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한잔

동상이몽

김성식 정은창 권현석 / 성식은창 현석은창

김정 성식은창현석; 동갑도시와 스왑 기반 / 김성식과 정은창이 동갑입니다.  심지어 스왑입니다. / 권현석이 형님이 됩니다. 깡패 권현석, 깡패 정은창, 그리고 쥐새끼 김성식.


방금 뭐라고? 뭐가 된다고?

- 경찰.

허, 미래의 민중의 지팡이가 옆에 계셨네. …. 경찰?

 떨떠름하게 경찰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은 정은창은, 새삼 김성식을 다시 봤다. 알고 있었다. 자기 같은 꼴통새끼들과 다르게 번듯하고, 학교 잘 다니고, 다 읽기는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두꺼운 책을 옆에 끼고 사는 놈이라는 거. 깡패들이나 찾는 자신과 왜 어울리는지 이해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범생이다. 어딘가 좀 괴팍한, 아니 솔직히 이야기하면 이 놈 성격은 개차반이었다. 그는 가끔 깡패들보다 얘가 더 무서웠다. 그런 녀석 입에서 경찰이라니.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시에 나는, 우리는 이미 옛날부터 어렴풋이 짐작 하고 있었다. 쥐뿔도 가진 게 없어서 바닥에서 살아갈 놈과, 똑같이 없어도 번지르르한 직업 명찰을 달게 될 미래 따위를. 정은창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눈을 감았다. 꿉꿉한 이불에 굳이 고개를 묻었다. 눈을 감고 있으려니 더 선명해지는 상상을 뒤로 하고 생각을 뒤로 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나이의 시절이었다. 

김성식은 눈을 감은 정은창을 바라봤다. 녀석이 깡패 짓을 돕게 된지 어느새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정은창이 바래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녀석은 돈이 없었고, 챙겨야 할 가족이 있었을 뿐이다. 우연찮게 깡패무리들 눈에 띄었던 게 문제였다면 그럴 터였다. 아니 그게 문제지.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돕게 된 정은창은, 벗어날 수 없는 진흙탕에 발을 적셨다. 한번 위험한 일을 도울 때 마다 쥐어지는 돈의 액수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울었던 밤을 기억한다. 김성식은 그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다쳐서 오던, 지쳐서 오던, 울면서 오던, 김성식은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위로도 하지 않았고 말리지도 않았다. 상처 치료도 도와주기는 무슨. 거지꼴로 돌아온 정은창을 보며 혀를 한번 차고 근처에서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그에 대해 정은창도 딱히 불만을 토하지 않았다.

 서로가 알고 있었다. 침범해야 할 범위를, 참견해도 되는 부분을. 김성식이 말린다고 해서 정은창이 벗어 날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나버렸고, 위로 한다고 해도 앞으로 해야 될 일이 바뀌는 것도 아니었다. 위로는 잠깐이다. 위로가 끝난 후는 서로가 더 비참해 질뿐임을 안다. 상처를 치료해? 어차피 머지않아 다시 터질 상처들이다. 같잖은 동정은 오히려 정은창을, 비참하게 하는 행위임을 김성식은 알았다.

 김성식이 보기에는 정은창은 깡패에는 참 안 어울리는 놈이었다. 애가 멍하고, 순박하고, 솔직히 바보 같다. 아니 바보다. 어설픈 부분은 무척이나 어설퍼서 보고 있자면 혀를 차게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녀석은…. 깡패들 말로는 인재였다. 배운 것도 없는 놈이 말은 아주 청산유수에 몸 쓰는 일도 나쁘지 않게 잘해냈다. 어렸을 때부터 일을 했었다고 했나, 그래서 그런지 운동신경도 나쁘지 않았다. 하는 거 보면 아마 머리까지 바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꾸역꾸역 일을 해오는 모습이 깡패 놈들에게는 예뻐 보였는지, 정은창은 못 알아챘을 것 같았지만 김성식의 눈에는 보였다. 처음과 확연히 다르게 바뀐 태도와 눈빛들이. 이미 자기들 식구처럼 대하는 모습들이나, 말하는 꼴이나, …보고 있으면 기분 뒤틀리는 것들.

 정은창은 조용히 눈을 떴다. 언제부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모를 김성식과 시선이 부딪혔다. 뚱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뭘 봐.

 닳아, 그만 쳐다봐.

- 미친 새끼.

 자기소개 하냐?

김성식이 책을 덮었다. 움찔하던 정은창은 금방 몸을 일으켜 그가 닿지 않을 정도로 뒤로 물러났다.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애써 기지개를 쭉 폈다. 찌르르 울리는 매미소리가 유난히도 시끄러웠다. 가만 생각해보니 여름이었다. 열아홉의 마지막 여름. 성인이 되기 전 마지막 여름. 마지막.

성인이 된 우리들. 지금보다 나이를 먹은 우리들은 그때보다 훨씬 서 있는 위치도, 형편도 달라졌다.

정은창은 상상했다. 번듯한 경찰 정복을 입고, 과거의 그 삐쩍 고른 애새끼 티는 다 지워버린 김성식은 위에 서있었다. 그에 비해 정말 흔해빠진 셔츠에, 어떻게든 대충 정장 티만 갖춰 입는 정은창 누가 봐도 시장잡배였다. 깡패. 그런 그는 저 땅바닥에 서있었다. 서있는 곳의 질부터가 달랐다. 그런 상상을 하면 할수록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흔들고 애써 떠오르는 것들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이제 와서 마음을 고쳐먹고 새로운 길로 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이제 정은창 다운 삶이었다. 그래서 더 비참했다. 

정은창은 미적지근한 기분을 애써 감췄다. 그 뒤로도 오가는 이야기는 영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뿐이었다. 다른 이야기가 나오다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짧은 침묵이 지나가기도 했다. 그게 우리들의 마지막 여름이었다. 마지막 여름이었다. 김성식은 여름 이후로 발걸음이 뜸했고 아예 발걸음 하지 않았다. 김성식은 오지 않았다.  

그 뒤로 정은창의 하루는 매일이 정신 없었다. 

“어이, 정은창이. 이번에 형님이 네 얼굴 좀 보자고 하신다. 운 좋은 줄 알아 새끼야.”

제 등을 퍽 치던 손길은 상냥하지 않고 존나게 아프기만 아팠다. 평소에 저를 잘 챙겨주던, …아저씨? 뭐라고 불러야하지. 아무튼 똑같은 깡패 중에 한명이었다. 찔끔 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얼얼한 등을 쓸고, 다시 그가 이야기 했던 말을 되새겼다. 형님이 나를. 그쪽 형님이 나를? 

성인을 벗어나자마자 일어났던 일이다.

그게 깡패, 정은창이 되던 날이었다. 결국 나는 깡패가 되어있었다. 형님들에게 기어오를 생각 하지 못하도록 이루어지던 신고식은, 진짜 좆같았다. 그 다음날 앓으면서 또 일을 하러 가야했다. 정말 좆같았다. 개새끼들, 그렇게 사람을 줘 팼으면 하루는 쉬게 해줘야할 거 아니야. 억지로 파스나 약을 바르고 기어나갔다. 속으로 얼마나 욕했는지 모르겠다.

쥐어지는 돈만 아니었으면 솔직히 도망쳐보려고 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심부름꾼 하던 때와 다르게 다른 액수의 돈이 쥐어졌다. 학력도 제대로 되지 않은 자신에게는 쉬이 떨어지기 어려운 액수였다. 깡패 짓 하면서 하루하루 새삼스럽게 더러웠지만 쥐어지는 돈만 보면 꾹 참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깡패 명찰을 달고 다니니, 은서를 건들이던 사람들도 없어졌다. 동네는 좁아서 소문이 금방 퍼졌다.

돈이 생기고, 은서를 건들던 사람이 없어진다. 돈이 있으면 은서를 더 챙겨줄 수 있었다. 이렇게 계속 지내다보면 분명 언젠가 더 큰 돈이 굴러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다면 은서 곁에 있어줄 사람을 둘…. 둘 수도 있었다. 돈 많은 사람들은 보호사 같은 사람을 집에 한둘씩 두지 않나. 그걸 생각했다. 저와 지독하게 안 맞는 일이지만 그런 생각들이 들면 꾹 참기도 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않고 일을 했다. 가판대를 엎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나, 울먹거리는 소리. 바지 끝을 쥐고 비는 목소리들을 흘려들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동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동정해선 안됐다. 내가 무얼 위해서 이 짓을 하고 있는가 생각하면서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조직, 이라고 부르기도 뭐하지만 그 내에서는 꽤 예쁨 받는 놈이 되어있었다. 그런 예쁨 전혀 기쁘지 않았지만, 더러운 손이 닿을 때마다 치욕스러웠지만, 그만큼 받는 대우는 확실히 다른 것이었다. 그걸로 됐다고 꾸역 삼켰다.

“오, 얘 괜찮은데. 이름이 뭐야?”

조금 바뀌게 된 것은 이 사람이 울산에 내려오고 난 뒤였다. 동그란 안경에, 곱실거리는 머리카락에, 누가 봐도 순해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주변의 어깨들이 쩔쩔매며 한마디도 못하고 있었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가리키던 사람은 자신이었다.

“정, 정은창 입니다!”

뒤늦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제 이름을 내뱉었다. 그가 환하게 웃었다. 이곳과 정말 안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깡패짓거리 한지 몇 해가 많이 흐른 시점이었다. 가을이었다. 주변에 있던 이에게 뭐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 고개를 들어야할지 감을 못 잡다가 천천히 숙인 허리를 들었다. 괜…찮겠지. 눈이 열심히 주변을 훑었다.

“좋아, 결정했어. 이 녀석으로 선택할래.”

