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뵤/건뵤]1300도의 감정 下

도예가 박문대 X 배우 배세진

* 사별 소재 주의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죽는 게 최대의 불효라 하던데

그렇다면 상대보다 먼저 죽는 연인은 최악의 애인 아닐까.

죽는 계기란 건 사실 별거 없다. 어쩌다 운 나쁜 사고를 당해서. 큰 병을 얻어서. 아니면 마음이 메말라버려서.

류건우는 만약 자신이 죽는다면 마지막 이유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시기가 있었다. 도저히 살아가야 할 의미를 찾지 못했던, 찾아야 하는 이유조차 모르겠던 시기.

류건우는 회상한다. 만약 그때 그가 배세진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가 자신의 마음을 채워주지 않았다면 류건우의 마음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 한계까지 말라버려 그대로 스러졌을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류건우는 그에게 삶의 이유를 만들어주었던 배세진을 구하려고 몸을 던지다가 죽었다.

후회는 없다. 그리 길지 않은 삶이었으나 밑바닥에서 시작한 것치곤 나쁘지 않은 결과도 냈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제대로 된 정을 붙여보고, 사랑을 하고.......

만약 그가 죽어가던 자신을 배세진이 어떤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알았다면 아마 감상이 달랐을지도 모르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류건우는 즉사했다. 덕분에 고통도 못 느꼈으니 좋은 걸지도.

어쨌든 그는 죽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확실하게.

그런데 분명 죽었을 터인 류건우는 다시 눈을 떴다. 그것도 박문대라는 영문 모를 남자애의 몸속에서.

이건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게 틀림없다.


눈을 뜬 류건우, 아니 박문대가 상황을 파악하고 가장 먼저 한 고민은 먹고 살 방도였다.

죽었다 살아난 데가 몸뚱아리까지 바뀌어놓고 하는 생각치고는 매우 진부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원래 자아 성찰이라든가 삶의 이유 같은 건 입에 풀칠이라도 한 뒤에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적어도 류건우로서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봐서는 그랬다.

박문대는 외양으로 봤을 때 류건우와 닮은 구석이 없었으나 사정은 거기서 거기였다. 어렸을 때 부모를 잃었고. 몸 붙일 곳도, 마음을 기댈 데도 없고. 보통 빙의물 같은 데선 엄청 신분이 높은 집안의 자제라든가 초능력을 가진 인물의 몸에 빙의되곤 하던데 박문대에겐 놀라울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인지 적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갑자기 재벌 3세가 되어 경영을 해야 한다든가, 몸의 주인의 꿈을 대신 이루어줘야 한다든가, 모르는 인간들 속에서 빙의한 놈 흉내를 낼 필요는 없었으니 말이다.

박문대로 먹고 살 방도야 여러가지 있었지만, 결국 그가 관성적으로 택한 것은 도예였다. 뭐... 솔직히 절대다수의 예술가가 그렇듯 수입이 안정적이라 할 수는 없었으나, 해오던 걸 완전히 버리고 새 분야에 뛰어들 정도로 개척정신이 뛰어난 건 아니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몸뚱아리 한번 갈아 끼운다고 인생이 180도 바뀌는 쪽이 오히려 현실성 없는 것 아니겠는가.

다행히 그동안 뼈 빠지게 물레를 돌려댔던 게 남의 몸이라고 폼이 죽지는 않는지 류건우와 어떤 연관도 없는 도자기 공방에 들어간 그는 곧잘 적응했다.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해진 그는 비록 직업은 제멋대로 정해버리긴 했어도 박문대로서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원래 하던 스타일도 버렸다. 그것이 허락도 없이 남의 몸을 멋대로 차지해버린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속죄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된 게 역으로 제 발목을 잡게 될 줄은 몰랐다. 막 박문대 몸에 들어오고 살아갈 궁리를 하느라 바빴을 때는 몰랐는데 세상에는 배세진을 볼 수 있는 방법이 너무나 많았다. 인터넷을 켜도, TV를 봐도, 심지어 그냥 길거리를 걷다가도 광고판에 떡하니 배세진이 나와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당연하지. 배세진은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이름난 배우니까.

