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모음

냥멜냥/ 그만둘 때

2023. 11. 28.

TYYYYYYYYYYY by 칙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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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는, 잠만 자는 친구 아닌가?

 

라고. 손에 머리를 괸 채로 한참 동안 일하는 아이메리크를 노려보던 에스티니앙은 생각했다.

 

자, 생각해 보자. 오늘 에스티니앙과 아이메리크는, 몇 주 만에 잡은 귀중한 약속임에도 아이메리크가 일이 복잡해졌다며 약속 시간을 미루고 미룬 끝에 늦은 저녁 시간에야 간신히 만났다. 그 늦은 저녁을 먹으며 술을 기울이는 동안에는 서로 신세 한탄을 하느라 바빴다. 너는 한가하니, 너는 그러다 과로로 죽겠다느니, 얼마 전과 그리 다르지 않은 타박을 주고받다가는 으레 그랬듯 아이메리크의 침실로 돌아와 섹스했다. ‘그만’ 하고 아이메리크가 예전과는 달리, 하지만 요즘에는 늘 그랬듯이 손을 휘저을 때가 되어서는 에스티니앙도 그럭저럭 만족한 후였으므로 그의 몸 위에서 물러나 주었다. 잠시, 나란히 누워 나른한 목소리로 대화를 조금 주고받다가 아이메리크는 침대에서 일어났고 침실에 딸린 책상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 …그것이, 에스티니앙이 연인 아이메리크를 만나겠답시고 몇 주 만에 이슈가르드에 돌아온 후 있었던 일의 전부다.

 

이래서는, 잠만 자는 친구 아니냔 말이다. 밥 먹고 술 마시며 나눈 대화도 신세 한탄 외에는 서로를 놀리고 장난친 게 전부였고 섹스하면서도 다정한 한마디 나누질 않았다. 섹스가 끝나고서도 부드러운 키스를 나누며 후희를 즐길 법도 한데 가벼운 터치조차 한번 없었지. 이래서는 연인이라고 할 수 있느냔 말이야. 심지어 에스티니앙이 평소와 달리 먼저 잠들어 버리지도 않고 팔에 머리를 괸 채로 저를 쳐다본 지도 한참인데 아이메리크는 한번 돌아보지도 않는다.

 

이거. ………아무래도 그만둘 때 아닌가? 서로를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괜히 구속해둘 때가 아니라, 지금처럼 심심할 때 밥 먹고 놀다가 섹스하는 친구 정도로 돌아가도 되는 때 아니냔 말이야. 이 녀석이나 나나, 그래도 되는 때 아닌가? 이렇게 논 것만 해도 몇 번이야. 이제는 연인이란 이름도 부담스러운 때가 아니냔 말이다.

 

충동이었으나, 후회할 일은 아닐 것 같았다. 그래서 에스티니앙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어이, 아이메리크.”

 

한참 열중해 서류에 무언가를 적고 있던 아이메리크는 곧바로 고개를 들지 않았다. 초, 혹은 분 단위의 시간이 지난 후에 아이메리크가 고개를 들었고 물끄러미 에스티니앙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무감했다. 왜 저를 불렀냐는 듯한 사무적인 표정이었다. 얼마 전까지 저와 살을 섞었던 연인을 바라보는 눈빛은 아니었다. 에스티니앙은 제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요즘, 우리 너무 연인답지 않은 거 아니야?”

 

그러니까.

이제는 슬슬 연인은 그만두어도 되지 않겠냐고,

 

말을 하려고 했다. 눈을 꿈뻑이며 가만히 듣던 아이메리크가 난데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뭐, 뭐야? 웃을 화제는 아니잖아.

 

“미안, 미안하다. 에스티니앙.”

 

그리고 그 즉시 책상 앞에서 일어나서는 웃는 낯으로 이쪽으로 다가온다. 아니, 아니. 이런 반응을 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어리둥절한 와중에 당황스러워서 머리를 괴고 있던 팔까지 풀고 슬쩍 뒤로 물러났음에도 아이메리크는 거침없이 침대로 가까이 왔다.

 

“요근래도 괜찮았고, 오늘도 잘 노는 것 같기에 요즘에는 섭섭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내가 그간 계속 몰라줬군.”

“아니, 그 뜻이 아니라….”

 

에스티니앙이 당황하든 말든 가까이 쑥쑥 다가온 아이메리크는 어깨에 걸쳤던 모포가 떨어져 맨살이 드러나든 말든 침대 위로 올라와 에스티니앙의 얼굴을 붙잡고는 곧바로 쪽! 입을 맞춘다. 아니, 이런 걸 해달라는 게 아니었다니까. …에스티니앙이 당황한 손길로 제 어깨를 밀어내든 말든 아이메리크는 에스티니앙의 위로 올라타며 몸을 붙이고, 계속해서 쪽! 쪽! 입을 맞췄다. 아니, 그러니까!

 

“미안하다. 화 풀어. 내가 또 정신이 없어서 네게 소홀한 모양이다. 내일부터는 다시 잘해줄 테니까… 응?”

 

………그러니까.

이런 걸 해달라는 게 맞았…나? 아이메리크의 양손에 한가득 얼굴을 붙잡혀, 얼굴 한가득 쪽쪽 뽀뽀를 받으면서 에스티니앙은 생각했다. 얼마 전에도 이런 걸로 툴툴거렸더니 아이메리크가 잔뜩 잘해줘서 언제 그랬냐는 양 풀렸었는데. ………이번에도 그냥 그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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