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보 드림] 암향화연(暗香花燕)
유료

[화산귀환/당보드림]암향화연(暗香花燕)

05. 매듭

* 적폐 / 날조 / 캐해석 차이 있을 수 있습니다.

* 매화연 9화의 유료 내용과 이어집니다. 삼각관계 주의.

* 당보 시점 + 자캐와 당보의 과거 떡밥이 나옵니다. (유료입장)

*평균 유료 분보다 양이 많아 이번 편은 가격이 다릅니다.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솨아아.

바람에 나뭇잎이 부딪치며 산사나무 향이 느껴진다. 흰 꽃잎이 살랑이며 연홍 련은 나무 그늘에 기대있다. 개회사를 선언해 얼굴을 드러내고 축하주도 몇 잔 받아 마셨다. 그녀는 술기운을 식히기 위해 연회장을 잠시 빠져나왔다. 조금 있으면 연회도 마무리 될 것이다. 춤추는 무희들을 보자니 악단 언니들도 떠올라 자신이 가서 출 수도 있건만, 연홍 화는 단호했다. 밖에서 지낸 자신을 완전히 배제하기 위해 춤도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난 저잣거리 무희를 돕는 게 아니라 내 동생을 돕는 거지, 착각하지 말거라.

며칠간 세가의 일로 정신이 없었다. 낮에는 약제 제조와 새로운 영단 연구부터 시작해서 식솔들 의술을 가르쳐준다. 지하 훈련실에서 손질된 해부 도구를 점검하고, 밤에는 서재에 보관된 무학서를 읽고 그걸 체화하는 훈련까지. 때문에 잠도 줄이며 일정을 소화하느라 이렇게 긴장을 풀고 쉬는 시간이 더 각별하다. 피 냄새보다 꽃향기가 더 좋은 건 당연하니까. 제 머리 위에 피어있는 꽃을 감상하던 연홍 련의 눈이 가늘게 감긴다. 잠깐 눈을 붙이고 있자니 꽃향기 속에서 언뜻 훈연 냄새가 느껴진다. 불? 아니다, 이건..

“…연초 냄새.”

연홍 련은 표정을 굳힌다. 연홍세가는 불에 예민하다. 각종 약재를 다루는 만큼 불에 취약하다는 걸 알고 있기에 함부로 연초를 못 피운다. 이건 가주나 장로여도 예외는 없는 규율이었다. 연홍 련은 냄새가 나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걸음을 멈춘 연홍 련은 소매로 코를 가리며 미간을 찌푸린다.

“이 집에서 연초를 피우는 간 큰 놈이 여기 있구나.”

그래, 설마 싶었지만 냄새가 익숙하더라니. 연홍 련의 시선엔 난간에 앉아 연초를 피우는 당보가 있었다. 그는 어디 구르기라도 했는지 좀 전에 볼 때보다 장포에 흙자락이 묻고 입가에 피가 터져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흙만 묻은 게 아니라 중간중간 핏자국과 옷이 해져있자 연홍 련은 눈을 끔뻑이며 그의 옆에 앉는다. 애 꼴이 왜 이래?

“…어디 싸우기라도 했니? 금창약은?”

“발랐습니다. 누님이야말로 주인공이 여기와도 됩니까?”

천덕꾸러기처럼 킥킥 웃는 당보는 피우던 연초를 비워낸다. 미간을 찌푸리던 연홍 련은 새초롬한 표정으로 일갈한다.

“내 휴식을 방해한 누구 덕분에 여기서 잠깐 쉬다 갈 거다.”

곰방대를 치우려 하자 제 손을 타고 곱게 단장한 손가락이 곰방대를 잡는다. 고개를 기울인 연홍 련은 향만 옅게 남은 연초를 입에 물어 옅게 빨아들인다. 당보는 제게 기울여진 연홍 련을 내려본다. 오래 맡으면 머리 아프고 입에 남는 쓴맛을 싫어하면서. 연초를 무는 모습은 안 어울릴 거란 예상과 달리 이리 야릇할 수 있다는 게 참으로 묘하다. 연홍 련은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초가 옅게 남은 숨을 내뱉는다. 약간은 텁텁한 맛이 나지만 나쁘지 않았다. 연홍 련은 팔을 괴면서 느른히 당보를 본다. 아까부터 계속 쳐다보네. 놀랬나.

