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아이] 마찬가지로평화로웠던그들의어느날 후편
2020. 1. 22.
에서 이어지는
의 완존 짧은 외전 격인.. 첫 번째 후편입니다(구구절절)
“안 와도 된다니까.”
“그래도.”
아이메리크가 깁스를 푸는 날이다. 어차피 반깁스였으니 이 날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에스티니앙도 알고 있고, 아이메리크도 그렇게 말했지만 꼭 병원까지 따라오고 싶었다. 어쨌든 에스티니앙의 ‘과보호’가 끝나야만 하는 공식적인 날이므로.
“네가 이렇게 과보호하는 타입인 줄은 이번에 지겹게 알았다.”
밉지 않은 눈을 흘기며 아이메리크가 투덜거렸다. 그걸 보고 낄낄 웃었다.
“솔직히 이번에 네게 해줬던 일들을 어느 정도 돌려받은 기분이기도 해.”
깁스하던 2주간, 에스티니앙이 생각해 봐도 꽤 많은 일을 해줬다. 처음에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마’라며 염려하던 아이메리크도 ‘누가 보면 내가 중환자인 줄 알겠어’며 넌더리를 낼 정도였다.
하지만 에스티니앙만큼은 지나치리만큼 만족스러웠다. 얼마 전 주말, 느지막이 일어난 아이메리크가 아침을 받아먹고 나서 에스티니앙이 설거지하는 동안 소파에 앉아 졸던 모습을 봤을 때는 어찌나 뭉클하던지. 이 녀석, 이제는 미안하지도 않구나 싶었고.
제 앞에서 그저 받는 것에 익숙한 아이메리크를 얼마나 꿈꿔왔던가 싶기도 했다.
“에스티니앙, 진료실엔 안 들어올 거지?”
“깁스 더 하라는데 빼겠다고 억지 쓸 거라면 따라 들어가고.”
“그랬다간 네게 언젠가 들켜 많이 혼날 테니 안 그럴 거다.”
물리 치료를 위해 왔을 때 본 진료에서 경과가 좋았다니 아마 그럴 일은 없겠지. 그래서 따라 들어가진 않을 예정이다. 지겹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으쓱이는 아이메리크를 보고 웃었다.
곧 아이메리크가 불려 진료실로 들어갔다. 걸어가며 ‘금방 나올게.’ 하고 한 번 손을 들어주는 아이메리크에게 ‘응’ 하고 잠자코 인사했다. 아이메리크의 왼손 어딘가가 잠깐 반짝인다. 아이메리크가 진료실로 들어갈 때까지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그가 사라지고서야 고개를 내려 제 왼손을 바라보았다.
아마, 아이메리크는 퍽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할 테지만 에스티니앙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멋들어지게 프러포즈하려고 몇 번을 연습했는데 한번 터진 울음은 수습이 안 됐다. 아이메리크가 함께 울었다면 차라리 덜 창피했을 텐데, 녀석은 끝내 웃기만 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아 ‘나랑 같이 살아줘’라는 말조차 아이메리크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꼭 끌어안은 채 해야 했다.
젠장, 다시 생각하니 더 민망하다. 그만 생각하자….
마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아이메리크가 나오고 있다. 과연… 별문제는 없었던 모양이다. 무사히 깁스를 풀고 팔걸이를 뺐다. 꽤 개운한 얼굴로 아이메리크가 웃으며 오른팔을 들어 보인다.
“이제부터가 중요해.”
“에스티니앙, 제발.”
아이메리크가 와서 곁에 앉자마자 말을 꺼냈다가 아차, 했다. 아. 끝내기로 했었는데. 그래도 말을 꺼낸 김에 할 말은 해야 했다.
“또 함부로 팔을 썼다간 후유증이.”
“알았다, 알았어.”
못 이기겠다는 듯 웃으며 손으로 에스티니앙의 입을 막는다. 어디까지나 기분 탓인데, 그의 오른손 감각이 퍽 낯설었다.
“내가 에스티니앙 네게 그동안 잔소리를 해놓은 게 있으니 참는 거다.”
“뭘 참았다는 거야?”
하지 말라며 입까지 막아놓고는. ‘너도 매번 싫다고는 했잖아.’ 어깨를 으쓱이며 아이메리크가 웃었다.
“가자, 깁스 푼 기념으로 파티를 해야지.”
에스티니앙이 조심스럽게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는 모습을 아이메리크가 바라본다. 그리고 습관처럼 에스티니앙이 아이메리크의 가방을 챙기는 모습도 바라본다. …딱히, 말리지는 않는다. 이제 깁스를 풀더라도 이 정도는 받아줄 모양이다.
“뭐 먹을까, 아이메리크.”
“음… 얼마 전에 네가 해주었던 라자냐가 맛있었는데.”
“그럼 그거 해줄까?”
이번에 제가 해줬던 일들을 어느 정도 돌려받은 기분이라고 했던가. 애석하게도 에스티니앙은 같은 기분은 아니다. 그래도.
이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많이 돌려줬다고 생각할 것도 같았다. 그래, 그런 기분이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