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리프 이주 0P 사건

S.A. 1697

안나타르 × 켈레브림보르 | 210317 포스타입

rhindon by 댜

빛의 속도를 재어 보았느냐고, 언젠가 안나타르 아울렌딜이 그에게 물었었다.

켈레브림보르는 고개를 저었다. 기예란 극한으로 치닫을수록 모순으로 가득했으며 그의 요정석은 재료의 합보다 무거웠지만, 이제껏 광속을 재려 해 본 적은 없었다. 이유를 꼽기는 어려웠다. 힘링에서 타오른 봉화가 단 몇 분 안에 바라드 에이셀에 닿는 한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아마도 그 때문에. 그래서 너는 정확한 수치를 알고 있는지 되묻자 안나타르는 고개를 저으며 영 딴소리를 돌려주었다. 시간이 느려진다는 걸 알아?

빨라지는 게 아니었나, 상식 수준의 답을 내놓으면서도 켈레브림보르는 내심 자그마한 기대를 품었다. 대개의 경우 안나타르의 강론은 아무 상관 없어 뵈는 사실들의 나열로 시작했던 탓이었다. 시간은 빨라지는 게 아니었나, 아리엔이 떠오른 후부터 세상의 변화는 가속되었다고 알고 있어. 안나타르는 아주 우스운, 우습다 못해 안쓰러운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처럼 소리 내어 웃었다. 그렇지, 빨라지지. 그게 저 발라들의 심판이니까.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너마저도 그렇게 생각해. 빛의 속도를 재 보았어, 페아나린케? 언젠가 해 보자. 언젠가는 분명 따라잡을 수 있을 테니.

달아오른 쇳물 같은 금발은 태초의 빛으로 반짝였고 그 위로 미끄러지는 햇살은 찬란했다. 선물의 군주가 설파하는 미래는 드높은 첨탑과 거울 같은 호수, 광활히 펼쳐진 대지를 약속했다. 그뿐만이었다면 거절할 여지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안나타르는 별빛을 가두는 데에도 보석을 빚어 내는 데에도, 심지어는 전쟁에도 쓰이지 않을 지식을 밝혀 내자고 - 그리고 목표로 삼자고 - 주장했고, 그것만큼은 켈레브림보르는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비효율적이라며 쳐 내는 모든 환상이 안나타르의 휘광에 힘입어 손 닿을 거리에 어른거렸다. 제 이름값을 하는 장인이라면 누구도 뿌리치지 못할 유혹이.

그 이야기를 나눈 다음날 안나타르가 힘의 반지를 제안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두린에게 주었어.”

그럼 그렇지, 안나타르는 손뼉을 치며 눈부시게 웃었다. 맞닿는 손가락 사이로 핏물이 튀었다. 켈레브림보르는 뻣뻣한 이마를 구겨 인상을 썼다.

“좋냐?”

“티엘페린콰르, 너도 만만찮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걸.”

작업실 바닥을 딛고 성큼 다가온 안나타르가 켈레브림보르의 턱을 추켜올렸다. 에레기온에는 감옥이 없었다. 이따금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는 이들을 통제해야 할 때면 빈 창고를 쓰고는 했지만, 그곳 역시 누군가 이틀 이상 머무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안나타르는 제법 영리한 편이었고 미르다인의 작업실은 물 빠짐이 좋았다. 반대편 벽에 걸린 두 나무의 태피스트리를 켈레브림보르가 신경 쓰지 않게 된 지도 퍽 오랜 시간이 되었다. 어쨌든 이제는 그 그림이 보일 만큼 시야가 맑은 날도 얼마 없었다.

그나마 멀쩡한 왼쪽 눈은 눈꺼풀이 부은 탓에 뜨고 있기도 힘에 부쳤고, 오른눈 안에서는 날파리 같은 까만 점이 어른거렸다. 애써 안나타르의 미간에 초점을 맞춘 켈레브림보르가 피식 웃었다. 어떻게 이 얼굴을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나? 이토록 비열한 것을.

“네가 모르고스 바우글리르라도 크하잣둠의 문을 뚫지는 못할 거다.”

뺨에 얼얼한 통증이 일었다. 켈레브림보르는 돌바닥을 손끝으로 긁으며 윗몸을 일으켰다. 안나타르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뒈진 지 오래인 난쟁이의 작품 따위, 부숴 버리면 그만이야.”

“산의 뼈를 깎아 나르비가 만들었고—”

“미숙한 애송이였지.”

“—옛 벨레리안드의 관습에 따라 힘을 새겨 넣었어.”

“너도 마찬가지고.”

“내가 직접, 내 조부의 문자로.”