화면 너머의 배세진은 울거나, 웃거나, 어떨 때는 화를 내고, 가끔은 사랑에 빠지고..., 사이코패스가 되어있기도 하다. 천의 얼굴 배우답게 그는 항상 새로운 인물이 되어 돌아온다.

박문대, 아니 류건우는 배세진이 연기하는 모습을 좋아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가 더 인상 깊게 기억하는 것들은 조금 달랐다. 그의 기억 속의 배세진은 대본에 코를 박고 열심히 캐릭터 분석을 하고 있다가 제가 간식을 갖다주면 햄스터처럼 입을 열어 받아먹는다거나, 연기 연습을 도와주겠다고 나선 류건우가 발연기를 할 때 결국 참지 못하고 쿡 웃어버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화면 너머로만 볼 수 있는 배세진은... 생각보다 어색했다. 연기가 특기인 주제에 눈이 마주치면 언제나 얼굴에 감정이 다 드러났던 녀석이라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의 그는 LED 액정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지조차 못한다.

처음으로 그가 더 이상 류건우가 아니라는 현실을 자각했다.

충동적으로 그는 박문대로서 눈을 뜬 이후 처음으로 스스로 검색창에 배세진 이름 석 자를 입력했다. 글자로 나열된 정보의 나열 속에서 배세진이 사고 후에도 긴 휴식기 없이 영화 촬영을 마쳤고, 그 뒤로도 무난히 탑급 배우로서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치 그 정도의 사고는 아무렇지 않았다는 걸 팬들에게 보여주는 것처럼 당시 기사 속에 찍힌 배세진은 담담하게 웃고 있었다.

그의 연인이었던 류건우는 배세진을 구하고 죽었다. 후회는 없다. 없다고 생각했다. 사고는 언제나 예기치 않게 일어나는 것인데 둘 중 하나라도 온전히 무사하지 않았는가. 류건우는 그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알았다. 그리고 무사한 쪽이 배세진이라 다행이라고… 그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하지만 그가 미처 예측하지 못한 것은 류건우가 그대로 저세상으로 끌려가는 대신 남의 몸에 빙의해 아직도 녀석과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거지.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그의 얼굴을 볼 수 있고, 시사회라도 참가하면 실제 녀석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그는 이제 류건우가 아니었다. 배세진과 추억을 나누고 사랑을 속삭였던 그는 이 세상이 없는 존재였다.

게다가 그는 이미 박문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하지 않았는가. 오로지 류건우 본인의 행복만을 쫓아, 어쩌면 이미 그에 대한 마음을 정리했을지도 모르는 배세진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진짜 박문대에게도 배세진에게도 좋지 못했다. 그는 염치를 아는 인간이었다.

그러니 여기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배세진이 없는 곳으로.

그가 배세진을 생각할 수 없는 곳으로….


그런데 어째서 배세진이 자신을 찾아온 걸까.

선아현의 뒤로 익숙한 둥근 머리가 보이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니야. 알아봤을 리가 없어. 그는 짧게 숨을 들이키고 얼굴에서 감정을 지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했다.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면 그 자리에서 배세진을 돌려보내는 게 옳았겠으나 그럴 수 없었다. 웃기게도 배세진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도저히 돌아가달라는 말이 입에 붙지 않았다. 그렇게 배세진을 제 집에 들이고, 배역으로 천재 도예가 역할을 맡아 자문이 필요하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받아들여 주기적으로 만날 약속까지 잡았다.

'미친 건가.'

하지만 제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긴장이 풀린 듯 안도의 한숨과 함께 눈썹을 늘어뜨리는 배세진을 보고 천천히 커지는, 심장을 두드리는 소리에 박문대는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배세진을 향한 제 감정은 몇 년이 지나도록 아직 전혀 식지 못했다고.

한번 자각하기 시작하니 가슴 속을 울렁이는 감정을 제어하기가 더더욱 어려워졌다. 일부러 일거리를 늘리고 최대한 머리를 텅 비워보려해도 소용없었다.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 키우고 있던 개는 잘 있는지 쓸데없는 생각이 머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정말로 그가 던져야하는 질문으로부터는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배세진은 어째서 울고 있었는지....

왜 박문대를 매주 찾아오는 건지....

그리고 어째서 아직도...

"...왜 깨진 반지를 가지고 다녀요?" 

