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팁 전력

너는 우리의 어둠을 모른다

뜰팁 전력 '빛과 그림자' | 밤을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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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에서 숨죽이며 사는 우리는 빛을 하염없이 동경하기만 하였고

빛에서 사는 너희는 우리의 어둠을 결코 알 수 없으리라

도시는 어두운 밤에만 머물지만 빛나는 건물들에 사는 너희는

너희의 빛으로 만들어진 그림자를, 절대 알 수 없으리라.

"청장님, 야괴가 출현했습니다!"

평화로운 저녁, 공룡은 경찰서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갑자기 한 경찰관이 뛰어들어와 경찰청장에게 야괴 출현의 소식을 전했다. 여유롭게 커피를 즐기고 있던 청장은 별 대수도 아니라는 듯 심드렁하게 물었다.

"장소는?"

"두 군데입니다. 한 곳은 구시가지 쪽이고, 다른 한 곳은 중앙 광장입니다."

"잠깐, 중앙광장이라면 상류층 사람들이 모여 연회를 여는 곳 아닌가? 삼왕모 관저에서 바로 보이는 곳이고?"

"네, 맞습니다."

청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항상 게으름 피우는 저 작자가 일어나는 걸 본 적이 없던 공룡은 신기하다는 듯 그 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청장은 밝게 웃으며 외쳤다.

"좋은 기회다! 지금 당장 해광 경찰 전부 광장으로 출동할 것을 명한다. 해광의 시민들을 지키고, 왕모님들께 해광 경찰의 저력을 보여드리도록 하자!"

청장의 말에 서의 경찰들이 모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도 해광의 지배자나 다름없는 왕모들 앞에서 저들의 실력을 선보인다는 생각에 꽤 들뜬 것 같았다.

"잠시만요."

공룡이 청장을 불렀다. 청장은 단번에 공룡을 돌아보았다. 공룡의 실력은 경찰 중에서도 단연 최고였다. 사람들이 말하길 그가 야괴를 향해 총을 세 번 이상 쏘는 걸 본 적이 없다 하였다. 그가 들어오고 나서 자신의 서의 실적도 크게 올랐다. 이번에 중앙광장에서 공룡이 야괴를 잡으면 또 실적이 크게 오르겠다고 생각하며, 청장은 공룡에게 무슨 일이냐 물었다.

"경찰이 전부 중앙광장 쪽으로 출동하면, 구시가지 쪽 야괴는 누가 처리합니까?"

일순간 정적이 경찰서 내에 감돌았다. 경찰들은 모두 출동 준비를 멈추고 공룡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들끼리 조용히 수군대기 시작했다.

"...구시가지 쪽이면, 하층민들이 모여 사는 곳 아니야?"

"맞아, 전생에 죄를 지은 사람들…."

"그러고 보니, 공룡 경찰님 분명 사는 곳이…."

공룡은 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자리에 올라오기까지 질리도록 들은 말, 아니 듣고 있는 말이었다. 그는 단지 답변을 바라는 듯 그의 검은 눈으로 청장을 바라보았다. 청장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던 듯 헛기침을 두 세 번 하였다.

"크흠, 중앙 광장 쪽은 사람이 굉장히 많이 있잖은가. 부상자가 많이 나올 수도 있는데, 일단 인력을 그쪽으로 투입하고 상황이 진정되면…."

"구시가지 쪽도 사람이 많이 있는 곳입니다. 오히려 중앙 광장 쪽보다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인원을 둘로 나누어 중앙 광장과 구시가지 양쪽으로 지원 보내면 되지 않습니까."

"허허, 이 사람 보게? 자네가 청장인가? 결정은 내가 내려! 잔말 말고 중앙광장 쪽으로 가게. 우리 경찰서 최고 실력인 자네가 빠지면 되겠는가."

공룡은 청장의 말에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무언가 반박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청장이 그보다 빨랐다.

"솔직히 구시가지 쪽 사람들은 야괴에게 당해도 별문제 없는 자들뿐이잖은가. 귀중한 인력을 그쪽에 낭비해서 쓰겠나?"

공룡은 그 말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청장은 그가 자신의 말을 알아들은 거로 생각하곤 공룡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후, 출동 준비를 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만약 그가 조금 더 신경을 썼더라면, 공룡의 손이 주먹 쥔 채 떨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떨림에 실린 감정이 분노라는 것을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손은,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공룡의 안주머니로 이동했다. 달빛을 빚어 만든 것과 같은 총이 공룡의 손에 쥐어졌다. 

단말마와 같은 총성이 울렸다.

공룡이 쏘는 총에는 총알이 들어있지 않다. 그의 영기를 응축해서 쏘는 것이기에, 범혼에겐 아무런 해가 없다. 하지만 그 영기가 만들어내는 기운은, 범혼인 청장에겐 충분히 위협적인 것이었다.