눈앞에서 새하얀 예복 자락이 휘날렸다. 안나타르가 일어서 몸을 돌린 것이었다. 퉤, 뱉어낸 침은 검은 피가 절반이 넘었다.

친구여, 말하고 들어가라. 수수께끼는 한 겹이었지만 주문은 두 겹이었고, 켈레브림보르는 안나타르가 친구라 말하는 꼴을 직접 보지 못한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문에 엮인 주문은 거짓 우정에는 답하지 않을 것이었으며 안개산맥을 그 근본부터 무너뜨리지 않는 한 문을 열 길은 없었으니까.

바랏두르를 끌어올린 힘이라면, 정말로 산맥을 무너뜨릴지도 모르겠으나…….

“두린에게 안부나 전해 주지 그래?”

“다시 볼 때는 좀 더 고분고분하게 구는 편이 나을 거야, 티엘페린콰르.”

일 년 반이었다. 열여섯 개 반지의 소재를 하나씩, 하나씩, 영혼에서 저며 내듯 실토하며 끌어온 시간이. 이제 무슨 수로 저 녀석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아 볼까, 착잡히 고민하면서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요정의 체력에는 한계가 명확했고 종막은 이제 머지 않았다. 일곱 반지의 소재를 낱낱이 밝혔으니 그는 협상의 여지를 죄다 소진한 셈이었다. 안나타르가 - 사우론이 - 한동안은 크하잣둠에 숨겨진 반지에 정신이 팔리기는 하더라도, 결국에는 그에게 돌아올 터였다.

하나는 암로스의 땅에 머무는 아르타니스에게, 둘은 린돈의 에레이니온에게. 그가 세 반지를 넘겼을 상대야 그들뿐이었지만, 안나타르는 의외로, 혹은 당연히도 이를 확신하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가깝고 먼 과거를 돌이켜보고서야 켈레브림보르는 그럭저럭 안나타르의 심사를 이해했었다. 실마릴이 숨겨져 있던 곳은 포르메노스 요새의 금고였고 그 자신과 갈라드리엘 사이에는 원한이 깊었다. 차라리 반지를 믿을 만한 기수들에게 맡겨 세 방향으로 떠나 보내는 것이 켈레브림보르로서는 더 마음 편한 선택지였을 테다.

그래서 안나타르는 엘다르의 군세가 이동하는 것을 알면서도 공격에 나서지는 못했다. 약간의 의심에 기대어 움직이기에는 두 군주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고, 그렇다고 그들을 동시에 완전히 파멸시키는 것도 불가능했던 탓이었다. 요정을 지배할 반지를 되찾기 위해 요정을 지배한다니, 저급한 촌극보다도 웃기는 일이었으니까.

상황이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만큼 안나타르가 증오하는 대상이 또 있을까? 한때는 그것을 미지(未知)를 향한 욕구로 여겼더랬다.

갈라드리엘의 흰 손에 네냐를 쥐여 주며 켈레브림보르는 짧게 말했었다. 아뇨, 여기 남진 않을 겁니다. 당신 마음은 알아요. 하나 내 가문의 누구도 자신의 영지에서 죽지는 못했으며 나는 그것을 과오로 여깁니다. 당신이 이름한 대로 나는 텔페린콰르입니다. 나의 에레기온, 내 사랑하는 호랑가시나무땅을 이리 쉽게 놓아버릴 수는 없어요. 그 말을 듣는 갈라드리엘의 표정은 비참했고 켈레브림보르는 그에게 남은 마지막 친족 중 하나를 제 손으로 찢어 죽이는 듯한 기분을 받았었다. 그러나 그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말하자면 그 옛날의 그가 안나타르를 직시하지 못했듯 지금의 안나타르 역시 켈레브림보르 쿠루피니온을 바로 보지 못한다는 것. 안나타르의 눈길을 붙잡아 둘 수 있는 한 켈레브림보르는 얼마든지 고통스러운 숨을 들이쉴 용의가 있었다. 스스로 삶을 버릴 수 있는 요정이 아직까지 부스러진 육신에 매달려 있다는 데서 안나타르가 회유의 가능성을 찾아낸다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은 일이었고.

멀어지는 걸음소리를 쫓아 고개를 기울이던 그는 방문이 거칠게 닫힌 후에야 눈을 감았다.

사우론이 포로를 찾지 않을 때는 오르크들이 그 감시를 도맡고는 했다. 물에 적신 천으로 얼굴을 닦아주던—고르바그였던가?—오르크는 반항조차 하지 못하는 포로를 그리 신경쓰지 않는 듯했고, 모욕감이라도 느끼기엔 켈레브림보르는 너무 지쳐 있었다. 진력을 다하는 것은 안나타르를 상대할 때로 충분했다. 저무는 햇살이 작업실 바닥에 비스듬한 사선을 그었다. 켈레브림보르는 말없이 마음 속의 달력을 넘겼다.

