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러스 8
공포 3779
C는 빗으로 한참이나 머리를 반복해서 빗었다. Z은 그저 의자에 앉아있었다. C는 Z을 힐끗 살폈다가 잔뜩 주눅이 들어버렸다. Z은 입을 다문 채로 별말 하지 않았다. C가 조심스럽게, 하지만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의도적으로 잔뜩 내며 겉옷을 챙겨입었다. Z은 역시 아무것도 안 들리는 체했다. 결국 C는 입을 열어 Z에게 직접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 Z.”
“왜요?”
“비켜주면 안 될까요?”
“어디서요?”
“그야…….”
C는 Z의 뒤편을 넘겨보았다. 그곳에는 현관문이 있었다. C가 시선을 조금 앞으로 끌어오자 의자를 가져와 문 앞을 가로막고 거기서 버티고 있는 Z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 하나와 의자 하나로 이뤄진 바리케이드였다. 사실 그 자체로는 뚫기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법을 준수하고 도덕을 지키며 유혈사태를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처리하려고 하면 좀 어려워진다. 게다가 상대가 C와 교제 중인, 그리고 자신의 많은 부분을 감당해준 Z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더더욱.
“현관문에서요. 나가야 하니까…….”
C가 쩔쩔매며 중얼거렸다. C는 한때 뉴스에서 희대의 살인마니 뭐니 떠들어댔던 사람이다. 많은 이들이 그 뉴스만 보고 그를 막연히 사탄 숭배자나 칼 든 미치광이, 혹은 냉혈한 사이코패스로 생각했다. 그러나 C에게는 그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면이 있었다. 바로, 의기소침함이었다.
하지만 C의 그런 면을 알고 있는 Z은 간단히 반박했다.
“싫어요.”
Z은 단순한 말로 C의 의지표명을 팍 꺾어놓았다. 그래도 C는 조금 더 노력했다.
“저 나가야 한다니까요? 간단한 아르바이트에요. 조금만 하고 곧 돌아올 거에요. 괜찮게 쳐주기로 했거든요. 지금 Z의 몸도 그렇게 좋은 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안 돼요.”
겨우 두 번 튕겼는데도 C는 왕창 깨진 것 마냥 깨져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물러나 방 안으로 들어갔다. Z은 그제야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겼다. 마음을 지배하던 짜증과 불쾌함이 물러나고 그 자리에 만족감이 들어섰다.
그 만족감은 30분이 흐르도록 C가 코빼기 하나 안 내비치고 잠잠하자 불안으로 돌변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Z은 의자에서 슬며시 일어나서 C가 들어간 방의 문을 열었다. 그 방의 창문이 열려있었고 안은 텅 비어있었다.
“C, 이 자식 튀었어?”
Z에게 저도 모르게 뒷골목 마피아 같은 음성이 나왔다. 물론 Z은 연쇄 살인마 하나 빼면 그런 자들과 관련이 없다. 단지 세상의 분노란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생기는 착각일 테다. 어쨌든 Z은 방을 뒤져보았고, 당연하게도 C를 찾을 수 없었다. 다만 C가 양해를 구한다고 급히 갈긴 메모만 나왔을 뿐이다. Z은 웃음이 나왔다. 그의 연인이 사랑스러워서 나온 웃음은 아니었다.
“하하, 이…… 바에서 처음 보는 주제에 ‘늘 마시던 거’ 같은 주문 했다가 구박 듣고, 잘 알지도 못하는 비싼 술 마셨다가,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돈 안 내고 사라지면서 가게 앞 길바닥에 피자나 그릴 녀석 같으니라고.”
Z은 메모지를 정성스럽게 구겼다. 가만히 곁에만 있어 달라고 했는데 왜 그걸 안 해주지? Z은 상황을 곱씹었고, 그럴수록 짜증이 부풀었다. 이 자식을 어쩌면 좋을까 고민하던 Z은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에 눈을 반짝였다.
C는 이유 모를 오한에 떨며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Z의 집 앞에서 심호흡했다가 문을 열었다.
“Z? 나 돌아왔…….”
그리고 집 안에는 피로 범벅된 시체가 있었다.
뭐든 반복되면 익숙해지는 법이다. 하지만 사람 시체를 6번 정도 봤다고 C가 당연히 시체에 익숙하리라고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5번은 C가 직접 죽인 것이었기에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C가 안 죽였기 때문이다. 시체를 만드는 일과 시체가 갑자기 나타난 일은 차원이 다르다. C 기준에서는 그러하다.