말만 들으면 참 거시기 했다. 무슨 지명이나 물건 고르는 것 마냥 선택이란다. 주변에서 놀라는 음성이 들리다가 큰형님이라 부르던 이가 앓는 소리를 냈다. 작은 형님이라는 놈이 열심히 내 이야기를 늘여놓는다. 이 새끼가 생긴 건 맹하게 생겨도, 일도 잘하고, 참하고, …참하다는 이야기는 왜 나와? 그것도 당사자가 코앞에 있는데 신나게 떠드는 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정은창, 이라고 했지? 내가 너를 선택하고 집중하기로 했어. 괜찮은 인재는 언제는 환영이니까 내 순간적인 영감을 믿어보려고 하는 선택이야. 부디 실망하게 만들지 마. 알겠지?”

제 어깨를 두드리더니 금방 사라지는 뒷모습을 멍청하게 보고만 있었다. 알겠지? 하고 되묻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생긴 거로 판단하면 안 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말을 하며 저를 바라보던 눈빛이, 깊게 가라 앉아있었다. 뒤늦게 들은 내용으로는, …어마무시하게 높은 양반이라나. 울산만이 아니라 경남에서 제일 컸던 조직의 2인자고 지금은 서울물 먹고 있는 사람인데, 울산은 그 조직의 하위 조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나 어쩌나. 이해는 제대로 못했다. 그런 저는 상관없다는 듯이 침을 튀겨가며 열심히 마저 설명했다. 솔직히 더러웠다. 요약하면, 뭐 경남권 관리 겸 인재들을 영입 겸, 지방 순회하러 왔다가 고른 게 나라는 거였다.

…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도 내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가기도 벅찬데 내 상태가 어쩌던 일은 빠르게 처리됐다. 아니 대체 왜? 황당함을 숨기지 못한 자신의 등을 세게 내려치는 손길이 있었다. 익숙한 아픔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운 좋다고 제게 이야기해주었던 그 아저씨가 있었다. 여전히 험상궂게 생겼다.

“야, 그래도 네 사정 봐줘서 동생이랑 같이 올라가는 게 어디냐. 서울 가서 촌놈 취급 받지 말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목숨 달린 일이면 누구보다 재빠른 놈이 평소에는 이렇게 얼빠져서 어떡하려고. 네가 서울까지 가서 잘 해야 우리도 좀 빛 보는 거 아니겠냐고! 어?”

그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랬다. 그 양반이 어찌나 배려심이 좋은지, 숙소에 은서와 같이 지내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짐 정리를 했다. 은서는 처음으로 타는 버스에 즐거운 듯 다리를 흔들었다. 짐이랄 것도 얼마 없어서 가벼운 손에, 남는 손으론 은서를 잡았다. 휴게소에서도 은서는 즐거운 듯 뛰어다녔다. 휴게소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보면 한 번도 울산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우역곡절 끝에 도착한 서울은 삭막한 도시였다. 조용하고, 참 정 없어 보이는 동네였다. 은서도 낯선 도시에 발을 동동거리다 금방 조용히 제 옆에 붙었다. 처음으로 오랫동안 버스를 타서 그런지 은서의 얼굴에 피곤함이 서려있었다. 핸들, …핸들이 오기로 했었다. 그리고 이름 하나 가르쳐주지 않은 핸들이란 놈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얼굴도 모르는데 무작정 기다리라니, 욕을 짧게 내뱉다말고 곁에 있는 은서를 의식하고 뒤늦게 헛 기침을 내뱉었다.

“오빠, 우리 언제가?”

“…어어, 조금만 더 있다가.”

“아이 씨, …대체 언제 오는 거야?”

짜증어린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짧은 하품을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이 시선에 들어왔다. 그쪽이 내 얼굴 알고 있으면 뭐 어쩌라고, 나도 그쪽 얼굴을 알고 있어야 할 거 아니야. 불평이 올라오지 않을 수가 없다. 주머니 속에서 습관처럼 담배를 찾다가, 은서 생각에 또 다시 넣었다. 낯선 곳이다 보니 차마 은서를 두고 어디 가지를 못하겠다. 답답함에 주변 건물만 문으로 훑고 있으려니 누군가 제 어깨를 건드렸다.

“누구, 어…. 어?”

“… ….”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 사람을 살폈다. 제 어깨를 잡은 건 익숙한 사람이었다. 익숙한 녀석이었다. 여기서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놈이었다. 그래서 잠깐 버벅거리다 정신을 차렸다.

김성식, 개새끼.

한동안 잊고 지냈던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선명하게 기억이 떠올랐다. 낯설면서도 낯익다. 시간의 흐름은 괜히 있는 게 아닌지 꽤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늘 반듯하던 모습은 조금 풀어져있기도 했고, 분위기도 달라졌다. 근데 이 새끼가 왜 여기 있지? 은서가 녀석을 알아봤는지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오빠! 야, 저 녀석까지 오빠라고 안 불러도 돼.

“오랜만이네. 서울에 있었어?”

“……. 아직도 깡패 짓 하고 있었냐?”

“씨, 넌 오랜만에 본 사람에게 할 말이란 게 그거 밖에 없어?”

“시발.”

“왜 욕부터 하고 시발이야? 김성식, 돌았냐?”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는 게 익숙하면서 낯설었다. 녀석은 정말 화났다고 표정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보다 핸들은 대체 언제 오는 거야? 차라리 핸들이란 새끼가 어서 와서 날 데려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혼자 심각한 분위기를 잡는 이 새끼 때문에 답답했다.

“핸들.”

“어, 어?”

“내가 핸들이라고, 정은창.”

“… …?”

핸들? 네가?

“너, 경…읍.”

제 입을 막는 손이 거칠었다. 녀석의 표정에서 좆됐다라는, 분위기를 읽었다. 제 입을 막는 손은 거칠었고, 정말 거칠었다. 원래 안 이랬던 것 같은데. 갑갑해서 놈의 손목을 잡고 힘을 줬다. 끄떡도 안한다. 자존심이 상했다. 괜히 녀석의 몸을 퍽 쳤다. 둔탁한 소리가 났음에도 녀석은 찌푸리기만 하고 큰 반응은 없었다.

“오빠?”

쟤는 오빠 아니라니까. 은서가 고개를 빼꼼 들이밀자 그제야 제 손을 때어놓았다. 괜히 입이 짭짤해진 것 같아서 소매로 입술을 닦았다. 김성식이 저를 돌아본다. 따라와. 그 말만 하고 먼저 움직이는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경찰대 들어갔다던 새끼가, 서울 쪽에서 조폭 짓이나 하고 있다고? 핸들이라고? 몇 년간 뒈졌나 소식도 없던 게 갑자기 나타나서 자기도 깡패요~ 하고 나타나면 대체 누가 한 번에 이해를 해? 복잡한 머릿속을 애써 흩트려놓았다. 저 새끼 말이 진짜일까?

만약 경찰들 쪽에서 까보는거면? 만약 경찰이라면, 조직 끄나풀이 상경한다는 소식에 접촉 하려는 거면? 은서를 바라봤다. 혼자라면 어디 해보자고 따라가겠지만 은서가 곁에 있었다.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대체 녀석의 뭘 믿고 내가 따라가야지? 핸들이 따로 있다면?

이어지는 의심들을 지워내지 못하고 서있었다. 따라오지 않는 것을 느꼈는지 김성식이 뒤를 돌아봤다. 시선이 마주쳤다.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눈을 마주쳤을 뿐임에도 모든 것을 다 읽히는 느낌이었다.

“머리 돌아가는 소리 여기까지 들린다. 안와?”

“너라면 쉽게 가겠냐?”

“띨한 새끼, 빨리 와. …형님이 기다리신다.”

형님, 저 새끼 입에서 나오는 단어가 왜 이렇게 어색하면서도 어울리는지. 이질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주먹을 꽉 쥐었다가 움직이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한 손으로 은서의 손을 잡고, 빈 손으로 재킷 주머니를 더듬었다. 익숙한 감촉에 그나마 안심을 하며 김성식 쪽으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녀석은 운전석 쪽으로 향했다. 은서와 조용히 뒷자리에 탔다. 운전, 할 줄 아네. 눈이 그 손을 뒤쫓았다. 이상했다. 제 앞에서 운전하고 있는 김성식이라는거.

“…너 경찰 될 거라며.”

빠르게 바뀌는 창 밖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거울로 시선이 마주쳤다. 이번엔 피하지 않았다. 김성식은 금방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또 저 표정이다. 신호에 걸려 멈춘 차에, 기어를 잡던 손이 넥타이를 살짝 풀어내는 게 보였다.

“…멍청하긴.”

“뭐?”

“덩치만 크고, 뇌는 안 크냐?”

“너는 오랜만에 만나서는 꼭 지같이 말해요. 시비 걸어? 어?”

 김성식은 잠깐 말이 없었다. 문득 흘러가듯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조직 안에 섞여드는 짭새 새끼들이 있다고. 경찰복 벗어도 존나게 티가 나는 새끼가 있는가 하면 태생이 깡패인지 존나게 티 안 나는 새끼들도 있다고 하던 목소리가 문득 생각난다.

 “너, 설마.”

“거기까지 만해.”

“…야, 야! 너, 미쳤!”

“의심을 입 밖으로 꺼내지마.”


 “정은창, 너 진짜로 죽어.”

제 말을 단호하게 잘라내는 놈의 말에, 깊은 무게가 느껴졌다. 진짜다. 녀석은 짭새다. 경찰이었다. 경찰에서 부러 조직에 넣어둔, 쥐새끼였다. 긴장으로 손에 땀이 서렸다. 진짜로 죽어, 라고 이야기하는 그 목소리가 왠지 녀석이 나를 죽일 거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경고이자 선고였다. 시발, 시발, 하필 왜 이 녀석이야. 거기다 왜 이놈이 핸들로 내 앞에 온 거야. 복잡한 머릿속에 짜증이나 창가에 머리를 기댔다. 빠르게 바뀌는 바깥풍경을 눈에 담다가 눈을 담았다.

“이 개새끼야….”

“… ….”