“…그러다 얼굴 뚫어지겠다.”

연홍 련은 작게 핀잔주면서도 피식 웃는다. 당보는 심드렁히 연홍 련이 쥐어낸 곰방대를 걷어 장포 속에 담아 넣는다.

“굳이 이렇게 제 걸 뺏어 피워야겠소? 연초 싫어하잖습니까.”

“네가 피는 향은 입에 맞으니까 괜찮아. 그리고, 이 정도는 해야 충분히 향이 배겠지. 공범이 돼주려면 말이다.”

단정하고 청초한 여인의 얼굴에 휘어진 눈꼬리가 짓궂음이 가득하다. 당보는 허, 하면서 기가 막히는지 팔에 턱을 괴어 표정을 찌푸린다. 연홍에서 연초를 피우는 게 금기인 건 알고 있었다. 눈앞의 여인이 봐줄 것이라고 예상해 연초를 피운 거지만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진 못했다. 이 여인보고 성녀의 재림이라니 누가 그러던가.

“누님 갈수록 성격 나쁘신 거 압니까? 받아줄 것도 아니면서 사람꼬시네.”

“너는 착실히 예민하고 말이지. 슬슬 적응할 때도 됐을 텐데.”

연홍 련은 품에서 약병을 꺼내 당보의 턱을 잡아 손가락 끝으로 피가 터진 입가에 연고를 발라낸다. 당가제조 금창약이라면 효과가 좋겠지만 장로라는 애가 몰골이 이래서야. 당보는 제 얼굴을 잡은 연홍 련을 보다 손이 떨어지자 장포 속에 손을 넣어 팔짱을 낀다. 심드렁한 표정 아래 연홍 련을 보는 시선이 지긋하다.

“바쁜 건 지나갔으니 이제는 설명 해주시겠소? 매화검존과... 아는 사이인 모양이던데.”

연홍 련은 당보를 보다 약병을 정리해 품에 넣으며 담담히 말한다.

“악단에서 지낼 때 도와주신 적 있어서 알게 됐어. 너보단 아니지만 그래도 알고 지낸 지는 그래도 꽤 되었지.”

자신이 성년이 되기 전에 만난 사람이니까. 서안에서 재회하지 않았으면 청명과의 인연이 이렇게 길어졌을까. 하다못해 화산에서 일을 끝내고 바로 돌아갔으면 영영 볼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연홍 련이 생각에 잠겨있으니 그녀를 살피던 당보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러기엔 그 말코 눈이... 집요했던 거 같은데. 무엇보다..’

그 말코 새끼 입으로 얘기하지 않았던가. 정인이라고. 매파가 없는 건 이 누님과 닮은, 그 콧대 높은 연홍 가주의 솜씨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정인이 있으니 불러들이지 않았다는 건가.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곱게 단장한 얼굴에 드리운 피로가 제 눈엔 확실히 보였다. 당보는 연홍 련의 눈가를 가볍게 쓸어낸다.

“..피로해 보이는데 잠은 제대로 자는 겁니까?”

연홍 련은 잠시 피식 웃더니 당보의 어깨에 고개를 기댄다. 시비들이 공들여 꾸미고 해서 아무도 그런 얘기는 안 하던데.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오래 봐 온 사이라 편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밤샘을 한 건 아니니 걱정 말렴. 넌 걱정이 너무 과해.”

“그걸 아시면 좀 더 신경 쓰시죠. 보나 마나 적응하느라 무리한 거 아니오? 이 시기에 세대교체 한 것만 봐도 마음에 안 드는데.”

혀를 차며 투덜이는 당보의 말에 연홍 련은 그저 웃는다. 불안한 시기에 어울리지 않게 지루하게 평화롭고 떠들썩한 연회가 열려있으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보수적인 권력자들 사이에서 젊은 여성 가주와 새로운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홍은 선조부터가 여성인만큼 여인이 가주를 맡는 게 처음도 아니고, 연홍 화의 행적을 아는 가신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밖에서는 다를 것이다. 연홍이 어떻게 나올 건지 관찰하고 간을 보려는 눈도 적지 않았으니까. 당보의 손 아래로 비단으로 포장된 함이 연홍 련의 손에 쥐어진다.