"자, 자네 지금 이게 무슨 짓인가! 이게 지금 자네 청장을 대하는 태돈가!!"

"청장이고 뭐고, 네놈이 쓰레기인 건 알겠다."

반말? 청장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저의 앞에 서 있는 공룡의 표정이 분노로 일그러지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의심을 바로 거뒀다.

"해광시 하층민들은 이 도시 주민들 아닙니까? 경찰이란 작자들이 사람 차별하고 뭐하는 짓거린데? 언제부터 해광의 경찰이 상류층들의 발닦개나 되었답니까?"

"저, 저, 저놈이……!"

"공룡 씨, 말이 지나치십니다!"

"지나쳐?"

공룡은 지나치다고 말한 동료 경찰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눈빛에 분노가 서려 있었다.

"지금 내 말이 지나치다 하셨습니까? 지나치단 말은 같은 해광 주민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잘나신 왕모님들께 눈길이나 한번 받으려는, 당신들은 두고 하는 말 아닙니까?"

"공룡 씨!"

"다들 무엇하러 경찰이 되셨는데요?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 도시의 주민들을 죽이는 야괴들을 없애려고, 우리 주민들을 지키려고 경찰이 된 것 아니었습니까? 누가 지금 누구보고 지나치냐고 하는 겁니까!"

아무도 그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그저 서로 눈치만 보며, 얼른 이 상황이 끝나길 바랄 뿐이었다. 그런 그들의 행동에 기가 차다는 듯 공룡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러곤 몸을 돌려 문 쪽으로 향했다. 자신 관할 서의 최고 실력자가 떠나는 걸 보고 청장이 다급히 그를 불러 세웠다.

"자, 자네 지금 어딜 가는 겐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안 지키러 가는 해광시 주민들 지키러 갑니다. 평생 그런 식으로 상류층 눈치나 보며 비굴하게 살아 보십시오."

서의 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공룡은 문득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자신의 경찰 후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야, 너."

"히익! 서, 선배?"

"따라오라는 거 아니니까 쫄지 마."

"그, 그럼 왜…."

공룡은 자신의 검은 모자를 고쳐 썼다. 그 모자를 보며 멋지다고 눈을 빛내던 누군가가 공룡의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중앙광장에 가서 혹시나 검은 머리에 초록 눈의 소년을 본다면, 그 아이를 우선해서 보호해 줘."

"네?"

"이름은 동희야. 부탁할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공룡은 경찰서를 나섰다. 붙잡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청장은 안절부절못하다 결국 악에 받쳐 외쳤다.

"역시 네놈 같은 천한 것을 위대한 해광의 경찰로 받는 게 아니었다!"

청장의 외침을 듣고 공룡은 진심으로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청장을 돌아보았다.

"이러고도 스스로 위대하다는 말이 나오시다니,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뭐, 뭐라!"

"하긴, 그 정도 염치라도 있었으면 이런 말을 잘도 하지도 않았겠죠."

그 말을 끝으로, 공룡은 경찰서의 문을 열고 나갔다. 뒤에서 지금 당장 돌아오지 않으면 명령 불복종이라며 노발대발하는 청장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가볍게 무시했다. 구시가지 쪽으로 가는 공룡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크아아아아악!"

탕.

해광의 구시가지. 단 한 발의 총성이 울리고, 구시가지를 하나의 악몽으로 만들고 있던 야괴가 쓰러졌다. 공룡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영혼인데도 숨쉬기 힘들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아, 아니지. 처음 안 건 석탄 먼지 날리던 그 폐광에서 일 할 때였지. 구시가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뛰느라 막혔던 숨을 몰아내고, 그는 서둘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괜찮으십니까! 다친 사람은 없나요?"

"공룡 씨 덕분에 대부분은 멀쩡해요, 그런데…."

"박 씨가… 크게 당했어."

공룡의 시야에 그제야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인 채 길바닥에 누워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야괴로 인해 등에 큰 상처가 나 있었고, 야괴의 독기도 강했다. 이미 의식은 잃은 듯했다.

"어린 애가 발목이 삐어서 도망가질 못했대. 그 아이를 보호하려다가 야괴의 공격을 못 피해서 저렇게 되었네."

"...."

"야괴에게 당한 상처는 손 쓸 수가 없지 않은가. 이대로… 물로 돌려보낼 수밖에."

권총을 쥔 공룡의 손이 순간 떨렸다. 물에 닿으면 소멸하는 영혼들의 도시 해광에서, 물로 돌려보낸다는 것은 영혼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해광에는 종종 야괴가 출현하고, 그렇기에 종종 사람들이 다쳤다. 다행히 해광에는 야괴에게 다친 영혼들을 치료할 수 있을 만큼 범혼과 관련된 의학이 발전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야괴에게 당해도 잘만 치료하면 문제 될 건 없었다.