대답은 없었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다시 내뱉었다. 폐에 차오르는 게 산소인지, 긴장인지 모르겠다. 차는 계속 도로를 달렸다. 풍경은 빠르게 바뀌어갔다. 은서가 지겨운지 한참을 뒤척거리다가 잠들었는지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려왔다. 침묵은 이어졌다. 갑갑했다. 나는, 나는 어떡해야하지? 나를 직접 지명하던 그 남자를 떠올린다. 김성식을, 찔러야하나? 짭새 새끼라고, 이 새끼 짭새라고 이야기해야하나? 그럼 김성식은 어떻게 되지? …죽나? 지끈거리는 머리에 입술을 씹다가 눈을 감았다. 그와 다르게 운전은 조용하고, 부드러웠다. 그래서 그런가 눈을 감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도 금방 잠들어버렸던 것 같다.

 깨우는 손길에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김성식이었다. 이 새끼가, 왜 여기 있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뒤늦게 눈을 번쩍 떴다. 서울이다. 꿈이 아니었다. 잠기운에 휘청거리는 자신을 김성식은 혀를 차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뭘 봐, 씨팔. 괜히 곱지 않은 말을 내뱉으며 차에서 내렸다.

은서는?

-차에 두고 가.

… …. 

-깡패들 앞에 그럼 데려갈래?

아이, 씨.

말 한마디도 지려고 하지 않는 저 새끼에 혀를 찼다. 아직도 자고 있는 은서를 시트에 바로 눕히고 겉옷을 벗어 은서에게 덮어주었다. 잠투정하는 목소리에 짧게 웃다가 뒤에서 재촉하는 시선에 아, 알았다고. 짜증내며 차 문을 닫았다. 김성식이 문을 잠근 것 까지 보고서야 걸음을 옮겼다. 깔끔하고 높은 건물이다. 울산에서는 자주 보지도 못했던 그런 건물이었다. 역시 서울은 서울이라는 건지, 아니면 여기가 그냥 끝장나는 곳인지. 긴가민가하며 앞서는 김성식을 따라갔다. 건물 내부는 조용했다.

“오, 은창이! 먼 길이었을 텐데 고생했어! 어서와.”

나를 반갑게 끌어안는 온기가 느껴졌다. 권현석의 뒤로 남자가 두엇, 여자가 한 명 벽 따라 서있었다. 곱지 않은 눈 몇 개가 자신을 향함을 느꼈다. 예, 예. 어색하게 대답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도 순탄치 않을 생활이겠네. 어렴풋 짐작이 되었다. 김성식은 어느새 문 앞쪽 벽에 바로 서있었다.

“둘은 오면서 인사했지? 그럼 이쪽 소개부터 해야겠네. 다들 집중! 정리하자고. 이쪽은 정은창, 미리 언급 하긴 했지만 울산에서 새로 데려온, 우리 새 식구! 은창아, 이쪽은….”

새 식구. 어감이 묘하다. 그는 제 등을 아프지 않게 두드리며 벽에 서 있던 이들을 한명, 한명 소개시켜줬다. 서재호, 배준혁, 오미정, 도세훈. 소파에 앉아 손을 흔드는 유상일 까지. 다 낯선 사람들이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저를 향해 불만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건 서재호였다. 어리바리하게 생겨서는….

“자자, 최소한 여기 있는 식구들은 싫어도 얼굴 맞댈 일이 많을 거니까, 괜히 텃새나 그런 거 피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어른스럽게. 알지? 재호.”

“예? 예. 물론이죠. 사이좋게, 그런 거 하면 또 이 서재호 아니 겠, 윽!”

“하이고~, 또, 또 저런다.”

소란스러움이 지나간다. 사소한 이야기가 오갔다. 긴장하고 서 있던 제가 한심할 정도로 가벼운 분위기였다. 내가 길을 잘못 찾아왔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화로웠다. 그러나 그 평화로움 아래에 숨겨진 날선 감각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제게 향하는 시선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유상일, 그리고…. 김성식의 무거운 눈빛이, 뒷목을 찔러왔다. 개새끼, 불만 있으면 눈깔 야리지 말고 주둥이나 털던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배정 된 숙소로 가기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런, 피곤한 사람을 너무 오래 붙잡았나? 성식, 안내 좀 해줘. 그의 목소리에 주변이 금방 정리 되었다. 고개 한 번 숙이고 밖으로 나가는 김성식에 뒤늦게 몸을 꾸벅 숙여보이고는 그 뒤를 따라갔다. 숙소는 멀지 않았다. 차에서 잠든 은서를 깨우다 결국 안아들고는 근처 건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깔끔하고, 멀쩡하고, 그냥 숙박시설이었다. 김성식이 열쇠를 쥐어줬다. 그때까지 그가 먼저 입을 여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나도 따로 말 걸지 않았다. 오기였다. 침대에 은서를 눕히고, 기지개를 쭉 폈다. 김성식은 아직 문 앞에 있었다.

뭐, 왜. 할 말 남았어?

- … …. 

나를 바라보던 그 표정은, 무척이나 불만이 많은 표정이었다. 눈썹은 한쪽이 올라가고, 비스듬하게 벽에 기대서 내려 보는 것이 놈 습관은 그대로였다. 계속 보기만 하기에 짜증이 났다. 할 말이 있으면 말로 해! 결국 내가 먼저 짜증을 냈다. 늘 이런 식이다.

됐어.

그 말 한마디만 달랑 해놓고 김성식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뭐하는 새끼야…. 어이없어서 한참을 바라보다 이내 생각을 줄였다. 갑자기 담배가 땡겼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챙겨 창가 쪽으로 갔다. 창문을 여니까 울산과는 다른 동네 풍경이 시야에 확 담겼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뱉어냈다. 퀴퀴한 연기가 폐에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창밖으로 보는 도시 풍경도 삭막했다. 색이 죽은 도시였다. 이곳은. 제대로 정리 되지 않은 머리로, 그렇게 한참 도시를 바라봤다.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그게 시작이었다.

*

“현석, 대체 무슨 생각이야?”

영 탐탁지 않은 어투로 말을 꺼냈다. 박근태는 권현석을 바라보았다. 동그란 안경 너머의 시선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곁에 두고 지낸 시간이 결코 짧지 않음에도 여전히 짐작이 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랬다. 벌써 형의 귀에 들어간 거야? 권현석은 젓가락질을 멈추고 앞을 바라봤다.

“울산에서 픽업이라니. 애초에 거긴 왜 내려갔지? 아무런 언질도 없었잖아.”

“근태형, 나도 이제 위치가 있어. 언제까지 형에게 보고하고, 움직이고 다니겠어. 안 그래?”

탁, 젓가락을 내려놓는 소리가 조용하게 울렸다. 서로의 의견이 부딪힌다. 이제는 낯선 일도 아니었다. 권현석이 2인자라는 명패를 달기 시작한 뒤로는 종종 있는 일이었다. 거기다 그 횟수는 최근 들어 더 잦아들었다. 왠지 피곤함이 몰려왔다.

“들어봐, 근태형. 우리에게는 늘 인재가 부족해. 알잖아? 서울에서 이제 겨우 기반이 다져지고 있어. 물론 지금의 식구들도 좋은 아이들이야. 착하고, 열심히 하고! 하지만 형, 현재만 보지 말고 좀 더 앞을 봐. 미래를 선택해야지. 우리는 여기서 더 멈출 때가 아니잖아.”

지금은 선택을 해야 할 때야. 권현석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박근태의 잔에 술을 채웠다. 독한 알코올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잔과 잔이 맑은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가 떨어졌다. 묵 뒤로 넘기는 것 역시 쓰다.

“형이 걱정하는 게 뭔지는 알아. 끊임없이 숨어드는 박쥐 때문이라는 거. 그래도 은창이는, 내가 직접 선택한 아이야. 근태형. 녀석은 분명 크게 될 거야.”

술기운이 도는지 그의 목소리에는 웃음이 서려있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듯이 힘이 서린 목소리였다. 그쯤 되니 되려 박근태는 의아할 정도였다. 그 정은창이라는 녀석이 어떤 놈이기에.

“형도 이제는 알겠지만 이번에 지방 순찰은, 영남권 분위기를 보기 위해 갔던 거였어. 형의 귀에 까지는 닿지 않았겠지만 아랫놈들 사이에서도 꽤 말이 많았어. 최근에 마산에서 쳐낸 놈들 일도 있고 조직 분위기도 뒤숭숭해. 그래서 고향 방문차, 직접 움직였지. 내가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을 선택한다! 그리고 집중한다! 탈 없는 방법이잖아. 안 그래?”

마산, 밀고 사건 이야기다. 경찰에 정보를 팔아넘기던 쥐새끼를 잡아내고, 그러면서 우연찮게 숨어들었던 쥐새끼들도 발견을 했는데 이게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 문제였다. 마산 내의 조직 주요 핵심 인물에도 경찰이 있었다. 그로 인해 조직의 분위기가 제법, 을씨년스러운 것은 그도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렇게 울산까지 가게 되었는데, 솔직히 기대는 별로 안하고 갔거든. 연고도 없고, 뭐 그간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려온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거기서, 우리 은창이를 본거지.”

“우리, 은창…?”

“하하, 정말 놀랬다니까. 이쪽에서 나이가 중요한건 아니지만, 정말 어려 보였거든. 근데 하는 거 보면 정말 자기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움직여서 버리는 패로 굴려졌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니더라고. 누가 봐도 불리한 상황이었는데 주변의 상황을 어찌나 잘 이용하고, 언변도 얼마나 좋던지. 탐나는 인재였어.”

권현석의 목소리가 다시 낮아진다. 정은창은 몰랐겠지만 이미 며칠을 지켜본 후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한 집중이었다. 권현석의 손끝에서 쓸데없는 행동이 줄어들었다. 그 당시를 회상하고 있는 듯 했다. 녀석의 버릇이었다. 박근태는 조용히 술을 홀짝였다. 좋은 술은 끝 맛도 좋다. 탈 없이 깔끔한.

