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도 사랑을 할 수 있나요? 1

외계인 최종수 X 대학생 기상호 / 종수상호 / 종상

_人人人人人人人人人人_

> 외계인을 믿으시나요?  < 

👽

>  그렇다면 절호의 찬스입니다! <

 ̄Y^Y^Y^Y^Y^Y^Y^Y^Y ̄

  

이게 무슨 사이트고? 기상호는 자신의 노트북 화면에 띄어진 유치하기 짝이 없는 디자인과 사기꾼 같은 문구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과제를 하다가 실수로 미끄러진 마우스 커서를 바로잡지 못하고 클릭한 결과였다. 외계인? 세상에 외계인이 어디 있다고. 그러면서도 기상호는 사기꾼의 냄새가 나는 이상한 사이트를 닫지 못했다. 외계인. 저 세 글자가 기상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고딕체로 화면을 꽉꽉 채운 문구 아래에는 입력 칸의 커서가 깜빡였다. 그 옆에는 '보내기' 버튼도 있었다.

" 도대체 뭘 보내는 기고. 메시지? "

기상호는 깜빡이는 커서에 몇가지 단어들을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근데 외계인이 우리나라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기가? 기상호는 이미 과제로 과부하가 걸린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아무런 해답도 찾지 못했다. 함 해볼까. 평소라면 피싱 사이트가 아닌지, 악성 바이러스가 깔리는 거 아닌지 의심부터 해볼 터였는데 이미 과제로 미쳐버린 기상호에게 그런 게 먼저 생각날 일이 없었다. 과부하로 무너진 경계 속에 남은 호기심이 멋대로 키보드를 누르기 시작했다.

2@#2306!

이건 나름 기상호의 아이디어였다. 외계인이라도 숫자나 기호는 알아보겠지라는 생각. 별 의미 없이 손가락 가는대로 눌러친 이상한 나열들을 뿌듯하게 바라본 기상호는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외계인한테 쓴 의미 없는 나열들이 닿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조금 이상해졌다. 몇 백 년 후에 자신이 최초로 외계인과 메시지를 주고 받은 인물로 교과서에 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꼬리가 스멀스멀 올라갈 때쯤이었다.

" 근데 저게 욕이면 어짜지? "

뭐, 별수 있나. 이미 보낸 메시지를 수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상호는 쓸데없는 생각과 함께 올라오는 걱정을 노트북 화면을 닫아버리는 걸로 마무리했다. 그게 욕이라도 설마 지구까지 찾아오겠나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안일한 생각이었다.

* * *

' 와, 저 햄은 누구고. 억수로 잘생겼네. '

기상호는 학교 캠퍼스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남성에게 눈길이 끌렸다. 비단 자신만 그런 건 아니었다. 남녀노소 길을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다들 멈춰 서서 잘생긴 새로운 얼굴을 들여다보기 바빴다. 저 잘생긴 사람은 누구야? 학교에서 처음 보는데 외부인인가. 수군거리는 사람들 중에서는 먼저 다가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몇 번 대화를 하더니 모두 꽁무니를 빼듯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 사람들은 한결같이 '웬 또라이한테 걸려서' 같은 표정을 지었다. 기상호의 옆 무리 여학생들 중에서도 한 명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다가갔다가 똥 씹은 표정으로 돌아오던 참이었다.

" 어때? 가까이에서 보니깐 더 잘생겼어? 근데 표정이 왜 그래? "

" 다짜고짜 기상호냐고 성질을 내잖아. "

" 기상호? "

기상호? 옆에서 가만히 대화를 엿듣고 있던 기상호가 품에 있던 전공 책을 꽉 쥐었다. 그거 내 이름... 아니던가? 

