特愛

5. 선택

지금 당장 할 필요는 없으니까

고죠 사토루가 주술고전에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자료 조사였다. 나라 시대부터 헤이안 시대까지의 문헌들에서 ‘료멘스쿠나’에 대한 기록을 확인하는 거였다. 제일 먼저 주술고전에서 보호하고 있었던 고서들부터 고죠 가문에서 보관하고 있는 서적들까지 빠르게 모을 수 있는 자료들부터 최대한 끌어모았다. 그리고 그중 주술고전의 자료들을 조사하는 건 메구미에게 맡겼다.

3일, 두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시간조차 고죠가 최대한으로 번 시간이었다.

“이렇게 찾는데도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조사 이틀째, 주술고전의 도서실에서 자료를 보던 메구미가 물었다.

“벌써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메구미?”

“…최악을 미리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메구미가 눈을 뾰족하게 떴다. 약간 충혈된 것이 그의 눈이 얼마나 혹사를 당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맞은 편에서 고서를 빠르게 훑어보던 고죠는 짧은 콧소리를 냈다. 그가 읽고 있는 고서는 가문 사람 중 하나가 일기 형식으로 쓴 것이었다. 그러나 ‘료멘스쿠나’에 대한 내용은 많지 않았다. 지독한 겁쟁이었는지, 대부분 세간에 떠도는 소문들 뿐이었다. 익숙한 실망감을 털어내며 다 읽은 고서를 내려놓은 고죠는 메구미에게 검지를 세우며 말했다.

“분명한 것은 이대로 가면 유지는 사형이야.”

“스쿠나가 상층부와 협상을 하는 방향은요?”

“음~그것도 생각을 해봤는데, 스쿠나가 협상할 지 의문이거니와, 그 스쿠나가 직접 나선다 해도 썩은 귤들이 그대로 받아들일 리가 없으니 기.각!”

유쾌하게 끝맺음을 냈으나, 고죠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한 메구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정말로 찾는 것 외엔 정말 방법이 없겠네요.”

“뭐, 그렇지!”

고죠의 말에 메구미는 눈을 비비며 다음 자료를 꺼내 들었다. A4용지로 정리한 해석본이었다. 메구미는 첫 장부터 천천히 읽어내렸다. 지금까지 본 자료들은 모두 료멘스쿠나에 대한 기록이 공통으로 등장했지만, 료멘스쿠나가 직접 언급한 내용과 관련된 기록은 아직도 찾지 못해서 이쯤 되면 거짓말을 한 게 아닐까? 라는 의심이 드는 순간,

“?”

메구미의 시선을 집중시킨 내용 있었다.

······저주의 왕의 앞을 가로막은 이가 있었으니. 여인의 한마디에 저주의 왕은 흉흉한 기세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물러나더라. 사람들은 저주의 왕을 진정시킨 무녀라 칭하며 감사를 올렸다······

“고죠 선생님”

찾은 것 같아요. 메구미의 말에 고죠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이타도리 유지가 깨어나기 6시간 전이었다.

 

 

 

特愛(특별한 사랑)

5. 선택

 

 

 

유지는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처음 듣는 말이 어느 쪽이냐니, 거기에 처음 보는 장소에서 불편한 자세로 묶여있는 것이 분명한 자신의 처지를 파악하니 이해는 됐지만 별개로 어이가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납치를 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제게 건네는 첫마디가 저거라니, 유지는 당당한 태도의 고죠에게 화를 낼지 잠시 고민했다.

 

“어느 쪽이냐고 해도, 저는 저인데요.”

“하하하!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유지구나~”

 

이미 알고 있었지만. 고죠는 굳이 뒷말은 하지 않았다. 가진 눈이 그렇다보니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사실은 아직 눈 앞의 소년에겐 이른 이야기었으니까. 대신 유지에게 그동안의 일들에 대해서 차근차근 설명했다. 스쿠나에 대해서, 스쿠나의 손가락에 대해서, 그리고 유지에게 내려진 처분에 대해서.

 

“유지는 무기한 보류야.”

“네?”

“정확히는 사형 집행이 예정된 보류인 거지.”

“그건 결국 사형 아닌가요…?”

“음, 비슷하긴 한데 조금 다르다고 해야 할까?”

 

천하의 고죠 사토루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고죠가 메구미와 함께 온갖 자료들을 뒤져가며 찾으려고 했던 증거물은 다름 아닌 스쿠나가 언급한 ‘약속'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속박’은 ‘계약’이다. 자기 자신과의 계약, 타인과의 계약 등 주술계에서 활동하다 보면 다양한 형태의 속박을 주고 받게 된다. 그리고 ‘약속’이라는 행위는, 주술사의 관점에서 보면, ‘속박'과 같았다. 여기까지 사고를 끝낸 고죠는 확신한 것이 있었다.

천 년 전에 실존했던 사상 최악의 주술사, 명실상부한 저주의 왕, 인세(人世)에 강림한 인재(人災) 등 다양한 악명으로 불린 료멘스쿠나가 맺었다는 ‘약속’이라는 것이비술사들이 새끼 손가락을 걸고 하는 구두 계약일 리가 없지 않는가, 라고.

