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風

가면라이더 에그제이드 하나야 타이가 드림

버찌창고 by 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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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씨~."

익숙한 목소리가 발음하는 호칭이 영 생소해 하나야 타이가는 으레 그렇듯 한 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아주 약간, 고개를 틀고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어내자 열린 미닫이문 너머로 인영이 보인다.

"무슨 일이지."

눈썹 끄트머리만을 스치고 지나간 의아함을 눈치챈 듯 즐거운 기색의 시라카와는 가벼운 걸음으로 진료실에 들어섰다. 흘긋 하나야의 모니터를 보며 오늘은 어때요, 많이 벌었어? 라고 운을 뗀다. 

보면 알면서 대체 왜 굳이 묻는 건지. 코로 한숨을 내쉬며 다시 화면 위의 주식 시장으로 눈을 돌리자, 이번엔 입구에서부터 훤히 들여다보여 뻔한 진료실 안과 병상 위를 확인하는 듯 기척이 조금 서성인다. 이윽고 턱 하니,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의 머리받이에 누군가가 팔꿈치를 걸치고 나서야 하나야는 시라카와의 눈을 마주했다.

"오늘 한가하죠?"

한순간 마주쳤던 시선은 하나야가 주로 거래하고 있는 회사의 주가가 매겨진 화면을 미끄러진다. 바로 조금 전, 장이 마감되는 시간이 지난 차였다. 백신의 연구도 그저께인가 한 단계 마무리되었고, 얼마 전에 완쾌한 자 이후로 내원한 버그스타 감염증의 환자도 없다. 확실히 당장 급한 업무가 없기야 했지만.

반론의 여지가 없는 승리를 확신한 듯 시라카와의 입가는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꽃' 보러 가요, '하나'야 씨."

'하나花'에 힘을 주어 발음하는 시라카와의 목소리에 경쾌한 리듬이 맴돌았다. 시답잖은 말장난에 헛웃음만이 한숨처럼 흘러나왔다.

"이름이 아깝지 않아요? 이렇게 꽃이 만발했는데."

"이름이 아니라."

"성씨죠, 네네. 아무튼."

성의 없는 태도로 성의 없는 딴죽을 흘려넘기며 제멋대로 펜을 집어 들더니, 책상 위의 큼지막한 포스트잇에 글씨를 적어 내린다.

「외출 중. 전화 문의 접수 시 최대한 빨리 복귀하겠습니다.」

"간다고 한 적 없어."

"딱딱해라. 그렇게 숨 한 번 안 돌리고 살면 몸 다 굳어요. 안 그래도 이제는 싸울 일도 없어서 별로 움직이지도 않잖아요. 개인 병원 좋은 게 자기 사정 맞출 수 있는 점 아니에요? 어차피 식사 시간도 안 챙기고 살면서. 점심시간 늦게 시작했다고 해요."

시라카와는 속사포같이 잔소리를 쏟아내며 포스트잇을 진료실 문 앞에 붙이고, 진료실의 전화를 휴대폰에 연결되도록 설정했다. 숨은 쉬고 말하는 건가, 따위의 맥락을 벗어난 감상이 떠오를 무렵 느닷없이 결정타가 날아든다.

"니코쨩한테도 말했어요, 엄청 좋아하던데."

니코마저 알게 됐다면, 거절해봤자 더 난폭하게 끌려나갈 뿐일 것이다. 귓가에 크리티컬 피니시! 라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아 하나야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K.O 사인에 만족한 듯, 웃음소리가 진료실 안에 울린다. 

"뭐 대단하게 멀리 가잔 것도 아니에요. 나도, 내일도 출근해야 하고."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사무용 의자가 과묵한 남자를 대신해 고개를 까딱였다. 승자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말을 잇는다.

"바로 근처의 공터에서도 벚꽃이 꽤 잘 보이던데요. 여긴 안 그래도 한적하니까 사람에 치일 걱정도 없겠다. 느긋하게 봄바람도 쐬면서 맛있는 거라도 먹자구요."

책상을 사선으로 등지고, 하나야는 열린 창밖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과연, 부드럽게 불어오는 봄바람에 몸을 실은 벚꽃이 사각의 프레임을 한가로이 가로지른다.

"그럼, 갈까요?"

대답 없이 몸을 일으키자, 누군가가 훅 하고 숨을 불어넣기라도 한 듯 갑작스레 따스한 공기가 들이친다. 눈보라처럼 쏟아진 꽃잎이 서늘한 건물 위를 뒤덮고 밋밋한 방 안을 어지럽힌다.

"아이고. 다녀와서 청소해야겠네요."

목소리는 제법 안타까워하는 기색이지만 표정은 정반대로 활짝 피어 있다. 언젠가 니코가 진료실을 점거했을 때와 똑같은 반응이었다. 나뭇가지가 스치며 흔들리는 소리 사이로 남자의 희미한 웃음이 꽃잎과 함께 흩어졌다.

"...너도 도와라."

"잘못한 것도 빚진 것도 없는데 부려 먹히다니."

투덜거리는 것도 잠시, 풀어지게 웃으며 시라카와는 어깨를 으쓱인다.

"분부대로 합지요!"

복도에 울리는 두 개의 발소리가 멀어져간다.

바야흐로,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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