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RQ사 편지 전송 건] 답신 회신에 관한 건
보낸 사람: Extra B, 받는 사람: Cursor
안녕하세요, 커서님! 지금 그 쪽은 국제표준시로 몇 시일진 모르겠으나, 제 메일로 인하여 잠에서 깨지 않으셨길 빕니다!
제 메일이 우주까지 가다니! 세상에, 신이시여! (물론 전 신을 믿지 않습니다.)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네요! 제가 메일을 보내고 퇴근한 뒤에 오늘 출근을 하고 평소같이 메일함을 열었을 때 보이는 게 이런 놀라운 메일이라니 얼마나 제가 놀랐는지 모르실껍니다! 저는 제가 NASA*의 직원과 메일을 보내는 듯한 그런 무궁무진하고 놀랍고 새로운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커서님께서 물어보신 것처럼 제가 우주에 대해 어떠한 상상을 품었냐고 물어보신다면.. 어.. 글쎄요, 솔직히 많은 상상은 하지 못 했었던 것 같아요. 뉴스에서나 보이저호에 대해 이야기하고, 아폴론 11호가 달에 처음으로 도착한 이야기 정도.. 잘 모르겠네요, 저에겐 꽤 먼 개념인 것 같아요. 깊게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나마 우주와 관련되어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은 한 적이 있어요. 회사에서 한참 야근을 하고 나서 퇴근을 하는데 막차*가 끊긴거에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에 걸어가야했죠. 그 때 하늘을 올려다 본 적이 있어요. 달은 참 크고, 이상하게 별들도 잘 보이더라고요. 전 어렸을 때 시골에 살았어서 그것보다 더 많은 별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때와는 참 많은 게 달라졌구나 싶었어요. 그러면서도 별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변함 없이 반짝이는데, 저는 참 변한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적고 나니까 직접 눈으로 별을 보는 커서님은 저와는 다른 감상일지도 모르겠네요.
커서님이 묘사하는 우주와 저의 삶은 그다지 다를 게 없어요. 매일 회사에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그리고 퇴근을 하고, 집에서 잠을 자죠. 그게 2년 째 반복되니까 지루하더라고요.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싶고. 그냥 하염없이 막막해지더라고요. 어쩌면 망망대해 같은 검은 우주를 보는 기분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좀 다른 세계가 궁금했어요. 다른 세계에서는 이런 일도 없을꺼잖아요? 내 30대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라든가, 앞으로 결혼은 어떻게 할껀지, 집은 어떻게 살건지.. 뭐, 그런 것들..
커서님께서는 지구는 다양하고 다채롭다고 하시지만, 영 제 눈에는 그렇게 안 보이나봐요. 매번 똑같은 건물에, 똑같은 사람에.. 그렇지만 이렇게 적고 나니까 메일을 읽는 커서님은 어떨까 모르겠네요. 우주면 주변에 사람이 있지도 않을 거잖아요. 다른 사람들과도 통신을 하나요? 뭔가 우주선에 같이 탑승해 있는 사람이 있나요?
혹시 이름이 커서와 비슷한 발음인건가요? 지금 제 마우스 커서가 커서님이라고 생각하면 좀 웃기네요. 이유가 있나요?
제 본명은 사소한이에요. 영문으로는 'Minor'라는 단어의 뜻과 동일한 그거 맞아요. 근데 회사에 다니다 보면 이름을 불릴 일이 정말 많거든요. 별로 이름으로 불리고 싶진 않았어요. 그런데 막상 별명을 지으려나 아무 것도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눈에 읽던 소설에 엑스트라 대사가 보였어요. 그래서 엑스트라라고 지었어요. 더 고민해도 절 지칭할 수 있을만한 단어가 생각나진 않더라고요.
처음 메일을 주고 받았으니, 이제 길게 적어주셔도 되요! 저는 이 직장에서 딴짓을 할 게 필요하거든요! 제가 적을 수 있을만큼 최대한 길게 적을테니 너무 걱정마세요! 전 얼마든지 메일만 회신해주시면 좋아요!
그리고 마지막에 부탁해주신 거라면.. 어.. 필요하시면 제가 검색을 해서 알려드릴게요. 그렇지만 제가 보는 걸로 설명을 드리자면.. 음..
지구는 멀쩡해요. 아마요? 이산화탄소 배출로 북극이 녹아간다는 뉴스도 계속 나오고, 사람들은 계속 싸우고요. 어.. 이런 묘사를 바랬던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냥 사람들이 잘 살고 있죠. 북적북적하게.
제가 보는 풍경들은 대게 차가 지나다니는 아스팔트 도로나, 빌딩들이에요. 네온사인들도 가득하고요. 사람들은 밤만 되면 술을 마시고 돌아다니고, 건배를 외치죠. 다들 핸드폰으로 연락을 주고 받고, TV를 보면서 세상에는 무슨 일이 있는지 보기도 하고.. 지하철은 출근과 퇴근길에 붐비고, 정신 없고요. 대한민국은 워낙 온갖 게 빠른 곳이라 더 그런걸꺼에요.
어.. .. 커서님이 태어난 곳이 어딘지 잘 모르겠지만.. 음.. 제 고향은 경기도 광주에요. 그리고 엄마 고향은 충청남도 홍성이고, 아빠 고향은 전라북도 익산이고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특별한 날이 되면 매번 자신의 고향에 돌아가곤 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 때마다 평소에 보는 풍경과는 다른 것들을 봐요. 우거진 나무 숲이라던가.. 강이라던가.. 그런 것들이요. 농사를 짓는 밭들도 많고.. 소들도 많고요. 사람이 살고 있는 판자집도 있고.. 그런 것들이 보여요.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보이고요. 매번 고향에 가면 많은 음식들을 먹어요. 집에 들고 가야 할 정도로요. 따스하고, 뭐.. 정겨운 분위기죠. 제가 지구에 대해 뭔가 삐까번쩍하게 설명을 못 해서 죄송해요. 제가 말도 잘 못 하는 편이고.. 뭔가 막, 지구는 이만큼 아름답고 멋있게 살아 있습니다! 라는 듯이 웅장하고 거대하게 말해드리고 싶은데, 어.. 잘 안 되네요.
혹시 뭐, 사진이라도 찍어 보내드리는 쪽이 더 좋으실까요? 필요하시다면 제가 출퇴근길에 한 장씩 찍어 보내볼게요.
제 메일이 커서님에게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지구를 아신다면 NASA에 대해 아실 것 같지만, 미국 항공 우주국의 약칭입니다! 그 곳은 많은 우주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해요.
* 막차가 끊겼다는 말이 이해가 가실까 싶어서 적었어요. 지금의 대한민국에는 지하철이라는 게 있고, 지하철은 새벽 1~2시까지만 운행이 되거든요. 그걸 타지 못 하면 집에 돌아가기 어려워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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