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
후회
그 모든 것이 단지 천재지변으로 정리가 되었다. 제 집으로 벼락이 떨어졌다고 하였다. 들려오는 모든 말이 멍하게 들려왔다. 귀로 목소리가 겹쳐들려서 제대로 머리 속에 인식이 되지 않아.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와, 찬양을 요구하는 목소리, 번제를 바라는 소리, 나를 바라보는 거대한 시선. 나를 어디서든 바라보는 거대한 별을 넘어선 시선. 저 멀리서부터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이 두렵다. 악의가 있다고 볼 수 없지만 그 거대한 시선, 질량이 나를 무형으로 짓누르고 있다.
끊임없이 타오른 화염은 대부분의 물건을 집어 삼켰다고 한다. 남은 건 2층 서재에 있던 겨우 몇가지 물품. 그것을 조사하던 경찰관은 그 물품을 제 침대 옆 서랍장위에 올려두었다. 그는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자신은 올려둔 것을 본다. 배산리에서 얻었던 낡아빠진 책, 잔뜩 그을려 이곳저곳 구겨진 고등학교시절 앨범……그리고 검은 책 앞의 두개에는 그을음이라도 묻어있고, 열기에 조금 망가지기까지 했음에도 저것은 여전하다. 처음 책을 보았을 때의 그 어찌할 수 없는 이끌림을 가진 채 멀쩡한 모습으로 자신의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떨리는 손을 뻗어 책을 잡는다. 책을 끌어안는다. 입술을 깨문다.
나의 풍양
위대한 만물의 어머니
그 무엇보다 모독적인 생명의 시작이여.
염소의 발굽소리, 염소의 울음소리, 성혜상가에서 보았던 그것들이 떠오른다. 말발굽이 아니었어. 그건 염소였다. 거대한 염소, 나의 어머니 신이 은총을 내린 존재. 그들에게 거대한 은총을 내려 어머니 자신과 모습을 비슷하게 변모해준, 축복받은 생명체. 어머니의 자식들. 천마리의 아이를 거느린 검은 암컷 염소. 숲의 제왕, 검은 풍요의 요신, 만물의 어머니…….
책을 뿌리치듯이 놓는다. 원했었다. 강한 힘을 다른 뭇 존재가 범접할 수 없는 힘을. 인간이지만 사람과 다를 것이 없기에, 사람은 약하고, 무르고, 그런주제 남에게 신경쓰고, 그 시선을 두려워하고, 그렇기에 자신의 본성을 숨기고, 타자에게 재단되는 모습대로 살고자 하지. 나는 애초에 그런것을 신경쓰지 않고 준이도 그러하다.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보고 그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다. 타자에게 느껴진 선망과 질투시선에서 벗어나 단지 나를 나로서 봐주던 그 시선. 나의 아름다움보다 [우아란]이라는 존재를 먼저 봐주었던 너. 나는 네가 소중하다. 지금도 변함없이. 그랬기에 나는 네가 그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을 세계를 만들고자 했다.
거대한 새장
완벽한 조화를 이룬 정원
그 곳에서 우리는 우리로서 있으면 되었다. 그를 위해 나는 힘을 바랐다. 나와 달리 너는 많은 이들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니 너를 상처입히는 자들을 내가 가지쳐야했다. 네가 아프지 않도록 상처받지 않도록, 괴롭지 않도록 네가 너로서 있을 수 있게, 네가 아무것도 잃지 않도록, 나의 이 들끓는 욕구에 물들지 않도록……. 나는 너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타인의 절망도 즐거웠기에, 내가 널 상처입히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너를 괴롭히는 자를 망가뜨리고, 나에게 흥미를 주는 사람을 망가뜨렸다. 그러다가 재미있는 수단을 얻었고, 더 깊은 앎을 추구했다. 그 결과.
염소발굽소리
울음소리
자신을
보는
눈
너를상처입히고싶지않아네가나를잡아주길바라하지만널상처입히고싶지않아네가계속웃길바라네손에나를죽여줘나를죽여줘제발나의목을조여부러뜨려줘나의심장에칼을꽂아줘내머리를무언가로내리쳐줘알아볼수없어나를조각내줘그리고나를잊어줘네기억속에서전부나에대한걸잊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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