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섭호장] 열차 속 부외자들
읽으시기 전에
*아래의 글은 영화 <설국열차>의 세계관을 가져왔습니다. 무리한 설정이 당연히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준섭호장이지만 준섭태산도 포함되어있으니 한쪽 커플링 고정이시면 읽지 않는 걸 추천합니다!
*기울임체=일본어로 생각해주세요~!!
또 쓸데없는 짓 하네.
진은 후쿠다의 날카로운 말에 잠시 매만지고 있던 농구공을 내려놓았다. 농구공? 이건 더 이상 농구공이 아니다. 29인치 길이의 무언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좀 더 설명을 보태볼까? 이건 고무와 가죽으로 이루어진 공이다. 공은 맞지만 농구공이 아니다. 더 이상 세상에 농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입에 담아본다. 바 - 스 - 케 - 에 - ㅅ - 토-보-루. 진은 훗키의 대답하는 것 보다 당장 눈앞에 있는 공을 우선시했다. 누운 채로 공을 얼굴에 가까이 대고 있는데, 아, 더러운 천장이 보인다. 189cm 남자를 수납하기엔 너무 좁은 공간에 진은 피로를 느꼈다.
Basketball? 후쿠다는 열받을 정도로 능숙한 현지인의 발음으로 눈 앞의 일본인 진 소이치로를 의도치 않게 공격했다.
“나랑 있을 때는 일본식 영어 쓰기로 약속했잖아.”
“뭔 소리야.”
“バスケットボール. 따라 해 봐.”
“진진, 쓸데없는 고집 부리지 마…”
쓸데없는 고집부리는 건 네가 아니라 우리겠지.
“훗키.”
“어.”
“우리 또 농구할 수 있을까?”
그 말에 후쿠다는 진을 내려다보았다.
“진진, 너는 진짜 존나 이상한새끼야. 난 너 없었으면 그 단어 진작에 잊었어.”
진은 농구를 잊지 않은 인류. 그리고 그 옆엔 후쿠다가 있었다.
“네가 없었으면 아마 진짜로 잊었을 거야. 농구의 룰도, 능남에서의 기억도······”
둘이서 금방이라도 키스를 갈겨버릴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데, 적막을 찢고 외부인이 둘의 세계에 난입했다. 낡은 담요로 된 커튼을 손으로 열어젖힌 소년이 둘을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이 사람들 진짜 이상해… 소년은 진과 후쿠다의 사이에 빈틈이 생기자 바로 그 사이로 끼어들고는 말했다.
“둘 다 그런 외계어 그만 쓰라고 했죠? 열차안에선 영어를 쓰라고요!”
“하... 원숭이 등장.” 후쿠다는 좁아터지겠는 침대가 더 좁아터지게 되어서 갑자기 열이 올랐다.
“어어? 또 외계어로 말했다.“
후쿠다 킷쵸는 자기들의 음식을 손에 꽉 쥐고 있는 소년을 바라보며 중지를 올렸다. 소년은 그에 혓바닥내밀기라는 귀여운 대응을 했다. 진은 소년을 보곤 그제야 농구공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그리고 옆에있는 소년의 어깨에 팔을 감고 눈을 감았다. 한 사람이 누워도 좁게 느껴지는 침대에 세 명의 남자가 누워있으니 불편할법도 한데.
“훗키, 그만 놀리고 영어 써주자.”
“진진…”
두 사람이 이번엔 중간에 소년을 끼우고 금방이라도 키스를 갈겨버릴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소년은 그 분위기가 민망했고, 두 사람의 몸이 더 가까워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아무튼, 둘 다 저도 있을 때는 영어 쓰세요. 소외감 장난 아니니까!“
“네가 못 알아 들으니까 쓰는 거야.” 진은 또 일본어로 말했고, 후쿠다는 그걸 듣고 웃었다.
“아 진짜! 그럼 저도 모국어 쓸 거예요.”