" 잘생기긴 했는데 실제로 보니 무서워. 또라이 같다고 해야 하나. "

어휴, 재수 없어. 그래, 똥 밟았다고 생각하자. 여학생들 무리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자리를 벗어날 때쯤 기상호의 얼굴을 사색이 되었다. 저 햄은... 왜 나를 찾는 거지? 기상호는 지난 날의 자신을 뒤돌아보았다. 집 학교 집 학교 집 학교. 가끔 편의점에 들러서 몬스터 왕창 사가기. 이게 근 몇 주간의 기상호의 루틴이었다. 혹시 편의점 알바생한테 조금 무뚝뚝하게 말한 게 잘 못이었나? 뒤늦게 봉지 달라고 해서 미움받은 건가? 기상호의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도대체 누구지? 누가 보낸 사람이지?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더욱 커졌다. 기상호가 누구야? 기상호가 왜? 무슨 메시지를 보냈다고 찾으러 왔데. 무슨 메시지? 몰라, 대답을 안 해줘. 

' 메시지? '

유치하기 짝이 없는 디자인과 사기꾼 같은 문구로 도배되었던 이상한 사이트가 기상호의 머릿속을 단번에 잠재웠다. 정말로... 저 햄이 외계인이라고? 하기야 190cm도 넘는 키에 뒤도 돌아보게 하는 외모면 외계인일 법도 했다. 기상호는 성준수를 제외하고는 이래 잘생긴 얼굴은 처음 보는 격이었다. 그러면 준수햄도 외계인이가? 기상호가 또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 성격이며 외계인이라고 해도 믿겠다. 기상호가 자신의 앞에 190cm 미모의 남성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혼자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러나 이미 깨달았을 땐 도망가기에 늦었다. 터벅터벅. 남들보다는 배로 두꺼워 보이는 발소리를 내며 험악한 인상을 한 남성이 기상호만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다가왔다. 기상호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전공 책을 구겨져라 쥐는 것뿐이었다. 

" 야. "

" ...네넵! "

" 네가 기상호야? "

" ...예. 그런데요? "

기상호는 매섭게 자신을 위에서 아래로 쳐다보는 거구의 남성의 눈을 슬금슬금 피했다. 어쩌지. 연애 한번 못 하고 외계인한테 끌려가게 생겼다. 기상호가 다시 슬쩍 남성의 눈치를 살폈다. 남성은 여전히 두 눈을 크게 뜨고 부라리며 기상호만을 내려다보았다. 근데 이 햄... 속눈썹이 억수로 예쁘네.

" 야. "

" ...넵. "

" 메시지에 그 말 진심이야? "

진짜 욕이었나 보다. 기상호가 속으로 울상을 지었다. 뭐라고 해명해야 하지. 진짜 모르고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눌렀다. 이래 말해도 믿어줄란가. 기상호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갔다. 그.. 그게 아이고요.

" 그런 말을 했으면 책임질 생각은 한 거지? "

" 네? 뭘 책임져요? "

" 뭘 책임지냐니. "

남성은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가 얼굴을 기상호 가까이 들이밀었다. 기상호는 들이쉬던 숨을 멈추었다.  

" 나지. " 

기상호, 욕 한번 잘 못 한 걸로 제 인생도 똑바로 못 사는데 지금 남의 인생까지 책임지게 생겼다.

* * *

햄버거가 기상호를 살렸다. 일단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때마침 꼬르륵 울리던 남자의 배꼽시계 덕에 기상호는 하던 대화를 급히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그 남자의 한마디에 주변에서 웅성거리던 소리를 잊을 수가 없었다. 뭐지 전 애인이야? 진짜로? 사람들은 연애에 관련된 거라면 환장한다. 특히, '전'자가 붙여진 '전 애인' 이런거에 환장한다. 재미난 구경거리가 생긴 듯 웅성거리며 주변에 원을 그리며 모여 있는 사람들을 헤집으며 빠져나왔다. 그 와중에 남자는 기상호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뒷덜미를 잡은 채 따라왔다. 둘이 빠져나오는 꼴이 우스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걸 정정하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았고 조금만 더 지체했다가는 정말로 이 사람이 자신의 전 애인이라고 전교에 이상한 소문나기 직전이었으니깐 말이다. 