류건우가 처음 만들어줬던 반지를 가지고 다니는지.

정말 충동적으로 입이 열렸다. 말해놓고 후회했으나 이미 엎질러버린 물은 퍼담을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배세진은 마치 사랑스러운 무언가를 보듯 제 목에 걸린 반지에 시선을 보낸다.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도 좋아해요?" 

류건우가 죽은 게 언젠데. 잘 만들지도 못한, 이젠 제 역할조차 제대로 못하는 걸 가지고 다니는 거냐고.

"네."

그까짓 사랑이 뭐라고.

배세진의 대답에 박문대는 속이 메스꺼워졌다. 조금씩, 배세진이 제가 없는 동안 어떻게 살아왔을지 예상이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인터넷 기사에 나왔던 것처럼 배세진이 훌훌 털어내고 잘 살길 바랐다. 류건우는 가족이 아니니까. 얻은 상처도 곧 새로운 사랑으로 덮을 수 있을 거라고 그리 지레짐작했다. 배세진이 그럴 수만 있다면 자신은 평생 그를 보지 못한대도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현재, 그는 자신이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절절히 깨달아버렸다.

"제발 때려쳐요. 그딴 사랑." 

거칠게 입술을 짓씹듯 말을 내뱉자 배세진은 놀란 듯 크게 어깨를 움찔거리며 몸을 뒤로 물렸다. 지금 내가 뭘 하는 거지? 감정에 휘둘려 되는 대로 지껄여 배세진을 겁먹게 해버린 꼴이 영락없는 애새끼같았다.

하지만 박문대가 적당한 변명거리를 내뱉기도 전에 배세진은 마치 얇은 얼음 조각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라도 본양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우는 거예요?"

아. 젠장.


물레 위를 돌아가던 점토는 결국 미완성으로 남았다.

배세진은 그 후로도 쉽사리 울음을 멈추지 못하던 박문대 곁에서 안절부절못하다 그만 돌아가 달라는 그의 부탁에 고개를 푹 숙이고 짐을 챙겨 나갔다. 어째서 박문대가 우는 건지 이유도 몰랐을 텐데 나가기 전 미안했다는 말까지 남기는 그의 모습에 박문대의 기분은 더욱 바닥을 쳤다.

그날 밤, 박문대는 잠을 설쳤다. 침대 위에서 한참을 뜬 눈으로 지새우다 동이 틀 무렵 겨우 기절하듯 잠든 그는 다음날 늦은 오전에 멈추지 않고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힘들게 일어났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무언가 결심한 듯 입을 앙 다문 채 문밖에 서있는 배세진을 보고 제가 아직도 꿈을 꾸는 건가 싶었다.

"...?!?"

"실례할게요."

박문대는 당분간 배세진을 이곳에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워낙 그가 추태를 보이기도 했지만, 상대의 부정적인 감정을 기민하게 잡아내는 편인 배세진이라면 박문대가 배세진을 꺼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테니 그의 성격상 다시 박문대를 찾아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추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세진은 그의 예상을 깨고 성큼성큼 박문대의 집에 발을 들였다. 박문대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거실에 자리를 잡은 그는 가지고 온 가방에서 물건들을 꺼냈다. 

'이거....'

매우 익숙한 것들이었다. 당연했다. 모두 다 생전에 자신이 쓰던 물건들이었으니까.

마지막으로 배세진은 본인이 가지고 있던 것과 똑같지만, 좀 더 상태가 온전한 반지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게 다에요. 류건우의 유품은."

담담하게 배세진은 선언했지만, 탁자에 늘어놓은 물건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어딘가 씁쓸해보였다. 박문대는 이젠 기억도 못하고 있었던 제 고장난 옛 카메라에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배세진 쪽으로 돌렸다.

"적죠? 집안 구석구석 다 뒤져봤는데 그 사람 개인물품은 이게 전부더라고요."

"......."

"한 상자도... 다 못 채웠어."

유품을 내려다보던 배세진은 감정이 울컥 올라온 건지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침묵을 깨는 건 박문대였다.

"..이걸 왜 저한테?"

배세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그냥... 그런 예감이 들었어요. 전시장에서 그쪽의 작품을 보는 순간... 그쪽이 류건우를 알고 있을 것 같다는.... 그런 기묘한 예감이."