오늘따라 염병하게 춥네 씨바거…
농구를 기억하고 있는 인류 2명, 진 소이치로와 후쿠다 킷쵸.
그리고 그 옆엔 농구따위는 전혀 모르는 전호장이 있다.
"아... 호장이 괴롭히고 싶다."
"곧 있으면 뭐라고 할 듯."
“진짜 외계어 듣는거 씨발이다...” 전호장이 둘의 대화를 또 가로막았다.
“씨발? 시바루? 너 지금 욕했지.” 진이 말했다.
“노시바루. 노쉬발. 킵고잉 이새끼야. 못 알아들을 줄 아나.“ 후쿠다가 맞받아쳤다.
“아 ㅆㅂ…”
진과 후쿠다는 18살에 열차에 무임승차한 일본인이다. 열차가 달리고 있던 나라에 우연히 여행 중이었던 게 행운이었다.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진과 후쿠다는 어른들의 배려에 열차에 먼저 올랐고, 다른 가족들은 열차에 오르지 못 했다.
그러고서 17년이 흘렀다. 이제 우린 고등학생이 아니다.
진은 머리를 매만졌다. 너무 자라서 짜증이 나려고 해… 진은 치렁치렁한 머리는 항상 불편하게 느껴졌고, 면도날로 머리를 치고는 했다. 피범벅이 되든 말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어쩔 수 없지, 가위가 없는 세상이니까. 진은 매일매일이 시장통인 자신의 구역에서 매우 큰 피로를 얻고 사는 사람이었다. 빈민굴과 같은 꼬리칸. 퍼스널 스페이스라는 개념이 사라진 안식처에서 진은 죽은 듯 살아간다.
“이번에 또 뭐 반란한다는데.”
“코쟁이새끼들 하여간 행동력은 알아줘야 돼…”
“······진진.“
“하지 마.”
“…나도 참가할까하는데.”
“싫어.”
어느날 진은 후쿠다의 침대에 태연하게 앉아서 농구공을 만들고 있었다. 진의 취미였다. 기차에서 할 짓이 존나 없어서, 진은 그냥 열차에 타기 전 했던 일 중, 가장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 같았다. 불행하게도 농구골대는 커녕 제대로 설 수도 없는 공간에 갇혀서 남는 가죽으로 공이나 만들고 있지만.
옆에 전호장을 두고. 전호장은 진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잠을자고 있었다. 코를 심하게 골면서. 진은 잠시 가죽을 내려놓고 전호장의 코를 막아보았다. 컥, 커어억… 코골이가 멈췄고 진은 손가락의 힘을 빼서 괴로운 표정의 호장의 숨을 쉬게 해주고 내려두었던 가죽을 다시 손에 들었다. 의미없는 뜨개질이 전호장의 얼굴 위에서 이어진다.
후쿠다는 그 상황이 상당히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지만 일단은 말을 이었다.
“양키들이 나 싸움 잘 하는거 안다고 같이 행동하자고 했어. 벌크업 한 티가 났나?”
“훗키. 그거 너 방패로 쓰려고 그러는 거야.”
“아니야. 전우애가 느껴졌어.”
“코쟁이 새끼들이 어지간히 목숨잃기 싫었겠지.”
"... 진진, 너 진짜 왜 그러냐?”
그 말에 진은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보냐는 눈빛을 쏘았다.
“가만히 있어도 반은 가잖아.”
“너 진짜 진 소이치로 맞냐?”
“너야말로 갑자기 칭찬 듣고 부들부들 떨고는 우쭐해져서 이야기하러 온 거 아니야?”
“안 되는 것에 저항하던 모습 어디 갔는데. 너, 노력하던 모습은 어디갔는데. 밖에 있었을 때 되든 안 되든 하루에 500개씩 공 던졌다고했잖아.“
“그건 바깥 이야기고, 등신훗키야.”