“생일이시니 선물입니다, 누님. 시비에게 줘야 된다지만 선물은 직접 받는 게 좋지 않소?”

연홍 련은 당보에게 시선을 주다 함을 내려본다. 연홍 련이 흔들어 보고 있으니 턱을 괸 당보가 묻는다.

“안 열어보십니까?”

“바로 열어보는 건 실례잖아.”

“하나 더 있으니 열어보시죠.”

당보의 말에 기대있던 연홍 련이 고개를 든다. 그는 장포 소매에 손을 깊숙이 넣더니 기다란 함을 내민다. 소매에 저걸 어떻게 들고 온 건지. 아무리 당가 사람이 입는 장포 소매가 넓다고해도 사람도 들어갈 수 있는 거 아닌가. 연홍 련이 소매에 대한 탐구심을 담아 보고 있으니 당보는 무릎에 상자를 올려 연홍 련쪽으로 내민다.

“누님이라면 이쪽을 더 좋아할 거라 생각하지만, 어느 쪽을 먼저 여시겠소?”

연홍 련은 두 개의 함를 보고 있다 기다란 함에 손을 얹는다. 당보가 저리 장담하는 거면 제 취향의 물건이라는 건데. 호기심이 든 연홍 련이 열어보니 비단에 싸인 한 쌍의 검이 놓여있다. 흑단으로 제조된 새까만 검집과 검 손잡이에 매달린 보라색 수실 끝에 작은 열매 모양이 달려있다. 눈이 커다래진 연홍 련은 검을 하나 집어 뽑아보자 햇빛에 반사되어 시리게 반짝이는 날이 드러난다. 칼등에 새겨진 연꽃 모양과 연홍이라 써진 글자에 시선이 간다. 쥐어진 손잡이 느낌이 익숙하다. 한참을 내려보던 연홍 련이 검집에 검을 담아 당보를 돌아본다. 능청스러운 미소에 연홍 련은 믿기지 않은 듯이 물어본다.

“이거... 설마,”

“당가에서 만든 겁니다. 검무할 때 쓰던 검이랑 최대한 비슷하게 부탁드렸소. 마음에 드시오?”

연홍 련은 검을 꾹 잡는다. 당가의 장인들은 천하제일 솜씨라 자존감이 드높고 그만큼 폐쇄적인 곳일 텐데. 그 곳에서 제 이름을 뜻하는 붉은 연꽃과 연홍을 새겨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검무에 쓰던 검은 목검을 꾸민 거라 가벼운데 이 검은 진검인데도 불구하고 가볍다. 목검보다야 무게감이 있긴 하지만 길이에 비해 가벼운 검은 확실하다. 연홍 련의 입꼬리가 진하게 올라간다.

“..칼등에 새긴 연꽃에 연홍이라니. 당가에서 가만두지 않았을 거 같은데.”

“누님께 폐를 끼친 새끼들을 쪼아냈지요. 오직 누님을 위한 겁니다.”

그럴려고 자신을 붙잡은 그들의 부탁을 순순히 들어준 거니까. 오명을 받는 건 어차피 본인들의 행실에 대한 죗값이라 생각했다. 이 누님이 들고 있는 검은 단순히 검무에 쓰기 위한 검이 아니다. 각인은 물론이고 당가 최고의 대장장이와 그 귀하다는 한철을 넣어 제작한 검이니까. 명검을 하나도 아닌 한 쌍으로 만들었으니 재료만 해도 어지간한 전각 한 채 값은 나올 거다. 당보는 고소하단 미소를 지으며 연홍 련을 보고 있자 그녀가 제 품에 폭 안긴다.

“고마워, 엄청 마음에 들어.”

당보는 움찔이다 곧 연홍 련을 마주 안는다. 그 말코 도사한테 맞은 곳 때문에 아프지만 좋아하는 그녀를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좋아할 거라 예상했어도 역시 눈으로 반응을 봐야 안심이 된다. 연홍 련을 감싸던 당보는 팔을 풀어 턱을 올려잡는다.

“이리 좋아하니 두 번째 선물도 기쁘게 받아줄 거라고 믿어도 되겠소?”