"...."

"바보같죠? 몇 년 전에 죽은 사람 흔적이나 찾겠다고 모르는 사람한테 멋대로 찾아와서 폐나 끼치고...."

박문대는 반사적으로 반박하려 입을 열었다가 입술을 꾹 눌렀다. 지금 배세진에게 하는 어떤 말도 희망고문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배세진은 마치 독백하는 사람처럼 말을 이어갔다.

"유품을 정리하다보니 알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가까이 있었는데 정작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는 걸."

그래서 더 놓지 못하는 건지. 배세진은 매우 조심스럽게 류건우의 반지를 손가락으로 쓸며 말했다.

"박문대 씨를 찾아온 이유는 딱 하나였어요. 당신이 만약 류건우를 안다면, 아무 거라도 좋으니까 그에 대해 말해달라고 부탁하는 거. 근데... 그쪽이랑 있으면 자꾸 이상한 착각이 들어요. 목소리도 얼굴도 다른데.. 이런 말 하면 안 된다는 거 알지만... 마치 류건우와 함께 있는 것 같아서...."

제가 드디어 미치기라도 한 걸까요? 배세진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박문대는 답하지 않았다.

이윽고 고개를 든 배세진은 눈가가 조금 붉어져 있었다. 자신은 괜찮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모양인지 입꼬리를 들어 올린 채였으나, 그래봤자 배세진을 오래 봐왔던 그에겐 배세진이 속으로 삼켰을 눈물이 그대로 보였다.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나는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어제 박문대 씨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거요?"

박문대는 당장이라도 배세진을 붙잡고 제가 사실은 류건우가 맞노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답지 않은 충동이었다. 하지만 억지로 목을 긁히고 나온 목소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짧은 물음뿐이었다.

그는 언제부터 이렇게 겁쟁이가 되어 있었지?

"저는... 여태껏 제 감정이 온전히 제 것인 줄 알았어요. 그가 이 세상에 없다한들 계속 사랑하는 건 제 마음이라 생각했죠. 근데... 아니더라고요."

"......."

"만약에 류건우가 홀로 남아 본인을 잊지 못하는 절 본다면 많이... 정말 많이 힘들어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 혼자 계속 그리워하고 있는 건 이기적이잖아요. 그래서.. 이 감정도 조금씩 식혀보려고요. "

정말로 좋아하면 놔주는 게 맞는 거니까. 배세진의 손에 다시 류건우의 유품은 상자 속에 들어갔다. 그동안 마음정리도 어느 정도 마친 것인지 배세진은 이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보였다.

"하고 싶은 말은... 이게 다예요."

말을 마친 배세진은 뒤늦게 박문대의 눈치를 봤다. 박문대는 자신이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다만, 그리 보기 좋은 몰골은 아닌지 배세진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덧붙였다.

"그, 흑심으로 접근한 건 맞지만, 박문대 씨 작품이 좋았다는 건 진심이니까...!"

"...알아요."

"...그, 그렇군요."

이 상황에서 그런 걱정이나 하는 배세진이 참 녀석다웠으나 박문대는 웃지 못했다. 정제되지 않은 감정들은 용암에라도 눌러붙은 듯 얽히고설켜 쉽사리 소화되지 않았다. 이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볼게요.... 실례했습니다."

 배세진이 몸을 일으킨다. 이대로 나가면 끝인가? 배세진은 원래의 화려한 배우 생활로, 박문대는 외부인이 오지 않는 산속 공방에서 그렇게 살아온 대로 다시 살아가는 건가? 이게 옳은 선택인가?

애초에 옳은 선택이라는 게 뭐지?

하지만 모든 생각에 앞서 박문대는 이미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물리법칙이나 다름 없었다. 물이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100도에서 끓어버리고, 1300도의 가마에서는 흙이 도자기가 되는 것처럼. 좋아하는 사람을 앞에선 이성적인 사고력도 멍청한 각오도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본래 사랑이란 그런 것 아니겠는가.

박문대는 막 현관을 나서려는 배세진의 손목을 붙잡았다.

"잠시만요...!"

숨을 몰아붙이며 외치는 박문대의 간절한 목소리에―

그가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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