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소설 TYPE / 오마카세 / 뮤지컬 더 픽션
녹음과 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음악 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전축만 있으면 아무리 깊은 산속이라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를 향유할 수 있었고 전파가 잡히는 도시에서는 라디오 한 대가 바이닐 백 개의 역할을 해냈다. 공연장은 안방 침대까지 밀고 들어왔고 인간은 비로소 현실이 아닌 소음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이제 막 새벽 다섯 시가 지난 작업실에는 내내 지직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그레이는 겨우 손바닥 두 개를 합쳐놓은 크기의 라디오를 온종일 틀어두었다. 정기적인 방송은 하루에 서너 시간뿐이었지만, 전파가 자기 몸을 일그러뜨리는 소리는 일종의 배경이 되었다.
와이트가 상체를 기울이며 종잇장 너머를 슬쩍 엿보았다. 조용하다 싶더니 양손을 타자기에 얹은 채 잠이 들었다. 와이트는 소리 없이 웃으며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협탁 위 라디오 볼륨을 줄이고 창고 방으로 향했다.
상체만 한 상자를 조용히 옮기려니 공력이 두 배로 필요했다. 이렇게까지 무거울 일인가? 평소에 운동 좀 해둘걸. 소용없는 후회도 정적에 파묻었다. 살금거리며 넓은 테이블에 상자를 올려놓던 찰나, 탁자 아래 보이는 시커먼 다리에 그만 으악! 하고 소리치고 말았다.
“뭐, 뭐야!”
그레이는 얼떨떨한 얼굴로 멜빵을 꼭 붙들었다. 와이트는 방금 본 다리가 그레이였음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귀신인 줄 알았네.
“작가님, 언제 깨셨어요?”
“창고 방 갈 때?”
“놀라라. 비밀이었는데.”
“뭔데 그래? 내 선물이야?”
상기된 얼굴로 질문하는 그레이에게서 겨우 시선을 떼어냈다. 마음껏 좋아하는 티를 내줘서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쑥스럽다 못해 부끄러웠다. 와이트는 상자를 열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작업실에 둘 물건이요.”
“근데 비밀이야?”
에잇, 잠깐 기다려 보시라니까요. 와이트는 공연히 투덜거리면서 포장을 벗겨냈다. 클래식한 디자인의 전축이었다.
“이걸 샀어? 이 비싼걸?”
“안 비싸요. 그리고 트리뷴 예산으로 사서 괜찮아요.”
“회삿돈으로 샀다고?”
“우리가 벌어다 준 돈이 얼만데요.”
와이트는 금세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턴테이블에 바이닐을 올리고 한 발짝 물러났다. 한 번 틀어보세요. 그레이는 손을 가볍게 쥐락펴락하더니 태엽을 천천히 감았다. 짧은 정적 후에 익숙한 재즈가 흘러나왔다.
“이거…….”
“방송에서 제목을 안 알려줘서 찾느라 한참 애먹었지 뭐예요. 그래도 레코드 가게 사장한테 불러주니까 바로 알더라고요.”
“고마워.”
“별말씀을요.”
색소폰 선율 사이로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
“근데, 노래를 불렀어?”
“아, 뭐……. 방법이 없으니까요?”
“내 앞에서도 해봐.”
“예?”
“해봐. 듣게.”
“아잇, 무슨 노래예요. 그리고 지금 새벽 여섯 시거든요?”
“듣고 싶으니까……. 아니, 와이트! 어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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