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친애하는, ◼◼에게
에스마일>헨
트리거/소재 주의: 주거침입, 종교적 갈등과 이에 따른 혐오와 폭력, 아동에 대한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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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God, hope you got the letter and
I pray, you can make it better down here
(And I don‘t mean a big reduction in the price of beer)
-Dear God, X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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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최초란 깊이 남기 마련이다. 그러니 반대로 말하면, 최초가 아님에도 깊이 남았다면 그것은 분명 아주 큰 상처였음이 분명할 것이다. 이따금씩 흉터가 욱신거려 숨을 크게 쉬어야 하는 그런 것.
에스마일 이브라힘 시프에게는 첫 기억은 아니나 그의 가장 중심부를 형성하는 기억이 있다. 손에 장갑을 끼고, 흐르는 눈물을 참고 양파의 껍질을 계속해서 벗기고 또 벗겨내다 보면 닿을 수 있는 기억. 한 사실에서 시작하자. 검은색과 흰색의-그물무늬와 대담한 검은 선들과 올리브잎이 그려진-스카프는 어느 곳에서든 단순히 패션 아이템으로 착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눈에 띄지 않기를 원한다면 그런 천으로 얼굴을 그렇게 가려서는 안 되었다. 비록 그것을 쓴 사람이 어른의 키 반도 되지 않는 아이일지라도, 히잡과 터번과 케피예는 많은 유럽인과 기독교인들에게 어떤 모종의 위험을, 이교도를 떠올리게 하므로. 사실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의 가족들은 조용히 살 수 있는 인간들은 아니었다. 결과일 뿐 원인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브라힘의 가정에는 많은 위협과 협박과 시비가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마일을 포함해 누구도 생존의 방식을 바꾸기를 원하지 않았고, 그것의 정점은 에스마일의 다섯 번째 여름날 찾아왔다.
어느 날 하이파가(발각될 수 없는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집을 비웠을 때 그들의 집에 침입한 이스라엘 정착민이 있었다. 그는 신의 이름으로 총을 휘두르며 이브라힘을 무릎꿇렸고, 신의 이름으로 욕설을 지껄이고 세간을 부수었으며, 신의 이름으로, 동생들의 요람 앞에 서서 그를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얼굴을 가린 것을 벗겨내었다. 그것은 그가(그들이) 짓밟고 싶어하는 모든 것을 의미했으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그가 본 것은.
(너희는 남에게 대접을 받기를 원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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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저는 그 순간에조차 그 사람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었나 봅니다. 그것이 어쩌면 제 목숨을 구했을까요.
다만 저는 그 사실이 눈물이 나도록 우스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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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나요, 헨? 처음이란 것은 마음속에 깊이 남기 마련입니다. 당신은 내가 겪은 타향에서의 첫 번째 호의였습니다. 당신의 아버지-그때 홉킨스 교수의 얼굴은 지금도 생생합니다-는 옆집에 이사온 무슬림 가족의 아랍어 억양과 강박적인(어쩌면 당신 자신만큼) 관습과 전통들과 무엇보다 제 얼굴을 감싼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것을 핑계 삼아 저의 부모님을 공격했을 때 저는 그 언어를 시리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당신과 당신의 형제가 문을 두드렸을 때 그것은 제게 어떠한 충격이 되어, 저는 차라리 당신의 언어를 배우고 싶었고. 당신들의 신념을 배우고 싶었고. 선글라스 너머로도 쨍한 파란색이 깃발처럼 흔들릴 때 저는 속절없이 그것을 따라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당신을 과거의 유령으로 남겨 둘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에스마일에게.
우리 학교는 내일 개학이야. 매일 도서관에 가며 누리는 평온한 일정도, 내일로 종말이란 뜻이지! 그러고 보니 말인데, 너는 이 우주가 끝난다면 어떻게 끝날 거라고 생각해? 여러 이론과 가설들이 있잖아. 먼저 네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
너의 친구, 헨이.
헨에게.
편지에 질투를 첨부해 보냅니다. 당신이 떠나온 웨어민스터 초등학교는 벌써 지난주에 개학했거든요! 이 편지가 닿을 때쯤에는 어차피 당신도 같은 환난에 처해 있겠지만요…. 종말에 대해서는, 글쎄요? 저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고 있습니다. 갑자기 허공에서 코코넛이 내린다면 어떨까요? 절대 제가 지금 코코넛 주스를 마시고 있어서는 아니에요.
당신의 친구, 에스마일이.
에스마일에게.