" 맛있어요? "

기상호는 제 앞에서 햄버거 세트 두 개를 해치우는 남자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 속도 모르고 입가에 양배추 소스까지 묻혀가며 먹는 남자를 보니 속이 타들어갔다. 자기 꺼 세트 하나, 남자 꺼 세트 하나. 총 두 개의 세트를 주문했지만 기상호는 입도 대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햄버거를 다 먹고 기상호의 햄버거의 포장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남자에게 쟁반을 밀어줬다. 남자는 기상호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배가 더 고팠던 모양이었다. 기상호는 입맛이 없었다. 남자가 자신의 햄버거와 콜라와 감자튀김을 모두 먹을 때까지 햄버거 포장지 끝을 괜히 구겼다. 제 눈앞에 있는 그 남자 때문이었다. 

" 여기 묻으셨어요. "

기상호가 자신의 입가를 톡톡 두드렸다. 남자는 기상호의 말에도 멀뚱히 쳐다만 볼 뿐 딱히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여기... 여기 묻었다니깐요. 기상호가 다시 한번 정확한 위치를 가리키며 제 볼을 톡톡 두드렸다. 남자는 그런 기상호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이고. 결국 기상호가 자리에 일어나 남자의 입가를 닦아줬다. 아까 그 무서운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손이 많이 가는 어린애 같았다. 

" 그래서 다시 정리해 보자면 햄은 외계인이고. "

" 어. "

" 이름은 최종수고. "

" 어. "

" 나이가 장도... 뭐라고요? "

" 장도 230년. "

" 그리고 제가 보낸 메시지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요? "

"..."

" 일면식 하나 없는 이 지구에? "

" 어. "

" 그 메시지가 설마... 욕이었어요? "

" 아니. "

최종수의 말에 기상호가 한시름 놓았다. 다행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별에서 온 외계인이 현피 뜨러 지구에 온 게 아니라서 말이다.  적어도 목숨은 부지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 그러면 무슨 내용이었어요? "

기상호의 말에 최종수의 미간이 찌푸려지다 못해 비틀어졌다. 먹던 햄버거까지 내려놓은 최종수가 낯은 음성으로 기상호를 불렀다.

" 야. "

" ...네넵. "

" 뜻도 모르고 보낸 거야? "

" ... "

" 하, 이거 미친놈이었네. "

취소다. 목숨 날아가기 일보 직전인 것 같다. 도대체 자신이 무슨 말을 썼길래 최종수는 저렇게 화가 났는지 기상호는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렇다면 이왕 죽을 목숨 낯짝 한 번 더 깔아 본다는 심정으로 기상호가 입을 열었다.

" 혹시... 제가 뭐라고 썼어... 요? "

제 앞에서 쭈뼛거리며 눈알을 데구르륵 굴리는 기상호를 잡아먹을 듯이 내려다보던 최종수가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 몰라. " 

" .... "

" 네가 찾아봐. "

아니, 외계인어를 어디서 찾나요. 이게 파파고로 번역이 되는 것도 아닌데. 기상호가 억울함에 목 끝까지 말이 걸렸지만 입술을 다물었다. 더 말했다가는 진짜 영영 지구에서 사라질 것 같았다. 

" 그러면 제가 햄은 어떻게 책임져야 해요? "

아까 최종수가 분명 사람들한테 모두 들리도록 기상호한테 자신을 책임지라고 했다. 자신이 최종수한테 보낸 말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최종수를 책임져야 되는 상황을 봤을 때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머리를 굴렸다.  설마... 평생을 책임져야 하나?

" 일주일."

" ... "

" 일주일만 지구에 있다가 돌아갈거야. "

울상이 되었던 기상호의 표정이 밝아졌다. 일주일만 눈 딱 감고 지내면 된다. 그러면 외계인이라고 하는 최종수도 자신의 별로 돌아갈 거고 자신은 원래대로 학교를 다니면 될 것이었다. 일주일은 그리 긴 시간도 아니니 금방 지날 것이다. 이때까지 기상호의 계획은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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