“무튼 너가 반대하든 말든 나는 참가할 거야. 앞칸 새끼들 뻗대고 총 쏘아대겠다 지랄하는 거 이젠 못 참겠다. 우리도 살아야지.”
우리도 살아야지.
진은 무릎에 누워서 침이나 흘려대고있는 전호장의 얼굴을 본다.
“너 죽으면 나랑 전호장 원온원 심판 누가 봐줄 건데.”
“…”
“너 죽으면 호장이는 덩크는 어디서 배우는데. 난 덩크 할 줄 몰라.“
"또 그소리야? 아직도 너 희망 품고 사냐?”
후쿠다는 진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얘는 진짜 언젠가 농구를 모르는 전호장에게 자기가 농구를 알려주고 함께 원온원을 할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후쿠다는 많은 생각에 머리가 아득해졌다. 당장의 반란에도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애가? 언젠가 밖에 나가서, 아니지. 지금 진의 머리엔 밖에 나간다는 생각도 없을 거다. 그냥 농구하고 싶을 뿐이야. 농구. 정확힌 해남대 부속고등학교에서 했던 농구. 진이 6번이었었지. 3학년에 마키라는 사람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센도랑 몇 번 다니는 걸 봤었지. 그리고, 키요타 노부나가... 후쿠다는 몇 년간 잊고 있었던 이름을 떠올렸다.
“진진. 쟤 왜 데리고다녀? 사실 전부터 물어보려고 했는데.”
“재밌어서…”
“재밌어서 네 밥까지 다 얘한테 주냐?”
“성장기잖아, 호장이는.”
“징그러워.”
전호장이란 단어가 오갔고 그걸 듣고 전호장은 흘리던 침을 진의 옷에 닦고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뭐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아무것도 아니야 호장아. 다시 자.”
후쿠다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진의 저 감정은 분명 가져선 안 되는 감정일 게 뻔했으니까.
진 소이치로는 서양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이 갑갑한 열차속에서 거의 반 미쳐가려 하고 있었다. 이미 미쳤는지도 모른다. 후쿠다 킷쵸는 진심으로 소꿉친구의 정신상태를 걱정했다. 진은 원래 외부 사람을 자신의 바운더리에 금방 들여놓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열차에 올라타선 완전히 마음의 문을 잠구어버린듯 했다. 이 열차엔 동양인이 많지는 않았고, 열차에 탄 직후 식량이 없어 미쳐갔다. 사람들은 식인을 하며 생존했다. 가장 힘이 없던 사람들부터 먹혔다. 아이들, 여자, 동양인... 사실 이것만 겪어도 반은 미친다. 실제로 미친 사람은 어차피 제정신으로 돌리기 글렀다며 제일 먼저 먹었지만.
후쿠다 킷쵸는 진 소이치로의 정신상태를 챙기기 위해 제일 노력했다. 다른사람들이 보기엔 매일 밤 쳐 우는 후쿠다 킷쵸가 문제로 보였을 것이다. 두고온 게 너무 많은 사람이었다. 후쿠다는, 정말로 두고 온 게 너무 많았다.
하지만 매일 밤 쳐 울어대는 후쿠다는 정상이다.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는 진 소이치로가 미친 새끼 인 거다.
진은 생존을 위한 교류 그 이상의 교류를 꺼렸다. 2년이 흐르고 성인이 되었을 때, 친하지 않았던 프랑스인이 건넨 다 썩어가는 맥주를 진은 바닥에 부어버렸고 그것은 완전히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진은 정말 고립되고 싶은걸까? 후쿠다는 대신 손이 미끄러진 것이라며 진을 해명하고 다녔다. 본래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변할 수 밖에 없었다. 영어도 배웠다. 생존을 위한 영어였다. 워터, 푸드, 바. 이거 3개만 알아도 사실 적당히 살아갈 수 있었다.
앞에 말이 좀 많은데. 정리하자면 진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랑 확실히 거리를 뒀다는 거고, 그게 이 열차에서 좋게 작용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진 소이치로는 죽은 듯 사는 것에 재능이 있었다.
