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현명
총 16개의 포스트
" 그렇게 얘기하니 더 궁금해지는구나. " 곱슬거리는 백발 : 처진 눈매 : 벽안 : 온화한 인상 : 단정한 차림 : 큰 키 : 푸른색 귀걸이 어머나, 나를 찾으러 온 거니? 기쁘구나……. 그리 말하며 카논은 온화한 낯으로 당신을 반겼다. 분명 순한 인상이지만 화려하고 눈에 띄는 미인이다. 또한 웃는 낯과 선한 느낌으로 외모를 통해 와닿는 진입장벽은
지금은 스물두 살이 되었겠네요! 스물둘의 애쉬는 예전보다 조금 더 성숙했고 스무살 그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전투를 잘하게 되었어요. 지금쯤이면 어지간한 스펙의 영물은 단신으로 이깁니다. 그러나 여전히 어린 티가 납니다. 낯가림도 여전합니다. 다만 곤란한 일을 능숙하게 넘어가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생겼으며 탕비실의 간식을 많이 먹게 되었습니다. 그
적막한 공간에서 오로지 시계 초침 소리만이 났다. 그는 그 초침 소리를 처음 들었다. 소리가 나는 시계인 줄 처음 알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 집에서 제법 오래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문득 이질감을 느꼈다. 한 번 자각한 위화감은 걷잡을 수 없이 몸집을 불려, 그는 문득 자신이 자리한 공간 자체가 낯설었다. 원래 이렇게 집이 넓었나. 집에 처음 들
대관절 뭐가 괜찮다는 건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그러나 후회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훌륭한 달변가처럼 말하는 재주는 타고나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는 또다시 길게 침묵했다. 당신은 어쩌다가 나비의 모습으로 살고 싶어했나. 당신을 감화시킨 사람들을 어떤 이들이었을까. 그는 당신의 삶의 궤적을 모두 알고 이해할 수 없다. 설
…… 대충 여덟 명이었던 것 같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하루 종일 수프를 몇 방울 먹었고 머리카락을 몇 가닥 흘렸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 그만큼 옛 연인의 숫자는 무가치했다. 헤어졌다고 속상한 것도 한두 번이지, 여덟 번 까고 나니까 감흥도 없었다. 그러니 한잔 하자고 제 친구를 불러내는 건 지극히 관성적인 일이었다. 언제나처럼 불러낸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단순한 직장 동료 내지는 만나면 점심 같이 먹는 사이에는 그 정도의 세세한 이해가 필요하지는 않다. 원래 그런 법이다. 그리고 흰나비는 누구보다 그 ‘선’을 확실하게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고. "저에게 연애 상담 같은 걸 받으시겠다고요?" 세상 무너질 것 같은 얼굴로 불러내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용건을 들
인간의 세계에 온 지 백 일이 넘었어요. 이곳의 사람들은 백 단위의 숫자를 기념한다고 하더라고요. 이미 알고 있지요? 그는 정갈한 글씨로 편지의 첫머리를 적어냈다. 이곳 사람들의 언어도, 글자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언문은 그가 이곳에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이었다. 말과 글을 알아야 적응이 빠르니까. 언어에는 문화가 담겨 있기 마련이라, 그는 이미 수아의 나
다들 입만 열면 사랑, 사랑! 대체 그게 뭔데 그래? 일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리석은 사람이 왜 이렇게나 많은지. 사랑이 미래를 책임져 주나, 재산을 불려 주나? (수아의 사랑을 받으면 재산이 늘어나기야 하겠다만은 다들 그런 이유 같지는 않았다) 그저 한순간의 감정에 왜 이렇게까지 목을 매느냐는 말이지, 대체 수도에는 왜 이렇게나 멍청이가
"사랑이 무엇이든, 그 녀석들보다는 나를 더 사랑한다… 정도로 여기고 있다면 만족해요." 거짓말이에요! 사실 나는 이 정도로 만족 못 해요! 머릿속은 이미 난리가 났으나 적어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이고 말 뿐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일은 혼자 지내는 걸 익숙해했다. 부모는 그에게 무관심했고 북쪽 영지에는 어린아이
그리고 오늘, 열 번째 신부가 찾아왔다. 하늘님께서 나를 시험하려는 걸까, 혹은 나의 바람을 이루어 주신 걸까. '당신'이 다시 내게 돌아왔다면. 무엇이든 간에 이번에도 똑같이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을 거야, 내 곁에서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 주어야지. 당신만을 그리며 쓸쓸하게 지나온 시간을 더는 거듭하기 싫어. 그리고 이 모든
“그렇게 가기 싫어하더니… 잘 버텼어요.” 리지가 작게 웃으며 이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안은 리지의 무릎을 베고 길게 누운 채 이런저런 푸념을 늘어놓았다. 사람이 너무 많으니 피곤해요. 어울리지도 않는 근사한 옷을 입고서는, 익숙지도 않은 춤을 추고… … 그러다가 슬쩍 눈을 떠 위를 올려다보거든 부드럽게 휜 주홍빛 눈을 마주한다. 그래도 오늘 근사했어
“나 안 이상하지?” ”같은 질문을 다섯 번째 하고 있으니까 좀 이상한데….” 아, 내가 잘 보일 사람이 있단 말야. 그건 그렇고 정말 괜찮지? 일은 한 시간째 안절부절못하며 교실 한구석의 거울 앞을 떠날 줄 몰랐다. 머리가 괜찮다 싶으면 옷차림이 마음에 안 들고, 둘 다 괜찮다 싶으면 목소리가 어쩐지 어색하고, 그애를 떠올리면 어쩐지 거울과 눈도 잘
다고님 글 바로가기[0517] 뱀은 백지로 태어나 마녀의 곁에서 지내며 수만 권의 책을 읽었다. 그 서적의 필적들이 집대성되어 지금의 뱀을 이루었다. 무슨 동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끊임없이 무언가 알아내고 탐구하는 것은 뱀의 본능이었다. 마녀의 곁에서 시간이 남을 때마다 책을 읽었으므로 마녀 또한 종종 책을 구해다 주곤 했다. 소설과 시詩야말로 마음
ㅡ 부모님을 간절하게 찾고 있어요. 제가 여섯 살이 되었을 때부터 떨어져 지냈는데… … 그럼 잊어버리고 살아도 되지 않나? 일은 무감한 낯으로 티비 화면을 보았다. 자신의 사연을 늘어놓는 이의 표정이 슬프고 애틋해 보였다. 보통의 인간은 저런 상황에서 슬픔을 느끼는구나. 머릿속으로 받아들였으나 이해하지는 못했다. 당연하게도 그는 자신의 부모님을 알지 못했
“배우는 할 만 한가요?” 갑자기? 수아는 별 말을 하지 않았으나 꼭 그렇게 묻는 것 같았다. 그는 별다른 말을 얹지 않은 채 타오르는 모닥불에 눈길을 주었다. 타닥타닥 나무 타들어가는 소리가 퍼지는 온기만큼 부드러웠다. 그는 괜히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이리저리 쑤시며 심술을 부렸다. 그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 안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은 단 한 번도
줄곧 날씨가 어둑어둑하다 싶더니 기어코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축축하고 후텁지근한 게, 바야흐로 여름이었다. 여한일은 교문 앞에서 기웃거리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빗방울이 후두둑 쏟아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그 너머 저마다의 방식으로 비를 피하는 애들을 눈으로 좇았다가, 흠뻑 젖은 세상의 냄새를 새삼스럽게 여기기도 했다. 그렇게 해도 시간이 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