연홍 련은 당보를 안고 있다 흐린 눈으로 그를 마주한다. 쌍검을 받고 보니 두 번째 선물도 궁금해졌지만 이렇게 말하면 좀 불길한데. 크기로 봤을 땐 장신구인 거 같다만은.

“…이상한 게 아니라면 말이지.”

“해괴한 건 아니니 두 번째도 열어보시죠.”

의심스레 올려보던 연홍 련은 품에서 나와 함에 쌓인 비단을 풀어낸다. 포장까지 돼 있는 걸 봐선 검이 당가에서 주는 선물이라면, 이게 개인적으로 준비한 선물인 거 같은데. 열어보니 들어있는 건 나비 모양의 비녀였다. 섬세하게 조각된 나비와 비녀 대에 새겨진 연꽃 각인과 함께 새까만 비녀가 반질인다. 가만히 내려보던 연홍 련은 새겨진 각인을 만져보다 웃는다.

“..실용적이고 예쁘네, 비도 대신이니?”

연홍 련은 설명을 요구하듯 당보를 보고 있으니 기다란 손이 연홍 련의 귓불을 만진다. 비녀와 맞췄는지 은방울꽃 귀걸이가 손가락 사이에서 달랑거린다.

“호신용이 하나는 있는게 좋지않겠소? 제 의지는 아니였지만 이건 안 뺏어갈테니 누님 마음데로 쓰시죠.”

당보의 손이 연홍 련이 쥐고 있는 비녀를 가져간다. 연홍 련의 표정이 미묘하다. 비도를 가져갔던 게 신경이 쓰였나. 하기야 그는 늘 자신의 안전을 생각했으니까. 선물로 준 검도 그렇고. 연홍 련은 제 머리에 자연스레 고정해서 꽂는 당보를 바라보다 손목을 잡는다.

“…어울리는지 확인했으면 빼서 주렴. 지금 쓰기엔 너무 눈에 띄어.”

“돌려주면, 받아줄 것이오? 무슨 의미인지 아실 텐데.”

능글맞은 미소에도 연홍 련은 지긋이 바라본다. 여인에게 비녀를 선물 주는 것이 청혼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생일 연회에 들어오는 흔한 선물 중 하나기도 하고. 그래서 시비를 통해 선물을 받는 걸로 얘기 나온 거니까. 이 놈도 그걸 알고 직접 주는 거일 거다. 연홍 련은 피식 웃으며 손목을 잡은 손을 느리게 매만진다.

“..너 말대로 혼수는 오갈 수 있는 거니까. 얼마나 곤란하게 할 생각이야?”

연홍 련의 말에 당보는 멈춰서 그녀를 내려본다. 제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교활함에 웃음이 났다. 꽂아준 비녀를 매만지던 당보가 연홍 련의 손목을 잡아 소매 안으로 비녀를 돌려준다. 그는 능청스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기울여 연홍 련과 시선을 맞춘다.

“여기 잘생기고 능력 있고 집안 좋은 남자가 좋다고 따라다니는데 그리 곤란하시오?”

“농담도. 서로 싸우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피바람이라도 불까 봐 무섭구나.”

연홍 련 역시 따라 웃다가 바깥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만찬도 끝나 연회를 정리하려는 분위기가 보인다. 연홍 련은 당보에게 받은 검을 함에 다시 돌려 넣어 그에게 넘긴다. 슬슬 돌아가 봐야겠지.

“이건 따로 시비에게 맡기렴. 비녀는 들고 가겠지만 그건 갖고 있기엔 손님들께 부담을 줄 테니까.”

“그러지요.”

순순히 받아서 든 당보는 제 소매에 넣어둔다. 원래는 누님께 따로 귀띔으로 얘기해주려고 했으나 그 말코 도사에게 방해 받았으니까. 장포 속에 손을 넣고 있던 당보는 일어나려는 연홍 련에게 손을 내민다. 연홍 련은 자연스레 내민 손을 잡아 자리에서 일어난다. 제비꽃 눈동자가 멀찍이 보고 있는 게 무엇일지 궁금할 무렵, 시선을 느낀 연홍 련이 당보를 올려본다. 그녀는 뒤를 힐끗거려 장포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려니 당보의 손이 붙잡는다.

“…손 더러워지니까 먼저 가보시지요, 누구 때문에 연초도 마음대로 피우지도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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