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이 무너져 내릴 때
#五雪 / ( 썸네일 ©흠마님.)
최근 들어 악몽도 자주 꾸고, 여러 일로 스트레스를 받았기에 아메는 휴가를 내고 쉬기로 했다.
어차피 비주술사인데- 휴가 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을테니까.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뜻밖이었다.
“ 휴가를 가지겠다고? ”
“ 네. 아무래도 요즘 컨디션이 별로인 것 같아서.. 그래도 제가 맡은 일은 다 처리했습니다. ”
“ 그럼 한 가지 일만 더 맡고. ”
“ 제가 맡아야 할 일이 더 있었나요..? ”
“ 별건 아닌데, 이번 주 주말에 현장에 나가게 되는 임무가 있어. 그때 나와서 지원만 하고 가도록 해. ”
“ 네? 비주술사인 제가요? ”
“ 뭐 문제라도 있어? 아메, 너 전부터 현장에 나가고 싶어 했잖아. 저번에도 나갔고, 지원 명목으로 말이야? ”
“ 그건.. ”
“ 뭐, 고죠 사토루가 도중에 망치긴 했지만. ”
도중에 망쳤다라.
그건, 아메가 상의도 없이 멋대로 현장에 나간 일이었다.
아주 우연히 퇴근하는 길에 연락이 끊긴지 오래였던 자신의 동생을 마주쳤고, 그 흔적을 따라가보니 1학년들 임무와 연관이 있었다.
동생과 관련된 일이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아메였기에.. 말도 없이 현장에 나섰고, 결국 사토루에게 들켰었다.
고전에서의 사토루의 위치는 어디까지나 아메의 상사였기 때문에 아메를 당장 철수 시켰었다.
이 일은 아메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온전히 자신의 잘못이었다는 것을.
그런데, 고죠 사토루가 도중에 망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 고죠씨가 망쳤다고요?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건 온전히.. 제 잘못이었습니다. ”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을 하려다, 아메는 꾹 참았다.
자신은 비주술사이기에.
이 사람도 자신의 상사 중 한 명이고,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기 때문에.
“ 뭐, 됐고. 이건 상층부 분들의 명령이기도 해. ”
“ .. 네? 혹시 제가 잘못 들었을까요? ”
“ 똑바로 들었다. 상층부 분들의 명령이야. 이 건에 대해 불만이 있으면 그분들께 말하던가. 휴가 신청서는 내가 승인은 해놓을 테니, 주말에 나오기나 해. ”
“ 그게 무슨.. ”
“ 이제 가. ”
“ .. 네. ”
더 이상 상대하기 귀찮다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사람, 상사에게 뭐라 더 불평할 수 있었을까.
아무 말 없이 방을 나서서 다시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가야 했던 아메였다.
‘ 이건 말도 안돼. ’
라고 아메는 속으로 생각했다.
물론 여태까지 현장에 나가고 싶었던 건 사실이었다.
사실일수밖에.
위험하다는 그 이유 하나로 더 이상 구체적으로 현장에 나서면 안 되는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 사토루가 자신을 믿지 않는 게 아닐까 하며 실망도 했었다.
하지만.. 멋대로 현장에 나갔던 일이 있고 난 후로 사토루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쉽게 사라지니까, 그리고 그는 이미 한번 소중한 사람을 잃어봤으니까.
‘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현장에 나가지 말자라고 결심했는데. ’
도저히 말이 통하질 않는 상대를 한낱 비주술사가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없었다.
그저 순순히 받아들여야 했다.
아메는 일하는 내내 고민했다.
화가 치밀어 올라 그냥 사직서나 내버리고 고전을 그만둘까- 라던가, 사토루에게 말을 해야 하나였다.
이미 다퉜었고 이미 바쁜 사람이고.. 더 이상 짐을 안겨주기 싫었던 것이다.
이 일은 그저 아메, 본인에게 주어진 과제니까.