처음부터 그에게 불리한 싸움이었다. 적은 체스판과 말들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었고, 켈레브림보르가 의존할 것이라곤 기억과 추측 뿐이었으니. 그러나 모리아의 서문에 해일처럼 밀어닥치는 적의는, 그것만은 그가 만도스의 궁정에 갇혀 있었더라도 느낄 수 있었을 법한 류의 것이었다. 암석은 이스타르니에 네르다넬의 핏줄을 기억했으며 은과 미스릴로 빚은 별은 지상의 어떤 보석보다도 굳게 빛났다. 반지를 통해 발현되는 사우론의 의지는 막강했지만 문의 봉인은 그에 못지 않았다. 켈레브림보르가 마지막으로 안 것은 문을 둘러싼 암벽에 내리쳐지는 칠흑 같은 분노였다.

그리고 이제는 두린의 문으로부터 과이스 이 미르다인 본부까지 두 번 내달려 오고도 남을 만한 시간이 흘러간 후였다. 유예는 끝나가고 있었다.

아홉 반지와 일곱 반지는 시간과 맞바꾸어도 좋은 것들이었다. 마지막 셋은 달랐다. 사우론의 손아귀에 붙잡힌 채로 상황의 득과 실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으나, 그럼에도 켈레브림보르는 습관처럼 계산을 행했고 그 결과에 따랐다. 살아남기 위해 손 하나, 다리 한쪽을 자를 수는 있어도 내장을 들어낼 수는 없었다. 켈레브림보르가 신뢰하지 않는 직감과 신뢰하는 이성이 간만에 내놓은 합치된 의견이었다. 세 반지는 엘다르의 생존과 승리에 불가결했다.

그렇다면 사우론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

그날의 마지막 빛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사우론이 언제 귀환했는지도 모를 만큼 자연스레 나타났을 때까지도 켈레브림보르는 답을 찾지 못했다. 포로를 돌보던 오르크는 달군 쇠를 잡았던 듯 그를 내팽개쳤다. 켈레브림보르는 돌바닥에 엎어진 채로 옷자락이 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꿀처럼 진득한 명령이 오르크를 내보냈다. 저 목소리를, 설마 그리워했었나? 그의 머리채를 잡아드는 손가락은 길고 곧았다.

“티엘페린콰르.”

이마에 차가운 금속이 닿았다.

'“모리아는 좀 어땠어, 안나타르?”

“잠시 미뤄두기로 했지.”

마치 사소한 식사 약속을 연기했다는 양 부드러운 어조였다. 켈레브림보르는 말이 없었다. 실상 그에게는 더는 안나타르에게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남아있지 않았다. 내어 주어도 좋은 것은 모두 내주었고 그러지 못할 것들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세 치 혀로 놀도르의 반란을 주도한 페아노르, 핀로드를 몰아내고 그 아들이 물려받을 만한 것은 먼지 한 줌 남지 않게끔 한 쿠루핀의 후계자치고는 싱거운 결말이었다.

침묵이라니.

안나타르가 아직 깨닫지 못한 사실이라고는 하나, 켈레브림보르는 이미 동족과 동맹에 대한 의무는 거의 끝마친 후였다. 세 반지의 행방이 결코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으리란 사실만 밝혀진다면 이 잔혹한 대치도 막을 내릴 것이었고, 그 시점은 대부분 안나타르에게 달려 있었으니까.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 끌 수 있는 시간은 켈레브림보르가 몸소 경험했듯 한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막연하면서도 강렬한 감정이 켈레브림보르의 숨을 붙여 놓았다. 희망이기도 했고 자존심이기도 했으며, 대부분은 악착같은 오기였고…… 어쩌면, 호기심이기도 한 무언가가.

켈레브림보르는 충동적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할 수만 있었다면 부러진 팔을 들어 안나타르의 손을 붙잡았을 터였다. 속마음처럼 손목을 옥죈 쇠사슬이 철컹거렸다.

“그 반지.”

정적 끝에 뱉은 말에 안나타르는 반색하는 듯했다. 머리카락이 당기는 것을 느끼며 켈레브림보르는 말을 이었다.

“뺄 수는 있는 거냐?”

"뭐?"

“한동안 궁금했었거든. 네 존재 자체가 그 반지에 엮여 있다는 것, 내 눈이 멀었더래도 곧바로 눈치챘을 거다. 뺄 수는 있나? 몸에서 떼어 놓아도 되나? 네 작업, 이건 내 조부가 실마릴에 빛을 담을 때 썼던 기법을 연상시켜—하지만 그보다도 심각하지. 네 자의로 포기하거나 파괴할 수 있나?”