“직접 눈을 마주쳤을 때, 그 눈에 뭐가 비췄는지 알아? 두려워하면서도 숨기지 못한 욕심이 보였어. 바닥에 구르던 놈이면서도 눈은 위를 향하고 있는데 얼마나 놀랍던지! 괜히 내가 다 즐거워지더라니까. 재미있어 보였고.”

웃음소리가 커졌다. 말을 하면 할수록 목소리의 톤도 올라갔다. 아주 신이 났네. 박근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의 생각이 옳았다고는 역시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그의 순간적인 영감, 그런 것으로….

“그래서 들개 새끼를 주워왔어?”

“성식이와는 다른 재미지?”

권현석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박근태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애써 무시하며 한숨을 쉬었다. 권현석이라는 사람은, 그에게 있어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 간다. 조직 내의 분위기도 갈리고 있었다. 좋지 않은 현상이다. 그것을 아는 척, 모르는 척 구는 그의 행동에는 자신도 모든 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애써 가라앉는 것들을 무시하고 다른 이야기 주제를 꺼냈다. 이야기는 물 흐르듯 흘러갔다. 조용히 밤이 지나갔다.

*

“오셨습니까.”

“오, 준혁이. 아직 안 들어가고 있었어?”

늦은 새벽이었다. 박근태와의 자리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나? 짧은 웃음 지어보이며 일어나려는 준혁이에게 손짓으로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시계 바늘이 정각을 지나다 못해 과하게 넘어갔음에도 아직도 들어가지 않고 일을 정리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과하게 성실하고, 바른 녀석이다.

“은창이는, 들어왔어?”

“방금 전에 들어왔습니다. 간단한 치료가 있어 지금은 아마…. 음. 지금쯤이면 탕비실에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역시 준혁이. 고마워. 벗어둔 겉옷을 의자에 걸쳐놓고 문손잡이를 돌렸다. 너무 늦지 않게 들어가 봐. 그러다 쓰러지겠다. 이것만 마저 처리하고 들어가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문을 닫고 복도로 나왔다. 어두운 복도로 안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은은하게 보였다. 저러다 몸 상하지나 않으면 다행인데.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탕비실…이라.

복도를 조금 걷자니, 여기도 안에서 불빛이 은은하게 흘러나온다. 너무 조용한 안에 의아함을 느끼고 노크를 똑똑, 하며 문을 열었다. 낯익은 사람이 있다. 엎드린 채 쉬고 있었는지 뒤늦게 고개를 들다가 시선이 마주쳤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걸 애써 말렸다.

“괜찮아, 편하게 있으라고. 은창이.”

부러 더욱 유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저었다. 딱딱하게 굳은 몸이 애써 다시 의자에 몸을 붙이는 게 보였다. 이 바닥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게 정말 생각하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이, 귀여웠다. 누가 봐도 나 긴장했어요, 하는 정은창의 모습에 권현석은 조금 유쾌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의 맞은 편 의자를 끌어 앉았다. 눈으로는 주변을 살폈다. 탕비실의 분위기가 삭막하다. 춥다.

“막 들어왔다며. 왜 들어가지 않고 여기서 쉬고 있어.”

“…그, 늦은 시간이라 여기서 잠시 쉬고 갈 생각이었습니다.”

빠진 단어들을 생각해본다. 늦은 시간이라, 동생이 깰까봐. 이곳에서 쉴 생각이었겠지. 꺼내지 않는 이야기는 눈에 훤했다. 정은창은 조직 내에서는 정말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들었다. 당연하듯 조심하는 행동이었다. 끔찍하게 아끼니까.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을 정리하듯 몇 번 쓸어주었다. 아, 어색해한다.

“저, 형님은…, 왜 이 시간에 여길.”

“잠시 나갔다 온 참이야. 그보다 다쳤다며. 어디 봐, 많이 다쳤어?”

다정하게 대하면, 대할수록 어색하게 구는 아이를 앞에 뒀다. 나이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이럴 때 보면 혜연이와 비슷한 나이 또래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여린 구석이 있었다. 그것은 다정함을 내보이면 더 크게 드러내곤 했다. 정에 약한 아이다. 권현석의 머릿속에 정리해놓은 사실이었다. 아이는 주춤거리며 소매 끝을 만졌다.

“괜찮습니다. 크게 다친 상처는 아니에요.”

“아니긴, 어허. 거짓말 하지 말고.”

“진짜! 진짜 괜찮, 윽!”

만지던 소매의, 팔을 쥐었다. 가려진 옷 안으로 두꺼운 붕대의 촉각이 느껴졌다.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표정도 보였다. 상처를 숨기는 거짓말을, 숨 쉬듯 하는 아이다. 그것은 마치 더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하는 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손가락을 움직여 소매를 걷었다. 약하게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강했는지 옅게 감아진 부분에서 피가 스물 물들고 있었다.

“이건 작은 상처가 아닌 것 같은데, 은창아."

가라앉는 제 목소리에 고개를 못 드는 아이를 바라봤다. 어렵다. 요즘 애들은 다 이렇게 어렵나? 상일이를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사소한 일에도 자신의 눈치를 보는 이 아이를 어떻게 어르고 달래야할지 고민이 든다. 이건 회피의 반응이었다. 그 모습이 귀엽긴 하지만. …. 상처 부근을 손으로 쓸었다. 붕대 위 길게 피가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자상? 칼에 베인 걸까. 찢어졌나? 알 수 없는 짜증이 일었다.

“어쩌다가 다쳤어. 오늘 일에 대해서 아직 보고 듣기 전인데, 은창이가 직접 이야기 해주면 되겠다.”

자신이 기억하기엔 그다지 어렵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일이었는데 왜 다쳐서 왔을까. 안경 너머로 눈은 웃었지만, 가려진 눈동자는 시리도록 가라 앉아있었다. 은창이는 보지 못할 색이다. 대답을 재촉하는 두드림에 그제야 겨우 정은창이 고개를 들었다. 죄책감이 서려있었다. 왜? 질책하는 말투는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의아함이 잇는다.

“도중에, 경찰의 난입이… 있었습니다. 거의 끝나가던 거래였는데, 상대 쪽에서 이쪽을 의심하는 바람에 언쟁이 이어지다, 트러블이 조금. 말씀하신대로 처리는 깔끔하게 했지만, 저희 쪽도 한명…을, 잃었습니다. 어디서 정보가 새어 나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원하던 답이 아니다. 고개를 숙인 아이는 제 잘못을 탓하고만 있었다. 제가 듣고자 했던 답이 그것이 아님에도. 말을 하는 중간 중간 시선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다른 곳을 향한다. 죄책감어린 목소리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같이 데리고 갔던 애들은 그다지 안면이 있던 애들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순한 본성이 이렇게 새삼 느껴진다. 입가에 웃음을 베어 물었다. 손을 내려 은창이의 손과 마주 잡았다. 손가락과 손가락이 얽혀 깍지 낀 손이 겹쳐진다. 제 온기에 화들짝 놀래는 모습이 귀엽다.

“그거 말고, 나는 다른 게 궁금한데. 은창아. 너는 늘 잘하던 아이였잖아.”

몸이 다시 움츠러든다. 굴러가는 눈동자가 시끄러웠다. 손가락 끝으로 아이의 손등을 쓸었다. 경직되어가는 몸이 느껴져서 긴장하지 말라고 부러 웃음을 지어도 변화는 크게 없다. 깍지 낀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고개를 다시 들었다. 이렇게 계속 나를 바라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겁먹은 어린 짐승을 앞에 두고 있는 것 같다.

“좋아, 은창아. 그럼 내가 정리해볼까. 예상해보자고. …트러블이 생겼다고 했지. 아마 상대 쪽에서 먼저 움직였을 거야. 언쟁이 좋게 흘러가진 않았다고 해도, 은창이 네가 먼저 섣부르게 움직이진 않았을 테니까. 상대가 총을 쥐었다면 너와 같이 움직인 애들도 가만히 있진 않았겠지. 그러다 실수가 발포가 됐다. 그렇게 끝났다면 그래도 간단한 일이 되었겠지만, 이 상처는 설명 되지 않겠지.”

빈 손이 붕대 위를 가볍게 쓸었다. 긴장 품은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린다.

“그쪽에서는 총을 든 자는 많지 않았을 거야. 총을 든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총은 협박용. 실제로 칼을 든 놈이 많았겠지. 이 바닥에선 그게 흔하잖아? 문제는 너와 동행했던 애들… . 네 상처의 이유는 짧은 방심이었을 거야.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 은창이, 네가 방심을 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잖아? 그렇다면 은창이 네 시선을 순간적으로 끄는 일이 일어났겠지. 방금 전 이야기로 돌아갈까? 같이 갔던 애들이, 네 말을 잘 들었다면 아마 쉽게 정리 되었을 현장이었겠지. 그런데 너는 다쳤고, 한 명은 죽었고.”

그 아이는 왜 죽었을까. 응? 고개를 부러 숙이며 아이와 얼굴을 마주했다. 부정의 말은 없었다. 추측을 사실로 확신하는 과정이다. 이후의 상황이 어렴풋이 그려진다. 한명의 움직임 이탈. 스스로 죽음을 자처하는 행동에 막으려던 정은창은 도리어 상처만 입고, 죽음을 저지하진 못했고. 거래는 쪽박 차버린 신세에, 현장 마무리하고 흔적 지우기에 급급했겠지. 현장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내가 선택을 잘못 했어, 쉬운 거래라도 어설픈 녀석들을 같이 묶는 게 아니었는데.

“어때. 은창아.”

“다, 제 잘못이었습니다. 죄송, 합니다.”

“하하, 내가 지금 잘잘못을 따지는 것처럼 보였어?”

깍지 낀 손을, 빼려는 손길에 더 꽉 손을 잡았다. 특별히 무언가 하지 않아도 늘 제 앞에서는 겁을 먹은 모습이다. 길들이기 전의 들짐승이다. 은창아, 이쪽을 봐. 진짜보다 더 자연스럽게 다정함을 꾸며 아이를 부른다. 꼬리를 말고 털을 세우던 짐승은 조심히 고개를 들었다. 무엇이 두려운가.

