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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

[레스에델] 인간이 된다는 것은,

에델가르트가 죽었다. 

전쟁이 끝나고, 황제로서 정무에 집중 한 지 고작 5년이 지난 해였다. 피에 새로이 새긴 문장은 그 힘을 발휘할 때마다 주인의 생명을 그 곱절로 갉아먹는다-. 이는 리시테아를 통해 알고 있던 사실이었건만. 안타깝게도 현존하는 마도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치명적인 부작용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얼마 남지 않았던 '그' 아가르타족도 전멸했다. 

에델가르트의 장례는 벨레스가 봐온 그 어떤 장례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대하게 치뤄졌다. 포드라 전국을 통일하고, 문장에 따른 낡아빠진 계급제를 폐지하고. 개인이, 인간이 타고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든 이의 장례라고 생각한다면 크게 놀랍지는 않은 규모였다. 다만, 그렇게 수많은 업적을 남긴 이도 죽음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눈을 뗄 수 없었던 에델가르트의 백금발이 가지런히 늘어져있었다. 늘상 쓸어보던 것이었음에도 벨레스는 이제 섣불리 그 백금발에 손 댈 수 없었다. 심장이 뛰고 있을 당시에도 에델가르트는 황제였기에 그 누구도 옥체에 섣불리 손 댈 수 없었지만 유일하게 허락된 자가 벨레스였다. 무심코 뻗었던 손을 거두며, 문득 에델가르트가 돌연 눈을 뜨고 그 보랏빛 눈동자를 제게 맞춰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본디 '인간'은 과거의 저와는 달리 심장이 뛰지 않으면 생명을 이어나갈 수 없다. 그러니까 그 자안은, 이제 평생 마주할 수 없다.

옆에 서 있던 도로테아가 손을 잡아주기 전까지 벨레스는 그저 에델가르트의 가려진 눈동자에 시선을 뺏긴 채 그저 서 있었다. 선생님. 마지막이잖아요. 작게 속삭이는 도로테아의 말의 의미를 잠시 곱씹던 벨레스가 입술을 짓이겼다. 이제 선생님도 정말 --이 되신거네요. 도로테아의 낮은 웃음소리에 담긴 진짜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여신의 권속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은 틀림없다. 과연 좋은 일인지는 평생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 집무도 다 끝난 새벽이 오면 에델가르트는 늘 벨레스와 함께였다. 같이 침소에 몸을 뉘이고, 서로의 심장박동을 느끼며 안정감을 얻었다. 심장이 뛰지 않던 벨레스에게는 자신의 심장박동도, 굳이 손을 대어 보지 않아도 귀로 전달되는 에델가르트의 심장박동도 그저 신기했다. 그런 벨레스를 보며 에델가르트는 항상 --이 된다는건 좋기도, 나쁘기도 하단 말을 덧붙였다. 그때의 에델가르트는 마치, 지하실에서의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털어놓던 모습, 유일한 숨구멍이었던 벨레스를 비롯한 자신 주위의 모든 것이 한순간에 으스러져버릴까 불안해하던 모습과 겹쳐보이곤 했는데, 이제서야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된 벨레스였다. --이 된다는건-

선생님. 자신을 깨우는 목소리에 벨레스는 눈을 뜰 수 밖에 없었다. 다시 뻗은 손은, 이번에는 길을 찾아 조심스레 에델가르트의 손 위에 겹쳐졌다. 어느새 관 앞에 무릎을 꿇은 벨레스가 제 손을 얹은 에델가르트의 손에, 정확히는 마지막까지 그 손을 감싸고 있던 새하얀 장갑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그 손을 차마 힘주어 쥘 수는 없었기에, 그저 힘을 실어 얹을 뿐이었다.

눈 앞이 흐려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주변의 소리마저 흐려지니, 귀도 멀어가고 있는걸까. 현실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런게 죽음이라면, 이대로 쓰러지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이렇게 엘의 옆에 있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잘된 일 아닐까. 흐릿한 기억 속에, 에델가르트의 떨리는 손을 잡아주며 그렇게 말하던 자신이 있었다. 그 말에 에델가르트의 반응이 어땠었던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손을 맞잡았던가. 아니면. 선생님이 옆에 있으면 늘 좋은 일이 생겼으니까, 나도 선생님의 옆에서 --이 된다는건 --일이란걸 보여줄게. 라고 했던가. 그렇게 --이 된다는건 어떤 의미인지 함께 알려주겠다던 이가, 에델가르트가 죽었기에. 벨레스는 평생 알 수 없으리라 확신했다. 수없이 널린 불확실 속에서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이 고작 이런 거라면,

정신을 잃어가는 이 와중에도 고요히 눈감은 에델가르트의 모습만은 더욱이 선명해지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이제 선생님도 정말 인간이 되신거네요. 깊은 연민의 감정을 담은 누군가의 낮은 웃음소리가 다시금 들리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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