C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머리가 공황으로 가득차서 제대로 생각이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사고? 타살? 등으로 사람이 쓰러졌을 때는 어떻게 해야 했더라? 구급차가 먼저였던가, 경찰이 먼저였던가? 부르면 동시에 오던가? 그러고 보니 전에 C가 찔렸을 때 Z이 어떻게 했더라? 그때는 갑자기 찔려서 당황했는지 상황이 제대로 기억이 안 나는데…….
“……Z?”
C는 떨리는 목소리로 Z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쓰러진 Z이 고개만 돌려서 C를 보았고, 미소를 지었다.
C는 깨달았다. 지금까지 내 인생의 장르를 잘못 알고 있었구나? 그러니까 호러 슬래셔 스릴러 물인 줄 알았는데 좀비 영화였구나. 왜 이 사실을 이 나이 먹고서야 알게 된 걸까? 근데 그럼 역시 어디에 연락해야 하는 거지? 경찰과 병원은 좀비 사태가 발발하면 가장 먼저 망하던데. 좀비 바이러스의 근원이자 백신의 해결책을 쥐고 있을지도 모르는 연구소?
……가 아니지.
충격 때문에 그 새 안드로메다까지 날던 영혼이 돌아왔다. C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Z! 당신! 살아있지요?”
Z은 윙크를 보냈다. 검붉은 액체가 눈꺼풀에서 타고 내려와 흉터와 같은 금을 그었다.
“놀랐지요? 그러게 내가 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C는 기다시피 해서 Z에게 다가갔다. 다리가 풀려서 도무지 걸어갈 수가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 만진 Z의 피부는 따뜻했다. 사후경직도 안 일어났다. C는 눈물이 날 뻔했다.
“다행이야…….”
그런 C를 보며 Z은 짓궂게 웃었고, 곧 일어나서 앉았다. 멀쩡히 몸을 움직이는 모습에 C는 간신히 마음을 놓고 중얼거렸다.
“Z이 진짜로 죽은 줄 알았어요. 아니면 다시 정신 병원에 보내야 할 줄 알았어요.”
“당신 방금 뭐라고요?”
“어쨌든 정말…… 다행이에요.”
C는 Z은 꼭 끌어안았다. 맥박이 몸에서 몸으로 전해졌다. 살아있다. 살아있다는 증명이다. Z은 뭐라고 따지려다가 그냥 함께 C를 안아주었다. Z에게 엎질러져 있었던 붉은 액체가 C의 옷에 잔뜩 베어들었다. 제삼자가 본다면 곧장 졸도하거나 집에서 달려 나가 여기 살인 사건이 났다고 외쳐대도 이상하지 않을 광경이 되었지만, 당사자인 둘은 훈훈했다.
“다음부터는 봐주세요, Z.”
“생각해볼게요.”
“안 하겠다는 확답은 없는 건가요?”
“C도 안 나가겠다고 약속 안 했잖아요.”
“그럼 저도 생각해볼게요.”
“좋아요.”
C는 끌어안은 팔을 풀었다. 그러자 제 옷에 잔뜩 묻은 가짜 피를 발견했다, C는 가짜 피를 손끝으로 찍어보며 물었다.
“이거 정말 진짜 같네요. 이 피는 대체 어떻게 만든 거죠?”
“기본적으로 블러드 메리의 레시피를 활용했는데 거기에 레드 와인으로 양을 늘리고 메이플 시럽을 섞어서 색과 농도를 조절했지요.”
역시 바텐더였다. 음료, 아니 액체를 제조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바텐더가 아닌, 한때 이 집의 가정부에 가까웠던 C는 다른 방면을 보았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치우려고요?”
“…….”
가짜 피는 카펫에 잔뜩 스며있었다. 포도와 토마토 주스의 향, 알코올 냄새, 메이플 시럽의 단내가 한데 뒤섞여 춤을 추며 집안에 진동했다. 잠깐 맡기에는 나쁘지 않았지만, 오늘 저녁만 되어도 속이 좀 메스꺼워질 것이며, 다음날이면 벌레가 창궐하리라. 바에서는 취객들이 술을 쏟는 일이 한둘 있었던 것이 아닌지라, 물걸레로 쓸어버릴 수 있게 바닥을 싹 바꾼 지 오래였다. 그래서 그 부분을 생각 못 했던 Z으로서는 드물게 말문이 막혔다. C가 강경하게 말했다.
“싹 치워요.”
“……네, 그러지요.”
C와 Z은 카펫을 버리고, 집의 바닥에 물든 붉은 색을 빼기 위해 한참을 고생해야 했다. Z은 일을 벌일 때는 뒤처리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중대한 삶의 지혜를 얻었다. 그리고 다음 장난 때는 꼭 고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붉은 물을 빼다가 한동안 손끝이 핏빛으로 물들어서 온갖 손님들에게 매니큐어를 발랐냐는 질문을 들었기 때문은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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