“그렇게 보면 섭섭해. 이번 일에 대해 탓하려는 게 아니야. 그런 표정하지 마. 열심히 해줬잖아? 그런 상황 속에서도 탈 없도록 처리하고 온 거잖아. 이렇게 상처까지 입으면서. 고생 많았어.”

그게 제일 거슬리는 이유다. 상처 위를 쓸었다.

“이런 상처, 정말 별거 아닙니다. 금방 나을 거고…. 형님이 걱정하실 만큼 큰 상처가 아니에요.”

“네가 다쳤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야. 은창아.”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한 걸음 물러날 때인가? 속으로 거리를 쟀다. 맞잡은 손은 긴장으로 차가워져있어서, 더 꽉 잡았다. 아프지 않을 정도로, 온기가 전해지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정은창.”

“예, 예?”

“긴장 좀 풀어! 뭘 그렇게 긴장 하고 있어?”

웃음어린 목소리로 탁자에 턱을 괴었다. 이 바닥에서 오래 있었다고 들었건만 이렇게 감정 숨기는 것을 못하는 아이를 앞에 두고 있자니 나쁜 사람이 된 기분이다. 나쁜 사람인건 맞지만. 아이는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느리게 입을 연다.

“…조금, 이해되지 않습니다. 형님이, 저같이 보잘 것 없는 놈에게 잘해주시는 게.”

“음, 부담스럽나?”

“그건! 그건, 아니…지만.”

부정이자 긍정이었다. 얽혀있던 손가락을 풀고, 도망가려는 그 손 위로 제 손을 덮었다. 

아이 재우듯 가볍게 도닥인다.

“나는 내 식구들은 꽤 소중하게 여겨, 특히나 은창이 너는 내가 직접 보고, 선택하고, 집중하고 있는 아이야. 이 정도는 특별대우도 아니지.”

부담스러워 하는 아이 탓에 오히려 자제하고 있는 편, 아닌가? 권현석은 작게 웃었다. 또다시 고민하는 듯 한 얼굴을 하기에 더 입을 열지 않고, 손을 거뒀다. 걷은 소매를 굳이 내려주고, 단추를 채웠다. 상처부위 위를 한 번 더 만지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선이 저를 따라온다.

“오늘은 이정도 까지만 할까? 너도 늦지 않게 들어 가봐야지. 은창이, 탕비실 탁자는 딱딱해. 은서 기다릴 테니까, 들어가서 쉬어.”

알겠지? 하고 밀려단 의자를 고쳐 넣었다. 은서의 이름에 움찔하던 아이가 고개를 느리게 끄덕이며 대답이 돌아왔다. 좋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손잡이를 잡고 돌리다 아, 하고 뒤를 돌았다. 의아한 눈빛이 닿는다.

“그래도 은창이, 이거는 알아둬. 내가 너를 충분히 아끼고 있는 인재사람라는걸. 그러니까 네가 가급적이면 다치지 않길 바라는 거야. 좋아하는 아이가 다치는 건, 마음이 아프거든.”

소리 내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돌아온 표정이 멍한 것도 귀엽다. 짧게 콧노래를 부르며 걸음을 옮긴다. 복도는 여전히 어두웠다. 준혁이는 들어갔나? 이제는 거의 깨버린 술기운에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고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즐거운 웃음이, 복도에 퍼졌다.

*

거짓말 안하고, 한동안 정말 정신없었다. 따까리 노릇 아주 제대로 시킬 모양인지, 자잘하거나 거친 일도 적지 않았다. 얼마나 욕을 해댔는지 모르겠다. 김성식을 제대로 본적도 없었다. 주로 엮이는 건 서재호나, 양반-배준혁-이었다. 신입 서울 투어 시켜준다면서 외지 거래로 얼마나 돌려먹었는지 모른다.

차근, 차근. 자리를 잡아갔다. 개시발, 욕을 하면서도 시키는 일이 아무리 좆같아도 해내려 들었다. 김성식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은 많았지만 결국 침묵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는 수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하면 김성식 생각할 틈도 없이 바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 위치는 견고해져갔다. 손을 물든 타인의 피는 바닥에 한 가득 웅덩이를 만들어냈다. 시간이 지나는 흐름 속에 변질자가 된 큰형님, 박근태를 몰아내고 쿠데타를 일으켰던 사건도 있었다. 어디서 정보가 흘렀는지, 경찰의 개입 탓에 현장이 엉망으로 돌아가다 결국 박근태의 숨을 거둔 건, 내 총이었다. 신발에 피가 물들었다. 기뻐하는 권현석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그 일로 나를 향한, 권현석의 총애가 남달랐다. 그 옆에는 김성식이 있었다.

내뱉어지는 이야기들이 그랬다. 권현석의 개새끼들.

쿠데타에서, 박근태를 제압한건 김성식. 목숨을 끊은 건 정은창.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다. 우스웠다. 경찰에 정보를 흘린 건 김성식 일거라고 나는 속으로만 짐작했다. 이번 일로 아랫놈들이 일부 숙청당했다. 짭새로 의심 받던 놈들이었다. 권현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고 김성식은 그 장면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엇다. 그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그렇게 서 있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김성식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봤다. 내가 박근태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바닥에 피가 흩뿌려질 때 나를 바라보던 김성식의 표정을.

언제나 나를 향하던 표정이었고, 나만은 알아 볼 수가 있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아 불만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금방 사라진 표정이었지만 시선이 마주치고 얽혀있던 감정을 나는 보았다. 김성식은 짭새였다. 새삼 확신을 가지게 되었던 날이었다. 김성식은 내가 모든 걸 눈치 챘다는 걸 느꼈을 터면서도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싸늘한 시선만이 나를 향했다. 경고다. 어릴 적 자주 느꼈던 시선이다. 녀석은 제게 경고를 하고 있었다. 우스웠다.


… 그리고 나는 김성식이 경찰에 흘린 정보 때문에 은서를 잃었다.


“요새, 쥐가…많아졌어. 그렇지?”

고요하다. 침묵이 주변에 맴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일주일 전, 정은서가 죽었다. 어느 쪽이 흘렸는지 모를 정보에 무관한 아이가 휘말렸다. 권현석은 눈동자만 굴려 서있는 이들을 훑어봤다. 정은창이 없다. 아니, 있네. 좀 뒤쪽이다. 창백한 낯짝을 가리지 못하고 서있는 모습이 영 불안해 보인다. 용케 이 자리에 서있다는 생각이 든다. 겨우 일주일이 지났을 뿐임에도 꼴이 말이 아니었다. 혀를 찼다. 저런 상태인 애를 누가 데려 온 거야? 아, 내가 소집해서 올 수 밖에 없었나. 눈동자를 옆으로 옮겼다. 김성식이 정은창의 옆에 서있었다. 둘이 친했던가? 가벼운 생각이 떠오르다 가라앉는다. 친했던 것 같기도 하다.

손가락 끝이 일정한 리듬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그렇게, 그렇게 쥐새끼를 걸러내고, 걸러내도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권력을, 하늘을 뒤집을 때도 많이 쓸어내었는데 번식을 하는 건지, 변질이 되는 건지 곰팡이 피어오르듯 곳곳에서 썩어간다. 그게 참 마음에 안 들었다. 이제 권현석이 유일한 권력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바람대로 정리가 되어야하지 않겠나. 과거에서 흘러온 썩은 싹들을. 권현석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제 옆에 서있는 유상일이 있었다.

“상일아.”

“말하지 않아도 진행하고 있어.”

“재호, 미정?”

“말씀하신 것들의 정리는 거의 끝나갑니다.”

“에러사항이 생겨서, 조금 시간이 걸렸어요. 오늘 내로 올려드릴 수 있어요.”

“세훈.”

“네, 대조작업도 순조롭습니다. 이쪽도 이상 없어요.”

 호명되는 이름의 뒤로, 만족스러운 답이 이어진다. 그들은 우수했다. 전부 권현석이 직접 보고, 선택한 이들이었다. 대답을 하는 이들의 얼굴에도 자긍심이 비췄다가 사라진다. 좋아, 마음에 들어. 권현석은 그렇게 대답하며 손을 모았다.

 “성식.”

“…준비 됐습니다.”

“역시 믿음직스러워.”

 안경에 한차례 빛이 가려진 눈동자가, 그를 훑는다. 김성식. 이 자리에 서있는 이들 중 권현석이 직접 ‘선택’한 아이가 아닌 몇 중에 하나였다. 우수하고, 능력 좋고, 하늘을 뒤집던 그 날, 제 신뢰를 한가득 안아버렸지. 그렇기에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다. 권현석의 광견. 김성식. 믿음직스럽지. 정말, ….

 “그래.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은, 다 믿을 만 한 사람들이라고 여겨. 소중한 식구들이잖아. 내가 믿지 않으면 어떡하겠어. 그러니까 모두 너희를 믿는 나를 선택하고 집중 하면 되는 거야. 간단한 이야기지? 거슬리는 과거의 잔재는 빠르게 치워버리자고. 자, 그럼 이정도로 하고, 해산!”

 가볍게 손뼉을 쳤다. 아직 일이 끝나지 않은 이들이 먼저 걸음을 옮긴다. 신뢰가 닿는 온기가 느껴진다. 분위기 자체가 둥그러진다. 유상일은 생각했다. 이게 권현석의 힘이었다. 그만큼 무서운 능력이었다. 누구라도 자신의 분위기로 감싸버린다. 제 속을 아주 꽁꽁 숨겨놓은 주제에. 짧게 웃고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도 먼저 갈게. 아, 그래. 고생해. 상일이. 마주친 시선이 서로 웃음을 품었다.

 “아, 은창이. 그리고 김성식. 둘은 어디가지 말고 대기.”

