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강철

사람은 적응을 하는 생물이다.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는 그리 말했었다. 그것은 비단 육체의 아픔 뿐만이 아니라 정신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하지만 적응 이전에는 어떻지? 우리는 그 미지의 충격을 방어하기 위해 두려움 이라는 것이 몸에 들어가있다. 하지만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결코 물러날 수 없는 이들은 두려움을 전부 게워내야만 했다, 그게 어떤 방식이던. 콜린 갤러스도 그러했을 것이다. 가장 처음의 고통일수록 육체에 오래 깃든다. 두려움이 죄다 빠져나가 게워낼 것이 없는 사람의 몸에도 그 상처는 여전히 깊게 남아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처를 쉽게 내어보이지 않고 우뚝 서고자 하는 그 마음 하나로 모든 것들을 감내해온 탓일 것이다.

“-그러니, 글쎄⋯. 기사들도 그러지 않겠습니까? 언제나 우리가 발 딛는 이곳에 함께하는 거지.”

키아라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들이 상처 근처를 간질였다. 바다와 강철은 그 재질은 다르지만, 차갑고 누군가를 외롭게 만든다는 것은 같았다. 그러한 곳들은 똑같이 우뚝 서고자 하는 사람들이 외로움과 고통을 짊어지고 가는 곳이기에. 하지만 이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또, 그 거센 것들에 쓸려가는 시간들을 기억한다. 외로운 바다 깊은 곳에 침잠하지 않도록, 고통스런 강철산 높은 곳에 넘어지지 않도록 지나온 자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추억한다. 아주 오래전 그의 영지에 방문했을 때를 기억한다. 처음 들어본 파도 소리는 날붙이가 부딪히며 굴러가는 소리와 이상하리만치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저희가 발 딛는 이곳에 말입니까.”

무의식적으로 키아라의 마지막 말을 따라하며 읊었다. 이내 자신의 머리를 벅벅 헤집으며 저를 슬쩍 올려다보는 눈길은 상냥함이 깃들었다. 염려하는 이의 눈길은 익히 보아 알고 있다. 그 상냥함에 괜히 요란했던 마음은 이내 금방 진정되었다. 파도 소리에 익숙해지듯이.

“사실 저희도 그리 별 다른 것이 있지는 않습니다. 검을 휘두르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른 만큼, 저마다의 이별 방법이 있는 것 같더랍니다.”

그동안 스쳐 지나간 많은 웃음들처럼, 저도 따라 싱긋 웃어보였다. 폭풍우가 휩쓸고 간 바다는 이윽고 잠잠해져, 다시 노을을 담은 순풍이 불었다. 돛을 달아준 사람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콜린은 키아라에게 발자국을 조금 가깝게 붙여, 가라 앉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후작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리 생각하게 된지는 오래 였으나, 역시 갑자기 옛날 이야기를 꺼내니 또 주책맞게 궁상이지 뭡니까.”

흐흐, 하고 특유의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새 잔을 집어든 당신에게 아직 샴페인이 반쯤 남은 자신의 잔을 내밀었다.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끔 이렇게 생각이 날 때는 술을 들이키면 금방 또 추억으로 넘어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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