상류층에겐 말이다.

병원은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잔인해지는 곳이다. 산자의 도시든 죽은 자의 도시든, 약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기관은 항상 약자들에게 가장 무리한 금액의 돈을 요구했다. 온종일 일해도 노동의 제값도 못 받는데 거기다 무거운 세금까지 내야 하는 해광의 하층민들에게 그만큼 비싼 치료비를 낼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하층민들이 야괴에게 당하면, 주변 이웃들이 그저 그의 명복을 빌어주며 그를 인근 물가로 데려다 주었다. 야괴에 의한 상처보단 물에서의 소멸이 덜 고통스럽기를 바라며, 그리고 언젠간 저들도 그리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며 말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더 일찍 왔다면…."

"됐네, 공룡 자네가 무슨 잘못이 있는가. 우리도 다 알아. 경찰들은 또 상류층 마을 야괴를 잡으러 가고, 자네 혼자 무리해서 이곳으로 왔겠지?"

"..."

"자네가 왔기에 그나마 피해자가 이 정도로 적은 것 아닌가. 상사 명령 어기고 오는 것도 힘든 일일 텐데, 매번 잊지 않고 와줘서 우리가 고맙네."

한 이웃이 흰 천을 들고 나왔다. 구시가지에 사는 사람들은 저마다 집에 커다란 흰색 천을 하나씩 두었다. 이웃들은 그 천으로 박 씨의 몸을 조심스럽게 덮었다. 고급스러운 수의 같은 건 그들에게 감히 넘볼 수 없는 여유였다. 언제 어디서 이웃이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은 언젠가부터 각자 이웃을 떠나보낼 때 사용할 천을 준비해두었다. 먹고 살기 바쁜 입장에서 천을 사는 것도 경제적으로 꽤 부담스러울 수 있는 일이었으나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경찰의 보호를 받지 못하여, 어디서든 아무렇게나 스러질 목숨이라 하더라도, 그 가는 길마저 쓰레기 던지듯 그들의 이웃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이었다. 

노동력의 소모품이나, 죽어 마땅한 괴물들이 아니라.

가까운 이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이 천으로 둘러싼 박 씨의 몸을 들어 올렸다. 이웃들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언제 어디서 스러질지 모르는 해광의 구시가지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이웃을 떠나보내는 장례식이었다. 고급진 국화도 그럴듯한 관도 없었지만, 예의를 갖추어 한때 그들의 이웃이었던 이에게 이별을 건네는 엄숙한 장례식이었다. 공룡에게 상황을 이야기해주던 사람이 낮게 혀를 차며 말했다. 

"그냥… 어쩔 수 없었던 일인 게야. 그렇게 생각하자."

장례식을 끝내고 서로 돌아가는 길, 공룡은 그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공룡은 그 말이 싫었다. 기억하지도 못하는 생전의 죄 때문에 하층민으로 낙인 찍히고, 노동의 제값도 받지 못하는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매번 무거운 세금을 내는 주제에 경찰에게 가장 기본적인 보호도 받지 못하는 데도, 이 모든 것을 '어쩔 수 없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싫었다. 그것이 해광의 하층민들이 그나마 살기 위해 상황을 수용하는 태도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싫었다.

구시가지에서 경찰서로 가는 길을 걸으면 중앙광장 쪽을 보게 된다. 건물에 가려 중앙 광장이 보이진 않지만 모를 수가 없었다. 그곳은 항상 밝게 빛이 났으니까. 태양 따위 뜨지 않아 항상 어두운 밤인 이 해광에서 저곳만은 아무렇지 않은 듯 밝게 빛났으니까. 그 찬란한 광휘 속에서 상류층이란 놈들은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고 그저 이 밤을 즐기고 있겠지.

"하하...."

진짜, 진절머리난다. 빛 속에서 즐기는 그들은, 그들의 빛이 만들어낸 그림자 속에서 사는 이들은 전혀 알지 못하겠지.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구시가지에서 사는 사람들 몇 명이 죽어 나가든, 그들은 그들만의 빛 속에서 즐겁게 웃고 있겠지. 그들은 절대 그들의 그림자를 모르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겠지.

"다 엎어버리고 싶다."

너희는 절대 우리의 어둠을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타인을 지키다 그림자 속에서 떠난 자와, 그를 예우를 갖추어 떠나 보내는 이웃들을, 소멸해 마땅한 죄인이라 칭하며 그저 빛 속에서 언제까지나 지낼 것이다.

나는 그것이, 미치도록 싫었다.

내 모든 것을 걸어 부숴버리고 싶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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