전호장을 발견하기 전 까진.
바깥세상을, 그러니까 정확힌 열차 밖의 세상, 비가 내리는 세상, 햇볕이 뜨거워서 땀이 줄줄 흘렀던 세상, 맛있는 음식을 돈 주고 살수 있었던 세상, 벽이 없는 세상, 따뜻한 방이 있었던 세상, 다른 사람들과 불쾌하게 섞이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었던 세상, 몸을 마음껏 움직일 수 있던 세상, 키요타 노부나가가 있었던 세상, 농구를 했던 세상.
그 세상은 17년 전 모든 게 얼어버리고 사라졌다. 진 소이치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 아니,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세상을 사랑했던 진이었다. 열차안의 삶은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약했다. 일본에서 겪지 못 했던 경험들. 이런 밑바닥이 있었나? 진은 진심으로 자신의 삶이 부끄러워졌다. 자신이 모르던 밑 바닥. 그 바닥에 준비되지 않은채로 떨어졌다. 고함을 꽥꽥 질러대는 사람들, 규칙이 없는 사람들, 피를 튀기는 사람들, 농구가 없는 세상. 몸을 마음껏 움직일 수 있던 세상, 키요타 노부나가가 있었던 세상,
“노부나가…”
후쿠다는 진의 잠버릇을 알고 있다. 진은 매일 밤은 아니어도 꽤 자주 진은 키요타 노부나가를 찾았다.
나는 능남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진은 해남대 부속고등학교로 갔었다. 진의 교복이 멋져서 조금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거기서 진이 키요타 노부나가라는 아이랑 꽤 오랜 기간 교제했다고 들었다. 자기보다 한 살 어린 사람이랑 사귄다고. 후쿠다는 진의 사랑을 응원해 주었다. 어느 날, 후쿠다와 진은 서로의 가족과 함께 유럽여행을 가게 되었다. 진은 여행중에도 노부나가라는 아이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윌포드의 기차를 보았던 것도 그때쯤이었나. 후쿠다는 진의 사진을 많이 찍어줬고, 진도 후쿠다의 사진을 많이 찍어주었다.
진은 가끔씩 나에게 그때 자신이 여행을 가지 않고 일본에 있었다면, 하고 마음 아픈 말을 꺼내기도 했다.
17년 전이다. 벌써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 난 열차에 이제 적응해간다. 며칠뒤면 1년이 더 지날 것이다. 하지만 진은 17년 전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전호장이란 아이를 각별하게 생각하는 걸까. 진은 서른이 넘었다. 전호장은 자칭 20살이다. 후쿠다는 가끔 진의 양심이 어느정도 남아있을지 궁금해했다. 둘이 사귀리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각별히 생각하는 건 맞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진 상은 뭘 좋아해요?”
전호장이 가끔 이딴말들을 꺼낼 때 후쿠다는 마음이 철렁였다. 질투 따위가 아니다. 일단 진진이랑 몸을 섞긴 하지만, 그건 그거고. 연애 감정을 느낀 적은 없다. 진진이랑 진심으로 사랑하냐고 물어보면… 그건 아니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후쿠다는 자신과 진 사이의 거리를 알고 있었다. 아무리 동고동락해도 못 넘는 선 말이다. 물론 후쿠다도 넘을 생각은 없다. 후쿠다는 후쿠다의 삶을 살 거니까.
그런데, 전호장은 다르다. 후쿠다는 생각했다. 바깥을 그리워 하는 진과 안에서만 자란 애가 더 엮인다면… 그러면... 안되는 거 아닌가. 후쿠다는 이성을 유지하고 전호장에게 까칠하게 대했다. 자신을 무서워하면 진과 자신에게 더 다가오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전호장은 무서워하기는 커녕 후쿠다에게 더 달라붙었다.
“훗키 상.”