‘ 그래도 약속 했으니까, 말을 .. 해야겠지. ’
그날, 아메는 결국 사토루에게 다 털어놨고 사토루는 자신이 어떻게 해서든 그날 시간을 비울 테니 자신이 대신 가겠다고 말하라고 했다.
안심했다.
말하길 잘했다 라며 안도했다.
다음 날, 아메는 다시 상사에게 찾아가 사토루의 말을 직접 전했다.
그러나 그걸로 됐다면, 쉽게 풀릴 일이었을까?
“ 내 알 바 아니다. 어제도 말했잖나? 이건 상층부 분들의 명령이라고. 한번 들었으면 알아들으면 안 되나..? ”
아메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 그럼 직접 제가 상층부 분들을 뵐 수 있게 해주세요. ”
“ 뭐, 그래. ”
생각보다 승인은 쉽게 떨어졌다.
이 대답만을 기다려왔다는 듯한 상사의 표정을 보곤 의심스러웠던 아메였지만, 이 일이 더 급했기에 상사를 따라 고전 깊숙이 들어갔다.
“ 들어가. 다 너를 위해 기다리고 계시니까. ”
‘ 나를 위해..? ’
“ 잠깐, 그게 무슨 소리- ”
묻기도 전에 아메는 상층부들이 있는 방에 들어가졌다.
고요한 침묵이 흘렀고, 공간도 어두웠다.
아메는 긴장했지만 침을 한번 삼키곤 방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중앙에 도착하자 불이 켜졌고 드디어, 대화가 시작되었다.
“ 비주술사, 유키라 아메. 질문을 먼저 하도록 하지. ”
“ .. 네. ”
“ 우리가 자네를 여전히 고전에서 내보내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
“ 비주술사는 본래, 이 고전에 있을 수 없네. ”
갑자기 들어온 질문에 아메는 당황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사토루가 자신을 데리고 와서 왔다고 해야 할까.
저들의 질문의 의도가 뭘까.
“ 잘.. 모르겠습니다. ”
“ 흠? 잘 모른다라.. 잘 모르면서 계속 이곳에 있었던 건가? ”
“ 아닙니다, 저는.. 그러니까, 몇 년 동안 인정받기 위하여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
“ 우리는 자네를 인정한 적 없네. ”
“ 쓸모를 보인 적도 없지 않나! ”
“ 다 고죠 사토루의 고집 때문에 이곳에 있는 거 아닌가. ”
아메는 쿵 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태까지의 모든 차별과 무시를 견뎌내고, 갑자기 들어온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야근을 했고, 자신의 별 볼일 없는 프로파일링 실력을 최대치로 끌어내 임무를 고전에서 해결했다.
그런데, 여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처지였다.
아메는 스스로 그걸 자각을 못 했던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 사실을 도피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 자네의 가치를 보여준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나? ”
자신이 해온 모든 일들이 부정 받게 되자 아메는 할 말을 잃었다.
“ … ”
“ 자네가 생각하기에도 없나 보군. ”
“ 저에게.. 제 가치를 증명할 기회를 보여주신다면, 보여드리겠습니다. ”
“ 그럼- 현장에 나가도록. ”
“ 네? 현장에 나가는 것과 제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무엇이.. 연관이.. ”
“ 현장에 나가서 보조 감독들의 지원을 하면, 가치를 증명하게 되는 일이 아닌가. ”
“ 하지만 저는 결계술도 치지 못하는 비주술사입니다..! ”
“ 그런 비주술사는 고전을 나가면 되겠군. ”
침묵이 잠시 흘렀다.
아메는 고개를 숙였다.
‘ 내가 이렇게까지 약한 사람인가? ‘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 선택지는 2개네. ”
선택지라는 말에 아메는 고개를 들었다.