 방을 벗어나던 정은창이 움찔한다. 나가려던 발걸음을 뒤로 물렀다. 사람들이 빠지고 다시 본 얼굴은 훨씬 더 퀭한 상태였다. 머리는 겨우 정리해놓은 모양새에, 잠도 제대로 못잔 듯 눈 밑이 거뭇거뭇했다. 다른 사람들은 나가봐도 좋아. 그 말을 덧붙여서야 방 반에는 세 명만이 남을 수 있었다. 곧게 등을 세우고 자신을 향해 바르게 서 있는 김성식에 비해, 정은창은 쭈뼛거리면서 그 옆에 서있었다. 시선과 손끝이 정신 사납게 움직였다. 김성식의 눈이 그쪽을 향하다 탐탁지 않은 빛을 띄우곤 다시 앞을 본다. 상반된 모습이 보는 사람 입장에선 즐거웠다. 좋아. 권현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겉옷을 챙겨 그 둘을 지나쳤다.

 “둘은 잠깐 나랑 어디가야겠어. 걱정 마, 별일은 아니야.”

 굳이 이야기 하면, 오히려 선물일까…. 웃음 어린 목소리가 스쳐간다. 한 세걸 음정도 뒤에야 제 뒤로 따라붙는 걸음에 뒤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건물 앞에 차가 이미 대기되어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건 배준혁이었다. 왠지 아까 방에서 안 보인다 싶더니. 차안은 조용했고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가끔 권현석이 몇 마디 던지면 짧은 대답이 돌아오고, 다시 조용해지고. 그럼의 반복이었다. 차는 도시를 달렸고, 거리를 지나, 외각을 달렸다. 인적 드물고 보이는 건물의 수가 확 줄었다. 정은창은 창밖을 힐끔거렸다. 자기 혼자만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같이 차에 타있는 사람들은 죄다…씨. 불편하다.

 “도착했습니다.”

 배준혁이 짧은 음성을 내뱉었다. 차가 부드럽게 멈춰 선다. 낡은…공장?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지 오래되어 보이는 외벽이었다. 주변은 벌써 해가 지려는지 어둑어둑했다. 권현석이 제일 마지막으로 내렸다. 앞장 서는 건 배준혁이었다. 열리지 않을 것 같이 굳게 닫힌 문을 열고, 그 뒤를 권현석이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정은창 마저 따라가는 것을 확인한 김성식은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보다 마지막으로 뒤따랐다. 찜찜한 곳이다. 걸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단순한 구조인지 조금만 걸었음에도 넓은 공간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게, 무슨…”

 배준혁은 불을 켰고, 이내 밝아진 시야에 정은창은 말을 잃었다. 김성식은 조용히 인상을 찌푸렸다.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조금, 비현실적이었다. 쇠로 된…우리? 아니, 감옥 같이 생긴 것에 사지가 결박된 채 바닥에 엎어져있는 남자가 있었다. 한명? 두 명? 손발이 묶이고 입에는 재갈 같은 게 물려있었다. 눈은 가려졌고, 곯은 상처들이 보였다. 정은창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기에 왜, 우리를…? 권현석을 바라봤다. 그는 어느새 그 쇠로 된 것 앞에 서있었다.

 “은창아, 이건 네 선물이야.”

“…예?”

 권현석은 무릎을 굽혔다. 철창 사이로 손을 넣어 한명의 머리를 잡아 들어올렸다. 힘없이 들리는 머리는, 움찔하는 걸로 살아있음을 표현하고 있었다. 얇은 손가락이 눈을 가리던 것을 벗겨냈다. 얼굴이 훤하게 드러났다. 굳었다. 어렴풋, 기억나는, 얼굴.

“기억나? 기억나겠지. 은서를 죽인 녀석들이야. 해외로 도망가려던 걸, 겨우 잡아왔다니까.”

가벼운 목소리가 지나간다. 김성식은 옆을 바라봤다. 정은창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느껴졌다. 가쁘게 떨리는 호흡이, 들린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앞을 바라보는 것을 택했다. 정은창이 한걸음,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권현석은 쥐었던 머리를 놓았다.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오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새 배준혁이 권현석에게 손수건을 건네고 있었다. 아니, 괜찮아. 나중에 줘. 짧은 거절을 내뱉고 그는 다가오는 은창의 옆으로 섰다. 자연스럽게 한쪽 팔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앞으로 이끌었다.

 이곳으로 끌려오는 것도 순탄치 않은 일이었는지 이곳저곳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살아있는게 다행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말이 아니었다. 정은창은 시야가 자꾸 흔들렸다. 은서 목소리가 들린다. 환청이다. 아니, 은서가 옆에서 속삭이고 있었다. 오빠! 하고 부른다. 비명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귀를 찢는 듯한 비명이 이어져, 귀를 막았다. 몸을 웅크렸다. 은서야, 은서…, 은서야. 권현석은 빈 손으로 귀를 덮은 정은창의 손을 때어내었다. 정은창이 그를 바라봤다. 다정한 웃음이 닿았다. 이 장소와 무척이나 어울리지 않는 다정한, 그 웃음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다. 철창이 코앞이었다.

 “자, 은창아. 간단해.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돼.”

 허리를 감싸던 손을 풀고, 그는 아이의 손에 쇳덩어리를 쥐어줬다. 묵직한 무게감이 손에서 느껴진다. 총이었다. 권총. 적어도 정은창은 한 번도 다뤄본 적이 없는 진짜 총이었다. 아니 이번이 두 번째였지. 겨우 두 번째였다. 겨우. 떨리는 눈동자가 그를 향했다. 그의 가는 손가락이 정은창의 손을 고쳐준다. 총은, 이렇게 쥐는 거야. 멍하니 그 손짓을 따라 손을 움직였다. 낯설고 차가운 금속이다.

 총을 쥔 정은창의 손을 감싸 쥐고, 잠금을 풀고, 장전을 한다. 하나하나 느리게, 천천히 설명하는 말들이 이어졌다. 앞에 놓인 풍경만 아니었다면, 사격 연습을 하러 왔다고 해도 허언이 아닐 터였다. 좋아, 그렇게. 권총은 원래 이렇게 쥐는 거야. 칭찬을 잇는 목소리가 이었다. 정은창의 뒤에서 껴안듯 감싸 자세를 고쳐주었다. 두 손이 겹쳐진 채, 그대로, ….

 방아쇠가 당겨졌다.

 소음기가 없는 총성은, 귀를 울리도록 공간을 울렸다. 아무것도 없이 빈 곳이라 총성이 더 광광 울리는 것 같았다. 팔이 아팠다. 발포의 여파가 저려 제 손을 쥔 손이 없었다면 아마 정은창은 총을 떨어트렸을지도 몰랐다. 손이, 팔이, 그냥 아팠다. 전에도 이렇게 아팠나? 모르겠다. 그때는 무슨 정신으로 총을 쐈는지 모른다. 박근태의 몰락 이야기다. 인상을 찌푸리고 앞을 바라봤다. 먹먹한 귀를 뒤로 하고, 눈먼 총알이 재수 없게 빗맞아 고통을 호소하는 남자가 앞에 있었다. 그래봤자 억눌린 소리만 들리고,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현실감이 없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은서는, 은서는 이것보다 더 훨씬, 괴로워했을 텐데.

 그 생각은 독이었다. 망설임을 없애는, 생각이었다. 정은창은 권현석을 돌아봤다. 빛을 한 꺼풀 잃은, 눈동자가 그를 바라봤다. 그는 언제나와 같이 다정하게 웃어주었다. 떨리는 손을 다시 잡았다가 놓는다. 작지 않은 손이 정은창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괜찮아. 마음대로 해도 돼. 그렇게 이야기하고 그는 뒤로 물러났다. 정은창은 뒤를 돌아봤다. 뒤에 서있던 이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낯선 쇳덩이를 고쳐 잡았다. 제 옆에서 마주하는 시선은 어딘가 시리도록 다정해서, …총성이 이어졌다.

 두 번, 세 번, 네 번, … 탄환이 다 떨어지도록.

 팔이 떨어져나갈 것 같다.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가쁘게 숨을 내뱉었다. 호흡이 벅차다. 눈앞도 흐렸다. 방아쇠를 당겨도 더 이상 나가는 게 없었다. 헛도는 소리만 들리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채 계속 방아쇠를 당겼다. 은창아, 총알 더 필요해? 제 손을 덮어오는 온기가 있었다. 그제야 화들짝 놀래며 고개를 들었다. 쥐고 있던 총이 바닥에 떨어진다. 주워, 주워야, 하는데. 팔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덜덜 떨리는 손이 제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처럼 웃으며 총을 주워들었다.

 “고깃덩어리에, 계속 쏴도 의미는 없겠지만 네가 원한다면 총알을 채워줄게.”

 고기 덩어리…. 앞을 바라봤다. 아까보다 훨씬 엉망이 되어있는 '것'이 보인다. 사람이었던 것이다. 숨 쉬던 움직임도 없는 그것에서 꿀렁꿀렁 피가 바닥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쇳덩어리 상자를 넘어서, 바닥에 흘러내렸다. 숨을 턱, 내뱉었다. 이제까지 제대로 호흡하지 못한 것을 뒤늦게 목을 잡으며 들이쉬었다. 역한 내가 난다. 신발 끝을 적셨다.

 “은서야….”

 가느다란 음성이, 이름을 내뱉었다. 울음 섞인 목소리가 떨어진다. 무너지는 마음을 제대로 붙잡지 못하고 쏟아낸다. 은서야, 은서, 정은서…. 오빠가, 오빠가…. 제대로 된 목적어 없이 주어만이 흩어진다. 이게, 이게 너의 복수가, 복수가 될까? 괜찮은 거야? 닿지 못한 목소리가 목구멍에서 막힌다. 뒤에 느껴지는 시선을 의식한다. 김성식. 그를 그렇게 두고 이렇게 너의 복수가 되는 걸까? 무너진다.