다르게 말하자면, 료멘스쿠나는 속박을 맺었다는 말이 된다. 타인, 그것도 저주의 왕에게 어울리면서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일으킨 대상과 말이다. 주술사는 음흉하다. 끔찍하게 생긴 주제에 교활하기 짝이 없는 주령과 늘 상대하는 주술사들은 미쳤고, 그만큼 음흉해졌다. 현대의 주술사가 이러한데 하물며 헤이안 시대의 주술사들은 오죽할까. 아무리 숨겨도 주변에는 음흉한 자들의 귀가 존재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이것을 결코 묻히게 두지 않았을 것이다.

즉, 기록을 남겼을 거라는 게 고죠가 내린 판단이었다.

“진짜 열심히 찾았다고? 메구미도 블랙 커피를 마시면서 찾았다니까? 웩, 메구미는 그렇게 쓴 걸 먹고 어떻게 버텼대? 아무튼 결론을 말하자면───”

두 사람은 기어코 찾아냈다.

시작은 메구미가 찾은 어느 기록이었다. 메구미가 찾은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어느 마을에 저주의 왕이 강림하여 마을이 멸망할 위기였으나, 한 여인이 그 앞에 나타나 저주의 왕을 물러나게 했다는 지극히 단순한 내용.

해당 내용이 담긴 자료는 민간에서 돌고 도는 소문을 모아놓은 야사집을 번역한 것이었다. 괴담, 소문, 전설 등 정사에서 파생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있기 때문에 허구의 이야기도 많았다. 메구미가 찾은 기록도 그 중 하나였다.

“에. 그럼 증거가 될 수가 없잖아요?”

“음음~중요한 건 내용이 아니야. 그 자료는 말이지? 각 기록마다 연호가 적혀 있었거든.”

해당 야사집은 특이하게도 누군가가 실시간으로 기록한 것처럼 연호를 적어줬던 것이다. 고죠는 메구미가 찾은 내용의 연호를 확인하고 해당 연호에 작성된 내용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저주의 왕’은 다른 역사서나 기록물에도 나오는 스쿠나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그렇다면 해당 내용도 스쿠나의 악행 중 하나를 행복한 결말로 꾸며낸 이야기였나?

“해당 연호에 기록된 자료들 모두 확인을 했지만, 없었어. 스쿠나에 대한 것들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거든.”

답은 아니었다.

“이상한 건 딱 그 연호가 쓰여진 기간만 스쿠나의 기록이 전혀 없었다는 거야. 그 대신에”

다만 공통적인 내용들이 존재했다.

“백성들을 구하는 무녀의 이야기가 짧게는 한 줄, 길게는 여러 페이지에 걸쳐서 나왔어. 딱 그 기간에만.”

활동이 사라진 스쿠나, 그리고 갑작스레 나타났다가 사라진 무녀. 그리고 스쿠나를 물러나게 했다는 이야기 속의 여인, 고죠는 이 부분에 주목했다.

덤벼든 주술사들을 모두 몰살시킨 저주의 왕과 그 저주의 왕을 물러나게 했다는 무녀는 분명 실존하여 그 시대를 살고 있었다. 행적이 전혀 겹치지 않은 두 인물이 한 이야기에서 만났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법이다.

두 인물은 어느 시점에 만났던 것이다.

그 뒤로 스쿠나는 활동을 멈췄고, 무녀가 등장했다. 무녀의 활동이 사라지니 스쿠나의 악행이 다시 시작 되었다. 그리고 고죠는, 최근에 본 TV 드라마가 비슷한 전개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음을 간신히 떠올렸다.

“뻔한 이야기지~”

사랑, 가장 왜곡된 저주.

스쿠나가 말한 상대는 그 무녀일 것이다. 둘의 관계는 의도적으로 서로 연관이 없는 것처럼 역사에 기록 되었다. 반대로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은 둘 만의 ‘약속’은 ‘속박’이 되어 현재까지 이어졌다. 스쿠나가 말한 [사랑하는 상대와 한 약속]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고죠는 이것이 충분한 증거물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무녀에 대한 정보를 전혀 찾을 수 없었던 탓이었다. 무녀가 활동했던 이야기만 있을 뿐 외형도, 나이도, 하물며 초상화까지 남은 것이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그녀의 기록을 지우려고 했던 것처럼.

이 탓에 상층부, 특히 꽉 막힌 원칙주의자들 쪽에서 말이 나올 거라고 당시의 고죠는 생각했다. 그렇기에 한참을 영양가 없고 무의미한 말싸움이 오갈 거라 생각했다.

문풍지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가 없었더라면.

 

‘그 내용의 출처가 어디라고 했지?’