안나타르의 얼굴은 폭풍전야처럼 고요했다. 하지만, 하지만. 켈레브림보르는 문득 과거에 사로잡혔다. 바로 이곳, 해는 저물고 달은 뜨지 않아 안나타르에게서 스미는 것만이 유일한 빛인 이곳에서 그들은 한때 권능과 영원을 논했었다, 찢기고 망가진 머리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위대한 일들을. 이전의 걸상이며 도구들은 모조리 치워지고 바닥은 피와 오물을 머금어 스산한 작업실이었으나, 어스름이 상처를 덮자 켈레브림보르는 차마 물음을 멈추지 못했다. 빛의 속도를 재어 보았어, 페아나린케? 어떤 기억은 난 엘모스에서 들려오는 멜리안의 노래만큼이나 매혹적이라, 결국에는.

“누가 주인인 거지?”

빠득, 안나타르가 소리 나게 이를 갈았다. 켈레브림보르는 부러 눈가에 힘을 주었다.

“그럴 가치가 있었나? 안나타르, 네 반지를 뺄 수는 있는 것이냐 물었……!”

“닥쳐!”

“모리아는 어땠어, 안나타르? 두린의 문은 널 반기던가? 네 반지의 지배 하에 놓인 것이 정말로 다른 힘의 반지들뿐…….”

안나타르 아울렌딜의 손이 옮겨가는 것을 켈레브림보르는 보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안나타르의 얼굴을, 가장 평온한 모양 그대로 굳어 버려 도리어 소름 끼치도록 공포스러운 가면을 바라보고 있어, 안나타르가 반지를 낀 손을 움직여 그의 턱을 움켜잡는 것은 시야 밖의 일이었던 까닭이었다.

그러나 그 손이 턱뼈를 바스러뜨리는 것까지 모를 수는 없었다.

새하얗게 터지는 고통에 켈레브림보르는 비명마저 지르지 못하고 무너졌다. 뭉개진 살과 뼈가 바닥에 짓찧어지는 순간까지도 머릿속에는 부정(否定)만이 아우성쳤다. 한 번도, 안나타르는 이제껏 한 번도 입과 손을 망가뜨린 적은 없었다. 조금만 더 정신이 있었더라면 켈레브림보르는 자신이 어떤 약점을 들추어냈는지 변별했겠지만, 당장은 그런 생각을 하기는커녕 다음 숨을 들이쉬는 것마저 버거웠다. 그는 비릿한 피에 목이 막혀 몸부림쳤다. 죽는다면 바로 지금이리라는, 그런 생각까지…….

그리고 시간은 느려진다.

그 순간 켈레브림보르는 그가 보아서는 안 되는 것, 흐려진 시력으로는 애초에 볼 수 없었어야 했던 것을 목격했다. 그 빌어먹을 반지가 눈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비슷한 크기의 물건에서 예상했을 법한 튕김 한 번 없이, 자석으로 끌어 들인 듯 바닥에 내리쳐지는 충돌이었다.  모든 반지를 지배할, 어쩌면 이 가운데땅마저 지배할 반지. 바닥이 푹 패이지 않았다는 것이 어렴풋이 이상할 정도로 낙하는 육중했고, 켈레브림보르는 반사적으로 눈을 들었다. 빈 손을 보아야만 했다. 저 지독한 중량이 떨어져 나간 손을 보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할 것만 같았다.

대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오직 절망만이 남은 공허한 얼굴이었다. 안나타르는 두개골이 열린 갓난아이를 내려다보는 듯한 눈길로 바닥에 떨어진 반지를 응시했다. 윗입술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켈레브림보르는 이해하지 못했다. 동시에 직감했다. 안나타르가 무릎 아래를 잘린 양 허물어져, 어울리지 않는 절박함으로 바닥을 긁어 가며 반지를 다시 집어드는 것을 보면서, 아. 피와 살점에 막힌 숨 한 번과 다음 숨 사이에서.

그 자리에서 전부 놓아버려도 괜찮았었다. 켈레브림보르 쿠루피니온이 그럴 사람이기만 했다면, 그의 에레기온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동족과 동맹의 누구도 그로부터 이 이상을 요구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래도, 안나타르의 눈길을 붙잡아 둘 수 있는 한 켈레브림보르는 얼마든지 고통스러운 숨을 들이쉴 용의가 있었다.

한없이 늘어진 찰나 속에서 켈레브림보르는 악에 받친 숨을 들이쉬었다.

올바른 선택이었다. 마땅히 해야 하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대체 왜 죄책감이 드는지, 갈라드리엘의 참담한 표정이 떠오르는지, 켈레브림보르는 설명할 수 없었고 실은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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