“훗키라 부르지 마. 그건 진진만 부를 수…”
“후쿠다 상은 너무 딱딱하잖아요. 아니, 저한테만 왜 이렇게 까칠하게 굴어요?”
다 널 지키려고 그러는 거다, 이 빡대가리 원숭이야…
후쿠다는 그 말을 내뱉기 전, 그래도 전호장이라는 한국인 이름을 가진 20살의 남자가 일본인 남자 진 소이치로에게 무슨 감정이 있을 줄 모르기 때문에. 잠시 입을 다물고 대화를 잇는 대신 바로 자기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싸움을 바라 보았다.
“전호장. 너는 진이 좋으냐?”
“엑, 티 나요?”
“너 딸칠때 니가 그린 진진 그림 보면서 딸치잖아…”
“아 씨발… 그거 진 상도 알아요?”
“모르겠지. 내가 그거 보고 며칠 동안 헛구역질을 얼마나 했는지 너가 알까?”
“꼴리는걸 어떡해요.”
“어… 그래 너 혼자 많이 꼴려하고 많이 좋아해라."
후쿠다는 진심으로 방금 전 질문을 한 것에 후회했다. 전호장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따지듯 후쿠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 둘이 사귀는 거 알아요.”
“그거 지금 진진이 들었으면 너 뼈 하나 나갔어.”
“아니, 둘이 사귀잖아요.”
“안 사귀는데?”
“섹스하는 거 봤어요.”
“…”
“제가 모를 거 같아요?”
“…”
“잠깐만. 진짜 좆같아질거같으니까 뭐라고 말 좀 해보세요.”
“세상엔 섹스만 하는 관계가 있는 거야…”
정말 미안하지만 앞칸이라면 모를까 뒷칸엔 더 이상 재미를 느낄 것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저 인간들도 저렇게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쓰는 건 아닐까. 이제 자신과 진에겐 인간이 최대 컨텐츠라는 걸, 후쿠다는 잘 알았다. 전호장도 아마 진의 컨텐츠겠지...
진진도 개미친새끼지만 전호장 얘는 더 이상한애다. 이 새끼가 순수한 애가 아니라는걸 받아들여야하는데.. 다 똑같은 새끼들이란걸 받아들여야 하는데. 후쿠다는 싸움을 말리다가 코피가 터져서 울고있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생각한다. 와 진짜 여긴 새롭게 좆같다… 전호장은 당장 달려나가 그 할아버지를 일으켜 세우고 피를 막아주었다. 후쿠다는 그 모습을 보면서 또 한숨을 내쉬었다.
인원 체크 점호 시간이 되었다.
전호장 곁에는 원래 같았으면 진이 있었을 거 지만, 진은 나타나지 않았다. 후쿠다와 전호장. 둘의 사이에 진이... 없네. 후쿠다는 벌써부터 불편함을 느꼈다.
“…내일 점호 때 커티스가 반란을 일으킬거래요. 그 덩치 크고 무섭게 생긴 백인 있잖아요.”
“알아, 바보야.”
“정말 아무감흥이 없어요? 그리고 자꾸 저한테 바보라 부를 거예요?”
하 내가 진진이랑 너를 생각하면 진짜 눈물이나올거같아서 그래… 후쿠다는 말을 꾹 삼켰다.
"반란 나갈 생각 접어.“
“예?”
“너 동조하면 진진이 어떻게 할 거 같아? 양키들한테 짓눌려서 눈이라도 터지면. 그거 치료해줄거같아? 네가 고작 거기에서 몸 좀 쓴다고 위인전에 실릴 거 같냐고. 총맞고 뒤질지 칼맞고 뒤질지 아무도 몰라. 저런 애들이 나대준다고 할 때 고맙다고 받아 먹어야 돼.”
“말을 왜 그렇게 해요…”
“너 진진이랑 섹스하고 싶지.”
“네.”