 

가늘었으나 강단이 있는 목소리였다. 목소리의 주인은 고죠도 알고 있는 젠인 가의 원로 중 한 명이었다. 고죠가 봤을 때, 젠인에서도 몇 안 되는 상식인 포지션에 속하는 인물이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거의 출석하지 않는 인물이기도 했다. 또한 꽉 막힌 원칙주의자 중 한 사람이었던 만큼, 이번 일 만큼은 직접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메구미가 찾은 자료의 원본이 되는 야사집은 젠인 가에서 기증한 고서들 중 한 권이었다. 고죠의 말을 들은 젠인의 원로는 잠시 침묵하더니 그 자리에서 고죠도 놀랄만한 발언을 했다.

 

‘이타도리 유지에 대한 처분은 보류하는 걸로 하지.’

 

그의 발언 이후 논의는 빠르게 처리 되었다. 고죠 가는 고죠 사토루의 의견을 따를 뿐이고, 젠인 가는 [보류]로 의견을 정했다. 고삼가에 속하지 않은 또 다른 원칙주의자가 있었지만, 이미 의견은 한쪽으로 기울어진 추세였다. 수상할 정도로 카모 가는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카모 가가 나선다고 기울어진 저울을 원래대로 돌릴 순 없었다.

 

“상층부에서 요구한 조건은 두 가지야.”

“두 가지요?”

“첫째는 스쿠나의 손가락을 모두 삼킬 것. 둘째는―”

 

보고가 끝난 뒤, 고죠는 따로 젠인의 원로를 만났다. 고죠로썬 생각하지 못한 지지를 받은 셈이었으니까. 감사의 인사를 할 겸, 속을 파헤치기 위함도 없지 않아 있었다. 고죠는 단도직입적으로 무슨 속셈이냐고 물었다. 아무리 젠인 가에서 기증한 고서라 해도, 젠인 쪽에서는 모른척할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죠 가와 젠인 가는 오래된 앙숙이었다. 그런 관계에서 젠인의 원로가 고죠 사토루를 도와주는 건 어떠한 속셈이 없지 않고서야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젠인의 원로가 남긴 말은 어디서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그녀와 맺은 천 년 전의 약속이라고 생각하게나.’

 

천 년 전의 약속, 스쿠나가 했던 말과 같았다.

 

‘이 이상은 가문 대대로 맺어진 속박 때문에 할 수가 없다네. 뭐, 이것도 내 대에서 끝날 것 같지만.’

 

젠인 가의 원로가 고죠를 올곧게 쳐다봤다.

‘스쿠나의 그릇을 잘 지키게나’

그것은 일종의 조언이자 경고였다. 앞날을 예견한 노인이 해줄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도움이었다.

‘그릇을 노리는 이는 한 둘이 아닐 테니.’

젠인의 원로는 그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고죠는 다시금 확신했다.

 

“스쿠나를 잘 제어할 것.”

 

천 년 전의 약속, 그 약속에 무언가가 있다고.

그렇다면 그게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이 있길래 대대로 이어지는 속박까지 맺게 되었는가. 그리고 스쿠나, 저주의 왕이라 불리던 사상 최악의 주술사와 무녀의 관계는 무엇이며, 둘 사이에 맺어진 약속이 무엇이기에 그리 따르는가.

모든 의문을 해결할 열쇠는 한 명이 쥐고 있었다.

이타도리 유지,

‘약속’의 이유이자 료멘스쿠나의 그릇이 된 소년.

스쿠나가 언급한 유지가 해야 할 일 이라던가, 무녀의 정체라던가 확인해야 할 것이 많았다. 그러나 고죠가 생각했을 때,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이타도리 유지 그 자체였다.

 

“이 두 가지만 잘 지켜주면 유지가 죽을 때까지 사형집행이 내려올 일은 없을 거야.”

“아하, 그래서······”

“그래. 만약 둘 중 하나, 특히 두 번째를 지키지 못하면 ‘이 때다!’하고 사형을 선고하겠지. 그래서 어떡할래?”

 

스쿠나를 방치하고 그대로 사형 당할래, 아니면 스쿠나를 제어하고 스쿠나의 모든 손가락을 모을래? 고죠가 제시하는 이지선다에 유지의 호박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유지는 한 가지를 물었다.

 

“스쿠나를 제어하라는 말, 그게 가능해 보여요?”

“잘 안 되면 뭐, 약속을 들먹여도 되고?”

 

고죠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유지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자세는 불편했지만,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다.

유지는 스쿠나가 말했다는 천 년 전의 약속이 자신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릇이라서 챙기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게 맞을 거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자신이 스쿠나의 그릇으로 적합했기에 스쿠나가 천 년 전의 약속을 이행하려는 것뿐이라고. 그렇다면 고죠의 말대로 하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스쿠나가 언급한 ‘해야 할 일’.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천 년 전에 살았다던 존재가 제게, 자신의 그릇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일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하물며 자신은 평범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이것만큼은 유지는 단언할 수 있었다.

 

”그럴 수 없어요.“

”어째서? 최고의 목줄이 될 텐데?“

”그렇다면 더더욱 못해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약속이라고 했죠? 지금도 뭔지 잘 모르겠지만······, 천 년 동안 간직했을 감정이 목줄로 사용되는 걸 바라지 않으니까요.“

 

고죠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고 싶은데?“

”…우선“

 

할아버지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해주세요.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유지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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