이돌 오소쵸로 - 프루티 오소X시트러스 쵸로 - 시트러스(쵸로마츠, 쥬시마츠) 이외에는 남남 - 새잎마츠 비중이 많지만 어디까지나 형제애입니다. 그는 빛나고 있었다. 끝도 없이 넓은 무대와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서. 아니, 오히려 그 작은 몸으로 그곳을 압도하고 있었다. 무대 위를 자유롭게 활보하며 매혹적인 목
노래 소리가 들렸다. 나직하고 어설픈 멜로디가 가을 바람을 타고서. 아무도 없는 학교에 울린 노래는 무섭기보다는 오히려 신비로운 기분이 들었다. 미성에 이끌려 마츠노 오소마츠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 걸음, 두 걸음 걸을 때마다 소리에 선명히 색이 입혀진다. 하얀 색 교실문을 앞에 두고 오소마츠는 멈추어섰다. 당장 문을 열어 누가 노래를 부르고 싶
"어이, 오소마츠." "우으..." "야, 임마! 안 일어나냐, 쨔샤!" "뭐야, 치비타~ 손님한테." "손님은 얼어 죽을. 네 놈은 웬수야, 웬수! 취했으면 주정 떨지 말고 집에 가서 곱게 자라?" "진짜 너무하네..." 바닥에 잔잔하게 남은 맥주병을 끌어안고 엎드러졌다. 어묵 냄새를 듬뿍 머금은 열기와 칙칙한 한숨이 내 머리를 덮는다. 일부러 모른 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