“그럼 시발 살아있어야 떡을 치든 애를 까든 할 거 아니야…”
“진 상이랑 저는 둘 다 남자라서 애 안 생긴다고 들었는데요.”
아 진짜 존나 참교육마렵다… 후쿠다는 전호장의 명치에 주먹을 꽂고 싶은 욕망을 애써 꾹눌렀다. 진이 자리에 없는 사이에 좀 패놓을까. 사실, 열차에 오르기 전엔 후쿠다는 이렇게 거친 사람이 아니었다. 이 열차에서는 모두가 거칠어질 수 밖에 없었다. 생존하려고 영어를 배웠고, 순응해야 하고, 부조리에도…
“나도 며칠 전에 진진한테 반란 동조한다고 했다가 뒤질 때까지 맞을 뻔 했어.”
“… 진 상이 때리기도 해요?“
후쿠다가 그 말을 듣고 화가 나 쏘아붙이려 할 때 진이 나타났다.
“커티스가 세상을 구하겠지.”
진이 뒤늦게 두 사람 사이에 비좁게 끼어들면서 말했다.
“내일 혁명이 일어나는 거, 나도 알아. 하도 많이 들어서. 나도 앞칸 애들 좆같긴 해. 근데 뭐 어쩌라고.”
“진 상…”
진은 점호를 위해 모인 사람들의 맨 뒷자리에 앉았다. 양 옆에 후쿠다와 전호장을 끼고. 앞줄 사람들이 언제나와같이 항의 하는 모습을 보며 진은 조용히 있는다. 전호장의 어깨를 꽉 붙잡고.
앞줄에 앉아 앞칸 관리자들에게 고함을 치는 사람들을 보며 진은 생각한다.
씨발 거 양키새끼들 존나 시끄럽네…
그때 전호장이 진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중얼댔다. 호장의 잔뜩 올라간 눈썹을 보아하니 썩 좋은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오늘 한두 사람 정도 맞아서 죽으려나. 후쿠다는 걱정스럽게 앞줄 사람들을 바라본다. 다행히 오늘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점호가 끝난 뒤 내일의 혁명을 위해 사람들은 모였고, 진진은 그걸 바라보다가 전호장을 데리고 자신의 안식처로 돌아갔다.
후쿠다는 진의 처소에 오늘은 가지 않기로 했다. 뭔가 자기가 좆같은 걸 봐버릴 거 같아서… 그러면 정말 진에게 정이 떨어져 버릴까 봐. 후쿠다는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반란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진에게 가는 게 아니면 자신이 향할 곳은 여기밖에 없다. 후쿠다는 진의 뒷 모습을 마지막으로 바라보고, 반란군 일행쪽에 가서 계획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지 말아달라고 했는데."
"..."
"훗키, 개새끼. 진짜 멍청한 새끼..."
매일이 시장같이 시끄러웠던 꼬리칸이 조용했다. 노약자를 제외하고,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전부 내일의 반란을 준비하기 위해서 맨 끝쪽의 꼬리칸쪽엔 아무도 오지 않았던 것 같다. 전호장은 진의 손을 잡고 조용히 칸을 걸어간다. 걸을 때 마다 소리가 울리는 군... 이렇게 조용할 수 있구나. 이렇게 쿵쿵 거릴 수 있구나. 호장은 처음 듣는 소리에 기분이 새로웠다.
그러다 진의 안식처에 들어왔다. 엄청나게 비좁은, 189cm의 남성이 겨우 반으로 구겨져야 들어가는 공간에 말이다. 여러 번 오염되고 닳은 그 장소 말이다. 전호장은 단 둘이 있는 순간이 좋았다. 멀대같은 준섭이 먼저 침대 위에 구겨져 눕고, 그 옆에 전호장이 눕는다.
“…”
“진 상, 오늘 잠이 잘 안 올 거 같아요?”
“응.”
"제가 옆에 있을게요.”