“ 지금이라도 기억을 다 소거하고, 고전을 나가게. ”
“ 다른 하나는 뭔가요..? ”
“ 이번 임무에 참여해서 자네의 가치를 우리들에게 증명하게. ”
‘ ..? ’
아메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 잘 선택해서 좋은 결과를 내어오길 바라지. ”
“ 고죠 사토루, 이에이리 쇼코, 나나미 겐토. 그들에게 오늘 일을 발설한다면.. ”
“ 어쩔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내겠지. ”
어쩔 수 없는 결과.
아메는 그 말의 뜻을 알아차렸다.
‘ 말하면.. 날 죽이겠다는.. 협박이구나. ’
분위기가 좋지 못한 대화를 끝마치고 아메는 방을 나왔다.
아메는 어디론가로 뛰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나 만나면 울 것 같아서, 울게 되면 이 일을 말하게 될 것 같아서, 그곳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주저앉아서 몇 시간을 보낸 아메는 다시 일어서서 퇴근하기로 했다.
사무실로 돌아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보고서들을 정리하고, 이미 동료들은 퇴근했기에 사무실의 불까지 끄고 고전을 나왔다.
아메는 이제 휴가였다.
‘ 휴가니까, 술이나 마실까. ’
그렇게 핸드폰 알림을 잠깐 끄고 발이 가는대로 술집을 향해 걸어갔다.
술집에 들어와서 구석에 앉은 뒤, 도수 높은 술을 시켜 거리낌 없이 마시기 시작했다.
‘ 술이라도 마시면.. 오늘 일 잠깐만 잊을 수 있으니까.. ’
아메는 잠깐, 아주 잠깐이라도 부정당한 사실을 잊고 싶어 했다.
시간이 밤이 되는 줄도 모르고 마시다가 핸드폰을 확인하자, 사토루에게 온 부재중 전화가 10통이나 있었다.
말도 없이 집에 늦게까지 안 왔으니 걱정한 연인의 부재중 전화였다.
아메는 미안한 나머지 전화를 급하게 걸었다.
“ 사토루씨 .. 그게 미안해요, 시간 가는 줄 몰라서.. ”
“ 아메, 어디야. ”
“ … □□ 술집이요. ”
“ 지금 데리러 갈게. ”
누가 봐도 화가 난 듯한 목소리에 아메는 순간 울컥했다.
자신은 오늘 너무 힘들었는데, 화가 나있다는 게 속상했던 것일까.
취기 때문에 그런 거겠지만.
“ 오지 마세요.. 오지 마.. 나 지금 사토루씨 볼 용기가 없어요.. ”
“ 그게 무슨.. 아메..? ”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연인의 목소리와 취기에 더해 아메는 무너졌다.
“ 나.. 고전에 있으면 안 되나 봐요.. 나, 사토루씨 옆에도 있으면 안 되나 봐요.. ”
“ .. 아메. ”
“ 그러니까 나 그냥 내버려두면 안 돼요..? 나 그냥 오늘 집에 안 들어갈 테니까.. 날 좀.. ”
결국 아메는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말도 못 하고 계속 우는 연인이 많이 걱정되었는지 사토루는 5분 만에 아메가 있는 술집에 도착했다.
핸드폰을 붙잡고 그저 울기만 하는 아메를 찾은 사토루는 일단 아메를 천천히 달래줬다.
“ 오지 말라니까.. 보고 싶지 않다니까..? ”
“ 정말 내가 보기 싫었어? ”
“ … ”
아메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본 사토루는, 천천히 달래주고 술집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을 조금 더 보낸 뒤, 술에 취해 잠든 아메를 안고선 집에 무사히 돌아왔다.
아메를 침대에 눕히고 오늘 고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토루는 반드시 알아내겠다고 다짐했다.
뭐, 알아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디와 연관이 있는지는 추측이 가능했다.
‘ 갑자기 아메를 현장에 지원 임무를 보내겠다는 일이, 발단이겠지. ’
“ 하.. 난 그냥, 네가 웃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힘들어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았어. ”
다음 날, 아메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계속 떠보는 사토루 였지만 아메는 입을 절대 열지 않았다.