…답장이 늦어서 미안! 확실히 4학년이라는 건 바쁘구나. 네 지난번 답장은 흥미롭게 읽었어. 그리고 생각을 좀더 해봤는데, 내 생각에는 역시 우주보다는 지구의 멸망이 더 가깝고 중요한 것 같아. 어제는 신문에서 환경 오염 문제에 관한 시위에 대해 읽었는데, 기자가 인터뷰한 시위 참가자에 따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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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과거에 남겨두고, 이만 현재로 돌아올까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해봅시다.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누군가 저에게 농담삼아 이야기한 것처럼) 선지자가 아니라도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또다른 누군가 어쩌면 이것은 저의 특별함이라고 했으나) 감히 말하건대 남겨두고 온 짧은 삶이 격렬한 투쟁이고 항쟁이고 전쟁이었다는, 세상이 저에게 부여한 은전恩典만으로. 저의 피부로, 혈관으로, 골수로 느낄 수 있는 긴장이 있어요. 우리가 이 세계에 이제야 정식으로 입성한 오늘, 나는 누구도 모르게 홀로 독백합니다:
전쟁은 일어난다고. 일어날 것이라고.
어쩌면 우리의 아이들은, 다음 세대는 묻겠지요. 우리는 무엇을 했냐고. 그때, 그들이 책 속의 이야기로만 전해들은 페이지 위에 직접 서 있었던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그들은 영웅을 기대하고, 부역자를 기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물며 악당이었다는 것을 들으면 아이들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경멸과 실망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겠죠. 그러나 “소시민”이라는 건, 대중이라는 건, 시대의 뒤편에 서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시대는 몇 사람의 입김으로 움직이기엔 너무 거대한 무대이고, 투쟁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입으로 발음하기엔 무거운 단어라. 가장 두드러지게 핍박받는 자들은 사실 가장 선하거나 가장 강한 자가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었을 뿐인 자들인 것을. 삶이라는 이 거대한 단막극에서 주연과 조연이 정해져 있다는 믿음 같은 것은 없이 저는 그저 제 이야기의 화자가 될 뿐.
조심하지 않는다면, 먼저 거리를 두고 물러서지 않는다면. 모든 스치는 사람들이 제게는 기꺼이 목숨을 걸 것이며, 온 마음을 다해 지킬 곳이었기에 저는 갈등이 죽도록 무서웠습니다. 사실 세상 어딘가에서는 고통은 늘 일어나고 있으니까. 그 모든 것을 한번에 치유할 수 없다면, 애매하게 한 발을 담근 채 비틀비틀 걸어가는 것이, 무지의 베일을 통해 흐릿한 세상을 보는 것이 충분하다 여겼습니다. 그렇게 누구보다 가만히 있었는데, 별안간 느껴진 지구의 상대 속도에 머리가 아찔해져 버렸습니다. (어쩌면 안주하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면 아무도 저를 침범하지 못하리라는 오만에 빠져.)
그리고 이 순간 깨닫습니다.
여덟 살 경의 과거에 남겨두고 온 줄 알았던 당신이, 옆자리에서 손으로 밀어주는 푸딩을 보고. 검은 앙금과 푸른 상념의 블랑Blanc 망제 틈에서.
평생 그렇게 죽듯이 살 수는 없을 거라는 사실을. 제가 세상을 지켜보는 한 세상도 저를 지켜보므로, 저는 눈앞에 있는 당신 하나도 무시하지 못해서. 그래서 언젠가는 누군가 저에게 와닿을 것이고, 언젠가는 상처받고 말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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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래요, 당신은 기어이 (독수리도 부엉이도 아닌) 갈리아의 수탉이 되실 생각입니까. 이곳에 온 뒤로 아직 열 마디도 나누지 않았습니다만, 느껴지네요. 저는 당신을 설득하지 못하겠군요. 당신의 논쟁은 관념과 추상이 아닌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저는 반박할 말이 없으니까….”
시지프스가 돌을 굴리면 돌은 움직이니까. 그 하나의 명제만으로 지옥 밑바닥이라도 당신이 속할 곳이라고 여겨집니까.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습니까. 그 “변화”가 당신에게 유의한 사유가 됩니까. 삶을 바칠 만큼?
“...그렇다면 헨 홉킨스. 저는 당신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겁니다. 홀로 시지프스가 되도록 좌시하지는 않을 거라고요. 당신을 또다시 잃느니… … 제 말 들리십니까? 사람은 변하지만, 당신은, 이 점에서만큼은 변하지 마세요. 언제나, 늘 변화를 불러오는 이가 되겠다고 약속하세요.
그렇다면… …. 당신은 언젠가 저를 설득할 겁니다. 이 세계가 싸울 가치가 있다고.“
창세기 16: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12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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