무너지는 아이를 그가 받았다. 몸이 무거웠다. 열병 앓는 것 마냥 닿은 피부가 뜨거웠다. 권현석은 쓰러지는 정은창을 고쳐 안았다. 배준혁이 다가왔다. 눈짓만 했을 뿐인데 알겠습니다. 하며 뒤를 돌았다. 차의 시동을 걸기 위해 걸음을 움직이는 터였다. 김성식은 여전히 자신의 자리에 서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먼저 웃는 것은 권현석이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이었다. 김성식은, 보이지 않게 입안 내벽을 씹었다. 정신을 차린 정은창은, 온전히 권현석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권현석은 기꺼이, 충성을 짖어대는 개를 품에 안았다.

 

“즐거워?”

유상일이 물었다.

“무척이나.”

권현석이 대답했다.

“…”

옆에는 정은창이 서있었다.

 

“은창아.”

“내가, 너를 무척이나 아껴.”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좋아해.”

부드러운 목소리가 다정을 품고 내려앉았다. 정은창은 대답 없이 고개를 숙였다. 가볍게 입술이 맞닿았다. 앞에 누가 있던 상관없다는 듯 부드럽게 스킨십이 이어졌다. 막상 유상일도 크게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쥐새끼는 어떡할 거야?”

“없애야지.”

단호한 목소리가 내뱉어졌다. 정은창은 흐트러진 옷을 정리하며 다시 바로 섰다. 책상에 서류들이 난잡하게 섞여있었다. 도세훈이 진실과 거짓을 대조하여 추려내고, 오미정이 정리하여, 서재호가 정보를 걸러내고 마무리 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유상일이 리스트를 완전히 체크하고 확정지은, 변질의 리스트.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 리스트였다.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그러나 이미 대다수는 정리한 후였다. 자잘한 잔챙이의 정리는 배준혁이었다. 물밑에서 정리는 천천히 되고 있었다. 극히 일부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미 쥐몰이는 진행되고 있다.

“은창아, 우리 쪽에 아직 쥐새끼가 남아있는 것 같아. 내가 직접 선택한, 너를 꽤 아끼는 거 알지?”

정은창은 알고 있는 쪽이었다. 처음부터. 이미 오래 전…, 그가 자신의 상처를 보듬어주었던 그 날 밤 이미 그의 발아래에 무릎을 꿇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권현석은 정은창을 온전히 신뢰했다. 정은창은 자신의 치부를 그에게 보였다. …온전한 신뢰. 가능한 말인가?

유상일과 대화를 잇던 권현석이 서랍에서 총 한 자루를 책상에 올려 은창이 쪽으로 밀었다. 의아하게 그를 바라보는 정은창에, 어김없이 다정한 미소가 돌아온다.

“깨끗하게 해결하고 다녀와.”

돌아와야 해. 은창아. 그렇게 그는 뒤를 이었다. 무슨 말인지 앞뒤 설명이 없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며칠 뒷면 김성식과 같이 나가는 일이 있었다. 그가 언급하는 해결은, 그 이야기임을 알 수 있었다. 잘 할 수 있지? 지독하게 다정한 음색이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앞에 놓인 총을 옷 안 쪽에 넣었다. 늘 나이프가 있던 자리가 이제는 그 배의 무게를 가진 금속덩어리가 자리하게 되었다.

“괜찮겠어? 둘이 친한 것 같던데.”

유상일이 부드럽게 물었다. 대답은 권현석에게서 였다. 괜찮아. 은창이니까. 이해할 수 없는 믿음이다. 정은창은 시선을 낮췄다. 아래를 바라봤다. 무거운 마음이다. 머리가 복잡했다. 책상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있는 서류 끝이 보인다. 김성식의 이름이 보인다. 김성식 경사. …그래. 정보는 이미 털어져있었다. 모두가 안다. 아니, 그러니까…. 김성식을 제외한 권현석 라인의, 중요 인물들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김성식만 모른다. 다음 있을 일은 온전히 그를 위한 덫이었다. 몰래 숨어들고 아닌 척 떨었던 얄미운 쥐새끼를 잡아낼 덫.

정은창은 입 안이 쓰게 느껴져 인상을 찌푸렸다. 안색이 좋지 않다며 말을 걸어온 권현석의 권유에, 부정은 했지만 결국 방 밖으로 쫓겨난다. 고요한 복도를 걸으며 끊임없이 생각했다. 무엇을? …김성식을. 같은 동네 출신이었다. 같은 나이에,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정은창은 서로 꽤 친한 사이였다고 생각했다. 맞는 부분은 별로 없었지만 친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김성식이 사라지기 전까지. …정은창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김성식이 경찰이라는 사실을. 서울에 상경했을 때 처음부터 그가 ‘쥐’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정이라는, 유일한 친구였다는 이름 하나 때문에 그 사실을 결국 가슴 깊숙이 묻어뒀다.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모른 척 할 수 없게 되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 되었다. 거기다, 그의 처리마저 자신의 일이 되었다. 옷 안의 권총이 괜히 무겁게 느껴졌다. 아니 실제로 무겁다. 너무 무거워서 그냥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가질 때면 손목에 느껴지는 다정함이 자신을 잡았다. 다정함은 자신을 옭아매었다. 벗어날 수 없는 거미줄처럼 그에게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갈피를 잃었다.

“정말 괜찮아?”

유상일이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권현석을 향해서였다.

“뭐가?”

천연덕스럽게 답한다. 알면서. 웃음어린 목소리가 이었다.

 “정은창, 정말 맡겨도 되겠어?”

“우리 은창이가, 정말 친구를 겨눌 수 있는지?”

“알면서도 보내는 거야? 형도 참 못됐어.”

유상일이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투명한 잔이 짙은 향을 품었다.

권현석은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어떨까.

“은창이가 스스로, 녀석을 끊어내야 정말 내 것이 될 것 같거든.”

“감이야? 순간적인 감을 믿고, 그걸로 선택하려는?”

“감…인가.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 은창이는 좀, 어려운 아이거든.”

“부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지만 마. 형. 사람은 모르는 거야.”

 은창이라면 잘 해줄 거야. 확신어린 어조에 유상일은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잔과 잔이 부딪히며 맑은 소리가 울린다. 됐어. 형 마음 대로해.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유상일은 찝찝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서있던 정은창의 찌푸려진 얼굴이 생각났다. 그 시선이 쫓던 서류의 내용도. 하지만 곧 애써 떠오르는 생각을 잊었다. 그의 믿음을 신뢰했다.

*

정은창은 머리에 겨눠진 금속덩어리를 바라봤다. 싸늘하게 내려다보는 김성식의 시선이 선명했다. 이런 비슷한 모습, 본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아아, 기억난다. 어릴 적, 상상했던 미래다. 미래에 물었던 그 마지막 여름날, 매미 소리를 배경으로 두고, 다른 위치에 서있을 우리를 상상했던 그 때와 비슷하다. 녀석은 경찰에, 나는 깡패로 서로 다른 높이에 서있는 그런 미래. 상상과 다른 것은 당장 우리 둘은 깡패의 신분이라는 거고, 같은 높이서 서 있다는 것뿐이었다. 아니 더 있나? 서로의 목숨 끈을, 서로가 쥐고 있다는 것.

김성식은 아마 느꼈을 터였다. 권현석이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알았다. 은창아, 우리 쪽에 아직 쥐새끼가 남아있는 것 같아. 내가 직접 선택한 너를, 꽤 아끼는 거 알지? 그러니까 깨끗하게 해결하고 다녀와. 제 옷깃을 만져주며 이야기하던 그 목소리가 선명하다. 거래에 같이 나가는 것은 김성식이었다. 그의 말은 곧 의심스러우면 김성식을 쏴버라는 의미였다. 그가 챙겨준 총이 주머니에서 무게감을 드러냈다. 잘 할 수 있지? 자신을 다독이던 목소리는 다정했다.

그런데 막상 총이 겨눠진 건 나였다. 거래를 진행하던 도중이었다. 김성식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치 챘을 때는 이미 늦었음에도, 그는 거리낌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거래하던 놈들이 맥없이 쓰러졌다. 나는 오랜만에 그의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마주했다.

미친, 새끼가…!

일이 잘못 됨을 느꼈는지, 그는 입술을 깨물고 잠깐의 침묵을 물었다. 나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이번 덫은 김성식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김성식 말고도 두 엇이 더 있었다. 고상만, 조용호. 한명은 이미 죽었으니까 권현석은 저울을 재고 있는 상태였다. 어느 쪽이 쥐새끼인지 이쪽, 저쪽 기울이며 간을 보는 중이었다. 김성식은 그걸 몰랐다.

김성식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당장 아는 것을 이야기하라는 시선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멀리서 총성이 들렸다. 고상만? 조용호? 어느 쪽이지? 소리만 듣고 짐작하고 있으려니 제 멱살을 잡고 끌어올리는 손길이 거칠었다. 김성식이었다.

빨리 와, 이 새끼야!

손속만큼 걸친 음성이 내뱉어진다. 뿌려 칠 수 있는 힘이었지만 그 뒤를 쫓았다. 할 수 있지? 권현석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찌푸려지는 얼굴을 쓸었다. 바쁘게 걸어, 막힌 곳을 지나 뒤로 이어진 길을 걸으니 작은 폐허가 나왔다. 폐허? 빈 공장 터였다. 주변은 조용했다. 숨을 고르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바쁘게 움직인 만큼 숨이 가쁜 터라 호흡 고르기도 정신없었다. 그러다 장전 음이 귓가에 들렸다. 김성식은 자신에게 권총을 내밀고 있었다. 싸늘하고 차가운 총구를, 제 머리에 가져다대었다.

녀석은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짭새인 것을 알고 있는 내가 한없이 의심스러울 터고, 의심해야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녀석의 살아있는 지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몇 년 전, 서울에 올라왔을 때. 그때 김성식이 나를 죽였어야했다. 아직 조직에 제대로 물들기 전, 그때 죽였으면 변명도 쉬웠을 거였다. 권현석의 나에 대한 신뢰도 없었던 시절 나를 죽였다면, 짭새여서 죽였습니다. 이 말로 끝날 일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자신이 경찰인 것을 아는 사람을 없게 만드는 쉬운 방법이었다. 그러나 김성식은 나를 내버려두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 되었다.