절대 말하지 않기로 약속한 것처럼.
이상함을 느낀 사토루는 쇼코에게도 물어봤지만, 쇼코는 애초에 어제 아메를 만난 적이 없었다고 했다.
‘ 분명 무슨 일이 있는데- ‘
라며 골치 아파할 때, 메구미가 말을 걸었다.
“ 고죠 선생님? ”
“ 아, 응? 메구미, 무슨 일이야? ”
“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으세요? 안 풀리는 일이라도 있으신 거예요? ”
“ 흐응~ 메구미, 이 선생님을 지금 걱정해 주는 거야~? 이거 꽤나 감동인데? ”
“ .. 저 갑니다. ”
“ 잠깐잠깐, 가지 말고 들어봐. ”
“ 하.. 뭔데요? ”
“ 아메에 대한 일이야. ”
“ 혹시 또 싸우셨어요? ”
“ .. 아니야. ”
사토루는 진지하게 어떤 일이 있었는 지 메구미에게 털어놓았다.
‘ 뭐, 메구미도 아메를 오래 만난 사이이고.. 아메를 잃을뻔했던 일에 대해 알기도 하는 사람이니까. ’
“ .. 상층부 분들이 유키님을 없애려고 했던 방식과 똑같네요. ”
“ 그치? 그래서 내가 대신 나가겠다고 했는데.. 뭐가 문제였을까. ”
“ 선생님이 대신 나간다는 거, 상층부 분들께 보고는 했나요? ”
“ 응? 아니? ”
“ 하.. 그럼 거기에 문제가 있나 보죠. 예를 들면, 유키 씨는 고죠 선생님이 대신 나간다고 말을 올렸는데.. 상층부 쪽에선 반대를 했다던가. 그런 식으로요. ”
메구미의 말을 들은 사토루는 한 가지 가능성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 아메가 그 썩은 귤들하고 만나서 대화했다면. ’
“ 메구미, 큰 도움이 됐어. ”
“ 유키씨에게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네요. ”
“ 응? 내가 아니라 아메에게? ”
“ (시선 회피.) ”
그렇게 메구미와 간단한 대화를 끝낸 사토루는 당장이라도 상층부에 찾아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려고 했다.
물어보러 가기 전, 아메에게 잠깐 톡을 남겼다.
[ 아메~ 오늘 부터 휴가지? 푹 쉬고 있어. 오늘 일찍 갈게. ]
“ 지금쯤이면 일어났을 텐데.. ”
[ 네.. ]
아메의 답장을 확인하고서야 사토루는 문을 열고 상층부에게 다가갔다.
· · ·
사토루의 역 협박으로 인해, 상층부는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 채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게 되었다.
가치 증명, 임무, 협박.
이 모든 걸 들은 사토루는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다 죽이고 싶었지만, 자신이 그리는 미래와 신념이 있었기에 참았다.
“ 경고하겠습니다. 유키라 아메는, 임무에 앞으로도 영원히 나가지 않을 겁니다. 제가 죽는 한이 있어도. ”
경고를 남긴 채로 나온 사토루는 급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했을 땐 숙취로 인해 머리 아파하는 아메가 거실에 앉아있었다.
“ 사토루씨..? 정말 일찍 오셨네요.. ”
어제 아메가 술에 취해 말한 말들의 의미를 사토루는 깨달았다.
착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선한 사람은 참는다.
참고 또 참는다.
그러다가 하나의 독이 몰려오면 천천히 무너져 내리고 만다.
그렇게 다 무너져 내리면 자신의 신념과 걸어온 길을 믿지 못한 채 방황한다.
그렇게.. 길을 잃는다.
“ 아메, 미안해. ”
“ 네..? ”
“ 내가 다, 미안해. ”
아메를 껴안고 놔주질 않는 사토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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