“그래…”
진은 비좁은 안식처에 전호장을 접어 넣는다. 서로의 숨결이 닿는다.
“우리 처음 만났던 날 기억해요?”
“…”
“진 상, 자요?”
“안 자.”
그 날을 어떻게 잊겠니? 진 소이치로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키요타 노부나가를 완전히 닮은 널 열차에서 마주쳤을 때, 내 기분이 어땠을 거 같아? 전호장은 기차에서 태어난 아이다. 부모님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 그럼에도 눈에 띄게 활기찬 아이었다. 어른을 잘 따랐고, 예쁨 받는 아이었다.
진이 전호장을 처음 마주친 건 전호장이 15살이 되었을 때. 진 소이치로가 평소와 같이 남는 가죽을 얻으러 다닐때였다. 밥은 고프지 않아도 농구공을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어서 가죽을 얻으러 다녔던 때가 있었다. 어느정도의 반항과 일탈을 정리하고 꼬리 칸에서의 위치가 잡혔을 때. 그때 전호장을 처음으로 인식했다.
꾀죄죄하고 어딘가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을 쿡쿡 건드리는 아이.
진은 전호장에게 유독 특별하게 대해 줬다. 가령 자신의 단백질 블록을 나눠준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맛있는 음식은 한 번도 안 먹어봤을 전호장이 맛대가리 없는 단백질 블록을 허겁지겁 먹을 때, 진은 진심으로 그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고 싶었다.
바깥세상의 음식같은 거. 자신도 이젠 맛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아이에게 그런 걸 한번이라도 줄 수 있다면… 노부나가가 먹었던 음식을 호장이가 먹어본다면. 어떤 반응을 할까? 진은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전호장이 진진and훗키 듀오 사이에 끼게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진은 할 일이 없으면 전호장이랑 대화를 했고, 더 할 일이 없으면 전호장의 곁에서 가만히 누워있었다. 전호장은 멋대로 모든 꼬리 칸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에게 들려주었다. 진은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어떨 땐 웃기도 했고, 어떨 땐 전호장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따금 후쿠다는 진의 평온한 표정을 보며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매일이 소란스러운 곳에서, 가장 소란스러운 아이 곁에서 진은 진정한 고요를 얻은 사람 같이 행동했다. 키요타 노부나가. 그 아이가 생각이 났다.
“...내일 반란이 일어난다고 했잖아요.”
“응.”
“저는 안 나갈게요.”
“…왜? 너라면 나가고 싶어할 줄 알았어.”
“이대로 이렇게 있는 것도 좋아서요.”
그건 네가 바깥세상을 몰라서 그래… 네가 밖을 몰라서 그래. 네가 몰라서, 진짜 몰라서 그래. 여기가 얼마나 열약한 곳인지 몰라서 그래.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버려서 그래...
진 소이치로는 말을 삭혔다. 키요타 노부나가랑 전호장을 겹쳐보면 안 된다는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자신이다. 전호장에게 농구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던 이유도 어쩌면 과거의 연인을 현재의 이 아이에게 보고싶어서 일지도,
“저번에 저한테 농구가 뭔지 알려주겠다고 했잖아요.”
“응, 호장아.”
“앞좌석에 가면 농구를 할 수 있나요?”
“아마도 못하겠지. 천장이 있으니까.”
“...그러면요, 어차피 못 하는 거면 전 그냥 여기서 진상이랑 있어도 돼요.“
그래도 돼요, 진심이에요. 그러고 싶어요.
진은 그 때 잠시 웃다가 울었다.
전호장이란 사람을 지금에야 처음으로 봐준 것 같아서.
"미안해..."
다음 날 점호에 진과 호장은 나가지 않았다.
그 대신 더 많은 대화를 했다.
농구가 아닌 이야기들을, 열차에서의 이야기들을.
사람들이 맞아 죽어가는 소리가 들려 올때면,
진은 조용히 담요 안으로 호장을 끌어들였다.
↓소장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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