녀석이 마음먹고 방아쇠를 당기면 죽는 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초연해지는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녀석이 나를 죽이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닌데, 묘하게 그랬다. 느리게 눈꺼풀을 깜빡거리다 시선을 마주했다. 결국 너는 나를 내려다보고, 나는 너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왜, 시발. 울산에서 깡패 짓이나 하고 있지. 왜 하필 서울로 올라왔어. 정은창.”

녀석의 목소리가 떨린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겠지. 작게 웃었다. 총 끝으로 제 머리를 툭 쳐왔다. 웃음이 나와? 분노 어린 목소리다. 근데 정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 올라오고 싶어서 올라왔나? 깡패가 되고 싶어서 깡패가 되었나? 여기까지 오는 길에 제대로 제 의사가 섞인 적은 없었다. 오빠! 하고 부르는 은서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김성식, 이제, 그만해.….”

“뭘 그만해 시발!”

“그만해.”

“닥쳐, 내가 그만할 수 있을 것 같아?! 정은창, 네가 늘 모든 걸 망쳐!”

“왜 서울에 올라왔어, 왜 올라와서 네가 날 흔들어! 다 네놈 탓이야, 너만 없었으면, 정은창 너만 없었으면!”

분노 어린 목소리가, 쉴 틈 없이 쌓아져간다. 녀석이 이렇게 감정적인 것을 본 게 얼마만이지. 녀석은 언제나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렸다. 개새끼, 절로 내뱉은 말이었다. 자기는 순결한 척, 자신이 고른 선택지가 당연히 맞는다는 듯이 웃고, 죄를 다른 사람에게 미룬다. 은서, 은서의 하얀 손이 눈가에 아른거린다.

“아니면 차라리 나를 죽여.”

“…뭐?”

“나를, 죽여. 그리고 끝내자.”

손을 뻗어 금속덩어리를, 제 이마에 바짝 대었다. 묵직하고, 차갑다. 김성식이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김성식, 네가 무슨 생각이었든, 지금까지 뭘 해왔든 넌 실패한 거야. 조용히 제 목소리가 흘러갔다. 눈을 감았다 뜬다. 다시 시선이 뒤얽힌다. 내 목소리에 무어가 실렸나.

“네가 흘린 정보 때문에, 은서가 죽었어.…. 내가, 내가… 은서 죽인 새끼들을 직접 죽였는데, …그런데도 아직도 은서는 자꾸 나를 찾아. 나를 불러…. 은서가…, 나를, 자꾸, 찾는다고! 다, 김성식! 너 때문이야… …. 그러니까 은서를 죽게 만들었던 것처럼, 네 손으로 나도 끝내라고! … …제발.”

김성식은 가라앉는 기분을 느꼈다. 제가 왜 경찰이 되었던가. 다 이 새끼 때문이었다. 어엿한 경찰되어서, 그 깡패새끼들 다 처넣고, 깡패 길 밖에 모르는 이 새끼를 바른 길로 세우려고 했다. 내가 아니면 못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깡패 짓 하고 살 거냐고, 몇 대 쥐어박고 싸우기도 하는 미래를 상상했다. 그걸 위해 내딛은 발걸음이었다. 이번 프로젝트도 그래서 자원했다. 빠른 승진의 길을 잡았을 뿐이다. 자신은 우수했고, 충분히 빠르게 끝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자만이었다. 서울역에서 만난 정은창을 보고 그는 실감했다. 자만을.

은서도, 자만의 연장선이었다. 전달해야 할 정보 선택을 잘못 했고, 그에 은서가 휘말렸다. 김성식도 은서를 구하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 자신을 욕하며 달렸다. 총을 갈기고, 뭐든 뺏어서 휘둘렀다. 좆같이 잠긴 문을 열어 재낀 방안에, 싸늘하게 누워있는 은서를 보며 그는 뭐가 자만의 끝을 깨달았다. 은서를 부르며 울부짖는 정은창의 목소리가 한동안 귓가에 맴돌았다.

시발, 시발, 이미 일어난 일이잖아. 내가 그렇게 될 줄 알았겠냐고. 그러게, 그러게 서울에 왜 올라왔어 시발. 혼자도 아니고 왜 은서랑 같이 올라왔냐고 개새끼야. 김성식의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정은창은 한동안 미쳐있었고, 겨우 정신을 차린 것은 권현석이 던져놓은 놈들을 봤을 때였다. 은서가 죽게 된 원인들이었다. 김성식은 그 자리에 제가 없음을 안도했다가 멈칫했다. 내가, 지금, 무슨, …. 망설임은 짧았다. 정은창은 정말, 무참하게 그들의 숨통을 끊었다. 처음으로 드러낸 정은창이라는 사람의 바닥이었다. 권현석은 즐겁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정은창은 울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기만 했다.

첫 단추를 잘못 꿰었던 걸까? 두 사람의 동상이몽이 흩어진다. 꿈은, 꿈이었다. 꿈으로만 남기 때문에 꿈이었다. 둘에게 절망이 내려지고 희망은 사라진다. 무겁게 내린 절망을, 벗어내지 못하고 숨이 막혀 들어간다. 아무도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침묵이 맴돈다.

결국 먼저 총을 치운 건, 김성식이었다. 멀쩡한 총을 바닥에 내팽개치려다, 괜히 정은창에게 발길질을 했다. 피할 새도 없이 정은창이 뒤로 넘어졌다. 억누른 신음이 흘렀다. 정은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흙투성이가 된 옷을 털었다.

너, 그대로 가면 죽어.

-알아.

정은창은, 말을 씹어 뱉었다. 김성식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머리에 피가 쏠린다는 느낌이 어떤 건지 정은창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너! 지금, 그렇게 가면 죽는다고! 소리치느라 목의 핏대가 섰다.

“대체, 왜! 나는 안 죽이는데!”

“… ….”

“처음부터, 처음부터 죽이기 그랬어, ….”

장전 음이 들린다. 등을 보이는 김성식을 향해, 정은창이 총을 들었다. 권현석이 챙겨놓은 권총이었다. 권총, 잘 다루지 못하더라도 이정도 거리에서는 충분히 맞출 수 있는 거리였다. 팔이 떨렸다.

“알잖아, 네가 죽던가. 내가 죽던가. …그래야, 끝이 난다는 거.”

“돌은 새끼, …권현석에게 닮았냐.”

“형님이야,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마. 새끼야.”

“이거, 완전 깡패새끼 다 됐네? 형님?”

“넌 어쨌는지 몰라도, 나는 처음부터 깡패였어. 이미, 깡패였다고.”

“그래서, 평생을 깡패로 살겠다?”

“그럼 어쩌라고! 이미 이렇게까지 왔어. 사람을, …사람을 죽였어. 이런 내가 이제 와서 뭘 할 수 있겠냐고. 미래를 이야기 하던 애새끼는 이미 뒈졌어. 너도 그렇잖아. 김성식.”

자조의 웃음이 흐른다. 정은창은, 떨리는 입 꼬리를 애써 올렸다. 김성식은 정은창을 바라봤다. 어떤 표정인지 제대로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는 정은창이 쥐던 권총 총구를 쥐었다.

“넌 날 못 죽여.”

“왜, 왜….”

“그리고 나도 널 안 죽일 거고.”

“무슨, 무슨 개 헛소리야! 그렇게, 그렇게 끝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정은창.”

“아오, 씨! 왜!”

그는, 정은창의 총구를 쥔 채 그대로 팔을 내렸다. 떨리던 팔이 손수무책으로 내려갔다. 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내가 왜 경찰 됐는지는 아냐.”

“…씨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너 때문이야.”

“뭐?”

너 때문에 경찰 된 거라고, 개새끼야.

정은창은 무언가 잘못 들은 사람처럼 고개를 기울였다. 뭐? 또 같은 말을 내뱉었다. 김성식은 짧은 한숨을 쉬었다. 그 와중에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결코 이렇게 죽을 생각이 없었다. 이 새끼를 뒤지게 할 생각도 없었다. 정은창 위해서 경찰 된 거면, 이 놈 위해서 깡패 노릇 좀 할 수도 있지. 시발.

“왜, 왜 네가 날 위해서 경찰이 돼!”

“…멍청한 새끼.”

김성식은 혀를 찼다. 바닥에 떨어진 총을 주워 정은창을 지나쳐갔다. 말 그래도 멍청한 얼굴은 한 채 정은창은 그 뒤를 바라보다 뒤늦게 쫓았다. 이 새끼는, 왜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말을 안 하고 난리냐고. 짜증서린 말끝이 곱지 않았다. 김성식은 바빴다. 해야 할 이야기, 하지 말아야할 이야기. 그리고 이후 제 목숨을 부지 할 수 있는 가능성의 것들을 빠르게 꺼내고 정리하고 자르고 뒤집었다. 옆에서 쫑알거리는 입을 한 대 치니까 잠깐 조용해졌다.

살아야한다.

옆에 이 녀석을 살리기 위해서,

이 녀석을 위해서,

죽을 순 없다.

 나는, 살아야한다. 무언가를 버려서라도.

 같이 거래를 나갔던 두 사람이 행방불명이 되었다. 며칠 뒤 정은창으로 추측되는 시체가 발견되었다. 시체가 너무 훼손되어 있어 누구인지 알아 볼 수 없었지만 같이 있던 총이 권현석의 것이었다. 누군가 그 시체를 정은창이라 이름을 붙였다. 권현석은 그 시체 앞에서 한동안 서있었다. 믿던 짐승을 잃었다. 놓쳤다. 잘못된 선택을 한 이는, 휘청거리다 다시 꼿꼿이 섰다. 재미있네, …재미있어. 그는 한동안 그렇게 중얼거렸다. 조직은 한동안 고요하듯 싶더니 대대적인 숙청이 이뤄지고, 더 높이 날아올랐다. 그 후의 이야기는, 글쎄.

 

기다려 은창아, 곧 데리러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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